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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0.02 이틀 전 finishing days in Malta 2
몰타 Malta 250308~2008. 10. 2. 21:53


몰타를 떠나는 날, 평소와 마찬가지로 해는 떠올랐고 그 빛깔 또한 그대로다. 새벽 공기가 제법 쌀쌀해 문을 열고 발코니로 나가진 못하고 컴컴한 거실에서 붉은 여명을 하염없이 지켜볼 뿐. 지난 시간, 다가올 내일, 그리고 오늘이 뒤죽박죽되어 떠오른다. 새벽공기를 가르는 차들의 소음만 간간히 들릴 뿐 이 순간은 그 어느 때보다도 고요하다. 그러다보니 가청범위를 넘어서는 주파수의 소리, 가령 '찌잉~'하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느껴지는' 묘한 경험을 오랫만에 맛보기도..


짐은 거의 일주일 전부터 대충 싸놓기 시작했고 우리에게 남겨진 가장 큰 숙제는 짐정리가 아니라 '집정리'. 떠나기 전날, 본격적인 청소를 시작했다. 걸레질을 하고 침대시트를 깨끗히 개고 침대도 정리했다. 가장 사용이 많았던 주방도 처음 왔을 때의 모습으로 되돌려놓았다.

"이 정도면 흠잡을데 없지 않은가?"

집주인 CASSAR씨와 부동산 JOE는 약속시간보다 20분 늦게 집에 도착했다. 반갑게(?) 악수를 나눈 뒤 집주인은 천천히 집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근데 그 폼새가 예사롭지 않다. 주방의 찬장을 단지 열어보는데서 그치지 않고 그릇들을 꺼내 세어보고 구석구석을 살피는 것이 아닌가!

"그래.. 니들이 이런 식이란 말이지..  좋아, 그럼 우리도 가만 있을 순 없지.."

하지만 우리는 완벽하게 가만히 있었다 -.-     우리는 주로 거실쪽에 가급적 태연한 자세로 서있었고 그들은 집안 구석구석을 '뒤지기'시작했다. 집안은 이내 깊은 침묵과 정적으로 뒤덮였다. 거의 내무반의 위생점검과 교실의 소지품 검사를 합쳐놓은 상황. 구름으로 어두워진 날씨는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켰다. 불쾌했지만 우리도 일정부분 기만을 시도한 부분이 없잖았기에 따질 여건은 아니었다. 저 정도의 세심한 관찰이라면 우리의 가장 큰 아킬레스, 다리 하나가 부러진 의자와 벽면의 엄지손가락 넓이의 페이트 떨어져나간 흔적을 발견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걱정이 밀려왔다.

마침내.. 주방 구석에 얌전히 세워 둔 의자를 건드는 순간 다리 하나가 차가운 돌바닥에 쓰러지며 집안의 정적을 깼다. 올 것이 온 것이다. 부동산 JOE가 먼저 우리에게 이유를 물었다. 우리는 이렇게 대답했다.

"친구 하나가 앉다가 의자가 부러졌고 그 친구도 결국 다쳤다"

첫 문장은 사실이고 뒷 문장은 물론 거짓말이다. 하지만 보기에 따라서 그럴 수도 있었으니 우리는 최대한 뒷 문장에 힘을 실었다. 그러나 먹힐리가 없다. 집주인의 '추적'은 계속됐다. 작은 접시가 모자르다는 지적에 우리는 서둘러 다른 선반에 옮겨놓은 접시를 꺼내놓았고 작은 플라스틱 통(우리에겐 존재감이 거의 없었던)이 뚜껑만 있고 몸체는 없다는 '치사한' 꼬투리에 숟가락 몇 개 담아놓는데 사용했던 그 통을 꺼내 보여줬다.

대략 40분간 진행된 '추적'에서 다행히 벗겨진 페인트는 발견하지 못했지만(사실 너무 작아서 안띄었던 것) 손잡이 부러진 냄비가 추가로 발견된 것은 우리도 예상못한 불운이었다. 집주인은 의자를 비롯한 파손된 집기와 청소비용으로 총 140유로를 청구했다. 이는 집주인이 우리에게 돌려줘야 할 금액 490유로에서 이를 제한 350유로만 되돌려준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는 동시에 만약 200유로를 지불하면 보수와 청소에 소요되는 실비를 제외하고 남은 비용을 계좌로 넣어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그럴 경우 140유로보다는 적게 나올 것이 분명했고 CASSAR씨도 푼돈을 갖고 장난할 사람은 아니라 보였지만 우리는 그냥 140유로를 제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아깝지만 그간 시달려온 흉흉한 소문(보증금을 한 푼도 못받는)에 비하면 대체적으로 선방했다고 자평하며..

돈을 돌려받고 악수를 하며 "We were happy to live in this flat"라고 마지막 인사를 건넨 뒤 미리 불러놓은 택시에 몸을 실었다. 
"쿵" 
택시 문을 닫자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차단된 느낌이 순간 들었다. 그제서야 몰타생활이 끝났다는 느낌이 밀려들었다.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은 없었지만 우리는 잠시 정체를 알 수 없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무엇을 얻고 떠나는지, 무엇을 버리고 떠나는지.. 오랜 시간을 두고 생각해봐야 할 몰타에서의 6개월. 

컴컴해진 하늘은 가는 빗줄기를 뿌리기 시작했고 비행기는 그 빗줄기를 뚫고 하늘로 날아 올랐다. 저 아래 섬나라, 과연 남은 생에서 저 땅을 다시 밟을 기회가 있을까? 밀려드는 아쉬움은 쉽게 접혀지지 않았지만 저 작은 섬은 곧 시야에서 사라져갔다.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