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로마 Tokyo+Rome 170308~'에 해당되는 글 8건

  1. 2008.03.23 바티칸과 피에타 1
  2. 2008.03.23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
  3. 2008.03.23 절제의 맛, 사시미 2
  4. 2008.03.21 로마도착. 8
  5. 2008.03.20 초대받지 못한 상처
  6. 2008.03.19 아키하바라로 다시
  7. 2008.03.18 동경, 이틀 째
  8. 2008.03.16 출국 하루 전

어제 오후부터 내리기 시작한 빗줄기는 아침이 되어서도 좀체 사그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시내를 돌아다니진 못할 테니 바로 요때가 바티칸 투어의 절호의 기회라 판단했다. 바티칸 투어는 하루를 꼬박 돌아다녀도 모자를 뿐만 아니라 특히 바티칸 박물관에 전시된 37만점의 진기한 유물들을 전부다 보기 위해선 72시간을 꼬박, 그것도 전력질주로 뛰어다녀야 겨우 볼까 정도로 방대한 규모라고 하니 전쟁 노예들이 지어놓은 견고하고 우아한 지붕 아래서 비를 피하며 뽀송뽀송한 유물들에 파뭍혀 보자는 계산이었다.

 

숙소 사모님이 해주시는 아침을 서둘러 먹고 무려 120명의 한국인이 투어를 위해 모이기로 한 비토리오 엠마누엘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현장에는 이미 40여명 가량의 한국인이 모여 있었는데 대부분이 가족단위다. 몇 년 전만 해도 젊은 배낭여행자들이 대부분이었겠지만 이제 그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다시 이곳을 찾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바티칸과 가장 가까운 오타비오 역을 나와 약 5분간 걸어가자 이른 시간임에도 우산 아래 줄지어 선 사람들이 보인다. 허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어떻게 유명 관광지에 줄이 없을 수 있겠는가?’

 

잠실주경기장의 400미터 트랙을 꼬박 돌린 인선(人線)’의 맨 뒤에 섰다. 이탈리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있는 가이드는 개인별로 나눠준 리시버를 통해 로마의 역사를 시작으로 이야기를 조금씩 바티칸으로 좁혀갔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끝으로 전성기의 로마는 코모두스의 집권과 동시에 쇠퇴의 길을 걷게 되고 영화 글래디에이터는 검투사를 주인공으로 삼았지만 주변 인물과 시대는 바로 당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가이드는 설명했다.   

 

군사력을 지닌 장군들은 코모두스의 실정을 틈타 여기저기서 쿠데타를 일으켰고 이는 로마제국의 멸망을 앞당겼다고 가이드의 설명을 들은 동행이 설명해준다. 나는 시저가 로마를 불질러 작살낸 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다. 설명이 이어지는 가운데 비는 굵었다 가늘었다를 반복했고 저마다 우산을 하나씩 받쳐 들었다. 그렇게 40여분을 주춤주춤 걸어 성 베드로 성당에 입장했는데 그 사이에 새치기를 일삼는 백인들의 행태에 여러 번 분노를 삭여야 했다. 은근 슬쩍 다가와 마치 제자리였다는 냥 태연한 척 전방을 주시하는 그 하얀 얼굴에 된장을 처바르고 싶은 충동이 몇 번씩 솟구치는 걸 간신히 참았다.  

 

현재 바티칸의 주인은 독일 출신의 베네딕토 교황이다. 하지만 바티칸, 적어도 베드로 성당을 찾는 관광객들은 살아있는 그의 얼굴을 보기 보다는 성당 내부에 방탄유리로 둘러싸인 피에타를 보기 위해 몰려든다. 그리고 그 앞에서 열심히 카메라를 셔터를 눌러댄다. 우리처럼.

 

사실 유서 깊은 예술작품을, 그것도 조각작품을 제대로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조용히 주위를 거닐며 다양한 각도와 거리에서 보는 것이다. 그래야 새로운 부분도 보이고 조각에 전념하는 작가의 숨결과 손길을 짐작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에타는, 아니 어쩌면 바티칸 자체가 그런 시도가 불가능한 공간이 아닐까 싶다.

 

이유는 두 가지인데 아다시피 넘치는 관광객들에 떠밀려 온전한 관람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 하나와 또 하나는 이 넓디 넓은 공간이 모두 예술작품이자 역사의 현장이기 때문에 도대체 어디에 시선을 머물러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 그것이다. 대충 시선을 툭 던져 눈에 들어온 조각 하나, 혹은 그림 하나를 툭 떼어 용산국립박물관에 가져다 놓으면 국보 몇 호로 지정돼 홀로 밝은 조명을 받으며 관람객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을 유물들이 그야말로 지천으로 널려 있는 것이다.

