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8.09.20 '경자'의 지중해식 카레라이스 2
  2. 2008.03.23 절제의 맛, 사시미 2

경자(敬子), 이를 일본 이름으로 바꿔내면 '게이코'가 된다. 경자는 일본 사람이다. 도쿄의 세타가야쿠라고 하는 제법 부자 동네에서 살며 또한 그곳의 한 약국에서 일한다고 한다. 그녀는 약사다. 작년에 서른을 넘겼고 다니던 약국을 용감하게 그만두고 거의 두 달 일정으로 몰타로 건너왔다. 차분한 사교성과 뒤로 빼지 않는 적극성, 그리고 제법 단단한 주량 등을 두루 갖춘 그녀는 그간 우리가 간간이 봐왔던 일본사람과는 좀 다른 면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우리가 그녀를 좋아하는 이유다.

며칠 전, 파파라치에서 식사를 마치고 집에 가던 중 유카타를 차려입고 한 손에 초밥 봉지를 들고 길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게이코를 만나 깜짝 놀랐었다. 유카타를 챙겨 왔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보게 될 줄은 몰랐던 것. 같은 동양권인 우리의 눈을 한눈에 사로잡았으니 다른 외국인들에게 비친 그녀의 모습은 또한 얼마나 매력적이었겠는가? 이날 그녀의 교실 친구들과 함께 선생집에서 작은 파티를 하러 가는 길이라고 했는데 후에 들어보니 사진 모델역할 하느라 진을 뺐다고 한다. 사실 그녀 또한 그것을 은근히 즐겼을 터.

이 날로 부터 대략 1주 전, 게이코가 우리에게 지중해식 카레라이스를 해주겠다며 집을 방문했다.



일본에서 손수 들고 온 고형 카레. 정말로 '지중해카레'라는 글씨가 선명하다. 일본의 카레야 비록 자국 내에서긴 하지만 카레의 본고장인 인도 못지 않게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 음식. 오뚜기 카레만 있는 우리와 달리 저렇듯 '지중해'라는 남다른 맛을 선언한 카레도 숱하게 존해하는 곳이 일본이니 이날 게이코의 지중해 카레에 기대가 모아진다.




카레만이 아니라 요리에 필요한 양파, 당근, 감자 그리고 고기도 손수 사왔다. 좀 더 사와도 되겠건만 딱 요리할 만큼의 분량만 사왔다. -.-; 




오자마자 큰 냄비부터 찾은 게이코. 준비해둔 냄비를 보여주니 안심하고는 서둘러 재료손질에 들어간다. 이날 식사는 사실 이미 전에 한 번 우리집에서 깐풍기를 대접한 적이 있어 그에 대한 게이코의 보답으로 마련된 자리였다. 이 카레 또한 게이코가 묵고 있는 호스트 패밀리를 위해 손수 요리해 대접할 요량으로 가져온 것이었는데 그보단 우리에게 대접하는 것이 훨씬 더 유익하겠다고 판단이 들었던 모양이다. 




당근을 썰어놓은 모습에 김군, 깜짝 놀랐다. 길쭉한 당근을 아주 정직하게 90도 각도로만 썰어온(그래서 언제나 동그란 모습) 김군이었는데 게이코는 전혀 다른 각도로 당근을 썰어낸 것. 단지 새로움에서만이 아니라 그 모양도 훨씬 예쁘다. 그리고 보니 어디선가 본 고급 카레에 든 채소가 바로 저런 모양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일본식 감탄사 "에~!"를 농삼아 연발하며 저 모습에 관심을 보이니 게이코는 "랑기리"라고 말한다. 다양한 썰기의 한 이름이겠는데 우리로 치면 어슷썰기 정도가 될려나? (허나 일본어를 구사하는 우리집 시니어 '지희'에 따르면 '그냥썰기'라는 멋없는 해석을 내려준다)




