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8.03.23 절제의 맛, 사시미 2
  2. 2008.03.20 초대받지 못한 상처
  3. 2008.03.19 아키하바라로 다시

34일간 이것저것 몇 안되는 일본 음식을 먹어본 경험에 바탕해 일본의 맛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적어보면 이렇다. 사시미. 아다시피 우리는 활어회를 즐기는 반면 일본은 숙성 회를 즐긴다. 츠키지 수산시장을 둘러보며 동경사람들 식생활의 일면을 보고 싶었으나 다른 일정으로 포기해야 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지만 그 시장을 거쳤을 생선살을 한 오래된 이자카야에서 맛 본 것은 좋은 경험으로 남을 듯 하다.

 

신주쿠의 이자카야에선 고등어와 방어, 참치가 그야말로 핥아먹어야 할 수준의 양으로 조금씩 나왔는데 이것이 오히려 맛의 반전을 가져다 줬다. 평소 한국에서라면 생선살 두어 점을 덥석 집어 들어 초장에 찍어 마늘과 풋고추를 곁들여 상추로 마감하거나 혹은 물에 갠 와사비를 간장에 풀어 살짝 찍어 먹었을 테다.

 

반면 일본의 사시미는 그야말로 몇 번 없는 맛의 기회가 생선살을 대하는 태도부터 바꿔놓고 만 것. 적은 양이 가져다 주는 아쉬움은 긴장감으로 이어져 행여 바닥에 떨어뜨릴까, 몇 번 없는 맛의 기회를 망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생선살을 집어 드는 것이다.

 

한국의 생선살은 쫄깃한 반면, 일본의 생선살은 부드럽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만약 한국에서 일본식의 맛을 봤다면 무슨 생선살이 이렇게 물러?’하고 핀잔부터 듣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이날의 경험에서 생선회의 맛은 단연 신선한 고추냉이와 간장의 적절한 조화에서 완성됐다.

 

나로선 실로 새로운 맛의 발견이었다. 가루를 물에 갠 와사비와 달리 고추냉이를 직접 갈아내어 그 맛과 풍미가 근본적으로 달랐는데 매운 맛의 와사비에서 그만의 단 맛을 봤다면 이상할까? 사실 한국의 고급 횟집을 제외한 일반 횟집에서 먹는 와사비는 흉내아니던가?

 

맛의 관점이란 천차만별이니 그 평가에서 거짓이란 없다. 다만 가끔씩 흉내에 머물거나 때론 속이기까지 하는 주방의 못된 행태들이 있어서 그것에 놀아나지 않으려면, 그리고 단지 배를 채우는 목적이 아니라면 맛도 때론 깐깐하게 음미하는 것이 건강한 것이자 즐거움일 수 있다.

 

뭐 대단한 횟집에서 먹은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신주쿠의 낡은 이자카야에서 한 접시, 그리고 어제 시모키타자와의 오뎅집에서 먹은 마구로 한 접시가 전부지만 이날의 경험들이 생선회를 즐기는 내 입맛을 높여놓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앞으로 어딜 가든 생선회를 먹을 때는 이날의 경험을 떠올리며 그 맛을 찾아가는 시도가 반복될 것 같다.



>> 고등어와 참치(마구로), 방어를 각 세 점씩 썰어내온 사시미에 국화로 살짝 단장을 했다. 벌벌 떠는 젓가락질이 느껴지는가? / 문어 숙회 위에 얹은 신선한 고추냉이와 푸짐하게(?) 차려진 안주들 / 커튼을 젖히고 들어서면 뜨끈한 가다랑이 국물 향이 실내 가득 퍼진다.

Posted by dalgonaa

일본 사회에 들어가 살고 있는 가족의 이야기를 들으니 흥미로운 이야기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 가운데 하나만 소개한다.

 

동경 생활 4년째에 접어든 물주의 부인은 어느 날, 딸의 생일을 맞아 딸의 일본 친구들을 집에 초대했단다. 부인은 팔을 걷어 부치고 손수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들었다. 이윽고 ~. 반가움과 설레임으로 문을 여는 순간, 엄마는 당황스러움에 어쩔 줄을 몰랐다.