 

피에타는 그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피에타를 빛나게 하는 이름이 또 하나 있으니 바로 미켈란젤로다. 빗질이 안되는 악성 곱슬에 누군가에 얻어맞아 비뚤어진 코, 160에 겨우 미치는 단신으로 유명했던 피렌체 출신의 사내 모습은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과 미켈란젤로 자신이 시스티나 성당에 그린 최후의 심판에서 살짝 엿볼 수 있다.

 



<'최후의 심판'에 등장하는 미켈란젤로. 그는 자신을 인도에 포교를 갔다가 가죽이 벗겨져 죽은 성인으로 묘사했다. '아테네 학당'에 깜짝 등장하는 미켈란젤로와 이를 그린 라파엘로의 깜찍한 모습. 피에타에 새겨진 미켈란젤로의 서명과 오른쪽은 바티칸 투어에서 구입한 책자>

가이드는 조각상에서 멀찍이 떨어져 한적한 공간에서 준비한 사진을 곁들이며 피에타에 대해 열심히 설명을 이어갔다. 24살의 새파란 조각가는 남들이 자신의 조각상을 알아봐주어 명예를 얻기 바랐고 그래서 발표 후 조각상 주변을 기웃거리며 사람들의 반응을 살폈고 그러다 피렌체 출신의 곱사등이가 만들었다 더라라는 말에 충격을 받고 자신을 명확히 드러내자는 생각에 결국 애초 의도와 달리 마리아의 어깨 줄(?)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었고 그러다 후에 한낱 인간에 불과한 자신이 신의 영역인 성모에 이름을 새겨 넣는 불경을 저질렀다는 이유 괴로워하다 이후 모든 조각에선 이름을 새기지 않았다고 가이드의 설명을 꼼꼼히 전해들은 동행이 숨가쁘게 이야기해준다.

 

못박힌 예수와 이를 안은 마리아를 일컬어 피에타라 부르는데 미켈란젤로 이전에도 많은 피에타가 존재했다. 하지만 미켈란젤로의 피에타가 가장 극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는 아름다운 선과 정확한 균형미등도 이유지만 마리아의 표정에도 그 이유가 있다고 한다. 죽은 아들을 안은 슬픈 어머니의 얼굴이 아닌 침착하고 평온한 표정이 이전과는 전혀 다른 묘사라는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얼굴을 통해 기쁨과 슬픔, 분노를 표현하는 인간과 달리 모든 섭리를 꿰뚫는 신의 감정을 담고자 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는데 극도의 슬픔에 직면한 마리아지만 그녀의 평화롭다 못해 아름답기까지 한 얼굴 앞에 모든 불안한 영혼은 동요를 멈추고 평화와 고요에 젖어들 듯 싶었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에게 신이란 그런 존재 아닐까? 그 순간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이봐, 그건 이따가 집에 가서 씻고 밥 먹고 난 후 이불 속에 들어가서 생각하고 이제 그만 비키란 말이야. 나도 사진 좀 찍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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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고속버스 터미널에선 비행기가 뜨고 내릴 수 없다.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강남 터미널은 공항이 되는 거고 그것도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이 되는 거다. 형광들을 갈아 끼우는 것 말고는 어떤 미관 작업도 하지 않은 이 공항이 어떻게 다빈치 공항이 됐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아마 다빈치가 여행용 가방을 들고 비행기에서 내렸다면 그는 굉장히 불쾌해 했을 것 같다. 그가 결정적으로 화를 낼 순간을 바로 그림을 카트에 실을 때 1유로(1,500)를 내야 하는 순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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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일간 이것저것 몇 안되는 일본 음식을 먹어본 경험에 바탕해 일본의 맛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적어보면 이렇다. 사시미. 아다시피 우리는 활어회를 즐기는 반면 일본은 숙성 회를 즐긴다. 츠키지 수산시장을 둘러보며 동경사람들 식생활의 일면을 보고 싶었으나 다른 일정으로 포기해야 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지만 그 시장을 거쳤을 생선살을 한 오래된 이자카야에서 맛 본 것은 좋은 경험으로 남을 듯 하다.

 

신주쿠의 이자카야에선 고등어와 방어, 참치가 그야말로 핥아먹어야 할 수준의 양으로 조금씩 나왔는데 이것이 오히려 맛의 반전을 가져다 줬다. 평소 한국에서라면 생선살 두어 점을 덥석 집어 들어 초장에 찍어 마늘과 풋고추를 곁들여 상추로 마감하거나 혹은 물에 갠 와사비를 간장에 풀어 살짝 찍어 먹었을 테다.

