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1.29 오스떼리아 일 구포 5
  2. 2009.01.23 식당 '달미꼬꼬' (Dal mi cocco) 4


자, 오늘은 또 다른 근사한 식당 하나 만나보자. 오스떼리아 일 구포(Osteria Il Gufo), 우리말로 '올빼미 식당' 되겠다. '구포'가 올빼미. 우리집에서 무척 가까운 식당으로 메뜨로를 타러 가거나 광장에 다녀올 경우 항상 식당 앞을 지나게 된다. 오며가며 볼 때마다 뭔가 내공이 느껴지는 집이라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지난 주 우리에게 달미꼬꼬를 추천했던 안드레아는 이 식당도 적극 추천했다. 구포는 저녁에만 문을 열고 금요일 저녁은 손님들로 북적인다. 그러나 어제 찾은 식당은 2시간에 이르는 식사 내내 우리가 유일한 손님이었으니 어찌된 영문인지 원.. 그래도 뻬루자 사람들에게 저렴하면서 맛있는 식당으로 정평이 난 식당이니 괜한 걱정은 접기로 했다.

서점에서 요리책을 사들고 나오니 8시, 뱃속에서 허기가 으르렁 거린다.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서자 언니가 친절하게 테이블로 안내한다. 식당 전체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구석자리. 테이블 상판이 대리석이고 의자도 꽤나 무겁다. 의자 빼는데 그 무게 때문에 살짝 애먹었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저렇고

정면을 보니 저렇다.

벽에 걸린건 올빼미들. 소박하지만 식당 이름에 대한 애정이 내부에서도 잘 드러난다. 어떤 식당(지역, 국가를 막론하고)들은 이름과는 전혀 관계 없는, 또는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안은 곳도 많은데 이곳은 다르다.

와인을 담아낸 술병에도 어김없이 올빼미가 등장.

메뉴는 그간 식당 앞을 오가며 봐뒀었지만 폰트가 아니라 실제 필기로 적어놔 읽는데 애를 먹어 가격만 파악하는 정도. 가격은 여느 평범한 식당과 크게 다르지 않고 안티파스토와 육류와 생선을 제공하는 세꼰도는 메뉴가 다양한 반면 프리모인 파스타는 종류가 다른 식당의 1/3 수준이라는 점이 심하게 아쉽다. 자리에 앉으니 메뉴판이 아니라 A4용지에 복사한 메뉴종이를 건네준다. 식당 앞 메뉴판에 걸려 있던 그 종이다. 유심히 훑어보지만 여전히 알쏭달쏭, 결국 주문한 것은 미리 염두에 뒀던 19유로짜리 코스요리. 달미꼬꼬보단 비싸지만 여전히 저렴한 가격이다. 많은 식당들이 코스 요리를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만큼 구포의 내공이 이 모두에 들어있으리란 기대로 주문했다. 와인리스트는 반듯한 메뉴판으로 건넸으나 살짝 훑어보다가 곧 500ml 하우스와인(5유로)으로 주문. 와인보단 요리맛에 집중하는 식사 아닌가.


친절한 언니, 원래 코스에 없는 거라며 작은 접시에 담긴 샐러드를 가져다준다. 환대가 담긴 서비스 접시에 기분이 좋아진다. 볼잘 것 없는 작은 양이지만 맛 탐험에서 그건 문제가 아니다. 더구나 배터지기 마련인 코스식사 아닌가? 뭐든 주기만 하면 우린 언제나 맛 볼 준비가 돼 있다.


모양새나 씹히는 식감이나 영락없이 보리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보리 맞다^^. 찐보리를 리코타치즈에 버무려 낸 일종의 샐러드. 비슷한걸 시에나에서도 맛봤으니 적어도 중부지방에선 보리를 된장이나 고추장이 아닌 올리브유와 치즈에 비벼 먹는다걸 알겠다. 간이 안돼 있어 맹숭맹숭한데 위에 얹어낸 녹색이 그 역을 대신한다. 녹색이 뭐냐고 힘겹게 물어보니 루꼴라와 잦을 갈아 소금 살짝 넣고 올리브유에 버무렸단다. 바질만 그렇게 먹나 싶었는데 루꼴라도 그러는걸 보니 녹색 채소라면 뭐든 저렇게 먹을 수 있겠다. 달콤한 식전주를 곁들였다면 심심하고 담백한 맛 때문에 궁합이 좋았을 메뉴.

