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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4.13 만찬 5




그저께 볼로냐 시장 정육점에서 사온 돼지고기. 경준과의 볼로냐에서의 마지막 만찬을 위해 준비했다. 좀 얇은 고기가 필요해서 슬라이스를 해달라고 하니 친절한 정육점 아저씨, 하나 썰어 볼테니 두껍거나 얇으면 다시 얘기하란다. 헌데 덧붙일것 없이 딱 알맞은 두께여서 'OK'. 기름종이에 비닐 깔고 그 위에 썰은 돼지고기를 하나씩 올리고 다시 비닐 깔고 하나씩 올리고. 한 조각씩 떼어져 나오니 깔끔하구나.



준비한 돼지불고기 양념장에 절이기. 불고기 양념이야 너무 뻔하니 통과. 참기름을 조금 넣어줘야 맛이 한층 도는데 그건 없어서.


역시 시장에서 구입한 가자미. 머리, 내장 따고 소금에 살짝 절여 햇빛에 말리는 중이다. 구이의 자격으로 만찬상에 오를 또 다른 역군. 이렇게 준비를 하고서 경준의 마지막 인터뷰를 위해 비스트로로 향했다. 도착하니 경준 왈 "식당에 좋은 스테이크 고기가 들어왔어요. 오늘 그거 먹어요"
 


바로 저거. 요즘 4월 메뉴로 손님들에게 쇠고기 타다끼를 내고 있다는데 그 편으로 들어온 것 중 경준이 따로 챙겨놓은거다. 애써 시장까지 봐가면 준비했지만 돼지고기에서 쇠고기로 바뀐 마당인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게다가 스테이크, 이게 얼마만이냐? ㅋㅋ 세꼰도를 담당하는 엔리코에게 부탁해 한 점 얻은거니 나름 합법적 고기다. 헌데 이 외에 따로 '꼬불친'게 있으니.. 그건 바로 버섯. 실물은 공개 못하고 나중에 요리된 사진으로나.. 왜냐면 만에 하나라도 주방 사람들이 이곳에서 그 사진을 보면 곤란다하는 경준의 우려를 존중해야 하기 때문에.



만찬 장소는 우리 집이고 요리는 당연히 경준. 기분좋게 화이트와인 한 잔씩 마셔가며 시작한다. 고기의 붙은 불필요한 지방은 따로 떼어 놓는다. 저걸 버리느냐? 아니다.



그 전에 잠시 와인 얘기. 지난 금요일 집주일 엘레나가 느닷없이 전화를 걸어왔다. 집주인이 전화 걸어오면 무슨 일 있나 싶어 은근히 신경이 곤두서곤 하는데 그녀 왈 "집에 있어? 있으면 빨리 아래로 내려와"라고 한다. 무슨 일 있냐고 하니 "아니, 와인 한 병 줄테니까 그거 받으라고" 한다. 엥? 해서 이왕 그렇다면 우리도 빈손으로 내려갈 순 없어서 마침 누굴줄까 고민하던 예쁜 나무젓가락과 전통문양 책갈피를 들고 내려갔다. 방금 장을 보고 오는길인지 차 안에는 장 봉다리가 한 가득이다. 그리고 저 와인을 건네받았고 우리는 젓가락을 건넸다. 싱글벙글 미소와 함께. 잠깐이라도 와인 판매대 앞에서 우리를 떠올리며 와인을 골랐을 그녀의 마음씀씀이가 여간 고마운게 아니다. 그리고 잊지 않고 한 마디 던지며 부르릉 떠나는 그녀, "부오나 빠스꾸아~" (Buona Pasqua-즐거운 부활절 보내~). 허허 이곳에 머무는 시간이 좀 더 길었다면 그녀와도 즐겁게 밥 한 번 먹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밀려온다. 당신도 진짜로 즐거운 부활절을 보냈길. 차 안에 맛있는 음식이 한 가득이었으니 분명 그랬을테다. 



엘레나의 와인을 기분좋게 마시며 기분좋게 요리를 지켜본다. 경준 "그냥 식용유 없어요?" 한다. 없다고 하니 그냥 아까 썰어낸 기름덩이들을 올리브유 두른 팬에 저렇게 넣고 볶는다.  



"올리브유는 향이 있어서 고기 맛을 우리는데는 별로에요"  음.. 글쿤. 저것의 용도는 스테이크 위에 끼얹어 먹을 소스를 만드는데 있다. 살점이 좀 더 도톰하게 붙어있으며 그 맛이 좀 더 잘 우러나 좋단다. 수퍼에는 소스를 우리는 목적으로 담아낸 뼈와 질긴 기름이 붙은 잡부위의 고기를 아주 싼 값에 팔기도 한다. 암튼 일단 쎈 불에 저 고기를 던져놓으니 치지직 거리며 요란하게 튄다. "처음엔 손대지 말고 그대로 타게 두셔야 해요".  아 그렇게 익혀내면 곧 기름이 새나와 고기들이 잘 떨어지는데 그렇게 나온 기름은 못쓴다고 버린다. "돼지고기 기름과 달리 쇠고기 기름은 별로 쓸데가 없어요. 일단 기름은 한 번 빼내고 여기에 버터를 넣어 맛을 우려낼 거에요" 음.. 글쿤.