 

반면 일본의 사시미는 그야말로 몇 번 없는 맛의 기회가 생선살을 대하는 태도부터 바꿔놓고 만 것. 적은 양이 가져다 주는 아쉬움은 긴장감으로 이어져 행여 바닥에 떨어뜨릴까, 몇 번 없는 맛의 기회를 망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생선살을 집어 드는 것이다.

 

한국의 생선살은 쫄깃한 반면, 일본의 생선살은 부드럽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만약 한국에서 일본식의 맛을 봤다면 무슨 생선살이 이렇게 물러?’하고 핀잔부터 듣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이날의 경험에서 생선회의 맛은 단연 신선한 고추냉이와 간장의 적절한 조화에서 완성됐다.

 

나로선 실로 새로운 맛의 발견이었다. 가루를 물에 갠 와사비와 달리 고추냉이를 직접 갈아내어 그 맛과 풍미가 근본적으로 달랐는데 매운 맛의 와사비에서 그만의 단 맛을 봤다면 이상할까? 사실 한국의 고급 횟집을 제외한 일반 횟집에서 먹는 와사비는 흉내아니던가?

 

맛의 관점이란 천차만별이니 그 평가에서 거짓이란 없다. 다만 가끔씩 흉내에 머물거나 때론 속이기까지 하는 주방의 못된 행태들이 있어서 그것에 놀아나지 않으려면, 그리고 단지 배를 채우는 목적이 아니라면 맛도 때론 깐깐하게 음미하는 것이 건강한 것이자 즐거움일 수 있다.

 

뭐 대단한 횟집에서 먹은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신주쿠의 낡은 이자카야에서 한 접시, 그리고 어제 시모키타자와의 오뎅집에서 먹은 마구로 한 접시가 전부지만 이날의 경험들이 생선회를 즐기는 내 입맛을 높여놓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앞으로 어딜 가든 생선회를 먹을 때는 이날의 경험을 떠올리며 그 맛을 찾아가는 시도가 반복될 것 같다.



>> 고등어와 참치(마구로), 방어를 각 세 점씩 썰어내온 사시미에 국화로 살짝 단장을 했다. 벌벌 떠는 젓가락질이 느껴지는가? / 문어 숙회 위에 얹은 신선한 고추냉이와 푸짐하게(?) 차려진 안주들 / 커튼을 젖히고 들어서면 뜨끈한 가다랑이 국물 향이 실내 가득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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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 44분, 로마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에 도착했다. 무사히 도착은 했으나 일본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 놀라고 있는 중이다. 어제 잠도 3시간밖에 못자고 비행 내내 좁은 공간에서 끙끙대야 했고 로마에 도착하니 날씨가 꽤나 쌀쌀하다. 바리바리 정신없이 짐을 든 우리를 누군가 기회만을 엿보고 있다는 느낌이 가시질 않고 결국 한 차례 위기를 넘기기도 했다.

민박집 사장이 그의 밴을 몰고 우리를 픽업하러 나왔는데 뒤 트렁크에 집을 가득 싣고 출발하려 하자 갑자기 앞에서 젊은 청년 하나가 차 본넷을 똑똑 두드리며 바퀴쪽을 가리켰다. 사장은 간단히 '노'라고 대꾸한 뒤 곧바로 뒤를 돌아봤다. 영문을 모르고 잠시 한숨을 돌리는 우리에게 사장 왈,

"이 녀석들은 질이 아주 나쁜 놈들이네요. 앞에서 한 놈이 시선을 끄는 사이 뒤에서 다른 패가 트렁크를 열고 물건을 집어가려는거죠"

말을 듣고 나니 피곤에 절은 잠이 확 달아난다.

"촬영하시는 모양인데 카메라 조심하세요. 잠시라도 내려놓고 한눈 파는 사이 집어가기 쉽상이에요"

그렇다. 우리는 일본이 아닌 이탈리아에 와 있는 것이다. 여튼 오늘은 이곳 숙소에서 하루를 묵고(60유로) 내일은 시내를 돌며 향후 일정을 모색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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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회에 들어가 살고 있는 가족의 이야기를 들으니 흥미로운 이야기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 가운데 하나만 소개한다.

 

동경 생활 4년째에 접어든 물주의 부인은 어느 날, 딸의 생일을 맞아 딸의 일본 친구들을 집에 초대했단다. 부인은 팔을 걷어 부치고 손수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들었다. 이윽고 ~. 반가움과 설레임으로 문을 여는 순간, 엄마는 당황스러움에 어쩔 줄을 몰랐다.

