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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5.07 도모미 3

오가닉 화장품을 만들고 한국을 비롯, 아시아 여러 나라에 수출하는 후쿠오카의 중소기업이 있다. 60여 명의 직원과 더불어 화장품을 만드는 이 기업의 주인은 다나카 상. 그는  두 명의 딸을 두고 있는데 이 가운데 막내 딸인 도모미가 일주일 일정으로 몰타를 찾았다.

 

처음 교실에 들어온 도모미를 본 김군은 대번에 저 친구는 안 물어봐도 일본인이 틀림없군할 정도로 일본인 전형의 얼굴을 가졌다. 어딘가 어색한 로봇 같은.. 그럼에도 비교적 미모에 속하는 그녀를 보며 김군은 왠지 한 때 일본에서 폭발적이 인기를 끌었던 한국인 가수 은숙의 젊은 시절 모습을 떠올렸다.

 

매주 월요일 저녁에는 새로운 신입생을 환영하는 학원 주최의 웰컴파티가 열린다. 국내에선 보기 힘든 250ml 작은 병 맥주 하나를 공짜를 마실 수 있는 이 자리는 비단 신입생들만을 위한 자리는 아니어서 공짜 술에 눈이 먼 한국인들이 대거(그래 봐야 20명 안팎) 참석하기도 한다. 김군과 강양도 모처럼 참석했고 김군은 이 자리에서 도모미를 다시 만났다.

 

처음 교실에서 봤을 때와 달리 다소 짙은 마스카라에 머리를 틀어 올린 그녀를 보자 김군은 이번엔 전성기 시절의 계은숙을 떠올렸다.

 

도모미는 영어를 좀 한다. 4년에 걸쳐 미국 보스톤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대학 공부도 마쳤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이력에 비춰본다면 지금 그녀의 영어 실력은 김군에 비해 월등히 낫지만 결코 우수하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어제 화요일, 수업을 마치고 교실을 나서면서 김군이 도모미에게 저녁식사 제의를 했고 그녀는 흔쾌히 수락했다. 이 소식을 강양과 주변의 한국인들에게 전했고 외국인과의 첫 단독 식사자리를 격려하는 응원이 이어지는 가운데 나를 비롯한 우리 모두가 도모미에게 가졌던 제1의 궁금증은 그녀의 나이였다.

 

얼굴에서 풍겨 나오는 분위기로 봤을 때 어림잡아 30대 중반은 되지 않았겠느냐 라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었다. 특히 가장 가까이서 볼 기회가 많은 김군은 평소 피부 관리를 공들여 해왔다면 40대 일 수도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짧은 갑론을박을 뒤로 하고 김군은 그녀를 만나러 길을 나섰다. 김군을 이끌고 도모미가 향한 곳은 몰타를 소개하는 엽서에도 단골로 등장하는 레스토랑이다. 이름은 Paparazzi. 불륜을 즐기는 커플이라면 피해야 할 식당이 아닐까? 아무튼 꽤나 엉뚱한 이름의 이 식당은 그러나 위치와 전망만큼은 몰타에서 가장 훌륭한 곳에 속하는 식당이다. 가격도 결코 비싸지 않아 두 사람이 2만원 안팎이면 파스타 정도는 거뜬히 즐길 수 있다.



 

>> 김군이 시킨 알리올리오. 파프리카가 듬뿍 올려져 있어 보기는 그럴듯 하나 내가 만든 것 보다 훨씬 맛 없다. 마늘 풍미가 하나도 안난다는 것이 문제. (6.5 Er : 10,000원)   / 샤프란으로 지은 밥에 토마토 소스에 볶은 해산물을 덮었다. 돈부리가 먹고 싶었던걸까? (가격 모름) / 도모미가 대뜸 시키고 만 샐러드. 케이프와 올리브, 콩을 삶아 으깨것이 마치 된장을 닮은 콩 매쉬, 파프리카 말려 절인 것, 그리고 소세지와 토마토 소스 바른 바게뜨, 그리고 몇 가지 야채. 여기에 생맥주 한 잔과 과일 스무디 한 잔을 곁들여 총 32유로, 우리돈 45,000원이 나왔다. 샐러드는 몇 점 집어먹지도 못한채 김군이 몽땅 싸들고 왔다. 사진에선 잘 못느끼겠지만 모든 식사의 량이 꽤 많다.

