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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3.15 산 마르티노 빌라에서의 요리 4
  2. 2008.09.13 김밥은 된다 3

어제 토요일, 경준을 포함한 마르코 식당의 요리사들과 까메리에레(웨이터)들이 이른바 '출장요리'를 다녀온 곳은 볼로냐에서 약 20km 떨어진 어느 시골의 넓은 들녘에 자리잡은 빌라 산 마르티노(Villa San Martino)였다. 1576년이나 1581년에 지어졌다고 추정되는 이 빌라는 볼로냐 Martino 가문의 사람들의 것으로 그들은 모두 볼로냐 시내에 살고 있고(상당한 재력가로) 현재 이 집은 한적한 교외에서 색다른 느낌으로 파티를 벌이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임대해주고 있다. 해서 주방과 화장실은 현대식으로 뜯어고친 반면 나머지 공간은 그 옛날의 자취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들어서면 그 자체로 거대한 골동품 안에 들어오는 기분을 들게 만든다. 높은 천정, 벽을 둘러치고 있는 색바랜 프레스코화, 옛날에 사용한 오래된 집기들이 그대로 남아 공간을 채우고 있고 100명은 너끈히 식사할 수 있는 T자 모양의 넓은 홀, 하나로 연결된 4개의 방들(벽난로를 피운 방은 엄마와 아이들이 독차지), 그리고 2층에 또 많은 방들과 밖에는 오랜 거목들이 버티고 섰고 낡은 축구장도 갖췄으니 대리석으로 바른 럭셔리풍 빌라는 아니지만 한 번쯤 당시를 살았던 옛날 사람들, 혹은 이 집안의 권세를 떠올려 보기에 충분하다. 

방문객들도 대개 이런 집은 처음 방문하는건지 호기심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집안 구석구석을 둘러본다. 한국에서 온 우리만 촌스러운줄 알았는데 여기 사람들도 그렇네.. 어제 파티의 주인공은 볼로냐에 적을 둔 신혼부부로 결혼식은 한 달전에 스페인에서 올렸고(가만.. 그러고 보니 다소 경황없이 진행된 인터뷰에서 남편은 주로 영어로 답하고 부인은 영어와 이탈리아어를 섞어가며 했으니.. 그럼 남편이 스페인 사람!? 확인해봐야 겠다) 한 달간의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가까운 친구들(아줌마, 아저씨, 할아버지 할머니가 단 한 명도 없는 걸로 봐서)에게 폼나게 밥 한끼 대접하는 자리였다. 그들이 택한 요리사가 마르코 파디가였고 빌라 임대비를 제외한 한 끼 식사비로만 900만원을 지불했으니 이들도 재산이 두둑한 이들임엔 틀림없다.

화사한 옷차림으로 나선 이들 부부와 잘 차려입고 속속 도착하는 친구들이 봄햇살이 반짝이는 문앞 테라스에서 서로 포옹하고 볼키스를 주고받는 모습은 어찌나 빛이 나던지.. 햇빛 받아서 더욱. 서양 애들은 역시 빛 좀 받으면 만들어지는 아우라나 입체감이 동양과는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한켠에 가지런히 세워진 차들이 벤츠나 벤틀리, 포르쉐 정도일 줄 알았는데 뭐 현대차도 보이고 오펠, 시트로엥, 피아트 등 고만고만한 수준이어서 명문 집안의 고급 사교파티는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조금 더 깼던거는 파티의 음악을 담당하는 젊은 음악인이 오셔서 앰프와 스피커 설치하더니 건반에 맥을 연결해 기본 반주와 자신의 건반연주를 더해 목청껏 노래를 부르더라는 것. 빌리 조엘부터 이태리의 미나까지. 어찌나 분위기 깨던지. 나중에는 흥이 오른 손님까지 나서서 노래방 분위기가 됐는데 그래, 격식 뭐 있나? 술 좀 들어갔으면 신나게 놀아야지. 아무튼 이날,  볕좋은 날씨속에 호사스런 집안에서 호사스런 식사를 즐기는 이들을 위해 뒤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요리사들과 까메리에레들을 부지런히 카메라에 담았다. 애초에는 엔딩용으로 음악정도 깔고 갈 생각이었는던 장면인데 막상 현장에 와서 보니 아무래도 이 자체로 씬을 하나 추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리저리 머리를 쥐어짜고 있는 중이다. 촬영이 잘 됐는지도 의문이고..

