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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Korea 160409~2012. 11. 19. 10:36



우리 어렸을 적엔 주변에 태울게 많았다.

난 유년시절을 경기도 구리에서 보냈는데 시골이나 다름없던 당시의 그곳은

 주택건설이 한창이라 어딜가나 못박힌 폐기목들이 넘쳐났다. 

종종 시커먼 기름을 뒤집어쓰기도 한 그것들을 줏어모으면 불을 질렀다.

동네 형들은 주위를 살피며 담배를 빨았고 우린 불꽃이 사그라들까

부지런히 장작을 구해다 불꽃을 키웠다. 

태울 수 있는건 다 태웠던거 같다. 

버려진 옷가지, 비닐하우스의 폐비닐, 어디선가 가져온 전화번호부책. 

깜깜해진 저녁에 집에 들어가면 옷에선 탄냄새가 진동했다.

요즘 엄마들이라면 애를 잡았을텐데 그때 엄마들은 안그랬다.

연탄냄새, 남편 담배냄새, 밥타는 냄새, 언수도 녹이느라 왕겨 태우는 냄새 등.

하여튼 뭔가 타는 냄새가 일상이었기 때문일까?


아무튼 겨울엔 불장난이 최고였고 그게 문제가 안되던 그 시절이 그리운 요즘.

그런 연관인지 남자들은 애나 어른이나 불을 지배하고 싶어하는 어떤 욕망이 있는게 아닐까?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그이가 남자에게 어떤 DNA를 심어줬는진 모르겠지만

 겨울이 닥치기 전에 연탄난로를 놓기로 올 가을에 난 마음을 굳혔다.

내 불장난을 위해서도 그렇고 문가에 앉은 손님들의 따뜻함을 위해서도 그렇고.

그 계획을 밝히자 달고나 식구들간에 가뜩이나 좁은 실내 문제로 잠깐의 설왕설래가 있었지만 

따뜻한 겨울을 나자는 것에는 모두 한 마음. 



사실 요즘 도시난방의 대세는 전기이고 우리 가게도 냉난방 겸용의 천정형 에어컨을 쓰고 있는데

이게 전력도 많이 먹으면서 난방력은 떨어지고 무엇보다 '열풍'방식이기 때문에

그 바람을 맞으면 메말라가는 느낌이 썩 안좋다는 점이다. 

따뜻함에도 품질이 있는 법.

제일 좋은 품질은 복사열 난방일테고 그 분야의 최고는 역시 직접 불을 때는 난로다.

화목난로든 연탄난로든 기름난로든.


난로를 설치하기 위해선 넘어야 할 아주 큰 산이 하나 있다. 

바로 연통을 밖으로 빼내기 위해 벽의 구멍을 확보하는 것이 그것. 

연통 구멍이 유리창 따위나 허술한 얇은 벽이라면 문제가 간단하겠지만

두터운 콘크리트 벽이라면 각오 단단히 하고 도전해야 한다. 






아래쪽 구멍은 3년 전 가게 공사를 하면서 뚫은 것인데 왜 뚫었는지 기억이 가물하다.

아저씨 두 명이 흰 먼지를 잔뜩 뒤집어써가며 애썼던 기억은 생생하다. 

새로 뚫어야 할 위치는 기존 구멍에서 수직으로 올라가 가스배관이 지나는 바로 아래다. 






집에 에어컨을 놓을 때 설치기사가 쓰는 장비중 하나가 바로 저거다. 

'코아드릴'이라고 부르는데 고속으로 회전하면서 콘크리트 벽체를 

동그랗게 뚫어준다. 그 구멍으로 에어컨 동파이프와 배수파이프를 통과시키게 되는데,

에어컨용 설치를 위해선 50mm 정도의 구멍을 뚫으면 충분하지만 

우리 가게에 놓을 연통구멍의 폭은 110mm다.

따라서 최소한 110mm 이상의 구멍을 확보해야 한다. 


자주 사용하는 장비면 아마 내가 구입을 미뤘을리가 없겠지.

저건 종종 이용하는 공구상을 찾아가 빌리기로 했다.

벽을 깨부수는데 쓰는 해머드릴 하루 빌리면 2만원이 채 안되는데 저건 3만원을 달란다. 

왜 이렇게 비싸냐니까 날 값이 비싸서라고 한다. 아무래도 닳아 없어지는거니까.. 

무게는 10kg 정도. 역시 만만치 않을 것 같은 예감..

125mm 날을 장착한 저놈을 빌려와 곧바로 작업에 착수했다.

(신분증을 잃어버려 여권으로 대신하고 있는데 마침 여권을 안갖고 갔더니 그 마저 확인안하면

못빌려준다길래 두 번이나 왕래하는 번거로움끝에 손에 넣었다. 공구상을 자주 이용하시는

상수건축 사장님과도 친분이 두텁다는 것으로 신분확인을 대신해보려 했으나 돌아온 답이 걸작이다.

"문제가 생기면 그분한테도 피해가 생겨서 곤란해요"  왜 남을 파냐는 얘기의 다른 표현. 