치지직 거리며 소스가 익어가는 동안 거리는 하늘은 어두워져가고 거리는 밝아져가고 배는 고파오고..



한 번 빼낸 기름은 버리고 여기에 버터 넣고 살짝 녹인 뒤 밀가루를 조금 넣고 마저 볶는다. 그리고 마늘과 바질, 소금을 넣어주고 마지막에 물을 조금 부어 약불에서 뭉근히 끓이면 소스는 완성.


곁들임으로 먹을 파쨈. 파를 길게 채썰어 준비하고 기름두른 팬에 설탕, 와인식초를 넣은 뒤 끓이다가 파를 넣고 섞어주며 마저 중불에서 끓인다. 그럼 설탕으로 인해 소스가 캬라멜화 되고 새콤달콤한 파쨈이 완성. 기름은 쪽 따라버리면 그만.


소스가 끓고 파쨈이 익어가고 드디어 고기도 팬에 올려졌다. 전문 요리사와 아마추어가 다른 점은 도구와 불을 쓰는데 있어 공백이나 허점이 없다는 점과 멀티운용이 가능하다는 점,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각자 출발은 달랐지만 마지막 완성은 동시에 이뤄진다는 점이다. 오랜, 혹은 잦은 경험으로만 도달할 수 있는 일이다. 저 오른쪽에 냄비는 그냥 방치돼 있는 김군의 찬밥 모습.



오늘의 요리사. 최경준.


뜨겁게 달궈진 팬에 기름 두르고 다시 버터를 넣은 뒤 곧 고기덩이를 넣는다. "원래 고기를 익힐 때는 버터를 쓰는데 센불에서 하니까 금방 타요. 그래서 기름을 둘러서 버터 타는걸 막는거죠"  덧붙이기를 경준네 비스트로도 그렇지만 스테이크의 경우 주문과 동시에 고기를 익히기 시작하는 레스토랑은 많지 않단다. 먼저 고기의 표면만을 쎈불에 익혀 놓은 뒤 주문이 들어오면 미듐이냐 레어냐 웰던이냐에 따라 오븐에서 주문에 맞게끔 데피거나 익혀내는 식이라고. 경우에 따라선 표면을 빠르게 익혀낸 뒤 속이 익는 걸 막기위해 얼음물에 재빨리 담가 열을 식혀 보관하기도 한단다. 맛에 차이가 있을까?  글쎄..  



익혀낸 고기는 버터 바른 용기에 올려 오븐에 넣는다. 제과제빵과 더불어 이탈리아 북부식의 고기 요리에서도 버터의 용도는 끝이 없는 듯. 폴렌타, 파스타, 리조또.. 이번 비니탈리에서 일본에서 일한다는 이탈리아인 요리사를 만났는데 이 친구 왈, 일본에는 양식의 경우 이탈리아 식당보다는 프랑스 식당이 압도적이어서 버터 품귀현상으로 버터 가격이 엄청 비싸다고 한다. 자신은 이해를 못하겠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라는. 넌 버터 안쓰냐고 물으니 "난 뻬루자(중부) 출신이고 우리는 올리브유만 쓴다. 빵을 만들때도 올리브유로만 만든다"고 내심 자부심이 넘치더라는..



Burro. 이탈리아 말로 버터. 살찌우는데 저거만한 특효가 없지 싶다. 경준을 비롯한 마르코 비스트로의 요리사들은 특이하게도 버터를 숟가락을 사용해 떼어내지 않고 그냥 손가락으로 떼어내 사용한다는 점. 왜그러냐고 물으니 "그냥 그게 편해서요"



경준이 꼬불쳐 온 버섯과 샬롯이라는 작고 맛이 진한 양파를 따로 볶아낸 뒤 스테이크 팬에 함께 넣어 마저 익혀냈다. 스테이크는 좀 더 익히겠다며 다시 오븐 속으로. 


오븐에서 3~5분 정도. 스테이크가 익어가는 동안 요리가 끝난 결들임들을 접시에 담고 있다.


요로코롬.. 마늘, 샬롯, 바질, 그리고 버섯. (이름을 까먹었는데 나중에 확인..) 맛이 상당히 진하다는 것이 경준의 버섯에 대한 예찬인데 여느 버섯과 달리 그 풍부함이 분명 남다른 구석이 있다. 미식의 향유를 이렇게 조금씩 경험해 가는구나 싶은.. 허나 경준의 식성이 조금 짠편이라 그 풍부한 맛을 충분히 즐기지는 못했다는 점을 새삼 고백을 한다. 결국 경준의 짠 식성에 대한 얘기가 식사중에 또 다시 화제로 올라왔다. 경준은 예전에 우리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파스타 삶을 때 물에 소금을 조금 넣으라는데 그런 정도는 좀 부족하구요 라면국물 정도의 간 정도로 소금을 넣으면 딱 좋아요" 그러자 강양 왈 "그럼 짠건데?" 그러자 경준 "라면이 짜요? 안짠데?.."



