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01.27 로마여행 첫 날. 14
  2. 2008.04.25 시칠리아의 태양을 담아낸 과일, '아란치아 로사' 5
  3. 2008.03.27 로마 '탈출' 3

1박2일 로마여행을 마치고 어제(일요일) 밤 늦게 돌아왔다. 작년 3월 말, 몰타로 들어가기 전 5일간 머물며 비와 추위로 생고생을 했는데 그 날로부터 딱 10개월 후의 재방문이다. 도착한 날도 역시 비가 내려 아무래도 로마와는 인연이 없는건가 싶었으나 둘째날은 날도 화창하게 개이고 따뜻해서 돌아다니기에 좋았다. 이번 로마 여행은 두 가지가 목적이었다. 하나는 매월 마지막 일요일은 바티칸 박물관이 무료개관을 하는지라 이 기회에 공짜로 챙겨보자는 것과 또 하나는 고추장과 된장 사러. 뻬루자의 골목길만 다니는 것도 좀 갑갑하던 차였으니 며칠 전 로마행을 결정하고 난 후엔 살짝 들떠있기도 했다. 역시 로마는 로마다. 그 이름값을 하는 동네라는 얘기.


로마로 내려가기 위해 중간에 열차를 갈아타야 하는 곳, 뽈리뇨. IC(Inter City)나 EC(Euro City)등의 특급 열차를 타면 굳이 이런 황량한 곳에서 열차를 갈아타지 않아도 되고 시간도 단축되지만 짐작하듯이 그건 비싸다. 좀 돌아가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저렴한 R(Region)선을 이용할 수 밖에. 시간 빠듯한 여행이 아니라면 인연이라곤 없을 이런 낯선 도시, 또는 플랫폼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적막하니 매력이 있다. 쓸쓸히 담배 한 대 피어무는 사람들의 모습도 꽤나 분위기 있어 보이기도 하고.. 적막을 뚫는 기적소리는 이런 곳에서 제대로 들린다.


이탈리아의 역에서 화장실을 찾을 경우엔 역사 안에 있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 플랫폼 끝쪽에 있는 경우가 많다. 화장실 급하다고 매표소 근처나 BAR를 뒤져봐야 소용없다. 대도시 역의 화장실은 1유로 안팎의 돈을 받지만 이런 작은 동네의 역은 돈을 안받는다. 인건비도 안나올 정도로 손님이 없는 탓. 자유롭게 이용하니 좋다. 대신 온수 따위는 안나온다. 세면대 아래 발판을 누르면 물이 나온다. 이런건 여간 편리한게 아닌데 수고로움도 적고 물도 절약할 수 있다.


폴리뇨를 출발해 곧 나타나는 산자락 도시 트레비. 이탈리아에서 가장 품질좋은 샐러리를 생산하는 동네로 지난 번 토리노 슬로우푸드 축제에도 샐러리를 트럭으로 싣고와 참가한 고장이다. 그때 자잘한 흙가루가 채 씻기지 않은 싱싱한 샐러리를 역시 그 고장에서 생산한 신선한 올리브유에 푹 찍은 뒤 먹으라고 건네주던 농부와의 만남이 잊혀지지 않는다. 산 정상에 지어진 마을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볼꺼리지만 옛날엔 이웃 마을과 타툼 꽤나 많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다툼이 커지면 곧 전쟁으로 발전했으니 이탈리아 각 마을들은 저처럼 방어가 용이한 지형에 마을을 짓고 살았던 것. 아직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뻬루자와 마주보고 있는 아씨지도 한 때 서로 꽤나 죽이며 살았다고 한다. 그 옛날, 높은 마을이 생명유지의 방편이었다면 요즘에서 보면 어쩌면 자살행위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각종 편의시설의 접근이 어렵기 때문인데 움브리아 주도라는 뻬루자만 해도 성으로 둘러싸인 중심지(Centro)의 경우 수퍼마켓이 딱 2개 뿐이다. 그마저도 구멍가게 수준. 이 동네에는 트레일러 트럭이 올라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로마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밤길, 트레비를 지나며 어둠에 둘러싸인 산 위의 마을을 바라보니 마을을 지키는건 사람들이 아니라 가로등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어둠이 짙었다.


기차는 이름 모를 고택도 지나고..


굴뚝도 지나고..


풀 뜯는 양떼도 지나고..