아, 근데 숙소에 돌아와 이 내용을 포스팅하기 위해 카메라의 메모리 카드를 꺼내 리더기로 읽으려고 하니 '포맷' 메시지가 떠서 지금 굉장히 큰 낭패에 빠져있다. 그간 마르코의 식당에서 촬영한 사진들이 모두 이 메모리에 저장돼 있고 심지어 마르코의 앨범에 꽂힌 옛날 젊었을 때 사진을 자료로 사용하기 위해 복사 촬영한 것들도 여기에 고스란히 들어있는데 이거 뻥나면 정말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인터넷에서 방법을 찾아보니 복구업체에 맡기면 대개 복구 된다는데 여기서 용산이 가까운 것도 아니고.. 몇 주 내로 작업이 마무리되야 하건만 결국 큰 사고가 하나 터졌다. 따라서 마르티노 빌라의 모습도 이 포스팅에서 구경할 수 없다. 어허..

지난 새벽 4시까지 경준의 집에서 오징어를 안주삼아 맥주를 마시고 숙소로 돌아와 늦잠에 빠져 있는 중. 느지막한 오후에 털고 일어나 볼로냐 시내 한 바퀴 산책삼아 돌고 경준 집으로 가서 마침 서울에서 보내왔다는 총각김치에 밥을 해먹기로 했다. 오늘의 저녁식사를 위해 새벽에 맥주마시면서 총각김치는 아끼는 심정으로 딱 한 조각 맛만 봤는데 도대체 이태리 요리고 뭐고 다 필요없게 만드는 이 천상같은 맛은 대체 무엇인지.. 한국사람들, 참 입맛 독특하지 않을 수 없다.

Posted by dalgonaa

지난 주말은 월요일이 마침 몰타의 승전기념일이어서(뭘 이겼는지는 모르겠지만..) 3일간 이어지는 황금연휴였다. 금요일 와인파티를 즐긴 뒤 마침 그곳에서 만난 카리나와 그녀의 남자친구 드가강을 일요일에 집으로 초대했는데 단 두 사람만 부르기엔 단촐할 듯 싶어 이참에 김군의 반 친구들도 초대를 했다. 저녁 7시부터 마시고 놀기 시작한 자리는 와인 9병과 맥주 3캔을 비운 뒤 새벽 3시가 가까이 되서야 끝이 났다.



독일, 폴란드, 슬로바키아, 체코, 러시아, 일본.. 국적도 다양하다. (왼편의 남녀가 카리나와 드가강. 이들의 나이차는 18세. 드가강은 유고가 고향이지만 몇 년 전 가족들과 함께 독일로 완전히 이민을 와버렸다. 지금은 독일에서 페인트 마이스터가 되기위해 공부하고 있고 1년만 더 하면 될 것 같다고..)

아무튼 김군의 반 친구들 중 연락이 닿지않아 오지못한 친구들이 있었고 후에 파티 얘기를 듣고는 살짝 실망의 기색이 엿보여 그게 걸렸었는데 공교롭게도 딱 그 친구들이 이번 주말에 걸쳐 모두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 가운데 일본에서 온 미즈키는 지난 파티에 등장한 한국음식을 먹지 못한 것을 두고 크게 안타까워 했으니 그녀(그래봐야 20살 갓 넘긴 학생이다)를 위해서, 그리고 이들 모두를 위해 작은 작별선물을 준비해야 했다. 그래서 준비한 것은 다름아닌 김밥.







목요일 밤에 미리 밥을 짓고 속에 들어갈 계란과 채소도 미리 부치고 볶아뒀으니 아침에 일찍 일어나 김만 말면 그만이다. 마침 K-mart에 단무지가 들어와 진작에 5개를 사다놓은 것이 있어 그것이 김밥에 대한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시금치를 대신하는 오이가 녹색을 표현하는데 다소 한계가 있는 듯 해서 지난 파티때 먹고 남은 냉동 아스파라거스를 살짝 볶아 이놈을 더했다.

