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휴일인 토요일과 일요일, 토스카나주 끼안띠 지방의 빤자노 마을에서 250년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다리오 체키니의 정육점을 두 번에 걸쳐 다녀왔다. 오래된 역사 만큼 전통에 대한 남다른 고집으로 오늘날 이윤에 초점을 둔 공장형 비육시설의 비윤리적 생산행태 맞서 힘겹게 먹거리 싸움을 벌여오고 있는 이탈리아 정육계 장인의 한 사람. 그의 가게 운영이념은 철학적으로도 상업적으로도 성공해 주말을 물론 평일에도 세계 각국으로부터 그를 만나려는 손님들과 언론인들이 몰려오는데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일요일에도 가게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토스카나의 들녘에 봄바람이 스칠 즈음에 우리는 그를 카메라에 담을 예정이니 그와 그의 정육점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그때 가서 다시 하자. 주말 이틀간의 방문은 사전 조사차원의 방문인 셈.


주말. 체키니가 자신의 농장에서 직접 담그는 끼안띠 와인을 건넨 뒤 건배. 저 와인은 정육점을 찾는 모든 손님들에게 무한 공짜로 제공되며 간단한 먹거리도 가게 한 켠에 가득 준비돼 있다.


일요일. 정육점에서 일하는 사람좋은 인상의 다니엘라 아줌마가 손님들에게 끼안띠 와인을 채워주고 있다. 다니엘라 뒤로는 끼안띠에 곁들어 먹으라고 가게에서 제공하는 빵과 살라미, 올리브와 햄이 즐비하다. 기분좋은 미소와 넉넉한 인심이 있어 손님들은 낯선 서로를 위해 잔을 들어올리며 '살루떼'(건강을 위해!)를 외친다. 그래서 더 훈훈한 가게. 사실 우리는 식사예약을 일요일에 해놨고 토요일은 단지 그를 만나보고 가게를 둘러보는게 목적이었는데 뜻하지 않게 점심식사를 공짜로 대접했다. 정육점의 1층 한 켠과 2층은 10유로와 20유로에 즐길 수 있는 메뉴를 제공하는 식당으로 운영되고 정육점 맞은 편 작은 별채는 솔로치치아(SOLOCICCIA)라는 이름의 식당으로 운영되는데 이곳에선 6가지의 고기요리가 30유로의 가격에 코스로 제공된다. 우리가 예약한 식단은 30유로짜리이고 주말에 공짜로 대접받은건 10유로와 20유로짜리 메뉴. 오늘은 주말에 맛본 10, 20유로짜리 요리를 소개해보자.
-06

2층 식당으로 오르는 계단 위로 쇠고기 스테이크를 품에 안은 모나리자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은 건넨다. '많이 먹어, 오늘은 공짜야~'


발디딜 틈 없는 2층 식당. 200년이 넘은 낡은 건물이지만 실내는 현대적인 마감재로 단장돼 있다. 저 뒤 가운데에 고기를 굽는 화덕겸 벽난로에는 토스카나 남부에서만 가져온다는 특별한 숯이 벌겋게 달아올라 식당 안을 훈훈하게 데펴주고 있다. 이날 식당은 이탈리아 손님들이 대부분인 듯.


20유로 메뉴에서 첫 번째로 제공되는 접시. 또노 델 끼안띠(Tonno del Chianti-끼안띠의 참치)라는 이름이 붙은 이 요리는 돼지고기를 푹 익혀 결대로 살을 찢은 뒤 올리브유와 소금만의 간단한 양념으로 제공되는데 그 맛이 참치와 흡사해서 붙은 이름이다. 붉은 양파와 곁들여 먹으면 퍽퍽한 살이 훨씬 부드러워지고 맛도 좋다.


아예 새 병으로 하나 까서 테이블에 놓아준 다리오의 끼안띠 와인. 끼안띠라는 이름은 토스카나의 끼안티 지역을 일컫는 말로 피에몬테주의 바롤로, 베네토주의 아마로네처럼 토스카나주를 대표하는 와인이며 낮은 품질에서 최고급까지 다양한 품질의 와인이 만들어진다. 그럼 이게 고급 끼안띠냐고? 그건 아니고 다리오의 농장에서 재배한 포도를 집안의 손맛으로 담궈낸 수수한 와인으로 외부에 판매하지는 않는다. 여느 식당에서 맛 볼 수 잇는 저렴한 테이블 와인. 


Mac Dario가 나왔다. 감자와 양파, 샐러리등의 채소에 둘러싸인 거대한 햄버거 스테이크.