해서 3시간 30분만에 로마에 입성. 뽈리뇨에서 환승으로 1시간을 기다렸으니 그것만 아니라면 R선으로도 2시간 30분만에 올 거리다. 이왕이면 떼르미니역 정면에서 한 장 찍어줘야 하는데 아쉽게 측면이다. 도착하니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다행히 날씨가 춥지는 않다. 북쪽 밀라노나 베로나는 0도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날씨인데 로마는 영상 13도 안팎을 드나든다. 쉽게 찾을 줄 알았던 숙소를 1시간 만에 찾아 짐을 던져놓고 거리로 나섰다. 어느덧 2시,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을 떠느라 누룽지 조금 먹은게 전부이니 당장 허기부터 채워야 할 판. 떼르미니역 주변에는 저렴한 핏짜리아가 널려있으니 만만해 보이는 집 하나 찾아 들어가면 되지만 손님들로 북적이는 케밥집이 눈에 띄길래 주저없이 돌진했다. 역시 허기가 심할 땐 육기를 떨쳐버리기 힘들다.


햄버거처럼 생긴 케밥.


'케밥'처럼 생긴 케밥. 4유로짜리 케밥 2종류에 콜라 하나 주문. 쟁반에 받아오는데 양이 무척 많다. 콜라 한 모금 들이키자 목구멍이 찌릿거리고 뱃속의 위장이 본격적인 시동을 건다. 입 크게해서 베어무니 행복이 줄줄 흐른다. 역시 손님 많은 집은 이유가 있다.


배가 채워지니 다시 힘이 솟는다. Via Cavour라는 대로 한 켠에 위치한 한국식품점. 꽤나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집이라는데 이런저런 한국식재료를 다양하게 구비하고 있다. 낯선 입맛에 적응이 쉽지 않은 한국인들에겐 오아시스 같은 곳. 호기심에 기웃거리는 이탈리아인들도 종종 보이고 고추장을 사가는 이들도 목격된다. 많은 중국 식품점이 불법으로 영업하고 있어 그 폐해를 고발하는 보도물을 종종 보곤하는데 이곳과 밀라노의 한국 식품점은 모두 세금을 꼬박꼬박 내는 정식 매장이라고. 허나 불법일지언정 중국식품점 없으면 아시아 사람들은 당장 불편에 직면할게 틀림 없을 듯 싶다. 뭔가 아쉬울 때 그곳에 가면 대개 있기 때문이다. 한창 물건을 바구니에 담다가 혹시 내일(일요일)도 문을 여냐고 물어보니 연단다. 그럼 지금 힘들게 사들고 다닐 필요가 없어 내일 다시 오겠다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오락가락하던 비, 갑자기 퍼붓기 시작하니 이때는 우산이 있어도 잠시 피하는게 좋다.


빗줄기가 잦아들어 사거리 길을 건너니 저 너머 콜로세움이 눈에 들어온다. 방향을 틀어 콜로세움으로.


로마인들이 인류에 남긴 거대한 놀이터. 개인적으로 영화 글래디에이터는 로마, 특히 콜로세움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 영화다. 이 영화의 유일한 명장면이라면 특수효과로 완벽하게 복원된 로마 시내의 모습을 항공샷으로 보여주는 그 장면인데 그걸 보고 적잖이 놀랐었다. 그 중에서도 차양까지 설치됐었다는 콜로세움의 모습은 당시 로마의 부와 사치가 어느 정도 수준이었는지를 짐작케 하는 장면으로 남아있으니 그 장면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파괴된 콜로세움으론 원형이 어떠했는지 짐작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르겠다. 콜로세움의 육중한 돌덩어리를 가만히 응시하고 만져 보노라면 수 천년이라는 시간과 역사, 그 공간을 살아간 사람들의 흔적을 짐작하게 된다. 헌데 당시의 노예들, 그리고 피를 튀기는 싸움을 벌였던 검투사들은 자손들에게 예술적 유산이라도 남겼다지만 오늘날 자본의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은 뭘 남기게 될까? 한국? 있는 남대문도 홀라당 태워먹고 귀중한 사람 목숨마저 태워먹는 나라니 남는 것은 결국 잿더미? 허허


구름이 옅어지고 간간히 햇살도 비춘다. 이제 비가 그치려나?