계란도 삶고..  우리나라의 경우 정체를 알 수 없는 아주 싸구려 계란에서부터 특별한 관리를 통해 생산한 계란, 그리고 유기농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란이 선보이지만 이곳 몰타 수퍼에선 오로지 딱 한 종류밖에는 취급을 안한다. 6알에 대략 1천원. 흰 계란이 처음엔 낯설었지만 지금은 익숙해졌다. 우리도 예전엔 흰 계란만 먹었었는데 갈색 계란이 등장하게 된 배경은 뭔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계란 품질을 가늠하는 기준 하나는 깨뜨려 보는 것인데 노란 자위가 바닥에 떨어지면서 터져버리면 그 계란을 낳은 닭은 가장 비윤리적인 관리하에 혹독한 상황에서 길러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그런 계란 숱하게 봤다. 하지만 이곳 노른자는 거의 터지는 법이 없다. 사육의 관리가 제법 엄격한 탓이리라 감히 추측해보고..




돼지고기도 썬다. 생돼지고기를 사왔는데 요리를 마치고 먹어보니 아주 부드럽다. 정육코너에서 가장 부드러운 부위를 달라고 하자 줬다고 하는데 후에 우리도 같은 고기를 사다 먹으면서 주인에게 물어보니 안심이란다.




큰 냄비에 기름 살짝 두르고 썰어놓은 고기를 넣는다. 그녀의 솜씨가 결코 서툴지 않다. 냄비 옆에선 밥이 익어가고 있고 두 개의 불판은 놀고 있다. 왼쪽 아래 큰 불판은 고장났다.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3개 뿐. 오븐 기능도 되지만 코일을 달구는데 들어가는 전기량이 엄청나기 때문에 감히 사용할 엄두를 안낸다. 2달 전, 유류값 파동으로 전기료가 정확히 2배로 뛰었다. 한국에서라면 대규모 시위로도 모자랄 엄청난 '배짱정책'이겠지만 여긴 조용하다.




치지직 ~ 볶아주니 고기빛이 금새 변한다. 한눈에 보기에도 고기가 꽤나 야들야들해 보인다. 큼직하게 썰어넣은 폼이 무척이나 맘에 든다. 가끔 카레 요리에서 채소를 오종종하게 채치듯 해서 내는 사람들이 있는데 정말 싫다. 재료가 큼직큼직해야 재료 본연의 맛도 잘 살고 식감도 따로 놀지않아 좋다. 물론 보기에도 좋다.




당근과 감자, 양파를 마져 쓸어넣고 고기와 함께 달달달 볶아준다. 그리고 곧 물을 부어 채소가 자작하게 잠기도록 한다. 이렇게..




요리마다, 그리고 사람마다 저 마다의 관점과 기준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는 언제나 그렇듯 오랜 경험과 시행착오에서 비롯되는 것들인데 게이코도 그런 경험이 많은 사람임에 틀림없다. 옆에서 물을 준비해 부어주겠다고 하니 그 물높이를 지적하는 폼이 신중하다. 물이 차오르는 것을 지켜보던 그녀는 어느 지점에서 '그만'을 분명히 외친다. 누구의 눈에는 좀 더 부어도, 좀 덜 부어도 될 물량이겠지만 그녀에겐 분명히 그녀만이 알고 있는 물높이가 있다.

그것이 없는 사람들은 요리하면서 말이 많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주변에 의견을 구한다. 처음에야 그것이 용납되겠지만 이후에도 그렇다면 이건 문제다. 주방의 군기가 쎄다는 이야기는 단지 칼과 불의 위험 때문만이 아니다. 자기 '예술'에 대한 명확한 기준과 고집을 확립하는 것은 요리하는 사람으로서, 적어도 남에게 자신의 음식을 대접하겠다는 사람으로써 꼭 갖춰야 할 자세이기 때문이다. 음식에 대한 남다른 고집을 지키는 음식점은 대체로 사람들로 인정을 받고 오래도록 살아 남으며 그들은 물높이에 대한 자신만의 엄격한 기준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나름 공들여 정리해낸 생각을 글로 마치고 다음 사진을 보니..  읔.. 민망함이 살짝.. 인스탄트 카레 덩어리라.. 그렇다고 게이코를 뭐라는 건 결코 아니다. 인스탄트라도 물높이는 언제나 중요하다. 라면 잘 끓이는 사람을 두고 그가 인스탄트 라면을 끓였다고 언제 손가락질 하던가 말이다. ^^    사진의 것 말고 하나가 더 있는데 두 개를 다 넣었다.




