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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4.09 요즘 볼로냐 6

어제 이것저것 볼 일이 있어 카메라 챙겨들고 거리로 나섰다. 밥먹고 나온 직후니 배불러 좋고 햇살도 좋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세상 딱 이랬으면 하는 생각. 카메라에 찍힌 그림들 가운데 몇 가지 엄선(?)했는데 순서는 심하게 뒤죽박죽이니 그점 참고하면서 감상하시길.


엥, 마지막에 등장할 법한 사진인데.. 암튼, 발코니에서 바라본 북쪽 하늘에 걸린 구름. 저무는 햇살을 받아 살짝 붉게 물들었다. 봄이 되면 이쪽은 으례 그런건가 싶은 것이 저 구름. 작년 이맘때 몰타에서 본 구름도 저처럼 크고 요란했으니 저 구름을 보자 바로 몰타 생각에 젖어버리고 말았다. 여기선 안테나 위에 걸리지만 몰타에서 수평선 너머로 걸린다는 점이 다를 뿐 모양이나 색감이나 분위기가 거의 흡사하다.  한국에선 거의 찾아보기 힘든 TV안테나, 이탈리아에선 흔하디 흔해서 특히 로마 가면 안테나의 절정을 감상할 수 있는데 유서깊은 도시에 걸맞게 요란한 설치예술을 보는 느낌을 준다. 사진에 혹시 점들이 보인다면 째재잭 거리며 정신없이 날아다니는 제비들의 모습일테고 그도 아니면 먼지일 수도.



지구상에서 가장 맛있는 젤라또(아이스크림) 가게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볼로냐의 유명 젤라또 가게 까스띨리오네 앞. 학교를 파한 중학생 한 무리가 가게 앞을 점령하고 열심히 젤라또를 핥고 있다. 이곳 말고 아씨넬리 타워 아래에 있는 한 젤라또 가게 앞도 볼로냐 대학 학생들로 북적이는데 그집껀 아직 못먹어 봤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유난히 젤라또를 좋아하는건지, 젤라또가 유난히 맛있어서 좋아할 수 밖에 없는건지.. 재밌는건 만약 어느 식당에서 먹은 요리가 맛있어서 레시피가 궁금하다고 하면 주방으로 끌고 들어가 신이나서 가르쳐 주겠지만(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젤라또 가게에서 레시피가 궁금하다고 물으면 쫓아낼 가능성이 높으니 이점 유의. 젤라또에 대한 노하우는 집집마다 비밀이어서 보안유지에 꽤나 신경쓴다. 기본 젤라또의 맛은 어디나 다 똑같이 맛을 내지만 이후 무엇을 얼마나 어느 타이밍에 섞느냐에 따라 맛과 질감이 달라지고 그만큼 자신만의 독보적인 젤라또로 손님을 끌 수 있기 때문이다.



거리의 예술가. 이분 행인들로부터 찬조금 꽤 받으셨다. 왜냐면 바이올린 연주인데다 연주실력이 수준급이었기 때문. 볼로냐의 경우 인디펜덴자 거리에 색스폰 아저씨, 산 비탈레 거리의 아코디언 아저씨가 종종 만나는 예술인이지만 벌이가 그닥 신통치는 않아보이는데 이분은 다르더라는. 생상의 동물농장(맞나?)에서 스완 테마를 연주했는데 선율이 끊길 듯 끊길 듯 이어지는 완급 조절이 듣는 이들을 매혹시켰으니.. 손에 쥔 동전을 저 통에 안집어 넣을 수가 없다. 잘 들었습니다~


비좁은 틈 사이로 보이는 아지넬리 타워. 사진이 누운 이유는 고개를 꺽어서 보라는 '배려'.  언제봐도 멋진 탑. 입구의 계단을 조금 올라가면 반평짜리 공간에 퉁퉁한 아주머니가 낑겨 있듯이 앉아서 3유로의 입장료를 받고 표를 내준다.



아지넬리 타워 바로 아래에 있는 두에또리(Due Torri-두 개의 탑) 피자가게에서 사온 마르게리따 피자. 한 판에 3.5유로, 우리돈 6천원. 성인 두 삶이 점심 한 끼로 충분할 양이지만 하루 한 판만 먹어야지 두 판 먹으면 속이 맥힌다. 맛이야 뭐.. 좋다.