포로 로마노(Foro Romano-우리로 치면 조선시대의 종로 쯤. 엄청났던 로마 제국의 중심지중의 중심지라니..)를 구경하는 방법은 돈을 내고 입장해 그 길을 거닐며 돌무덤(?)을 가까이서 보는 방법과 돈 안내고 멀리서 바라보는 방법 두 가지가 있을텐데 우리는 역시 후자를 선택했다. 내일 이곳 역시 공짜로 볼 수 있을까 싶어서.


어디서 온 수도사들인지는 모르겠지만 몸 불편한 장애인들과 함께 로마 시내, 지금은 포로 로마노를 구경중이다.


사진을 찍은 자리에서 바라본 모습도 나쁘지 않다. 당시의 로마인들도 길가의 저들처럼 저 길을 유유자적 걸었겠지. 원로원이 다스리던 공화정이 안타깝게도 무너지고 황제가 다스리던 제정을 거치는 사이, 로마제국의 확장과 더불어 포로 로마노도 발전을 거듭했지만 6세기 들어 제국의 몰락과 함께 이곳도 서서히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전쟁의 여파, 자연의 풍파, 그리고 르네상스때는 방치된 돌들을 들어내 다른 건축의 재료로 사용하면서 지금의 몰골로 남고 말았다. 다행히 종로는 저보다는 훨씬 비싸고 고급스러운 길로 변모했다. 금은방 집들이 가득 들어 찬 것이다! 비교가 무리라는걸 알지만 하필 금은방이라니.. 청진동쯤에 최근에 세워진 그 정체불명 디자인의 오피스텔 건물도 오늘날 금은방과 더불어 종로를 빛내는 '명물'이 아닐까 싶다. 양복입은 깍두기들이 분양 찌라시 나눠주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입주는 마쳤나 모르겠다. 아.. 갑자기 깍두기가 먹고 싶다.


깜삐돌리오 언덕길을 돌아 나오니 결혼식을 마친 부부가 사진을 찍고 있다. 신부의 표정이 유독 밝다.


언덕을 내려오니 비가 또 쏟아진다. 그리고 이윽고 나타난 무지개.


어디는 비가 내리고 어디는 멈추고.. 복잡한 날씨속에 빛을 받는 건물은 베네치아 궁전. 순전히 빛 때문에 찍은 사진이다. 적잖은 이들이 로마, 또는 지중해의 태양을 보곤 하나같이 '빛'이 다르다고 입을 모으는데 어떤가? 좀 달라 보이나?


이것도 그렇고.. 어찌 생각하건 로마는 아름답다.


변덕이 유난스러웠던 오늘 하늘이 그 위로로 멋진 석양을 선사할 것 같은데 고민이다. 서둘러 스페인 광장의 언덕으로 올라가 그 광경을 감상할 것인가, 아니면 애초 계획대로 바로 코앞의 서점에서 책 사냥에 나설 것인가. 잠시 갈등 끝에 하늘이 또 어떤 변덕을 부릴지 모른다는 핑계로 석양을 포기하고 서점을 선택했다. 다리도 아프고..


석양의 아쉬움이 남아 서점 안에서 한 컷. 로마 이틀째는 바티칸이다. 요건 내일 올리자. 새해 복들 많이 받으시고 연휴의 마지막날, 알차게 보내시라. 특히 부천시민, 힘내^^  얼른 가서 놀아줘야 하는데..


우리도 떡국먹고 산다. 이 모두 로마여행의 결과.

Posted by dalgonaa
아란치아 로사(Arancia Rossa)라는 '어륀지'가 있다. Arancia는 이태리어로 '오렌지'란 뜻이고 Rossa는 '빨강'이라는 뜻이다. 이 과일은 시칠리아에서만 생산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우리가 이 과일을 최초로 맛 본 것은 로마의 한인숙소에 머물때였다.

부활절 연휴를 맞아 독일에서 로마를 찾은 한국인 가족들이 다시 독일로 돌아가면서 숙소에 남겨두고 간 것이 바로 아란치아 로사였다. 이를 숙소 주인 아주머니가 식사 후 디저트로 내오면서 그 맛을 경험하게 된 것인데 제법 비싼 과일이었음에도 과감히 숙소에 기증한 그 가족들과 이를 아낌없이 디저트로 내준 주인 아주머니에게 먼저 이 자리를 빌어 고마움의 인사를 전하다.