두 말 않고 되돌아가 여권을 가져왔다) 





공업용 다이아몬드가 날 끝에 박혀있다.






은근히 고공작업이다. 살짝 다리가 후들거리는 높이.

코아를 들자 전반적인 무게가 앞으로 쏠리면서 균형잡기가 쉽지가 않다. 

버튼을 당겨 회전시켜 벽체에 대자 계속 튕겨 나가기만 하고 몇 차례 고전이 계속됐다. 






다시 심호흡한 뒤 들이댄다. 튕겨나가려는 것을 제압하며 온힘과 집중력을 쏟으니

그제서야 겨우 자리를 잡는데 성공. 저 코아작업을 할 때 간혹 앵커(고정)작업을 병행하는걸 

봤는데 이제서야 그 이유를 알겠다. 튕겨나가는 것을 방지하고 

동시에 정확한 위치를 확보하는 것이 목적.






50mm 정도 뚫으니 저렇게 벽돌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나마 다행인건 저 벽이 콘크리트 타설로 메워진 벽이 아닌 조적벽이라는 점.

콘벽이면 밀도도 높고 철골도 심어졌을테니 그러면 작업은 몇 배 더 힘들어질테다.

그에 비해 시멘트 벽돌은 밀도가 좀 낮고 충격에 약하니 그에 비하면 한결 수월한 셈.

사실 이 점을 이미 아래쪽에 먼저 뚫어놓은 코아 작업에서 알았기 때문에

이번 도전에도 직접 나설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역시 힘들긴 엄청 힘들다. 






코아가 커팅하고 지나간 뒤 가운데 남아있는 벽의 심지는 

저렇게 망치와 정으로 일일히 깨며 파낸다. 






쌀쌀한 날씨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몸에서 땀이 난다. 

옷도 벗어던지고 난로를 향한 집념은 계속된다.

다이아몬드 날의 고속회전도 엄청난 힘이지만 단단한 벽체가 지닌 힘도 엄청나서

종종 회전하던 드릴의 날이 벽체에 끼면서 급브레이크처럼 순간 서버리는데

그러면 반작용으로 튕기듯 드릴 몸체가 회전하고 그걸 제압하는데 순간 큰 힘을 쏟아야 한다.

벽의 저항이 충격으로 온몸으로 전달되는 셈. 

잠시 쉬어가며 그렇게 1시간을 씨름했을까?






드디어 반대쪽 벽에서 흰 먼지가 피고 마침내 벽이 뚫렸다. 

끼야호!






우승 트로피를 받은 것과 비슷한 감정.






달고나 난방 역사의 새로운 장이 열렸다.






두께를 재보니 정확히 285mm.

이쯤되면 시시콜콜 별 사진을 다 올린다 하겠지만 그만큼 힘들었다는 것을

이렇게라도 확인받고 싶은 심리랄까 ㅋㅋ







연통되시겠다. 

동네 철물점에서 구입하니 하나당 3000원.

대략 12~13개가 필요하다.

길이가 1미터인줄 알았는데 재보니 91cm.

이런 기준은 어떻게 생겨난건지 궁금하다. 






엘보우와 T도 각각 필요.

엘보우는 3개, T는 하나면 충분. 






이놈이 바로 주인공 되시겠다.

인터넷에서 15만원 줬고 공장은 인천에 있는 주물공장인 듯. 

강양에게 어떠냐고 물으니 '멍청하게 생겼다'는 답이 돌아온다.

원래 좀 멍청하게 생긴 디자인이 어려운 일을 묵묵히 해낸다. 






아래엔 재받이와 그에 붙어있는 공기구멍.

저거 전부 열면 거의 3~4시간 만에 홀라당 타버리고 

꽉 닫으면 12시간은 충분히 가는 듯 싶다. 

조잡해보이지만 임무가 대단하다. 






내부의 화덕. 

어렸을 적에 본 화덕은 대개가 어디서든 쉽게 구하던 황토나 토기 화덕이었던 듯 싶은데

요즘은 대개 시멘트로 비벼서 만드나 보다. 

삼각형의 각 모서리에 연탄 석 장이 나란히 들어간다.

실제 넣어보니 빈틈이 없을 정도로 딱 들어맞는 사이즈.

연탄들이 비좁게 낑겨서 활활 잘 타라고 그리 했나 싶은 생각이..






연통들은 호일테이프로 칭칭 감아서 가스 새는데 없도록 견고하게 고정시킨다.






뚫린 벽으로 연통도 꽂아 넣고.

보람찬 순간.






밖에서 봐도 참 잘 빠졌네 ^^






벽을 뚫어 연통길을 내자 이후 작업은 정말 일사천리다. 

연기가 잘 빠지도록 비스듬히 경사각을 주고 그 각을 유지하기 위해

천정에서 철사줄로 연통을 지탱하는 과정을 마치면 기본적인 난로설치는 끝.






설치가 잘 됐는지 신문지에 불을 붙여 난로에 넣고 뚜껑을 덮으니






연기가 솔솔 잘도 피어나오는구나.


이제 남은건 안전펜스 설치.