고형 카레를 넣고 대략 5분여를 풀어주고 한동안 뜸을 들이더니 게이코가 카메라쪽으로 몸을 휙 돌려 차렷자세를 취한 뒤 "오아리데스"라고 외친다. 끝났단다. 그 폼이 워낙 인상적이라 한 번 더 포즈를 취하게 한 뒤 사진을 찍었다. 따라서 이 사진은 연출된 사진. 하지만 그 상황은 같다.




이렇게 해서 지중해 카레가 만들어졌다. 색감은 얼핏 하이라이스를 연상케 하지만 맛은 카레다. 질척하지도 되직하지도 않게 딱 알맞게 요리됐다. 가끔 김군도 물량을 제대로 못맞춰 끓이다가 물을 더 붖거나 카레를 더 넣곤 하는데 게이코는 그런 실수없이 한 번에 완성해냈다. 그 공력이 놀랍다. 더불어 어수선함 없이 딱 필요한 행동만 취하면서 요리를 마쳤으니 주방의 모습은 별일 없었다는 듯 고요한 풍경이라 그 또한 놀랍다.





이번엔 우리차례. K-mart에서 미리 사다놓은 단무지를 꺼내 채친다. 카레라이스엔 깍두기나 김치, 또는 그밖의 아삭한 짱아치나 피클류가 제격이겠지만 없으니 단무지라도 있는 것이 어딘가? 그 존재감이 보석처럼 빛난다.




마늘과 파, 참기름과 고춧가루, 그리고 나름의 비법으로 식초를 살짝 뿌려 무쳐주니 단무지가 옥동자로 거듭난다. 서양음식에서 피클 말고는 아삭한 맛을 즐기는 음식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그 식감에 길든 우리로선 해외 생활 오래되면 그 식감에 그리움이 사무쳐간다.




차려진 식탁. 보는 것 처럼 별 것 없이 카레에 달랑 단무지가 전부지만 나름 의미를 부여하면 한식과 일식이 공존하는 식탁이다. '닥꽝'도 일본서 유래된 것이라 치면 정통일식으로 봐도 무방하겠다. 엄마같은 손길로 손수 음식을 떠주는 게이코, 그 모습에 모두 흡족한 표정이다.





삶은 계란도 반 잘라 그릇에 내니 보는 즐거움이 더욱 커진다. 사실 게이코는 계란의 노른자가 반정도만 익기를 바랐다고 한다. 아무렴 어떤가?  고슬고슬 밥에 카레를 비벼 한 술 입으로 가져간다. 이 대목에서 우리집 시니어 '지희'의 표현을 고스란히 옮기면 이렇다.

"초콜렛 케익 먹는 것 같아요~"

우리로선 도무지 떠올릴 수 없는 맛이지만 초콜렛은 최상급 표현의 다름 아니니 그녀의 표현을 존중키로 한다.
초콜렛이 등장했으니 그럼 와인이 빠질 수 없다.




꼬부라진 병 주둥를 가진 독특한 모양의 와인 J.P CHENET. 프랑스산 로제 와인이다. 나머지 자세한 스펙은 자신없으니 통과.



