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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5.19 멸치 4
  2. 2009.01.08 알리치 절임, 성공 맞아? 10
한국 Korea 160409~2010. 5. 19. 16:49
이탈리아 뻬루자에 있을 때 멸치를 이용한 파스타를 자주 해먹었었다.
정확히 말하면 절인 멸치, 즉 아치우게 파스타다.
이탈리아에선 멸치를 두 가지 이름으로 부르는데
알리치(Alici)는 생멸치고
아치우게(Aciughe)는 절인 멸치를 지칭한다.
영어로는 안초비(Anchovy).

아무튼 너무 즐겨 해먹던 파스타라 식당메뉴로 꼭 넣겠다고
다짐했었고 식당을 연 후 몇 개월이 지나 아치우게는 메뉴에 등장하게 됐다.
지금은 토마토 소스를 바탕으로 한 메뉴지만
6월부터는 토마토를 뺀 맛으로 내놓을 예정이다.
이미 몇몇 지인들에게 반응을 테스트했는데 모두 좋다고 한다.
멸치는 사철 나겠지만 서울에서 생멸치를 구경하기는 쉽지 않다.
노량진에도 4월부터 7월까지만 생멸치가 올라온다고 하니
그 사이에 필요한 만큼 멸치를 사다가 절이는 작업을 해야한다.
주로 추자도와 부산 기장에서 잡아 올린 것들로
추자도는 생멸치가 그대로 올라오고 부산 기장은 배에서 잡아올린 것들을
바로 냉동시켜 노량진까지 올려 보낸단다.
추자멸치는 씨알이 좀 작고 기장 멸치는 씨알이 굵다.
우리는 기장멸치를 쓰고 있다.

멸치를 구입하시는 연세 지긋한 아주머니들은 10킬로씩 사다가
소금을 들이부어 멸치젓갈을 만들지만 우리경우는
멸치를 사다가 일일히 머리,내장,뼈를 발라내어
살만 차곡차곡 쌓가며 소금에 절인다.
서양식 멸치절임이란 이런 식인 셈인데
그 수고가 장난이 아니다.


그런탓에 이탈리아에서 아주 작은 병조림에 든 절인 멸치의 가격이
꽤나 비쌌고 부담없이 사먹을 수 있는 식재료가 아니었다.
베로나에 있을 당시엔 마침 수퍼에 진열된 생멸치를 잔뜩 사다가
아예 멸치를 절여 먹기도 했는데 그 맛이 더 좋았다.

적어도 우리 가게에서 멸치는 신선도가 생명이다.
무게에 눌린 멸치들은 곧 내장이 터져 곧 신선도가 떨어지기 시작하는데
추자도 멸치는 그런점에서 우리에게 불리하다.
오히려 급냉시켜 살이 단단해서 올라오는 기장멸치가
신선도가 좋고 작업하기도 훨씬 수월하다.
오늘 노량진에서 10킬로를 사왔고 점심영업이 끝난 후 부지런히 손질해
3킬로 가량 작업을 마쳤다.
이정도 양이면 한달은 너끈히 버틸 수 있다.

소금에 절인 멸치는 곧 물이 생기는데
충분히 베어나왔다 싶으면 이놈들을 요령껏 탈수한 뒤
깨끗한 용기에 다시 차곡차곡 담아 올리브오일을 듬뿍 부으면
그걸로 작업은 마무리가 된다.
우리가 이탈리아에서 즐겨먹었던 그 맛은
6월부터 본격 선보일 예정이다.