안티파스토 등장. 접시가 운동장처럼 넓다. 캐스팅을 살펴볼까?


우선 훈제로 향을 입힌 쫀득한 생모짜렐라 두 덩이, 말린 토마토, 야생(추정) 루꼴라, 그리고 휀넬 씨를 살짝 뿌린 뒤 올리브유로 마무리. 그리고보니 접시 가장자리엔 파프리카 가루도 눈에 띈다. 간단하지만 정성이 느껴지는 접시, 새로운 만족감이 밀려온다.


이 접시의 주인공을 꼽으라면 주저없이 야생으로 추정되는 저 루꼴라. 수퍼에서 구입하는 루꼴라는 저렇게 넓고 빳빳한 잎이 아니다. 맨날 흐느적거리는 속성 재배 루꼴라만 먹다가 식당에 와서야 저런걸 맛보니 입맛이 한층 성숙해짐을 느낀다. ^^ 강한 향, 거친 맛. 한국에서도 저런 놈을 재배할 수만 있다면.. 쌀 알 같은 휀넬씨를 씹자 정신을 번쩍 들게 할 정도로 향이 강하다. 조화가 멋지다.


스파게티, 펜네, 푸실리, 링귀니, 페투치네, 마카로니.. 그럼 저 파스타의 이름은? 사전을 뒤져보니 '리가토니'란다. 비슷한 모양으로 '까넬리니'가 있는데 그건 줄무늬가 없으니 그럼 리가토니다. 복잡한 저것들을 '파스타'라는 단일 명사로 묶어내지 않았다면 얼마나 피곤했을까.. 아무튼 파스타가 나왔다. 움브리아의 깊은 골짜기 마을, 노르치아(Norcia)에서 잡은 멧돼지를 프로슈또로 만든 뒤 이를 다져서 올리브유에 볶고 거기에 리가토니를 버무려 낸 것으로 가정집 풍이란다. 돼지기름 향도 강하고 후추향도 강하다. 치즈가루로 부드러움을 얹어냈으니 맛은 적당히 타협선을 찾았다.


다소 뜻밖의 맛에 놀라면서도 남김없이 맛있게 먹긴 했지만 한국에선 외면받을 파스타. 이탈리아 여행온 한국인이 수백종의 파스타 가운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우연찮게 이 파스타를 맛본다면 돼지기름 냄새에 놀라겠지 싶다.


깨끗이 비운 파스타 접시를 걷어간 웨이트리스 언니, 부지런히 세꼰도 접시를 날라오신다.


캐스팅이 다채롭다. 고기와 석쇠에 구워낸 빵, 햄, 감자, 그리고 올빼미 눈을 연상시키는 호박과 당근의 조합. 주방장의 장난끼로 치부했지만 이곳이 '올빼미'식당이 아니었다면 식당의 격을 한참 깎아먹었을 엉뚱한 가니쉬(곁들임 음식)였을테다.


고기부터 시작해볼까? 포크로 고정하고 나이프로 살며시 그어보니 오랫동안 푹 익혀서인지 살이 결대로 부드럽게 베어진다. 골고루 돌려가며 소스를 묻힌 뒤 한 입 쏙. 진한 고기맛, 맛있다. 메뉴에는 'Wild pork and Fennel(회향풀로 맛을 낸 멧돼지)'이라고 나와있지만 먹는 내내 '쇠고기가 아니고?'하는 의문을 가질 정도로 쇠고기 맛이 났다. 속였나? 그건 아닐테고 주방장만의 비법? 소스는 고기와 뼈를 우린 육수에 레드와인, 토마토, 당근, 샐러리 등, 각종 채소를 넣고 오랫동안 푹 끓여 걸쭉하게 걸러낸 폰드소스로 추정. 그리고 보니 재작년인가? 회사일로 스위스를 다녀오는 길에 홍콩에서 갈아탄 대한항공이 기내식으로 제공했던 고기요리가 이 맛과 흡사했다. 이코노미 기내식이란게 별게 있겠냐만 그날 와인을 추가해가며 먹은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진짜 좋은 고기, 좋은 부위라면 별 양념없이 불에 익혀먹는 것으로 훌륭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채소와 양념 등을 아낌없이 사용해서 맛은 내주는게 좋다. 깊고 진한 맛을 내주는 이런 요리는 그야말로 와인 도둑이다.