멋진 만찬을 제공해준 게이코에게 감사를 전한다. 이후에도 게이코는 지금껏 만난 다른 어느 외국인보다 우리집을 자주 드나들었는데 그 과정에서 우리는 그녀에 대해 좀 더 많은 것을 알게 됐다. 가령 그녀의 외할머니가 이북 출신의 한국인이라는 것 등등.. 이외에도 감추고 싶은 속내까지도 털털하게 이야기하는 그녀를 우리는 좀 더 오래도록 좋은 친구로 남겨두고 싶다. 내년 우리가 한국에 귀국하면 그녀는 한국을 찾을 예정이다.

Posted by dalgonaa

34일간 이것저것 몇 안되는 일본 음식을 먹어본 경험에 바탕해 일본의 맛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적어보면 이렇다. 사시미. 아다시피 우리는 활어회를 즐기는 반면 일본은 숙성 회를 즐긴다. 츠키지 수산시장을 둘러보며 동경사람들 식생활의 일면을 보고 싶었으나 다른 일정으로 포기해야 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지만 그 시장을 거쳤을 생선살을 한 오래된 이자카야에서 맛 본 것은 좋은 경험으로 남을 듯 하다.

 

신주쿠의 이자카야에선 고등어와 방어, 참치가 그야말로 핥아먹어야 할 수준의 양으로 조금씩 나왔는데 이것이 오히려 맛의 반전을 가져다 줬다. 평소 한국에서라면 생선살 두어 점을 덥석 집어 들어 초장에 찍어 마늘과 풋고추를 곁들여 상추로 마감하거나 혹은 물에 갠 와사비를 간장에 풀어 살짝 찍어 먹었을 테다.

 

반면 일본의 사시미는 그야말로 몇 번 없는 맛의 기회가 생선살을 대하는 태도부터 바꿔놓고 만 것. 적은 양이 가져다 주는 아쉬움은 긴장감으로 이어져 행여 바닥에 떨어뜨릴까, 몇 번 없는 맛의 기회를 망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생선살을 집어 드는 것이다.

 

한국의 생선살은 쫄깃한 반면, 일본의 생선살은 부드럽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만약 한국에서 일본식의 맛을 봤다면 무슨 생선살이 이렇게 물러?’하고 핀잔부터 듣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이날의 경험에서 생선회의 맛은 단연 신선한 고추냉이와 간장의 적절한 조화에서 완성됐다.

 

나로선 실로 새로운 맛의 발견이었다. 가루를 물에 갠 와사비와 달리 고추냉이를 직접 갈아내어 그 맛과 풍미가 근본적으로 달랐는데 매운 맛의 와사비에서 그만의 단 맛을 봤다면 이상할까? 사실 한국의 고급 횟집을 제외한 일반 횟집에서 먹는 와사비는 흉내아니던가?

 

맛의 관점이란 천차만별이니 그 평가에서 거짓이란 없다. 다만 가끔씩 흉내에 머물거나 때론 속이기까지 하는 주방의 못된 행태들이 있어서 그것에 놀아나지 않으려면, 그리고 단지 배를 채우는 목적이 아니라면 맛도 때론 깐깐하게 음미하는 것이 건강한 것이자 즐거움일 수 있다.

 

뭐 대단한 횟집에서 먹은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신주쿠의 낡은 이자카야에서 한 접시, 그리고 어제 시모키타자와의 오뎅집에서 먹은 마구로 한 접시가 전부지만 이날의 경험들이 생선회를 즐기는 내 입맛을 높여놓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앞으로 어딜 가든 생선회를 먹을 때는 이날의 경험을 떠올리며 그 맛을 찾아가는 시도가 반복될 것 같다.



>> 고등어와 참치(마구로), 방어를 각 세 점씩 썰어내온 사시미에 국화로 살짝 단장을 했다. 벌벌 떠는 젓가락질이 느껴지는가? / 문어 숙회 위에 얹은 신선한 고추냉이와 푸짐하게(?) 차려진 안주들 / 커튼을 젖히고 들어서면 뜨끈한 가다랑이 국물 향이 실내 가득 퍼진다.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