Posted by dalgonaa

비린내 좀 풍겨보자. 알리치(Alici, 영어로는 Anchovy), 비린맛 굶주린 이들의 입맛을 싸게 충족시키기에 이거만큼 좋은 어물전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우리는 요즘 알리치의 존재에 감사하고 있다. 인천 소래포구에 가면 시뻘건 녹과 말라버린 소금이 한데 엉긴 커다란 드럼통에 시커먼 멸치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이 녹아 짠내를 풀풀 풍기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데 한때 일산에 살며 비린맛이 그리울 때면 종종 그곳을 찾아 냄새를 원없이 맡았었다. 그러나 사실 소래에서 우리 입맛을 당긴건 주로 횟감의 안방마님 광어나 우럭, 제철에나 즐기는 전어, 겨울철 쏟아져 나와 산처럼 쌓여있는 싱싱한 홍합과 굴, 각종 조개류, 대가리에 알과 먹물 꽉꽉 들어찬 주꾸미가 일산에서 고물차를 타고 달려가게 만든 주인공들이었을 뿐, 멸치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탈리아는 어떨까?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국가, 이름만으로도 가슴 설레이는 지중해, 아드리아해를 동서남으로 접한 빤따스틱한 지리적 조건, 이곳에서도 소래에서 맛봤던 놈들과 뜨거운 재회를 할 수 있을까? 쯧쯧.. 꿈깨자. 사실 몰타에서 7개월 생활하며 이미 예상했던 일이기도 한데, 지중해가 그닥 차가운 바다가 아니어선지 잡혀 올라오는 어족도 적고 상태도 여간 부실한게 아니어서 생선이라면 환장하는 우리로선 여간 실망스러운게 아니다. 한치보다 작은 놈이 오징어라며 버젖이 팔리고 있고 1kg에 1만원이 넘는 고등어는 어떤 대단한 물건인가 해서 보면 전어만한 크기의 귀여운 것들을 장식을 곁들여 최대한 그럴듯하게 보이도록 해 팔고 있으니 팔뚝만한 고등어만 먹어온 우리로선 콧방귀밖에는 나오는게 없다. 이탈리아가 이정도니 바다라곤 냄새도 못맡는 스위스, 오스트리아, 체코, 헝가리, 슬로바키아 등 내륙은 오죽하겠나? 그러니 한국과 일본 다음으로 어물전이 풍부한 나라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게 이곳에 와서다. 좀 건방진 얘기일지도 모르겠지만 누군가 이탈리아 가서 생선요리를 배우겠다면 사시미칼 들고 말리겠다.  매일같이 먹는 프로슈또 포 뜨는 솜씨는 봐줄만 하지만 TV 요리 프로그램에서 전문 요리사가 생선 포 뜨는 모습을 보노라면 답답하다 못해 한심하단 생각이 들 정도니 말이다. 그러나, 답답한 가슴만 친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아쉬운건 우리일 수 밖에 없다.

다행히 알리치는 겨울철 들어 물좋은 놈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고 품질도 좋고 가격도 비교적 저렴하니 '이거라도 있는게 어디냐'는 것이 우리의 솔직한 심정이다. 베로나는 집 가까운 곳에 작은 생선가게가 있었지만 뻬루자는 그마저도 없어 큰 수퍼에 가야 그나마 비린내를 맡을 수 있고 공교롭게도 산으로 둘러쳐진 내륙 중앙으로 들어와서 즐겨먹는게 알리치 파스타라는 점이 얄궂지만.. 여튼 요즘 알리치 소비량이 제법 많은데 가공품으로 나온 알리치는 제일 싼게 80g에 1,500원이고 좀 괜찮은 품질은 4,000원이 넘는다. 이틀 정도 해먹으면 바닥이 나는 양. 허구헌날 알리치를 사는 것도 캥기고 값도 비싼듯해서 이럴바에 생멸치를 사다가 직접 담가먹자하던 차에 마침 수퍼 생선코너에 가니 실로 오랫만에 들어왔길래 1kg을 5천원에 구입했다. 더듬더듬 알리치를 달라고 하니 펑퍼짐한 생선코너 아줌마, 멸치를 포장하며 "알~뜨로(그리고 또)"를 외치는데 그 압박에 살짝 위축돼 홍합이 있어 그것도 좀 샀다. 이곳의 생선포장이 독특하다. 먼저 기름종이를 깔고 그 위에 생선을 올려 포장한 뒤 다시 은박봉투에 담아 이를 기계로 다시 봉합해 마지막으로 비닐봉투에 담아 가격표를 붙여준다. 먼길 가도 생선 비린내가 새나올 틈이 없으니 서비스 수준은 우리보다 훨씬 높다 하겠다. 쇼핑의 사소한 차이 하나만 더 얘기하자면 채소나 과일 코너에선 비치된 비닐에 원하는 만큼 물건을 담는건 우리와 다를 바 없지만 이때 함께 비치된 일회용 비닐장갑을 끼고 물건을 만진다는 점, 그리고 자신이 직접 무게를 재고 가격표를 붙인다 점이 우리와 다르다. 일회용 장갑을 돈주고 구입하는 우리와 달리 필요하면 그냥 집어오면 되는 것도 재밌고 눈치껏 하면 가격표만 먼저 끊어놓고 비닐에 채소나 과일 몇 개 더 집어넣는 스릴도 즐길 수 있다. 실제 그러는 젊은 애들도 가끔 있다. 우린 젊지 않아서..