이미 고기가 있는 웬 햄? 허나 무슨 상관이랴? 맛만 좋은걸!


감자도 그냥 익혀낸 것만이 아니라 일일히 으깨서 모양까지 냈다. 저걸 뭐라고 부르는데 이름이 도무지 기억이 안난다. 아무튼 달미꼬꼬와 확연히 비교되는 맛, 비주얼, 정성이다. 6유로의 가격차 치곤 꽤 간격이 크다.


우리도 저런 근사한 벽을 가질 수 있을까? 흉내는 낼 수 있겠지. 바탕이 좋으면 뭘 걸어놓아도 멋지다.


이미 배는 빵빵하지만 디저트가 나왔다. 놀라운 구성, 쵸콜라또 젤라또, 생크림, 케잌, 감 셔벗이 한 접시고


다시 생크림, 케잌, 감자에 아몬드로 맛을 낸 푸딩이 또 한 접시. 시작부터 끝까지 한치 흐트러짐 없이 만족을 안겨준다.

젤라또도 맛있고

감 셔벗도 맛있고


감자+아몬드 푸딩도 맛있다. 허나 고칼로리의 부담감이 풍선처럼 부풀다가 마지막 디저트에서 결국 폭발하는 느낌. 단 맛으로 마무리하는 것도 좋지만 역시 한국인은 과일로 마무리하는 것을 더 선호하지 않을까 싶다.


이걸로 끝이다 싶었는데 접시를 걷어간 언니가 다시 쟁반에 뭘 담아 온다. 소주잔 크기의 잔에 담아온 것은 '리모네쩰로'라는 이름으로 일종의 레몬술이다. 레몬 자체로 술을 냈는지 그라빠에 같은 독주에 즙을 섞었는지 알 수 없으나 첫 맛은 달고 진한 레몬이고 뒷맛은 알콜의 화(火)기가 확 오르는 명백한 술. 최소 30도는 되지 싶다. 독주는 홀짝이는 것 보다 단숨에 들이키는 것이 제맛 아닌가? 처음에 살짝 맛만 본 뒤 단숨에 들이켰다. 어우.. 확 오른다. 이탈리아 식탁에서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이 까페(커피)겠지만 어떤 이들은 그라빠(Grappa)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라빠는 포도로 만드는 브랜디로 이탈리아의 꼬냑이라고 보면 된다. 40도의 이 독주를 커피를 마신 뒤 마지막 입가심으로 한 잔 들이키는게 진정 식사의 마무리라는 것. 리모네쩰로는 그 그라빠를 대신하는 의식이 아닐까 싶다.


테이블 차지 4유로가 붙을 줄 알았는데 식사값과 와인값, 추가로 마신 커피 값 뿐, 테이블 차지는 없단다. 오호.. 올빼미, 너 정말 실망시키지 않는구나. 파스타 라인업이 부족한게 아쉬움이지만 어느날 고기요리가 심하게 땡긴다면 주저없이 달려 올빼미 품에 안겨야겠다. 어제는 배가 터질 듯 해서 사온 요리책을 보기도 싫었는데 하루가 지난 지금, 벌써 그 맛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앞으로 최소 1번 이상은 다시 찾지 않을까 싶다. 근데 평일엔 왜 그렇게 손님이 없는거니? 

부지런히 음식을 날라주고 엉금엉금 거리는 우리 질문에 정성스레 답변해주던 웨이트리스 언니. 주문을 하며 우리가 먼저 '미안하다, 이탈리아어가 서툴다'라고 하니 '어디서 왔냐'고 묻길래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그럼 너희는 한국말로 해라, 나는 이탈리아말로 하겠다'라는 재치를 발휘하며 긴장을 풀어줬던 세심한 언니.

