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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1.16 올리브 수확 An Experiance of cultivating olives 2

안드레아(Andrea)네 거실 풍경. 그의 아버지는 서둘러 식사를 마친 뒤 친구 마리오가 기다리는 올리브 밭으로 나갔고 남은 이들만이 그라빠(GRAPPA)라는 이태리 브랜디에 대해 한창 얘기 나누는 중이다. 투명한 빛깔의 이 독주는 와인을 만들고 난 뒤 남은 포도 찌꺼기를 증류시켜 얻은 것인데 이 종목의 대표선수가 바로 프랑스 꼬냑 되겠다. 꼬냑은 오크 숙성을 거쳐 색을 내지만 이태리 그라빠는 대개 증류만 거쳐 바로 제품으로 나오는 것이 일반적.

안드레아는 그라빠를 그냥 즐기기도 하지만 주로 식후 즐기는 에스프레소를 마신 뒤 잔에 살짝 가라앉은 커피진액에 그라빠를 살짝 따라 휘휘 저은 후 단숨에 들이키는 방법도 좋아한다고.


위스키잔 반을 조금 못채워 마셔보니 포도향이 은은하면서 목넘김이 부드럽고 가슴팍이 후끈 달아오른다. 웬만한 술집에 내놓아도 전혀 손색없는 이 술 역시 집에서 만든 솜씨. 허나 문제가 있는데 이게 그냥 만들면 안되는 술이라고. 증류를 위해선 보일러와 스팀시설을 갖춰야 하는데 이게 당국의 안전관리를 받아야 하는 위험(?) 시설이고 브랜디를 만드는 시설이니 더욱 당국의 관리를 받아야 한다는 것.

허나 안드레아 아버지와 친구인 마리오(Mario) 아저씨는 '살금살금' 만들고 있다. 판매할 것도 아니고 집에서만 '조용히' 마시겠다는데 성가시게 신고까지 해야할 필요가 있나. 집에 공무원 들락거려봐야 좋을 것도 없잖은가.  마약도, 대량살상무기도 아닌 그저 가족들과 친구들과 '조용히' 마실 술 몇 병 만든건데.. 우리는 안드레아 아버지와 마리오 아저씨의 은밀한 작업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이들의 삶에 진정으로 경의를 표한다. (비밀을 지켜달라고 했는데.. 읽은 이들도 그냥 그런 줄 아시라)  


올리브 수확을 마친 뒤 흐믓한 표정으로 포도주를 따르고 있는 마리오 아저씨. 뒤로 문제의 증류통이 보이고 더 뒤로 보자기에 덮힌 술통도 보인다. 사실 이런 시설에 욕심을 낼만도 한게 포도주를 한 번 담근 뒤 포도 찌꺼기를 그냥 버리기엔 너무 아깝기 때문이다. 발효시키면 양질의 포도식초는 물론, 증류시키면 그라빠까지 만들어 먹을 수 있는데 왜 버리냔 말이지. 


뜨끈하게 그라빠도 한 잔 걸쳤으니 이제 일할 시간. 집을 나와 왼쪽길로 살짝 접어들면 창고가 나오고 이를 지나면 포도와 올리브가 자라는 작은 과수원이 펼쳐진다.

자태 고운 숫닭이 늠름하게 버티고 섰다. 이런 멋진 닭은 실로 오랫만에 보는 것 같은데 아마 요즘 자라는 아이들은 닭이라고 하면 비좁은 계사에서 고개만 내밀고 모이쪼기에 바쁜 닭의 모습만 떠올리진 않을까?  아니면 닭 그림을 그리라고 했을 때 BBQ치킨에 그려진 마스코트를 따라 그리는건 아닐지.. 세상이 험하니 그럴법도 하지 않나? 닭고기 덜먹어도 좋으니 세상의 닭들이 쟤처럼만 살아가면 좋겠다.


저 끝 올리브 나무 아래서 안드레아 아버지와 마리오 아저씨가 올리브를 따고 있는 가운데 줄에 묶인 염소가 카메라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그 뒤로 두 마리가 더 있는데 이놈들이 겁이 없는지 가까이 다가가면 고개를 주억거리며 다가오려 애쓴다. 자라는 환경이 좋은 탓에 녀석들은 몸에서 냄새도 안나고 땟깔도 빛이 날 정도로 깨끗하다.

한 마디로 복받은 놈들이다. 질좋은 풀도 널렸건만 올리브를 한움큼 집어 건네주면 아주 맛있게 싹싹 비운다. 아이 키우는 부모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들 미국에 유학보내기 보다 시골 들녘에서 닭치고 염소치면서 자연과 더불어 유년기를 보내게 하는게 그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훨씬 좋을텐데.. 아버지는 밀주를 만들어도 좋고..

올리브 나무 아래로 망을 넓게 깔면..

밑에서 훑어 내리고..


위에서 훑어 떨어뜨리면 되는 간단한 작업. 농촌의 아직 많은 일들이 그렇기도 하겠지만 하이테크의 시대에 여전히 원시적인 방법으로 수확하는 모습은 낭만을 넘어 아름답기까지 하다. 허나 작업해야 할 그루수가 많을 경우엔 결코 낭만이 될 수 없는 고된 작업.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안드레아의 아버지가 열심히 올리브를 떨어뜨리고 있다.


까맣게 잘 익은 올리브들. 군데군데 덜 익은 파란 올리브도 보인다. 모든 결실은 탐스럽다.

안드레아(Andrea)의 어머니와 아버지. 어머니는 이탈리아인이지만 태어나기는 스위스에서 태어났다고. 아버지는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태어났다고 하니 베로나의 토박이다.


수확은 마치고 올리브와 이파리를 분리하는 1차 필터링을 준비하고 있다. 어떻게 하는 작업일까 궁금증이 몰려왔는데..


웽웽 모터도는 소리가 날줄 알았건만 손바닥으로 텅텅 치는 소리만으로 간단하게 이파리가 제거된다. 보는 것 처럼 경사진 망에 바구니를 쏟아부으면 올리브는 굴러서 끝으로 떨어지고 이파리는 긴 고랑식의 망 사이로 빠져나간다.


오늘로써 안드레아네 올리브 수확은 마무리됐다. 필터링을 거친 올리브는 월요일 쯤 동네 기름가게(방앗간 같은 곳)로 가져 갈꺼라는데 1시간이면 기름이 짜져 나온단다. 그럼 1년은 족히 먹을 수 있는 양이라고. 이왕이면 그것까지도 지켜보고 싶지만 상황이 어떨런지 모르겠다.

앞서도 얘기했듯, 안드레아 가족은 우리에게 올리브 오일과 포도식초를 선물로 안겨줬다. 안드레아 아버지는 우리가 진짜 일꾼처럼 열심해 일해서 주는 댓가라는 말을 덧붙였는데 김군은 주로 사진과 비디오만 열심히 찍고 일은 강양이 다 했다.


샐러드에 없어선 안될 저것들. 향과 맛이 정말 좋은데 그 깊은 맛을 제대로 즐기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이 미각에 민감한 혀를 갖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오늘 새삼 깨달았다. 맛을 제대로 즐기기 위한 가장 첫 번째 조건이란 저 원료를 손으로 직접 수확하고 그 과정에서 만지고 냄새맡고 날것을 먹어보면서 체득된 경험을 갖는 것이 우선 아닐까?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