뽀르띠꼬 데이 세르비(Portico dei servi) 라는 이름의 긴 회랑길. 집 가까이에 이런 아름다운 길이 있었다니..  늦은 오후 해를 받아 대리석 위에 길게 드리워진 기둥과 아치의 그림자. 사방팔방이 예술, 볼로냐가 아름다운 이유다. 비오는 날 우산이 필요없다는 실용성까지!  볼로냐가 유난히 회랑길을 많은 이유는 비가 많은 기후적 특징 때문이라는데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 한국인 요리사의 증언인지라..^^



자나리니(Zanarini)라는 볼로냐의 제법 크고 전통있는 바 앞에 펼쳐진 야외 테이블의 풍경. 편하게 앉아 저마다 수다떨고 햇살을 즐기는 모습에 봄이 더 봄다워지는 것 같다. 쉐프 마르코의 부인 엘렌은 저곳에 거의 출근하다시피 하며 테이블에 앉아 몇 시간을 보낸다는데 커피 한 잔, 책 한 권, 선글라스에 햇살이면 하루의 정신적 양분으로는 충분하지 싶다. 무선인터넷만 터진다면 한국인들에게 점령당하는건 시간문제겠지만 볼로냐에는 한국인이 별로 없다.


아지넬리 타워 앞 대로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 T셔츠에 반바지, 두터운 조끼에 쉐터를 걸친 사람들까지. 환절기의 패션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찻길엔 횡단보도 표시만 있을 뿐 차선은 아예 없다. 이탈리아에선 파란불에 건너기도 하지만 빨간불에도 차만 없으면 건넌다. 기초질서를 외치는 한국인의 시각에서 보면 이해 안되고 못마땅하게까지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익숙해지면 이것처럼 편한 것도 없다. 따지고 보면 신호등도 결국 사람 편하자고 만든거지 그거에 기계처럼 맞추라고 만든게 아니지 않나? 빨간불이기 때문에 안건너는게 아니라 위험하니까 못건넌다는 점, 그  점을 인식하는게 중요하다. 유럽의 경우 도로에선 무조건 사람이 우선이라는 인식이 널리 깔려있어 빨간불에 사람이 건너면 차들이 알아서 멈춰준다. 우리처럼 '죽고싶어?' 하며 행인을 차로 위협하는 경우는 절대 찾아볼 수 없다. 자, 며칠 후면 곧 그곳으로 간다. 아싸~ ...



'비빔국수에 왠 화이트와인?' 싶겠지만 아주 맛있는 파스타다. 화이트와인으로 쪄낸 홍합에 토마토를 붇고 끓이다가 파스타를 넣고 볶아낸 요리로 일명 '냄비 파스타'. 비주얼은 엉망이지만 맛보면 모두 좋아할꺼라 확신한다. 거짓말인지 아닌지 기다려보면 알지롱.




요놈이 바로 위에 그놈. 홍합을 건져먹기 전의 모습인데 이것도 비주얼은 영 시원찮지만 그나마 낫네. 냄비 벽에 마늘 붙은거 봐라. 면도 허여멀개서 사진만으론 무슨 맛일까 싶을꺼다 낄낄..



사진의 편집 순서가 엉망이라는 점을 드러내주는 증거. 아까 얘기한 뽀르띠꼬 데이 세르비 회랑길의 또 다른 사진인데 두 남녀가 사랑을 나누고 있다.




봄을 담아보고 싶어서 찍은 사진. 울창한 고목에 새순이 잔뜩 솟았다.  100년 가까이는 자랐을 나무. 서울 한복판에서 저런 나무 보려면 다다음 세대는 되야 가능하지 않을까? 청계천 변에 '꽂아'놓은 나무만 본다면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인간이 위대하고들 떠들지만 때론 저런 나무가 더 위대해 보이기도 한다. 얼마나 기품이 넘치는지 그 앞에 서서 올려다보면 안다.



이왕 눕힌 사진, 일관성을 위해서..^^ 새로운 아지트 이틀리(EATALY)의 바깥 모습. 암바시아또리(AMBASCIATORI)는 '대사관들'이란 뜻인데 간판으로 함께 내건 의미가 자못 궁금해진다. 저 건물에 대사관은 없으니 말이다.


첸뜨로(완전 중심가)를 살짝 벗어나면 만날 수 있는 대로 한 켠의 민들레 영토. 흐드러진 모습이 보기 좋다. 춘심이 전해지는구나~


볼로냐 대학. 건물들이 도시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고 그 수도 많다. 저런 환경이면 공부할 맛 날까? 누구나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자습실과 도서관이 있다는 점은 시민들은 물론 관광객들까지 매료시킨다. 작년, 피렌체 두오모 근처에 새롭게 문을 연 도서관이 시설과 분위기, 이용편의 등에서 정말 끝내줬고 베로나의 도서관도 좀 작다는 점을 빼면 그에 견줄만해 보였다. 이명박 정부가 공공 도서관 사업에 박차를 가하길 기대해본다. 



