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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4.15 마지막 환대 7


작은 기념품을 선물하기 위해 니코의 식당에 들렀다. 니코는 볼로냐에서만 30년 넘게 식당을 운영해오고 있는 볼로냐 토박이 요리사다. 지금은 주방에서 은퇴해 가게 운영에만 전념하고 있고 그의 딸 에리카가 소믈리에로 아버지와 함께 가게 운영을 주도해 가고 있다. 이들 부녀가 운영하는 식당 바띠베코는 전통을 중시하면서도 유행을 받아들이는데 인색하지 않은 식당이지만 그 속도가 빠르지는 않다. 아버지는 전통을 중시하는 가운데 조심해서 변화를 받아들이는 입장이라면 딸인 에리카는 마르코 파디가처럼 과감하게, 또는 파격적인 요리로 나서야 한다고 얘기하는 입장이다. 지난 번 니코 식당에서 식사를 마친 뒤 니코는 우리에게 요리와 관련해 참 많은 이야기를 해줬는데 그 가운데 인상적인 부분은 대략 다음과 같다.
 
"볼로냐는 바로 마르코 같은 요리사가 필요했다. 그는 이탈리아 사람이지만 프랑스에서 공부를 했고 프랑스 요리를 한다. 이는 당연한거다. 다른 요리를 선보이는 실력있는 요리사가 볼로냐는 꼭 필요했는데 마르코가 그 역할을 한거다. 우리는 마르코를 좋아하고 자랑스럽게 여긴다. 하지만 내가 마르코처럼 해야 할 필요는 없다. 나는 이탈리아 요리사고 이탈리아 요리를 하면 되는거다. 근데 내 딸은 매일 마르코 마르코 하며 노래를 부른다"


부녀 사이에 보이지 않는 전선이 분명 있을텐데 요 얘기를 좀 더 파고들면 재미도 있고 나름 깊은 메시지도 건져질게 틀림없다. 사실 이들 부녀의 대립(?)은 비단 바띠베코만의 고민이 아니라 이탈리아 대부분의 식당, 대부분의 요리사들이 겪는 고민이 아닐까 싶다. 일전에 마르코는 우리에게 말하길 "너무 많은 전통이 있다. 그게 숙제고 고민이다"라고 이탈리아 요리사로서 갖는 속내를 털어놨다. 오늘날 서양요리의 중심축이 프랑스와 이탈리아라고 많은 이들이 얘기하지만 정작 실질적 인기와 부, 유행을 이끌어가는 것은 영국과 미국의 레스토랑이라는 말도 마르코는 덧붙였다.

전통에 대해선 조금 다른 입장의 니코지만 그도 결국엔 비슷한 얘기를 하는 것이 "30년 전에는 유럽 어디를 가든 볼로냐에서 왔다고 하면 '오~ 볼로냐! 요리의 도시!'라며 반겨줬다. 그러나 지금은 그게 어디에 있는 도시냐고 되묻는다" 라며 달라진 세상을 쓸쓸히 푸념했다. 고루한 전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동안 전통이라곤 없는 영미권이 요리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가고 있다는 얘기니 다소 놀라우면서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제이미 올리버, 램지 고든은 요리에 관해서라면 누구나 저주하는 영국 출신이다. 여기에 알랭 듀카스, 기 사보이, 노부 마츠히사는 프랑스와 일본인이다. 세계적 유행을 선도하는 이탈리아 요리사를 딱히 꼽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물론 우리도 여기 와서야 알았지만 이탈리아 요리의 현대적인 기틀을 마련했다고 추앙받는 괄띠에르 마르께지 등의 헌신적인 요리사가 없는건 아니다. 그럼에도 이탈리아는 아직도 전통과 내일 사이에서 고민, 어쩌면 방황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어째 남 얘기가 아니네 라는 생각이..


볼로냐는 에밀리아 로마냐주의 주도. 이곳을 대표하는 음식이자 이탈리아 대표음식이기도 한 세 가지, 프로슈또, 모르따델라(흰 비계가 박힌 부드러운 소시지), 빠르미쟈노레냐노 치즈.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뒤로 하고 떠나야 하는 것이 아쉽지만 곧 다음 기회를 벼르며 나서는 길이니 아쉬움은 접어두려고 한다. 암튼 점심시간에 바띠베코에 들렀고 그들에게 작은 기념품을 선물했다. 모두 반색을 한다. 점심을 얻어 먹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는데 그냥 보낼 수 없다며 끝내 자리로 앉힌다. 결국 프로슈또와 볼로냐의 대표 요리 또르뗄리니를 얻어먹고 식당을 나섰다.



또르뗄리니는 치즈와 프로슈또를 갈아 소를 채운 작은 만두같은 요리로 이를 뜨끈한 쇠고기 육수에 담아 숟가락으로 육수와 함께 떠먹는 요리다. 국물은 갈비탕 국물과 거의 똑같다. 또르뗄리니는 작년에 빠르마에서 먹어보고 이번이 두 번째. 좀 아까 집주인 엘레나가 다녀갔다. 키를 전해줬고 작별인사를 나눴고 그녀는 작은 쨈 하나를 우리에게 선물했다. 생각지도 못한 점심환대에 선물까지 받아챙긴 하루. 마무리가 좋다. 내일 프랑크푸르트 공항만 잘 빠져나가면..^^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