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로나를 떠나기 전 리자를 안 볼수가 없어서 그녀의 BAR에 어제 저녁에 놀러갔다. 기념품도 줄 겸 이탈리아 브랜디인 GRAPPA에 대한 추천도 받을 겸. BAR 문을 열고 들어서니 안쪽에 어느 여자가 바닥을 쓸고 있고 리자는 안보인다. 7시에 있을꺼라고 했는데.. '보나세라'하고 여인에게 인사를 건네니 고개를 들곤 우릴 보고 방긋 웃음을 터뜨린다. 처음엔 못알아봤다가 가까이서 보니 리자다. 세상에.. 짧은 컷트는 그렇다 치고 헬쓱할 정도로 살이 빠진 모습에 놀랐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걸까? 남자친구로 이래저래 맘고생이 많았다는 얘기는 엘리를 통해 얼추 들어 왔었고.. 아침 7시30분에 문을 열고 밤 10시에 문을 닫는 BAR 생활은 몸 상하기 쉬울테다. 몰라 볼 정도로 변한 모습이 이래저래 힘들었다는 얘기. 리자는 최근 남자친구와 헤어졌다고 일전에 만난 엘리자베타가 우리에게 일러줬으니 그 심정이 좀 더 헤아려진다. 그래도 입을 귀에 걸듯이 활짝 웃는 모습은 여전하다. 갑작스레 터뜨리는 웃음도.





한 잔만 하려던 아페리티보를 이래저래 이야기가 길어지더니 결국 3잔이나 마시고 말았다. 나중에 계산하려니 전부 받는건 고집스레 거절하고 깎아줬다. BAR의 스피커에선 이탈리아 인기 라디오 채널, 첸토두에친꿰(125)의 요란한 음악들이 흘러 나왔지만 그녀의 어수선한 요즘 심정을 담아낸 노래는 아래일 듯.

                                                        Mina - Parole Parole ('72)

Posted by dalgonaa
이딸리아 Italia 300908~2008. 10. 14. 06:33

리자는 작은 가게를 운영한다. 이름은 St. Thomas Cafe. 성인의 이름은 가게 바로 앞에 있는 성당에서 따왔다고 한다. Cafe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 우리에게는 익숙하지만, 사실 이 가게는 이탈리아식으로 치자면 Bar라고 할 수 있다. 이탈리아는 동네 어귀어귀 마다 작은 Bar가 곳곳에 있는데 주로 커피와 와인, 그리고 간단한 먹거리를 판다. 리자네 Bar도 아침 7시에 문을 열어 출근하는 사람들을 위해 간단한 샌드위치류의 먹거리와 커피를 팔고 낮과 밤에는 스프리쯔와 와인 등의 술도 판다. 대박을 칠 만큼 좋은 자리도 아니고 값싼 먹거리와 음료가 주메뉴기 때문에 그녀는 이른 아침부터 손님들을 불러모으기 위해 애를 쓴다.


가게도 그렇고 듣자 하니 남자친구와의 관계도 그렇고 속시원한 행운이 따르지 않는 요즘의 그녀지만 큰 소리로 웃는게 특징인 그녀의 얼굴에서 어두운 낯빛은 찾아보기 어렵다. 오늘 리자네 가게를 다녀왔다. 다른게 아니라 술을 취급하는 그녀니 만큼 와인너리와 관련해 뭔가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해서다.

잠시 설명을 하자면, 우리가 이곳에서 생활하기 위해선 수중에 가진 돈만으론 당연히 부족하기 때문에 돈을 벌 수 있는 일도 기회되는대로 찾아 해야한다. 그 가운데 하나가 모 방송사의 해외소식을 다루는 프로그램에 작품(?)을 납품하는 일. 혹시나 프로그램이 가을개편에서 사라질까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도 살아남았다고 한다. 담당 PD와도 연락이 닿았으니 우리가 준비되면 그쪽으로 연락을 넣고 작업에 들어가면 될 듯 한데 바로 그 아이템의 하나가 와이너리다.

작은 앞치마를 두른 리자가 우리를 반긴다. 맨입으로 필요한 것만 취하고 갈 수는 없으니 맥주 작은 잔 하나와 와인을 한 잔 시켰다. 리자와 마주 앉아 잠시 지나가는 이야기들을 주고받은 뒤 본격적으로 우리의 궁금증을 풀어놓았다. 

달고나 : 언제가 포도 수확철이냐?
리자 : 바로 지금이다. 9월부터 10월까지 한다. (그리고 당장은 중요치 않은 긴 설명이 이어졌으므로 SKIP)
달 : 혹시 아는 와이너리 있냐?
리 : 있다. My sister의 시댁이 아주 작은 와이너리를 한다. 그리고 작은 레스토랑도 함께 운영한다. 베로나에서 차로 40분만 가면 되는 거리다. 
달 : 오호~ 그거 아주 반가운 소식이다. 이미 전에도 얘기했지만 우리가 비디오 작업을 하는데 가을을 맞아 와이너리를 취재하려 하는데 그곳이 가능하겠냐?
리 : 문제 없을꺼다. 가능하다면 나와 함께 가서 그곳 구경도 하고 식사도 함께 하고 오자. 그들은 굉장히 친절한 사람들이고 일종의 농원같은 식으로 레스토랑과 숙소, 와이너리를 함께 운영한다. 내가 뭘 하나 보여주겠다. (그리고 잠시 사라졌다가 와인 한 병을 들고 나타난다)  My sister 시댁에서 담근 와인이다. 라벨에 그려진 그림이 그곳이다.  


