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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3.18 이제 한 달. 2
어제 수퍼에 가보니 요란한 선물바구니들이 가득가득 쌓여있다. 마치 크리스마스 대목처럼. 무슨 영문일까 싶어 생각해보니 부활절 때문이더라는. 우리가 딱 1년 전, 몰타로 들어가기 전 로마에 잠시 머물 때 한인민박을 찾은 가족단위 여행객들이 많이 만났는데 대부분 유럽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들로 부활절 연휴를 맞아 로마여행을 나선 것이라고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부활절 대목을 노리고 쌓여있는 상품 가운데 지난 크리스마스때 김군을 사로잡은 BAULI사의 빠네또네(모양은 좀 달라졌지만)가 또 다시 눈에 띄어 여간 반가운게 아니다. 부풀어 오른 빵 위에 아몬드가 통으로 박혀있고 흰 설탕가루를 솔솔 뿌려낸 빵. 뜯으면 닭고기 살 처럼 뜯어지면서 속에 심심찮게 박힌 건포도가 맛을 두 배로 뻥튀겨주는 바로 그 빵. 과연 지난 번 맛본 빵과 똑같은 맛일지는 사서 먹어보기 전까진 모르는거지만 기대는 크다. 다만 지금은 가격이 조금 비싸니(6~8유로) 지난 크리스마스 직전과 직후에 가격이 대폭 떨어졌던 것 처럼 이번에도 그러길 기다리고 있다.
 
그렇다. 이제 정확히 1년이 됐네. 1년 전의 로마는 엊그제처럼 기억이 생생한데 이후였던 몰타는 어째 로마보다 훨씬 전의 일처럼 느껴지는게 좀 신기하다. 몰타의 태양은 영원히 잊지 못할 듯. 등짝을 홀라당 태워 며칠을 고통에 신음케 했던 태양이니 더더욱 그렇다.  아무튼 오늘로부터 대략 한 달 사이로 이곳 일정을 정리하고 다음달 중순 경이면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지 싶다. 오늘 부동산 프란체스코가 새로운 손님과 집을 보러 온다는데 지난 번 중국 학생들은 이 집이 맘에 안들었던 모양이다. 이들은 맘에 들어하길. 그게 잘 풀리면 볼로냐나 베로나에서 남은 한달을 보낼 생각이고 그래서 지금 먼저 볼로냐를 중심으로 정신없이 집을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사실 지금 하고있는 영상작업이 이달 안으로 마무리된다면 떠나기 전 까지 그간 못가봤던 이탈리아 이곳저곳(뿔리아와 시칠리아!!)을 돌아다니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그 아쉬움은 4월 12일, 베로나에서 열리는 이탈리아 최대 와인축제, 비니 이탈리아(VINI ITALIA)로 대신할 계획. 입장만 하면 이탈리아 전역의 모든 와인을 공짜로 마실 수 있고 그 때문에 이탈리아 길가에서 결코 보기 힘든 '길바닥 피자'가 여기저기 널려 있다고.. 이탈리아에선, 적어도 볼로냐에선 길에서 누가 토하고 있으면 역시 누가 연락해 엠블란스로 싣고간다는데 한국과 참 다르다 싶다. 

아무튼 인터넷에 나와있는 단기 월세집 정보는 물론 볼로냐 대학가에 덕지덕지 나붙어 있는 개성만발의 룸메이트 구함 전단지도 유심히 살펴보고 있는중이다. 허나 십수군데와 전화통화를 했지만 아직 이렇다 할 물건은 나타나지 않은 상황. 조금씩 초조해지고 있다. 추위로 고생했던 뻬루자에도 봄은 오고 있어 지낼만은 해지고 있지만 그래도 볼로냐의 따뜻함과 북적임, 큰 도시가 갖는 어떤 흡입력에는 역시 비교가 되질 않는다. '인간적'인 냄새가 아닌 '인간들'의 냄새가 지금은 좀 더 끌리는 상황. 특히 이번 취재로 몇몇 볼로냐 사람들과 친숙해졌으니 이들과 가끔 밥이나 술을 마시는 것도 재밌을 터.

