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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3.23 절제의 맛, 사시미 2

34일간 이것저것 몇 안되는 일본 음식을 먹어본 경험에 바탕해 일본의 맛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적어보면 이렇다. 사시미. 아다시피 우리는 활어회를 즐기는 반면 일본은 숙성 회를 즐긴다. 츠키지 수산시장을 둘러보며 동경사람들 식생활의 일면을 보고 싶었으나 다른 일정으로 포기해야 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지만 그 시장을 거쳤을 생선살을 한 오래된 이자카야에서 맛 본 것은 좋은 경험으로 남을 듯 하다.

 

신주쿠의 이자카야에선 고등어와 방어, 참치가 그야말로 핥아먹어야 할 수준의 양으로 조금씩 나왔는데 이것이 오히려 맛의 반전을 가져다 줬다. 평소 한국에서라면 생선살 두어 점을 덥석 집어 들어 초장에 찍어 마늘과 풋고추를 곁들여 상추로 마감하거나 혹은 물에 갠 와사비를 간장에 풀어 살짝 찍어 먹었을 테다.

 

반면 일본의 사시미는 그야말로 몇 번 없는 맛의 기회가 생선살을 대하는 태도부터 바꿔놓고 만 것. 적은 양이 가져다 주는 아쉬움은 긴장감으로 이어져 행여 바닥에 떨어뜨릴까, 몇 번 없는 맛의 기회를 망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생선살을 집어 드는 것이다.

 

한국의 생선살은 쫄깃한 반면, 일본의 생선살은 부드럽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만약 한국에서 일본식의 맛을 봤다면 무슨 생선살이 이렇게 물러?’하고 핀잔부터 듣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이날의 경험에서 생선회의 맛은 단연 신선한 고추냉이와 간장의 적절한 조화에서 완성됐다.

 

나로선 실로 새로운 맛의 발견이었다. 가루를 물에 갠 와사비와 달리 고추냉이를 직접 갈아내어 그 맛과 풍미가 근본적으로 달랐는데 매운 맛의 와사비에서 그만의 단 맛을 봤다면 이상할까? 사실 한국의 고급 횟집을 제외한 일반 횟집에서 먹는 와사비는 흉내아니던가?

 

맛의 관점이란 천차만별이니 그 평가에서 거짓이란 없다. 다만 가끔씩 흉내에 머물거나 때론 속이기까지 하는 주방의 못된 행태들이 있어서 그것에 놀아나지 않으려면, 그리고 단지 배를 채우는 목적이 아니라면 맛도 때론 깐깐하게 음미하는 것이 건강한 것이자 즐거움일 수 있다.

 

뭐 대단한 횟집에서 먹은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신주쿠의 낡은 이자카야에서 한 접시, 그리고 어제 시모키타자와의 오뎅집에서 먹은 마구로 한 접시가 전부지만 이날의 경험들이 생선회를 즐기는 내 입맛을 높여놓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앞으로 어딜 가든 생선회를 먹을 때는 이날의 경험을 떠올리며 그 맛을 찾아가는 시도가 반복될 것 같다.



>> 고등어와 참치(마구로), 방어를 각 세 점씩 썰어내온 사시미에 국화로 살짝 단장을 했다. 벌벌 떠는 젓가락질이 느껴지는가? / 문어 숙회 위에 얹은 신선한 고추냉이와 푸짐하게(?) 차려진 안주들 / 커튼을 젖히고 들어서면 뜨끈한 가다랑이 국물 향이 실내 가득 퍼진다.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