특히 밥에 많은 공을 들였는데 수퍼에 대부분인 안남미(인디카)는 물론 일찌감치 제외했고 우리가 먹는 것과 비슷한 자포니카를 골랐다. 유럽에서 유통되는 자포니카의 대부분은 이태리에서 생산되는데 그러나 이것 역시 쉽게 쉽게 물르고 밥알이 거의 3배 가까이는 불어나는지라 리조또용으로는 적합하겠지만 김밥용으로는 아니다. 그나마 최근 유럽에서 서서히 불고 있는 스시열풍에 힘입어 '스시용'이라고 나온 쌀이 있어 그놈을 골라 밥을 지었는데 밥알이 우리것 보다 더 둥글다. 그런대로 찰진 구석있고 밥을 짓고 난 후에도 쌀의 기본 형태를 제법 유지하니 다행이다 싶다. 이곳 쌀에 대해서 포스팅 한 번 할 생각이니 그때 더 자세히..  지은 밥은 잠시 식혀둔 뒤 플라스틱 볼에 옮겨담아 미리 만들어놓은 초물을 살살 끼얹어가며 밥을 비볐다. 대단한 정성이다.








수업을 마치고 한 자리에 둘러 선 친구들. 가운데 김밥을 들고 있는 친구가 Mizuki다. 그 옆에 Kayoko와 바로 뒤에 이태리에서 온 Giouseppe, 그리고 맨 오른쪽 끝의 Natalie가 모두 이번 주말에 고향으로 돌아간다. 다만 Mizuki는 독일을 일주일간 여행한 뒤 아시아나를 타고 서울에서 하루 스톱오버해 다음 날 동경으로 돌아간다는데 서울 어디서 묶을꺼냐고 물으니 명동에 있는 유스호스텔이라고 한다. 보아하니 옛 안기부를 말하는가 보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한국의 가족들에게 보낼 물건 몇 가지를 미즈키에게 들려보내 그곳에서 하루 숙식을 제공받으라 할 껄 그랬나? ㅋㅋ

김밥을 처음 본 이들의 반응은 그 형형색색의 색감에 먼저 탄성을 낸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은 이 대목에서 정확히 들어맞는다. 낯선 음식을 처음 접할 때면 누구든지 보이는 것을 통해 먼저 그 맛을 짐작하기 때문인데 시각에서부터 경계심이 생겨버리면 왠만큼 놀랄만한 맛이 아니고선 잘못지어진 첫 인상을 만회하기란 좀 처럼 쉽지 않다. 김밥이 갖는 비주얼은 그런 면에서 낯설음에 경계심을 잔뜩 세우는 사람들과 어떻게 하면 처음부터 친숙해질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아는 음식이다.

역시 김밥맛을 대번에 알아보는 이들은 미즈키와 가요코다. 몇 번 오물오물 거리더니 이내 눈가에 웃음이 번지고 곧이어 수줍은 듯 '오이시이~'가 튀어나온다. 비슷한 식문화를 가졌으니 그 입맛이 어디 가겠나? 일전에 파티에서 김밥맛을 이미 본 다른 친구들도 덥석덥석 집어 먹기에 바쁘다. 가운데 검은 옷을 입고 있는 Sarah는 선생이다. 그녀 역시 'Oh~ sweet''을 연발하며 제법 용기있게 김밥에 도전한다.

김밥은 확실히 해외에서도 인기를 끌 수 있는 음식이다. 몇 가지 상상력을 얹어 모양과 맛에서 색다른 도전에 나선다면 분명 많은 사람들의 입맛을 단박에 끌어당길 수 있을테다. 김밥의 물건너 사촌쯤 되는 캘리포니아 롤이 'Gochi'라는 간판을 내걸고 좁은 공간에서 일본인 젊은 사장의 운영 아래 힛트를 치고 있는 이곳의 모습을 학원을 오가는 길에 매일 같이 목격하노라면 그 짐작은 더욱 굳어진다.






이날의 김밥, 과연 그 맛을 새삼 떠올리며 입맛을 다실 이들은 몇이나 될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사심없이 나눠주는 것에서부터 만남은 각별해지기 시작한다. 김밥 맛에 대한 그리움까진 아니더라도 이들에게 이날이 좀 더 각별한 날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