각파이프를 구입하려고 동네 철물점(그래도 규모가 제법 큰 곳)에 가니 여기선 취급안하고

영등포 문래동에 가야 구할 수 있단다. 해서 차 몰고 영등포로.

문래동의 위상은 한 때 대단했었다. 

청계천과 마찬가지로 대한민국 산업화의 숨은 역군들이 

엄청난 양의 철과 사투를 벌이는 곳이었기 때문.

지금은 주위에 세련된 백화점과 속속 들어서는 아파트, 주상복합에 포위되어

과거의 명성을 잃어가고 있지만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서울과 수도권에 엄청난 양의 철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그 덕에 나도 손쉽게 30mm 각 파이프를 손에 넣었다.






손그라인더로 쇠를 자르고 절단면을 안다치게 잘 다듬은 뒤

조립과 분해가 쉽도록 나사로 고정시켰다. 

용접 때린것 처럼 견고하진 않지만 쓰기에 지장은 없다. 





내친김에 번개탄 구해다가 불도 지펴본다.

헌데 수퍼에서 파는 번개탄이 우리가 예전에 쓰던 번개탄이 아니다.

요즘 번개탄은 한마디로 '바베큐탄'. 

고기 굽는 용도로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연탄불 피우는 용도로는

그 화력이 떨어진다. 처음엔 활활 잘 타지만 오래가지 못할 뿐더러

타고 남은 재는 힘없이 무너져서 연탄이 기우뚱 넘어지고 만다.

예전 번개탄은 뭉근히 타면서 다 타고 나면 그 재도 원래의 형태를 유지했던걸로 아는데..

아무튼 몇 번을 시도했지만 결과는 모두 실패.

낭패감에 젖어 잠시 망연해 있다가 떠오른 생각.

까짓꺼..






낯선 풍경이긴 해도 안될 이유가 없잖은가.

하지만 저 방식도 가스불 강하게 해서 1시간은 태워야 겨우 불이 붙는 식이니

한계가 있는 셈. 매번 저럴 순 없으니 말이다. 게다가 아무래도 요리하는 조리대에서..^^


연탄집에 전화를 걸어 200장(장단 550원, 11만원)을 주문하면서

상황을 설명하고 번개탄에 대해 물으니 연탄용 번개탄이 따로 있다는 반가운 말씀.

그럼 그렇지. 






그렇게 해서 저기에 저렇게 연탄 200장을 들여놨고 왼쪽 귀퉁이 끈으로 묶여진 번개탄도 들여놨다.

내가 아는 번개탄은 탄 밑에 톱밥이 묻어있는 모습인데 역시 이놈이 그렇다. 

헌데 신기한건 연탄에 불을 붙일 정도로 화력도 쎄고 확실히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면서

타고나면 흔적이 거의 남지 않는다는 점이다. 바베큐탄은 무너지는 식으로 재를 상당히 남기던데..

저 하찮은 번개탄에도 스마트기술이?

암튼 꽃들이 만발하던 화단자리에 화분을 치우고 연탄을 주인공으로 모셨다.

예전 어른들 겨울 앞두고 김장하고 연탄만 들여놓으면 걱정이 없다 하셨으니

딱 그 심정 ㅋㅋ.

살면서 보람이라는거?  저런 작은거에 다 담겨있다. ^^


200장이면 일주일에 5일 영업하는 우리 가게 기준으로 보자면

한 달하고 보름 가까이는 쓰지 않을까..

강추위가 닥친다면 그보단 좀 더 빨리 쓰겠지만..






발그레한 빛으로 잘 타고 있는 연탄. 

뚜껑을 오래 열어놓으면 특유의 가스냄새가 코를 찌른다.

뚜껑을 덮거나 뚜껑 사이즈의 주전자를 얹어놓으면 가스냄새도 안나고 

김 모락모락 피어나는게 보기도 좋다. 


지난 한 주 제대로 피워서 운영해보니 손님들 반응이 좋다. 

출입문쪽에 난로를 둬서 그쪽 자리에 앉은 손님들이 이번 겨울엔 좀 더 따뜻하게

식사를 할 수 있게 됐으니 덩달아 우리도 좋다. 

완전 추운날은 9장의 연탄을 몽땅 넣고 불구멍 확 열어버리고

그렇지 않은 날은 상황을 봐가며 양도 조절하고 불구멍도 조절하면 그만.

여기에 애초 사용하던 천정형 에어컨의 난방을 약하게 돌려주면 위로 몰리는 

열기를 구석구석에 골고루 퍼뜨릴 수 있지 않을까.



 실제 운영되는 난로 인증샷이 없는데 다음에 찍어 올려야겠다.


그리고 달고나 월동 준비가 아직 하나 남았다.

종종 밖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손님들이 추위에 무방비로 노출되는게

여간 걸리는게 아니었다. 해서 여기저기 뒤진 끝에 전기온돌판넬을 손에 넣었고

그걸 설치할 수 있는 벤치를 만들 계획. 

비록 추운 밖이지만 따뜻한 바닥에 앉아 뜨거운 차 한 잔 손에 쥐고 있으면 한결 낫지 않을까?

그 이야기도 포스팅 대기중이니 기대하시라.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