한 점 썰어보니 잘게 다져낸 쇠고기를 뭉쳐낸 햄버거 스테이크임을 알 수 있다. 양념은 커녕 소금간 조차 안돼있다. 이날 우리와 함께 맞은 편에 앉아 다리오는 물론 요리에 대해 이것저것 설명해준 맛시모는 고기맛 자체를 즐기는 요리에서 소금간을 해주는 것은 금물이라고 강조했는데 이유는 소금이 들어가면 삼투압에 의해 고기의 육즙이 굽는 과정에서 빠져나온다는 것이다. 따라서 스테이크식으로 먹는 고기의 경우 미리 간을 하는 것은 금물이고 다 익힌 후에 취향껏 간을 해서 먹는게 고기를 가장 맛있게 즐기는 방법이라고. 반 이상을 먹은 후에야 그 이야기를 들어서 속으로 허탈해 했는데 사실 먹는 동안 간이 심심해 생고기를 씹는 맛이 착 입안에 붙는 맛은 아니었기 때문. 정성껏 준비한 요리, 그것도 공짜로 대접받는 마당에 뭐달라 어쩌라 요구하기가 뭐했던건데 진작 알았더라면 소금을 달라했을 걸.. 싱싱한 고기맛을 확실히 즐기는 법이 뭔지 확실히 깨달은 경험. '소금을 쳐라'


끼안띠 스시(Chianti Sushi). 끼안띠에는 카르파치오(Carpaccio)라는 이름의 전통적인 육회요리가 있는데 이를 다리오가 자신만의 방법으로 변형시킨 것이다. 2주간 숙성시킨 생쇠고기에 레몬 껍질을 얹고 올리브유를 뿌려냈다. 우리의 육회와 비교해 곁들이는 양념이 거의 없다.


돼지고기 등심을 넓게 펴 가운데에 로즈마리를 가득 채워 둘둘 말은 뒤 은근한 불에 바베큐식으로 오랫동안 익혀낸 요리. 퍽퍽한 살에 로즈마리 향이 가득 베어있다. 이건 앞서 다리오의 정육점에서 그를 만나고 가게를 둘러보는 동안 수시로 썰어 한 켠에 접시에 담아놓은 것을 틈틈이 집어먹는 통에 식사중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바삭하게 익은 껍질을 오랫동안 씹는 맛이 일품.


돼지고기를 갈아 양념을 더해 햄으로 만든 뒤 달달한 오렌지 소스에 무쳐냈다. 달콤하고 상큼한 맛으로 즐기는 고기요리. 배가 불러도 자꾸 손이갔던 요리.


한 상 차려지니 더 이상 접시를 놓을 자리가 없다.


마지막으로 나온 접시 젓가락. 2층의 서빙을 담당하는 베네치아 출신의 단테가 장난스레 젓가락을 접시에 담아와 우리에게 건네고 있다. 기분좋은 웃음과 유머로 식당안 손님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는 에너지 만점의 인물. 삶의 사연도 많은 인물 같은데 언젠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으리라.


신선한 채소가 놓여 있으니 퍽퍽한 고기를 먹는게 한층 수월하다.


식사를 마친 뒤 '입가심'으로 제공된 독주들.


아네똘로(Anetolo)라는 이름이 붙은 이 술은 도수가 무려 60도. 영어로 딜(Dill)이라는 이름을 가진 향미료로 만들어진 술로 그 향이 마치 회향풀을 닮아 있다. 향 자체는 매력적인데 한 모금 머금는 순간 강한 알콜기운이 입안을 태워버릴 듯이 퍼진다. 입안에 머금고 목넘김이 쉽진 않지만 그 힘겨운 고비를 넘고 나면 신비로운 잔향이 입과 코를 은은하게 감싸주는 매력적인 술.


점심식사가 끝나고 테이블은 다시 저녁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로 다시 깔끔하게 세팅됐다. 캐나다에서 온 손님들을 안내하고 있는 단테. 오른편 하얀 벽 모서리가 우리가 앉아서 식사를 한 자리. ^^


식당을 나와 터질듯한 배를 부여잡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바라본 토스카나 끼안띠의 풍경.

(지난 주 우리의 인터넷 칩이 한달이 안돼 벌써 사용한도를 넘어버렸다. 다음주 금요일까지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어서 부득이 동네 인터넷방을 드나들고 있다. 해서 업데이트도 굼뜨다. 사정이 이렇다는..)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