리 : 오른쪽 건물이 숙소고 왼쪽이 레스토랑이다. 작년에 개업선물로 주신건데 너희들 가져가서 마셔봐라. (처음엔 "For you"라고 해서 잠시 귀를 의심했는데 헤어질 때 끝내 우리손에 안겨준다. 맘씨좋은 리자.. 혹시 개업선물로 한 병만 주신건 아닐테니 받아왔다. 아무튼..)

달 : 언제 함께 갈 시간이 되겠냐? 평일엔 장사를 해야할테니 너는 일요일밖에는 시간이 안되지 않느냐?
리 : 먼저 내가 그곳에 연락을 취해보겠다. 그리고 나서 다시 이야기하자. 다행히 My syster의 시어머니가 옛날에 영어교사여서 영어를 할 줄 안다. 
달 : (영어선생이란 말에 살짝 기가 죽었지만)오호.. 참 잘됐다. 그럼 연락해보고 우리에게 알려주라.
리 : 알았다. 

얘기를 마칠 즈음 갑자기 손님 셋이 들이닥쳐 이것저것을 주문했다. 일손이 바빠진 그녀와 작별인사를 한 뒤 가게를 빠져나왔다. 조만간 리자를 집으로 초대해 음식을 대접할 요량이었는데 오늘 공짜술도 얻었으니 재료를 아끼지 말아야겠다. 누들 종류는 뭐든 좋아한다니 뭔가 근사한걸로 반쯤 '죽여야'할텐데 뭐가 좋을지.. 일산의 칼국수나 을밀대의 냉면을 먹이고 싶은 생각 굴뚝같으나  쩝..  



리자네 가게 외관. 테이블에 앉은 이들이 그녀 가게의 손님들이고 서있는 사람들은 바로 옆 피자가게에 몰린 손님들이다. 리자가게의 단골손님은 저 사람들이 아니라 피자가게의 웨이터들.

Posted by dalgonaa
이딸리아 Italia 300908~2008. 10. 10. 21:59

어제 저녁, 첫 이탈리아어 수업을 다녀왔다. 숙소로부터 걸어서 채 20분이 걸리지 않으니 몰타에서 학원다니던 거리보다 조금 짧은 셈이다. 좁아 터진 인도를 걷느라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닌 몰타였다면 베로나는 넓은 인도는 물론이고 공원길을 지나가니 그 여유가 비교할 바가 아니다. 목요일 수업은 원래 6시 30분이지만 어제는 6시부터 시작됐다.

성당 마당에 도착하니 이미 예닐곱명의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경계와 호기심, 낯설음이 뒤엉켜 기분이 뒤숭숭하지만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이들의 목적은 단 하나, 이탈리아어다. 목적지가 같다는 점은 이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다는 점이고 이들 또한 우리에게 쉽게 다가와주길 바란다.

파올라를 찾아보니 파올라는 아직 오지 않았다. 수업이 진행되는 1층의 교실을 기웃거리자 일전에 잠깐 인사를 나눈 적이 있던 성당 관계자가 모습을 나타낸다. 모자를 삐딱하게 쓰고 옷차림에 신경을 거의 안쓰는 60대의 이 노인은 잔뼈 굵은 활동가의 분위기를 풍겼다. 씨익 웃으며 들어오라고 손짓한다. 그 단순한 제스춰가 낯설음에 대한 모든 두려움을 한 순간에 없애버렸다.

이날 수업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우리를 포함해 총 9명. 브라질 출신이 가장 많고 영국에서 온 흑인도 있고 스리랑카에서 온 아주머니도 있다. 마침 파올라도 도착했고 함께 올지 장담 못한다던 안드레아도 왔다. 그룹을 2개로 나뉘었고 한 공간에서 책상을 나누어 수업을 진행했다. 한쪽은 조금 회화를 할 수 있는 그룹이고 우리그룹은 숫자 세는 것부터 시작하는 그야말로 초급이다.

우노, 뚜에, 뜨레, 꽈뜨로.. 생소하기 그지없는 단어들과 발음들. 안드레아는 이탈리아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설명에 열심이고 스리랑카 아줌마와 브라질 청년과 함께 우리도 눈치껏 쫓아가본다. 0서부터 100까지의 숫자 세기와 시간 읽기를 이날 공부했다. 낯선 단어들이지만 반복되는 몇 가지 원리를 이해하니 열심히 큰 소리로 반복해 읽어대면 쉽게 적응할 것 같다. 문득 리자네 BAR가 떠오른다. 자주 놀러가서 리자와 손님간에 주고받는 이야기를 엿들어봐야 겠다.

수업의 질은 높았고 배우는 이들의 만족도 또한 매우 높았다. 이 추세가 오래도록 지속되기를 바란다.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