맞은편에는 고운 드레스를 입고 한 손에는 꽃을 든 딸의 친구와 정장 차림에 핸드백을 다소곳이 든 아이의 엄마가 나란히 서있었던 반면, 음식을 준비하다가 뛰쳐나온 엄마의 옷차림이란 수제비를 만들다 나온 한국의 여느 엄마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서 일본 엄마와 아이의 옷차림이란 일본 왕실 가족의 외출 장면을 떠올리면 될 듯 하다.

 

화요일 저녁, 우리는 김치찌개를 안주 삼아 일본에서 유명하다는 청주를 주고 받으며 위와 같은 에피소드를 상 위의 안주로 부지런히 옮겨 날랐다.(아 참, 결국 그저께 저녁 식사의 주제는 집에서 해먹는 김치찌게였다. 일본 생활에서 정통 한국식 식사란 베푸는 입장에서 엄청난 용기다. 이와 더불어 맛볼 수 없는 청주와 일본식 소주, 그리고 한국에서도 광고를 시작한고시히까리쌀밥을 양껏 먹고 마실 수 있었다. 이건 후에 좀 더 자세히 쓰도록 하자)

에피소드 결말이 더 재밌는데 일본 엄마들 왈, 사실
자신들도 딸의 친구 생일에 초대받아 남의 집을 방문하기는 거의 처음이라는 것이다. , 파티라는 이름으로 남의 집을 방문하는 경우가 일본 사회에선 거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익숙한 집뜰이 조차도 없단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남의 집을 거의 처음 방문하는 일본 엄마는 자신이 갖춰야 할 예의를 최대한 갖추기 위해 아이에겐 드레스와 꽃, 자신은 정장 차림으로 문 앞에 나타났던 것이다.

 

결국 솔직하게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한국 엄마는 용기를 내어 자신의 심정을 고백(당신들의 격식에 당황스러웠다는)하자 정장 차림의 일본 엄마들도 박수를 치고 깔깔대며 사실 우리도 남의 집에 초대받아 가기는 처음이라 어찌할 바를 몰라 이런 차림으로 왔다고 고백하더란다. 결과적으로 이날의 사건은 이들의 관계를 더욱 가깝게 만드는 기회가 됐다고 한다.

 

반면 이런 일도 있단다. 물주가 말하길 우리의 경우 각종 경조사에 직접 연락 받지 않더라도 이미 소식을 아는 상황이면 가급적 참석하는 것이 예의인 반면, 일본에선 직접 연락이나 초대장을 받지 않으면 그 사실을 안다 하더라도 참석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가령 직장 동료가 가족 상을 당한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직접 연락이나 초대를 받지 않았으면 참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평소 술도 자주 마시고 속 이야기도 흉금 없이 털어 놓는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팩스나 전자 메일의 에러로 초대장을 받지 못하고 주변 사람을 통해 소식을 접하게 되면 그 사람은 초대받지 못한 사실에 상처를 입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후에 오해가 풀릴 수도 있겠지만 당시에는 그 상처가 꽤나 클 수밖에 없다.

 

아키하바라를 오가며 지하철에서 너무도 쉽게 마주치는 일본인들의 모습에서 그런 상황을 짐작해보자니 왠지 맞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동행의 말처럼 어쩌면 오타꾸라는 일본 특유의 문화가 생겨나게 된 환경이라는 것도 결국엔 이 같은 요인이 작용한 측면도 있지 않겠나라는 추측에 고개가 살짝 끄덕여 진다.




>> 아키하바라는 전자상가로 유명하지만 우리에겐 그에 못지 않게 500엔짜리 돈까스 덮밥집의 기억으로도 유명하게 남을 듯 싶다. 아래 사진에서 보듯, Bar 형식으로 꾸며진 테이블에 홀로 온 손님들이 나란히 앉아 자신 앞에 놓인 그릇에 담긴 음식을 아주 진지한 자세로 열심히 먹는 모습은 너무도 낯설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Posted by dalgonaa

날씨가 매우 흐리다. 오후 3시 이후부턴 비도 내린다고 일본 TV의 일기예보에서 전한다. 점심을 간단히 먹고 곧 아키하바라로 다시 출발하려고 하는데 어제 구입못한 소니 ECM-678 비디오 마이크를 구입하기위해서다. 날씨는 다소 쌀쌀한 편이고 바람이 불지만 먼지 하나 없어 보이는 깨끗한 바람이다. 강양이 재촉한다.

"야, 시간없어"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