맞은편에는 고운 드레스를 입고 한 손에는 꽃을 든 딸의 친구와 정장 차림에 핸드백을 다소곳이 든 아이의 엄마가 나란히 서있었던 반면, 음식을 준비하다가 뛰쳐나온 엄마의 옷차림이란 수제비를 만들다 나온 한국의 여느 엄마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서 일본 엄마와 아이의 옷차림이란 일본 왕실 가족의 외출 장면을 떠올리면 될 듯 하다.

 

화요일 저녁, 우리는 김치찌개를 안주 삼아 일본에서 유명하다는 청주를 주고 받으며 위와 같은 에피소드를 상 위의 안주로 부지런히 옮겨 날랐다.(아 참, 결국 그저께 저녁 식사의 주제는 집에서 해먹는 김치찌게였다. 일본 생활에서 정통 한국식 식사란 베푸는 입장에서 엄청난 용기다. 이와 더불어 맛볼 수 없는 청주와 일본식 소주, 그리고 한국에서도 광고를 시작한고시히까리쌀밥을 양껏 먹고 마실 수 있었다. 이건 후에 좀 더 자세히 쓰도록 하자)

에피소드 결말이 더 재밌는데 일본 엄마들 왈, 사실
자신들도 딸의 친구 생일에 초대받아 남의 집을 방문하기는 거의 처음이라는 것이다. , 파티라는 이름으로 남의 집을 방문하는 경우가 일본 사회에선 거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익숙한 집뜰이 조차도 없단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남의 집을 거의 처음 방문하는 일본 엄마는 자신이 갖춰야 할 예의를 최대한 갖추기 위해 아이에겐 드레스와 꽃, 자신은 정장 차림으로 문 앞에 나타났던 것이다.

 

결국 솔직하게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한국 엄마는 용기를 내어 자신의 심정을 고백(당신들의 격식에 당황스러웠다는)하자 정장 차림의 일본 엄마들도 박수를 치고 깔깔대며 사실 우리도 남의 집에 초대받아 가기는 처음이라 어찌할 바를 몰라 이런 차림으로 왔다고 고백하더란다. 결과적으로 이날의 사건은 이들의 관계를 더욱 가깝게 만드는 기회가 됐다고 한다.

 

반면 이런 일도 있단다. 물주가 말하길 우리의 경우 각종 경조사에 직접 연락 받지 않더라도 이미 소식을 아는 상황이면 가급적 참석하는 것이 예의인 반면, 일본에선 직접 연락이나 초대장을 받지 않으면 그 사실을 안다 하더라도 참석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가령 직장 동료가 가족 상을 당한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직접 연락이나 초대를 받지 않았으면 참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평소 술도 자주 마시고 속 이야기도 흉금 없이 털어 놓는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팩스나 전자 메일의 에러로 초대장을 받지 못하고 주변 사람을 통해 소식을 접하게 되면 그 사람은 초대받지 못한 사실에 상처를 입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후에 오해가 풀릴 수도 있겠지만 당시에는 그 상처가 꽤나 클 수밖에 없다.

 

아키하바라를 오가며 지하철에서 너무도 쉽게 마주치는 일본인들의 모습에서 그런 상황을 짐작해보자니 왠지 맞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동행의 말처럼 어쩌면 오타꾸라는 일본 특유의 문화가 생겨나게 된 환경이라는 것도 결국엔 이 같은 요인이 작용한 측면도 있지 않겠나라는 추측에 고개가 살짝 끄덕여 진다.




>> 아키하바라는 전자상가로 유명하지만 우리에겐 그에 못지 않게 500엔짜리 돈까스 덮밥집의 기억으로도 유명하게 남을 듯 싶다. 아래 사진에서 보듯, Bar 형식으로 꾸며진 테이블에 홀로 온 손님들이 나란히 앉아 자신 앞에 놓인 그릇에 담긴 음식을 아주 진지한 자세로 열심히 먹는 모습은 너무도 낯설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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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매우 흐리다. 오후 3시 이후부턴 비도 내린다고 일본 TV의 일기예보에서 전한다. 점심을 간단히 먹고 곧 아키하바라로 다시 출발하려고 하는데 어제 구입못한 소니 ECM-678 비디오 마이크를 구입하기위해서다. 날씨는 다소 쌀쌀한 편이고 바람이 불지만 먼지 하나 없어 보이는 깨끗한 바람이다. 강양이 재촉한다.