볼로냐 두오모 옆으로 좁은 골목을 헤집고 조금만 들어가면 찾을 수 있는 뜨라또리아 BATTIBECCO의 에리카도 그 중 한 사람. 사실 그녀뿐 아니라 그녀의 아버지와도 친숙할 수 있는데 아버지는 영어를 못하셔서(또는 우리가 이탈리아 말을 못해서..). 에리카는 바띠베꼬의 소믈리에 겸 웨이터고 아버지는 은퇴한 요리사다. 바띠베꼬는 볼로냐에서 32년째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름 유서깊은 식당으로 얼마전 까지 미쉘린으로부터 별 하나를 받았었다. 프랑스와 퓨전풍을 최대한 높인 마르코의 식당과는 달리 볼로냐의 정체성을 헤치지 않는 가운데 전통과 현대를 조화시킨 요리를 내고 있고 그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식당. 식사를 하다가 에리카가 올해 6월에 일본을 여행할 계획이라는걸 알고 일본의 게이코(몰타에서 만났던)를 그녀에게 소개해주기로 했다. 게이코도 언젠가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한 농가에서 요리를 잠깐 배운적이 있고 둘 다 영어를 할 줄 아니 동경에서 만나면 재밌게 수다를 떨 수 있을 듯. 

추가촬영을 마치고 어제 뻬루자로 돌아왔다. 수퍼에 들러 쌀과 채소를 샀고 집에 오자마자 곧 밥을 지어 채소 쏟아붇고 고추장 벅벅 비벼 비빔밥을 해먹었다. 마치 복수극을 펼치는 심정으로. 볼로냐에서 식사비로 지출된 금액이 적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식탁은 채소가뭄이 심각했다. 물론 시장에는 저렴한 채소가 넘쳐나지만 적어도 식당 요리에는 많이 쓰지 않는다. 이는 비단 볼로냐만의 문제가 아니라 베로나를 비롯한 북부 대개의 도시가 그런 듯 싶다. 이들은 채소를 날 것으로 먹기 보다는 푹 익혀서 먹기를 좋아하는데 예를 들어 시금치, 또는 그와 비슷하게 생긴 녹색 채소는 완전히 푹 익혀서 거의 곤죽형태로 즐기기를 좋아한다. 그렇다고 그걸 많이 먹는 것도 결코 아니다. 섬유질 섭취가 부족하니 나오는건 똥배.

마르코 식당의 수쉐프인 엔리코는 몸무가게 거의 110kg에 육박하는 거구인데 마르코로부터 툭하면 핀잔을 듣는다. 채소 좀 먹으라고. 그런 마르코도 우리가 볼 때 채소를 많이 먹는건 아니어서 파스타 먹을 때 샐러드를 조금 곁들이는 정도가 전부다. 미국인들의 주체할 수 없는 고칼로리 섭취와 이탈리아의 지중해식 건강 섭취가 종종 비교되곤 하는데 이탈리아 사람들이 미국인들처럼 '짐승'을 닥치는대로 먹어치우지는 않지만 전분덩어리인 파스타, 피자를 아주 적은 채소를 곁들여 먹는 탓에 이들도 비만문제를 남의 일로만 바라 볼 처지는 아니다. 허리살, 허벅지 살 심각한 사람들 제법 많다. 다만 이탈리아 사람들이 올리브유와 토마토, 하루 석잔 이상의 에스프레소. 그리고 전반적인 식사량이 적다는 것이 미국과는 다른 점이라면 다른 점일 듯. 이탈리아 사람들 마늘 많이 먹는다고 생각하는 한국인들 많은데 새빨간 거짓말이다. 얘네들 마늘 진짜 안먹는다. 파스타 볶기 전에 기름에 살짝 튀겨 향만 낼 뿐이고 그 다음엔 철저하게 꺼내 버린다. 남부는 먹을 때 골라낸다나..

아점을 준비해야겠다. 경준이 서울에서 보내온 총각김치를 끝내 우리 손에 들려보냈는데 오늘 점심은 된장국에 총각김치다. 한국음식의 우수성은 몸이 안다. 십중팔구 다음날 쾌변.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