Posted by dalgonaa


'뻬루자 좀 살아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가본, 뻬루자에 왔으면 한 번쯤 가봐야 하는' 이라는 수식이 붙는 식당 '달미꼬꼬'. 뻬루자 도착 후 이래저래 소문을 들어오던 터라 몇 주 전 한 번 지나며 위치만 파악했고 그로부터 한참이 지나 어제 마침내 다녀왔다. 사실 달미꼬꼬 방문은 미뤄둔 숙제같은 느낌이었는데 그저께 누구의 소개로 알게된 안드레아라는 뻬루자 출신의 방송PD를 만나 그로부터 재차 강력한 권유를 받은 뒤 더 미루지 말자해서 어제 감행에 나선 것. 음침한 BAR에서 아페리티보를 마시며 안드레아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너희들을 (먹여서) 죽일꺼다".

전화로 미리 예약을 해놓고 밤 8시 30분이 되기를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렸다. 이 시간이면 이탈리아의 모든 상점들이 문을 닫고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집으로, 식당으로 향하는 시간이다. 따라서 적잖은 식당들도 그 때부터 영업을 시작하는데 우리라면 삼겹살 한 판 벌써 해치우고 호프집이나 커피집에서 2차로 노닥거릴 시간이니 새삼 문화의 차이를 절감한다. 평소 6시면 밥이든 파스타든 저녁을 먹던 우리다보니 남은 2시간 반을 기다리기 힘들어 중간에 계란후라이와 참치깡통을 하나 까서 싸구려 와인 곁들여 살짝 급한 허기를 누르고 식당으로 향했다. 요 며칠 날씨가 포근하다. 하루종일 찌질찌질 내리던 비도 그쳐 깨끗한 밤공기가 식욕을 돋군다.





식당 문이 열려있어 들어가보니 두 명이 테이블 정리에 열심이다. 우리와 다른 일행을 보곤 5분만 기다려달라 해서 다시 밖으로 나와 주변을 기웃거리고 밖에 써붙여진 메뉴판도 훑어보고 어느새 모여든 다른 손님으로 북적(?)이는 가게 밖의 풍경도 카메라에 담았다. 뻬루자의 명물 식당이 된 달미꼬꼬, 그 인기 비결은 뭘까? 이는 바로 1인당 13유로만 내면 안티파스토는 물론 프리모, 세꼰도, 돌치로 이어지는 이탈리아 코스 식단을 한 꺼번에 해치울 수 있다는 점에 있다. 대개 식당의 파스타 한 접시가 평균 7~8유로이고 그 한 접시만 달랑 먹을 수 없으니 안티파스토나 하다못해 와인이라도 한 잔 주문하면 어느새 10유로에 육박, 그리고 여기에 테이블 차지가 붙으면 12유로(2만원) 선에서 싱겁게(?) '경기'가 끝난다. 세꼰도와 돌치는 넘보지도 못하고 옷챙겨입고 나와야 하는 것이 일반적인 식당의 물가수준이니 달미꼬꼬가 내미는 제안을 뿌리친다는건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에 은은한 실내 분위기와 친절한 서비스, 주인장의 재치가 곁들여지니 입소문이 나는 건 당연하다. 달미꼬꼬는 와인과 맥주, 커피를 제외하곤 모든 손님에게 똑같은 코스 요리를 제공하지만 요일마다 그 메뉴가 바뀐다는 점 또한 흥미롭다. 따라서 색다른 맛을 즐겨보고 싶으면 일주일 꼬박 방문하면 될테고 그게 아니라면 자신이 먹었던 요일을 기억해 다음엔 그 요일을 피해 가면 다른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아마 이 점이 가격을 낮출 수 있는 이유가 아닌가 싶은데 재고관리 비용과 인건비가 적게 들기 때문. 식당은 오로지 저녁만 운영하며 주방 2명 홀 2명, 총 4명이 30개가 넘는 테이블, 많으면 100명에 이르는 손님을 받아낸다니 놀랍다. 이는 우리에게 적잖은 영감을 줬으니.. (사실 내내 식사하면서 나눈 얘기가 식당 분석 ㅎㅎ)