자, 알리치를 소개한다.


은빛 비늘이 깨끗한게 제법 싱싱하고 보는 재미가 느껴질 정도로 이쁘다. 안그런가?


머리를 따고 내장을 제거한 뒤 물로 깨끗히 씻어내면 이렇다. 윤기는 변함이 없고 한점 집어서 초고추장에 푹 찍어먹고픈 충동이 물결친다. 근데 먹을 수 있을까? 보자. 비늘이 심하게 흉하게 나간 곳 없이 은빛으로 깨끗하게 반짝인다는 점은 전혀 상하지 않았다는 얘기고 냄새를 맡았을 때 비린내가 안난다는 점은 뭍으로 올라온지 얼마 안됐다는 얘기다. 해서 깨끗히 손질만 하면 먹을 수 있다. 우리는 몇 점 집어 고추장에 찍어 맛있게 먹었다. 허나 이날은 횟감용이 아니라 염장해 올리브에 절이기 위함이니 욕심은 접어야 했다.


내장에 이어 뼈까지 제거하는 저 세심함. 생각보다 쉽게 뼈가 발라져 나온다. 일전에 일본 소설을 읽어보니 도미같은 억센 생선의 머리를 제거할 때 초보자는 칼의 날카로움과 힘만 믿고 달려들다가 도마를 난장판으로 만들어놓는 반면 숙련자는 관절에 칼끝을 넣어 손쉬게 머리를 제거한다고 한다. 그러나 멸치의 머리를 제거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전자일 듯.

소금 솔솔 뿌려 절여놓고


병에 차곡차곡 담은 뒤 올리브유 듬뿍 부어놓으면 끝.

은빛 멸치와 옅푸른 올리브유의 조화가 아름답다. 이렇게 해서 알리치 담그기는 성공적으로 끝나나 하고 생각했는데 젠장.. 소금에 절인 멸치에서 물이 나온다는 생각을 미처 못한거다. 1시간 쯤 지나자 소금기 때문에 병 밑바닥에 탁한 멸치물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요즘 물 때문에 낭패 많이 본다. 한 번은 세탁기를 돌리는데 배수호스를 세면대나 욕조쪽에 걸쳐두는걸 깜빡해 화장실이 물바다가 된 적이 있다. 우리와 달리 여긴 바닥에 배수구가 없다. 기겁을 해서 쓰레받이를 들고 욕조안으로 물을 퍼 넣었다. 비록 작은 유리병안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낭패감은 그에 못지않다. 얼마나 정성을 들인건데..  생각끝에 다시 알리치를 들어내고 물만 따라 버린 뒤 하룻동안 멸치물이 더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다음날 최종적으로 올리브유를 다시 부었다. 이렇게 해서 알리치 담그기는 마무리됐다. 정성이 수고롭긴 했지만 병안에 담긴 양을 생각하면 한동안 넉넉히 요리해먹을 양이다. 무엇보다 직접 담가봤다는 경험이 자산으로 남을 듯. 근데.. 알리치 담그는 요령에 대한 어떤 힌트나 조언도 없이 '대충 이렇지 않겠나' 하는 생각으로 달려든거였는데 아무래도 멸치를 어떤 식으로든 한 번 살짝 익혀서 담그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 왜냐면 우리가 사먹는 것과 모양, 질감면에서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다 먹는건 불투명한데 우리가 담근 알리치는 투명하다. 어떻게 생각하나? ㅋㅋ

알리치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몇 가지 방법, 아직 이정도 밖에는..

이탈리안 파슬리와 레몬을 뿌려낸 멸치 튀김. 백포도주와 환상궁합.

요즘 우리의 완소, 알리치 파스타. 사진 땟깔이 입맛과 멀지만 맛은 보장한다. 루꼴라 얹고 그 위에 빠다노 치즈가루 솔솔.

알리치와 말린 뽀모도로를 메인 토핑으로 올려낸 수제피자. 반죽까지 손수 밀어낸 강양의 솜씨다. 얇은 반죽이 바삭하니 맛있고 쫄깃한 뽀모도로, 짭짤한 알리치의 조화가 훌륭하다. 역시 백포도주와 환상궁합.

그리고 보니 새해 인사가 늦었다. 조회수 100 안팎을 꾸준히 유지시켜주는 모든 방문자들이여, 올 새해도 몸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두루두루 건강하시길 바라고 무엇보다 험난한 풍파속에서도 풍성한 식탁만큼은 꾸준히 지켜가시길..!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