아란치아 로사의 영어 이름은 'Blood Orange'다. 겉은 일반 오렌지와 똑같은 모양을 하고 있지만 칼로 반을 썰어내면 정말로 피를 연상케 하는 검붉은 과육이 알알이 박혀 있다. 물론 이때 흘러내리는 과즙도 제법 붉다.

처음엔 그 빛깔이 다소 낯설게 느껴졌는데 피자두를 제외하고 그렇게 검붉은 색을 띄는 과일을 접해본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피'를 연상케 하는 느낌이 어쩐지 친숙한 오렌지와 맞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 로마 숙소에서 제공된 '아란치아 로사'의 모습. 왼쪽 아래에 있는 '녀석'을 보면 알겠지만 껍질과 과육의 분리가 아주 쉽다. 오른쪽은 상자에 담긴 모습. 

맛은 어떨까? 당시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함께 숙소에 머물던 다른 여행자와 한창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어서 흰 접시에 먹기 좋게 벗겨져 나온 '로사'를 슬쩍 보곤 '오렌지가 나왔군.. 붉은 색이네.. 독특하군' 하는 정도로 우리는, 적어도 김군은 생각했다.

그리고 하나를 집어 입에 넣어 씹으니.. 헉!.. 잠시 만화 '초밥왕'의 그 유치찬란한 은유와 과장을 빌리자면, '처음 씹을 땐 키위즙이 질긴 고기를 부드럽게 하듯 혀가 살살 풀어지더니 이내 은하수의 별들이 땅으로 쏟아져 내리듯 반짝이는 느낌이 스치고 급기야 톡톡 알알이 과육이 터질 때는 마치 이과수 폭포의 소용돌이가 입안을 휘몰아치는 느낌으로 절정을 맞는다. 그리고 한 바탕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후 젖은 대지를 말리는 간지러운 바람이 마지막을 장식하는 맛' 이라고나 할까? ^^

아란치아 로사는 아주 잘 익은 오렌지의 달콤함에 열대 과일만이 갖는 독특한 청량감과 향을 느끼게 해준다. 우리가 흔히 먹는 캘리포니아산 오렌지나 칠레산 오렌지와 비교할 때 껍질도 제법 부드럽게 잘 벗겨지는 편이어서 먹기가 아주 편하고 질긴 오렌지 껍질을 벗길 때 마다 손에 흥건히 묻어나는 즙도 거의 없는 편이다.

아란치아 로사에 관한 정보가 있을까 해서 인터넷을 여기저기 뒤져봤으나 자세한 정보가 별로 없다. 우리가 시칠리아를 가야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생긴 셈이다. 일반 오렌지의 상큼함에 더해 분명 또 다른 맛을 느끼게 해주는 아란치아 로사는 에미레이트 항공의 기내식 과일로 제공되고 있다고도 하니 나름 고급으로 인정받는 과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문득 든 생각은 '만약 제주도에서 '로사' 재배에 성공한다면 돈방석은 시간문제겠다'는 것. 관심있는 사람은 도전해보길.. 우선 씨앗부터 빼내야 할텐데 시칠리아 마피아 '코사 노스트라'가 오렌지 농사에 손댔다는 얘기는 아직 없으나 혹시 주요 간부의 부인이 제주도산 '로사'때문에 재미를 못본다고 남편에게 푸념하면.. 제주도에서 우지 기관총을 보는 날도 올 수 있겠다.

로마에서 맛 본 이후 한동안 맛을 못보다가 최근 수퍼마켓에서 아란치아 로사를 발견했다. 바로 냉장고의 음료코너에서다. 같은 오렌지라도 맛을 본 이상 이왕이면 아란치아 로사를 사는 것이 지금으로선 당연한 선택. 하지만 포장을 보니 뭔가 빠져있다. 옆에 진열된 오렌지 쥬스에는 '100%'라는 원액 함량 표시가 적혀있는데 반해 아란치아 로사는 그런 표식이 어딜 봐도 없다.

이후 가까스로 찾아낸 설명에는 아주 작은 글씨체로 'Arancia Rossa 25%'라 적혀 있다. 물 석 잔에 아란치아 로사 1잔을 희석시켰으니 과연 느낌이라도 날까 싶다. 꼴꼴꼴 잔에 따라 낸 로사의 색감을 보라. 75%의 빈자리를 메꾸는데 동원된 인공색소의 은은한 천박함이 느껴지지 않는가? 물론 그대들로선 이 천박한 색감의 음료라도 한 잔 맛보고 싶겠지만.. 낄낄

시칠리아로 오라, 그리고 지중해의 품에서 태양이 키워낸 붉은 과일 '아란치아 로사'로 입안을 흥건히 적셔보라.