테이블 정리가 끝나고 사람들이 서서히 입장한 뒤 우리도 자리에 앉았다. 적벽돌이 우아한 아치를 그리는 돔 천정과 간접조명으로 은은해진 실내, 살짝 부담일 수 있는 높은 격조를 비틀즈와 재즈의 두서없는 음악이 한 번 꺾어 내리시니 분위기가 캐주얼하게 착 안정된다. 사실 이처럼 고풍스럽고 우아한 분위기의 실내는 비단 식당만이 아니라 옷가게, 심지어 옷수선 집도 마찬가지다. 오래된 건물의 건축양식이 이러니 그럴 수 밖에 없지 싶다. 육방이 돌로, 그것도 아름답게 빚어진 실내, 가게 불 한 번 나면 쫄딱 망해버리는 곳에서 온 이방인은 경이와 시샘의 눈을 멀뚱멀뚱 굴릴 뿐이다. 처음엔 수고롭겠지만 한 번 야무지게 만들어 놓으면 두고두고 그 빛을 발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떠올린다. 아, 머리아프다, 밥먹자.

나오는 음식은 정해져 있으니 물과 와인만 따로 주문했다. 다른 식당과 달리 달미꼬꼬 자체에서 병입한 하우스와인, 그 자리에서 콜크도 따주니 결코 싼 하우스와인 같아 보이지 않는다. 근데 잔은 물컵으로 쓰는 막잔이라..ㅋㅋ 저렴한 식당에서 까다로울 필요 있나? 맛을 보니 역시 싼 값을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이곳 수퍼나 와인샵에서 5리터에 15,000원 주고 사먹는 테이블 와인보다는 묵직하니 좀 더 기품있는 맛을 낸다. 한 병에 5유로.


안티파스토가 나왔다. 빵같은 피자라 볼 수 있는 포카치아. 폭신하게 부푼 도우에 때론 토마토 소스를 바르고 양파와 오이, 기타 채소를 취향별로 올려 구워낸 음식이다. 당시엔 호기심으로 그런대로 먹었지만 사실 요건 살짝 실망이다. BAR에서 스프릿츠나 와인 한 잔 마실 때 주는 한 입 먹거리보다 못하다는 느낌. 한종 줄이고 채소 좀 풀고 싼 발사믹이라도 뿌렸다면 이런 아쉬움이 들어설 틈은 없었을텐데.. 매너리즘 살짝 감지. 허나 앞으로 나올 만만찮은 양을 생각하면 이 정도에서 마무리. 


손으로 집어먹느라 앞접시는 사용도 안했는데 포카치아를 담은 접시를 내가면서 함께 내가고 새 접시로 갈아준다. 이어 파스타 등장. 오잉? 큰 그릇이 두 개, 양도 엄청나다. 한 그릇씩 붙잡고 먹는게 아니라 갈아준 앞접시에 골고루 담아가며 먹는 방식. 이런게 정감있고 좋지. 종목은 마카로니와 비르반띠라는 생소한 이름의 파스타. 사전을 뒤져보니 '불한당', '악당'이라는 뜻. 음.. 때론 실력없는 식당들이 눈길을 돌리기 위해 스캔들한 이름을 갖다붙이곤 하는데 혹시 이곳도?? 허나 맛을 보니 기우다. 마카로니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가운데 구멍나고 꼬불한 그것이 아니라 좀 다른 형태로 맛과 식감은 어째 감자로 만든 뇨끼풍이다. 크림을 가미한 토마토 소스에 흥건히 담겨 적당히 풍부하고 얌전한 맛. 반면 '깡패'는 생면 파스타의 기량을 유감없이 발휘했는데 수제답게 거칠고 못난 면발이 우선 인상적이고 씹히는 질감이 쫄깃해 포크질이 내내 즐거웠다. 역시 토마토 소스 베이스. 우리는 집에서 주로 깡통 토마토를 사다가 해먹지만 그것과는 깊이와 신선함에서 한참 다르다. 식당에서 몇 번 맛보며 토마토 소스 파스타의 공통적인 맛의 지점을 깨닫고 있는데 그 비결이 뭘지 몹시 궁금해지는 중. 단지 프레시 토마토만 썼다고 될 맛은 아닌 것 같은데.. 다음 음식을 위해 그만먹어야지 하는데도 자꾸 포크가 갔다. 결국 남겼다. 배불러서.

