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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6.04 주방 1


가끔 집을 찾는 손님들의 식욕을 해결하기 위해 강양과 김군이 가장 바쁘게 움직이는 공간이 바로 이곳 주방이다. 다른 플랫으로 지난 목요일 이사간 한정란씨의 플랫에서 그녀의 묵인 속에 훔쳐온 그 집 주인의 나무 도마도 보이고 (물론 그 집엔 여분이 있다. 나무도마가 생기기 전에는 도마 왼쪽 큰 접시 밑에 동그란 무늬가 나란히 들어가 있는 붉은 색의 얇은 합성수지가 도마역할을 해왔다) 올리브유나 발사믹 소스 같은 이런저런 양념통들도 어지럽게 널려있다.

왼쪽 구석에 까만병은 K-mart에서 구입한 샘표 간장이고 오른쪽 구석에 빨간 통은 역시 그곳에서 구입한 해찬들 고추장이다. 가운데 냄비들이 잔뜩 올라가 있는 Cooker는 이 집의 전기요금을 가장 많이 잡아먹는 주범이다. 찬 밥이나 국 조금, 소시지 하나 데펴 먹을 경우 전자렌지 1분이면 해결될 것을 5분 이상 쇠 코일을 벌겋게 달아오르게 해야 한다. 이때 소모되는 전기량이 가히 에어컨이 잡아먹는 전기 수준이다.

선반 위에 와인 병을 세어보니 24병. 물론 이게 다가 아니다. 거의 저 만큼 정도의 병이 더 있었는 데 그 중 일부는 분리수거해 버렸고 일부는 아직 바닥에 남아있다. 가끔 김군과 강양이 사다 마시는 것도 있고 우리들의 손맛에 반한 주변 한국인들이 저녁 얻어먹으러 오면서 사들고 오는 것도 있다. 어쩌다가 초대되는 외국인들도 예외없이 와인을 들고 왔다.

저 가운데 가장 비쌌던 와인은 왼쪽에서 열 번째에 서 있는 뭉퉁한 모습의 와인으로 한 달 전, 한국으로 돌아간 방두호 군이 귀국 직전 포루투갈을 여행하면서 사온 일명 '포루토 와인'이다. 프랑스, 이태리 와인과는 또 다른 특별함으로 포루토 와인만의 독특한 맛의 체계를 구축해 유럽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한다. 방군이 현지에서 20유로 넘는 가격에 사왔으니 그 옆에 주욱 서있는 4유로 안팎짜리의 와인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맛이었다. 게다가 알콜도수는 20도!(그 맛은 한국의 복분자와 매우 흡사했고 그래서 놀라웠다. 이렇게 단 맛을 내는 와인도 있구나..)

6개월 머무는 동안 과연 얼만큼의 병이 모일까 궁금해서 버리지 않고 모으려 했는데 결국 와인병의 무게를 선반이 감당하지 못할 불상사가 두려워 조만간 조금씩 갖다 버릴 계획이다. 쌓인 빈병들을 분리수거처까지 옮겨 나르는 일 또한 중노동일테니 말이다.

근데 저 선반위에 빈 소주병이 나란히 세워진다면 어떨까?  그것도 낭만적으로 보일까??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