자~ 스테이크도 완성. 속은 멀쩡한 대신 겉이 익으며 쪼그라들어서 동그란 모양으로 변신했다.



썰어보니 흐믓한 웃음, 허허.. 레어라고 해야할지 타다끼라고 해야할지.. 암튼 빛깔 참 곱다.



그렇게 한 점 두툼하게 썰어서 그 위에 소스 쭉~!



시각적 화려함은 없지만 내용 자체는 최상급. 이곳에서 한 접시 먹으려면 최소 30유로는 내야 할 요리.



한 점씩 썰어 낼 때 마다 그 단면에 고기 좋아하는 아는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씩 아로새겨진다. 소금에 찍어먹는 쇠고기도 맛있지만 고기소스에 찍어먹는 이것도 정말 맛있네. ^^  한국사람들이 유난히 기름이 촘촘히 박힌 등심고기를 좋아하는 반면 유럽의 경우 기름기 적은 고기 자체의 맛을 더 선호하지 싶다. 수퍼에서 판매하는 고기의 경우도 그렇고 경준이 챙긴 고기도 그렇고 우리가 얘기하는 이른바 '꽃등심' 부위는 찾아 볼 수가 없다. 그 맛을 알면 이들도 홀딱 반하긴 할텐데.. 그게 소의 종자에 따라 다른건지 어떤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호주에선 한국 수출용 소에 기름이 촘촘히 박히도록 하기 위한 별도의 사료와 사육법을 쓴다고 들은 바 있다. 고기에 곁들이는 소스의 발달은 어쩌면 그런 환경에서 비롯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암튼 참 맛나네요~^^



뭐 거의 육회네.



비니탈리에서 마신다 마신다 하다 끝내 못마신 토스카나의 몬탈치노. 떠나기 전에 기어이 마시리라 하며 와인샾에서 한 병 구입, 마침 때를 만났다. 헌데 제법 비싸게 주고 샀는데 맛이.. 강양은 '몬ㅌ'자가 들어간 와인들, 몬탈치노, 몬테팔고, 몬테풀치아노.. 모두 산자락이라는 뜻을 가진 셈인데 이들 포도주는 영 안맞는다는 결론을. 산죠베제 종이 주요 재료인걸로 아는데 특유의 시큼함이 특징이라 좀 더 부드러운 맛을 좋아하는 이들은 반기지 않을 맛이 아닐까. 하지만 이것도 맛들이면, 특히 매우 기름진 요리와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후식, 까스띨리오네의 젤라또. 볼로냐에서 최고, 어쩌면 우리로선 세계에서 최고로 맛있는 젤라또 집이라 단언할 수 밖에 없는 젤라또. 경준이 이 집과 관련한 비화 하나를 얘기해 준다. 경준네 비스트로와 까스띨리오네 집은 50미터 정도? 무척 가깝고 비스트로에서 사용하는 후식에도 이 집 젤라또를 쓴다.
"어느 한국인이 저 가게를 찾아갔어요. 그리고 돈도 안받고 숙박도 내가 알아서 할테니 단지 일만 하게 해달라고요. 근데 거절당했죠. 저 집에서 젤라또를 만드는 사람을 40대 아저씨, 그 사람 혼자에요. 그리고 절대 안가르쳐 준대요"

우리도 푸대에서 설탕 따위를 바가지로 퍼 올리는 묵묵한 그의 모습을 먼 발치에서 본 적이 있다. 그 한국인, 얼마나 낙심이 컸을까..



왼쪽부터 무, 빠나, 피스타치오. 이집의 15가지 메뉴 중 경준이 베스트 넘버 3로 꼽은 것들만 골라왔다. 왼쪽은 메가톤바 맛, 중간은 진한 생크림 맛, 오른쪽은 피스타치오를 듬뿍 갈아넣어 그 맛이 마치 찹쌀떡 콩가루 맛. 이구동성으로 극찬하는 맛은 피스타치오.



쫄깃쫄깃 부드러운 젤라또.



어느덧 깊어진 밤. 써머타임으로 8시는 넘어야 컴컴해진다. 볼로냐를 떠나며, 그리고 이번 여행을 마치며 극진하게 차려먹은 마지막 만찬이었다. 저 요리법, 고스란히 부산으로 옮겨가야지 ㅎㅎ  다음날 아침 일찍 말레이지아에서 피사로 날아오는 친구를 마중나가기 위해 마저 와인을 다 비운 뒤 경준은 집으로 향했다. 이달 말 경 서울에서 다시 만나 삼겹살을 굽자는 인사를 나누고.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