>> '가루쥬스' 아란치아 로사의 모습. 국내 정보에선 아란치아 로사의 사진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고 외국 사이트에서 한 장 겨우 건진 사진도 어째 좀 땟깔이 후지다. 몰타와 시칠리아는 배로 2시간 거리에 불과하지만 몰타에서도 아란치아 로사를 구경하기는 쉽지 않다.
Posted by dalgonaa

지금 현재 몰타. 시간은 오후 1시. 점심먹을 시간이지만 계속 그렇듯 우리에게 선택의 기회는 많지 않다. 다행인건 수퍼마켓이 많다는 점. 이건 정말 맘에 든다. 어제까지 화창했던 날씨는 오늘 갑자기 구름이 몰려오면서 간간히 비를 뿌리고 있는 가운데비를 피해 PC방에 들어와 1시간 15분에 3천원짜리 인터넷을 쓰고 있다.

일본을 시작으로 로마, 그리고 지금 몰타까지 거쳐온 여정은 제법 많은 이야기를 낳았다. 이를 시간 나는 대로 적어놓고는 있지만 인터넷을 쉽게 연결할 수 없는 탓에 마냥 묵혀놓고만 있다. 해서 오늘은 마침 비도 오고 하니 잠시나마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몰타로 날아오는 동안은 기분이 제법 괜찮았다. 로마에 머무는 동안 너무 추웠기 때문이다. 게다가 불안한 치안 탓에 혹시 뭐라도 도난 당할까 긴장이 끊이질 않았고 매일 같이 쏟아지는 비와 하루 9만원에 달하는 숙박비의 부담도 컸다. 특히 가난한 여행자가 부담없이 들락거릴 슈퍼마켓을 찾는 것이 로마는 거의 하늘의 별 따기와 같아서 여간 심란한게 아니었다.

 

기껏해야 테르미니 지하에 있는 Conard라는 수퍼가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전부였는데 저녁에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몰릴 때는 북아프리카 출신의 건장한 흑인 청년이 사람들의 출입을 한동안 막으며 입장을 조절했다.

화장실이 급해 서둘러 맥주만 사갔고 가려던 우리는 이용료 1천원을 내야하는 유료 화장실을 포기하고 꾹꾹 참으며 수퍼앞에서 어서 입장이 되기를 기다리는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찬란한 유적앞에 눈이 휘둥그레지고 감탄사가 연신 터지는 것이 이곳이지만 그것에 마냥 넋놓고 있다가는 입고 있는 옷까지 홀라당 벗겨지기에 충분한 곳이 이곳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이 모든 불편과 불안을 이젠 뒤로하고 지중의 섬나라 몰타로 향하는 동안 따뜻한 기온과 햇살, 비교적 저렴한 숙소와 깨끗한 환경이 그간의 긴장과 피로를 풀어주리라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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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20분 가량의 짧은 비행을 마치고 몰타에 내렸다. 바람이 심한 탓에 살짝 기우뚱 하는 것을 느꼈는데 심장이 쪼그라들기도 했다. 비행기 문이 열리고 계단을 통해 내려오자 예상대로다. 지중해의 강한 햇살과 모든 눅눅함을 바삭하게 말려줄 뽀송뽀송한 바람이 머릿결 깊숙이까지 파고들었다. 바람이 제법 쌨지만 여간 달콤한게 아니었다. (계속)



>> 로마 떠나기 전날, 점심무렵부터 하늘은 화창하게 개었다 / 성 지오반니 성당 처마에 올려진 조각상들. 그 규모에 압도당한다 / 성당 앞에서 바라본 화창한 하늘이지만 불과 4시간 후, 바티칸 성베드로 성당으로 향하는 동안 하늘은 다시 어두운 구름으로 뒤덮히고 말았다 / 사람들 옷차림을 보라. 온통 파커 차림이다 / 성당 관람을 마치고 버스를 타니 급기야 비가 뿌린다 / 마지막 사진은 몰타로 떠나기 위해 테르미니 역에 도착해 찍은 아침 8시 풍경. 도착한 사람들과 떠나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