이틀리의 내부 모습. 보는 바와 같이 한쪽은 책, 한쪽은 식품을 판매하고 있다. 식품들의 경우 단지 부유층을 위한 비싼 식품이 아니라 이탈리아 각 지역에서 지속가능한 윤리적, 공동체적 생산의 뿌리를 내리려는 대안적 프로듀서들이 만들어내는 식품들을 진열 판매하고 있으니 먹는 문제에 있어 진보하는 이탈리아의 고민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하긴.. 이미 범세계적 이데올로기로 성장해가고 있는 슬로푸드의 발상지가 이탈리아 아닌가! 이명박 정부가 슬로푸드 정책에 박차를 가하길 기대해본다. (재미없나? ㅋㅋ)


자.. 사진도 이제 거의 종반.

아까 중학생 아이들이 떼로 모여있던 바로 그 젤라또 가게의 내부 모습. 이제 얼굴도 익숙해진 저 아주머니 위로 메뉴가 보이고 아래에 스텐 뚜껑 속에 젤라또가 담겨 있다. 사진에 안나온 왼쪽 켠에 계산대가 있어서 그곳에서 먼저 먹고싶은 사이즈를 정하고 계산하면 영수증을 끊어주는데 그 쪽지를 아줌마에게 건네면서 젤라또 이름을 대면 과자컵에 퍼주고 비스켓 하나를 꽂아준다. 비스켓은 주로 숟가락 용도. 사람들이 많이 찾는 2.5유로짜리 메뉴의 경우 3가지 아이스크림을 선택할 수 있다. 저 뒤가 젤라또를 만들어내느 비밀의 공간. 한국에선 아이스크림 전문점이라면 미국산 베스킨라빈스가 90% 가까이 점유한 상황이지만 이탈리아는 단 한 곳의 점포도 없다.(아마도 그럴껄?) 왜냐면 이탈리아엔 수천개의 독보적인 가게들이 시장을 꽉 잡고 있어서 들어갈 틈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맛과 질에서 이미 승부가 갈린다. 만약 이탈리아 사람들이 베스킨 라빈스를 핥고 다닌다면 거짓말 조금 보태 특종으로 지하철 무가지에 그 사진이 실릴께 틀림없다.



이틀리 마지막 사진. 서가와 식품 판매대, 그리고 한쪽에 이렇게 멋진 카페겸 식당 공간까지 갖추고 있어 관념에만 젖어있지 않고 몸으로 직접 부딪치고 실천할 수 있다. 이상이 현실화 되는 곳, 이 얼마나 멋진 놀이터란 말인가! 이건희 회장이 이틀리 사업에 박차를 가하길 기대해본다.  



짜잔~ 등장! 까스띨리오네 젤라도. 이탈리아 젤라또가 베스킨라빈스와 결정적으로 다른 차이라면 맛의 깊이와 넓이가 엄청 다양하고 질감에서 탄력이 있어 어떨땐 쫄깃한 느낌마저 받는다. 베스킨라빈스가 퍼담는 식이라면 여긴 죽죽 길게 퍼올리는 식이다. 그리고 적어도 이 집의 경우 부재료를 아끼지 않아 먹다보면 초콜릿, 피스타치오, 이름 모를 쿠키 등이 저마다의 메뉴에서 통으로 씹혀 맛을 한 층 끌어올리니.. 좀 비싼 감이 없지 않지만 아이스크림 땡길 땐 이만한 맛이 없다.



저 저 색감 좀 봐라.. 이탈리아, 볼 것도 많고 먹을 것도 많은 나라지만 배울 것도 많다. 저 젤라또 만드는 법 배워두면 한국에서 재미 좀 볼 텐데.. 이미 강남, 압구정 쪽에는 젤라또로 대박을 터뜨리고 있는 가게가 있다고.  이탈리아 전역에 젤라또 가르치는 아카데미들이 제법 많이 있으니 대학진학 일찌감치 때려친 고등학생, 실업의 고통을 실감하고 있는 청년 실(失)업가, 사표를 품고 다니는 젊은 직장인, 퇴직을 앞둔 가장과 부업을 고민하는 주부는 물론 심지어 서주 아이스주 회장님에게도 적극 추천한다. 누구에게나 도전의 길이 열려있으니 함 고민해보시길.. 부국선진의 길. 도서관, 슬로푸드, 젤라또.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