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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8.16 바람불어 좋은 날

모처럼 바람이 거세다. 평소 아래로 늘어져 있던 야자수 잎은 제 몸을 부러뜨릴 기세로 요란하게 요동치고 있고 옥상의 빨래들은 빨래집게 하나에 의지해 날아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럴 때 컴컴한 구름도 덮히고 비라도 뿌려주면 간만에 우울증에 젖어 지내볼텐데.. 그렇다면 이를 근사하게 장식해줄 점심으로 호박부침개를 할지, 아니면 수제비로 할지에 대한 진지한 궁리가 좀 더 즐거울 수 있겠건만 하늘은 석 달째 그렇듯 구름 한 점 없이 햇볕 쨍이다. 그 변함없음이 징글징글하다.

아침일찍 바다에 나가 수영이나 할까 하던 계획을 접고 그냥 거실에서 풍욕을 즐기고 있다. 비록 시원한 빗줄기는 없지만 초콜렛 빛으로 그을린 몸통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의 느낌은 여간 부드럽고 달콤한게 아니다. 같은 계절을 살아도 한국과는 전혀 다른 뽀송뽀송 메마른 공기가 만들어내는 감촉은 한국을 떠나기 전 꿈꿨던 지중해의 낭만이란 어쩌면 이런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지중해를 상징하는 태양과 푸른바다, 그 속에서 한 없이 낙천적으로 보이는 이곳 사람들의 기질은 바로 이 바람이 없다면 분명 불가능했을 테다. 바람은 나무도 흔들고 빨래도 흔들지만 사람 마음도 흔들어 놓는다.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