"야, 시간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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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저녁을 먹을 준비를 하고 있다. 그 준비란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국내 굴지의 은행직원으로 일하다 지금은 동경에 파견되어 일하고 있는 그가 그의 가족과 함께 우리 일행에게 근사한 저녁을 대접할 요량으로 부지런히 퇴근길에 나섰다고 하니 한껏 기대에 부푼 우리의 입도 점점 즐거워지고 있다. 그 행복한 기다림을 지금 은근히 즐기고 있는 중이다.

 

일본에 도착한 시간은 어제 17, 오후 2 44. 비행기는 정확히 2시간을 날라 동경 나리타에 내렸다. 얼마 전 독일의 한 여객기가 측면바람을 뚫고 무리하게 착륙을 시도하다 활주로에서 기우뚱 기울어지며 추락할 뻔 했던 사건이 있었다. 비행기가 이착륙할 때 가장 위험한 것이 측면 바람이란다.

비행기는 다시 무사히 하늘로 날아올라 위기를 모면했지만 당시 비행기에 탑승한 승객들이 겪었을 상황을 짐작해보면 그야말로 오줌 지릴 공포다. 이번 비행에서도 사고에 대한 악몽은 한시도 김군의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다. 아무튼 비행기의 사고 확률이 지상의 자동차에 비해 턱없이 낮다고 하니 그 지표에 위안을 삼을 뿐.

 

어제 입국한 후 오늘까지 이틀째 일본 동경에 머물고 있는 지금, 이래저래 정리할 생각들과 사건들이 많다. 가령 DSLR 카메라의 파손 등이 그렇다. 충격이다. 아, 곧 우리의 물주가 도착하신다고 하니 화장실 가서 손이라도 씻는 것으로 저녁의 경건한 의식을 준비해야 할 것 같다. 만약 아사히나 삿뽀로, 혹은 쌀 비린내가 제대로 그윽한 사케에 만취 되지 않아 온다면 사건일지를 오늘 밤 중으로 작성할 것이고 인사불성으로 온다면 내일에나 일지를 정리할 것 같다. 곧 다시 오겠다.



>> '타와'라는 이름의 강 둔치에 심겨져 있는 벚나무가 선홍빛의 꽃을 활짝 터뜨렸다. 동경은 다음주 중반쯤 되서야 벚꽃이 만개할 꺼라는데 이곳 벚꽃은 좀 더 일찍 피었다. 사진엔 안나왔지만 오른편으로 흐르는 강의 풍부한 물기를 흠뻑 빨아들인 때문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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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극장이라는 TV 프로그램, 다 아실꺼다. 하루 30여분에 걸쳐 어떤 주인공의 일상과 그 속에 담겨진 그만의 개성있는 삶을 보여주는 휴먼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마지막은 늘 주인공이 예기치 못한 사건이나 위기에 빠져드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시청자들의 궁금함을 유발시켜 다음 이야기에도 꼭 보도록 유도하기 위해 작가가 만들어낸 일종의 장치다. 때론 그다지 위기스럽지도 않은, 싱거운 상황을 억지로 위태로운 상황으로 포장하는 경우도 종종 있어 재미나 긴장감, 또는 리얼리티를 떨어뜨리는 경우가 있지만..

출국을 이틀 앞둔 지금, 지난 10여 일을 되돌아보면 인간극장의 바로 그 마지막 장면의 연속이라는 생각이다. 만약 인간극장팀에서 우리들의 일주일을 촬영했다면 매 순간 발생하는 위기와 돌발상황에 쩔쩔매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서 대본을 쓰는 작가는 아마 신이 나지 않았을까?

그간 겪은 우여곡절은 지금도 진행중이라 하나하나 정리하기에 시간이 걸릴 듯 하다. 혹시 장기 여행을 준비하는 분들이나 비슷한 여정을 계획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정보가 있을지 모르니 조만간 사건별로 정리할 계획이다.(과연?..) 중요한 것은 이른바 머피의 법칙은 분명 존재한다는 것. 특히 중대한 거사를 앞두고 있는 마당에선 그 빛을 발한다.  




>> 주어온 박스의 각을 잡고 그 안에 각종 잡스런 흔적들을 우겨넣고 있다. 빈틈 없이 꼼꼼히 채운 박스는 어지간해선 터지지 않을 만큼 테이프로도 단단히 봉했지만, 빌려온 포터 트럭에 싣고 일산에서 강동구 상일동까지 향하던 중 성산대교를 지날 무렵부터 설마하던 빗줄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비를 막을 덮개 비닐이 없었고, 운전하면서 그렇게 많이 뒤돌아보기는 처음이었다.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