마카로니

'깡패'

갑자기 식당이 정전이 되는 사태가 빚어졌다. 칠흑같은 어둠으로 변할 뻔 했던 식당은 그러나 비상등이 작동하면서 간신히 빛을 유지했는데 손님이나 주인이나 모두 느긋하다. 뭐 급할거 있나? 이참에 촛불로 바꿔주면 좋으련만 미처 준비가 안됐나보다. 주인은 사태를 파악해야 하니 한쪽 벽의 배전판을 둘러봤고 결국 이 동네 전체가 정전이란걸 깨달았다. 그리곤 수화기를 들어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이봐, 여기 달미꼬꼬 식당인데, 지금 불이 나가서 우리 손님들이 테이블 위의 마카로니를 못찾고 있다고!" 정확한 내용은 자신은 없으나 순간 들린 내용을 유추했을 때 그랬고 이때 다른 손님들은 킥킥대고 웃었다. 이태리 사람들의 평소 언행에 깃든 유머감각은 과연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지 여간 궁금한게 아니다. 

돼지고기 롤 구이와 감자 곁들이.


전기는 20여분 후에 다시 들어왔다. 여기저기서 환호와 감격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식당은 정상을 되찾았고 홀을 담당하는 50대 주인과 30대 웨이터가 다시 바빠졌다. 우리는 이미 배가 가득찼지만 파스타 그릇과 빈접시를 내간 이들은 잠시후 고기요리를 내왔다. 이때부터 우리는 음식을 다소 고통스럽게 내려다보기 시작했다. Involti'n chi piselli란 까다로운 이름의 이 요리는 뜻대로만 보자면 완두콩 소를 돼지고기로 둘둘말아 로즈마리 향을 더해 오븐에 익혀낸 요리다. 헌데 완두콩 소는 노란색을 띄었고 맛은 영락없이 계란말이 맛을 냈으니 우리는 아직도 그 속의 것이 계란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아무튼 안먹을 수 없으니 꾸역꾸역 썰어먹었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식감 자체는 보쌈고기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촉촉하고 고기 본연의 맛에 충실하다는 인상. 이태리 요리의 특징이기도 하겠지만 고기 요리에서 프랑스처럼 무슨 비법 소스를 쓴다거나 요란한 양념으로 맛을 내는 경우는 그닥 많지 않다. 재료 본연의 맛을 살려낸다는 기본 철학에 충실한 점은 높이 사겠지만 고기 요리의 경우엔 단백질 맛을 배가시켜 주는 양념의 맛이 아무래도 아쉽다. 


2층의 몇 개 빈 테이블을 제외하고 1층은 만석이다. 10시에 가까워져가면서 우리 식사도 막바지, 이제 돌체를 먹을 차례다. '달다'는 뜻의 돌체는 바꿔말하면 디저트. 메뉴판의 5개 이름가운데 어떤건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사진의 것이 나왔다. 얇은 스펀지 빵위에 달콤한 크림과 땅콩가루가 얹어진 케잌. 어떤 부위의 케잌을 주느냐에 따라 테두리에 쵸코크림이 뭍어있다. 그닥 특별할건 없는 돌체지만 달달하게 입맛을 마무리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곁들여지는 '빈산토' 라는 와인이 이색적이다. 로즈 빛깔로 스위트와인이라는데 마셔보니 꽤나 달다. 역시 디저트용이다. 강양이 에스프레소 한 잔을 주문해 마시는 걸로 13유로짜리 저렴한 풀코스 식사는 끝이 났다.


가격면에선 다른 식당에 비해 20% 이상 저렴하고 무엇보다 메뉴 고민없이 풀코스 식사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인 식당. 싼 메뉴만 시킬 때 괜히 느껴야 하는 눈치 따위는 애초부터 제거되서 좋고 기품을 지켜주는 분위기 속에서 누구나 같은 메뉴를 즐기며 그들만의 즐거운 대화에만 집중하면 되는 속편한 식당이기도 하다. 단, 터질 것 같은 포만감만은 돌보지 않는 무책임한 식당이라는 점은 기억해야 할 듯. 이탈리아에서 식당 문열기가 두려워 수퍼마켓만 전전하다 떠나는 이들이 많을텐데 이런 이들 가운데 혹시 뻬루자를 찾는다면 달미꼬꼬를 꼭 한 번 방문해보길 권한다. 달미꼬꼬는 우리말로 하면 '아이구 내 새끼'라고 해야할까? 엄마가 아기를 보듬을 때 하는 말이라고 한다.

식당을 나와서 밤공기 한 가득 폐속에 훅!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