제법 하는 영어와 아주 서툰 영어가 삐끄덕거리면서 식탁 위를 오고 갔다. 몇 가지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면, 김군은 애초 오가닉 푸드 회사를 생각했으나 그녀에 따르면 비누를 비롯한 다양한 화장품을 만든다고 하고 자신은 고등학교 일부 시절과 대학을 미국에서 보냈고 이 때에 미국 유명 도시는 물론 유럽 여러 나라와 아시아 여러 나라를 여행했다고 한다.

 

한국에도 여러 번 왔었는데 모두 음식 관광이었으며 잡채와 김밥에 매료됐고 한국산 조미김은 물론 매운 맛도 익숙해져 신라면도 한 상자 사 갖고 집에 간 적도 있다고 한다. 다음 여행은 남태평양의 팔라우를 갈 생각이고 귀국하면 가족들과 오키나와로 여행을 가야 한다고 한다.

 

이 외에 몇 가지 내용은 맨 처음에서 살짝 언급한 바와 같고 자신은 BMW를 몰고 부모님은 벤츠를 몬다고 한다. 김군은 애써 한국에 있을 때 90만원 짜리 차를 몰았다는 얘기는 하지 않으면서 ‘Your hobby’ 를 물었다. ‘Travel’이라고 답하길래 ‘Expensive hobby’를 가졌구나 라고 말하니 ‘No!’라 답하면서 웃는다.

 

그리고 최대한 격을 갖춰 물었다. “How old are you?”.  맞춰 보라는 말에 김군, 끝까지 버티지 못하고 그만 자기 생각을 털어 놓고 말았다. “I think maybe 31, 32, 33.. I don’t know..” 그러자 우리의 도모미 상, “I’m 24” …

 

사태를 수습해야 했으나 딱히 뾰족한 방법은 없었다. 이미 뱉은 말이니 주워 담을 수도 없었고 허둥대며 거듭 ‘I’m Sorry’를 반복하는 만큼 차분하고 낮은 톤의 ‘It’s O.K’만 그만큼 반복돼 돌아왔다. 어찌나 무안하고 미안한지..

 

2시간에 걸친 식사를 마친 뒤 먹다 남긴 샐러드를 싸 들고 터벅터벅 돌아와 강양과 몇 명의 한국인들에게(작은 맥주 파티가 벌어져 있었다) 결과를 전하자 곧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 뭔가 속임수가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웰컴파티 현장에서 도모미를 봤던 사람들은 그녀가 최소 30대라는 데에 의견을 모았고 오늘 김군이 찍어온 그녀의 사진을 보면서 그 확신은 더욱 공고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24살이라니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몰타에서의 논쟁은 이처럼 하릴없다. 그래서 좋다)

 

하지만 그런들 어쩌겠나? 비록 엉망이었으되 오로지 영어만으로 2시간을 보냈고 후쿠오카와서 연락하면 자신이 즐겨가는 스시집을 안내하겠다고 하고(이 대목은 확신이 안선다. 자신이 대접한다는 건지 알려만 주겠다는 건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레스토랑 Paparazzi도 마침내 그 맛을 봤으니 말이다.

 

앞으로도 이 같은 식사 기회를 점점 더 늘려갈 계획이다. 이는 김군이나 강양이나 모두 마찬가지다. 우리에겐 유럽 각국의 요소요소에 전화기만 들면 도움의 손길을 뻗쳐올 아군을 시급히 육성시킬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게 전 세계라면 더 좋다. 강양은 이미 엠마율크라는 비슷한 또래의 스위스 친구를 심어 놓은상태다.

 

도모미는 토요일 오전 9 비행기로 독일 뮌헨으로 날아간 뒤 그곳에서 일본으로 향하는 비행기로 갈아 탈 예정이다. 좀 더 많은 친구를 사귈 의향이 있는 그녀지만 누군가 다가오기 전에는 선뜻 나서지 못하는 성격인 듯 싶다. 결코 뒤떨어지는 영어실력이 아님에도 수업시간에 워낙 조용하니 말이다.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에서 온 껄렁대는 젊은 친구들을 만나길 바라지만 현재 학원은 동구권에서 온 아줌마, 아저씨들로 넘쳐난다. 물론 그녀와 내가 공부중인 Level 1의 교실도 그렇다. 문득 동구권의 빠른 개방의 물결과 경제성장을 실감한다.



>>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건너편에서 찍은 'Paparazzi' 식당의 모습. 앞에 작은 만을 이루는 바다를 내려다보며 즐기는 식사는 꽤나 낭만적이어서 언제나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 도모미. 결국 큰 실수를 범하고 만 셈이지만 그녀의 화장법과 패션은 잘못된 억측을 낳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