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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1.01 휴일 18
한국 Korea 160409~2010. 1. 1. 14:45
1년 전,
이탈리아 뻬루자의 광장에서 곧 폭도로 돌변할 것 같은 
사람들 틈에 뒤섞여 하늘에 터지는 불꽃놀이와 뻬루자 국립박물관과 성당 사이에서
수북히 깨져나가는 와인병의 잔해,
그리고 155mm 포가 40kg짜리 포탄을 저 멀리
날려버리기 위해 장약 터뜨리는 소리에 견줄만한 
이태리 청년들의 만용스런 폭죽 굉음을 위태롭게 감상하며 새해를 맞았다.

당시 볼로냐에서 새해를 맞은 경준이 이야기하는 그곳의 화려한 새해맞이와는 거리가 있었는데
아무래도 부자도시 볼로냐와 시골도시 뻬루자의 재정규모가 다른데서 오는 차이겠지 싶다.
암튼 그로부터 딱 일년 후,
2009년 마지막 손님에게 디저트 한 접시를 공짜로 대접하고 기분좋은 얼굴로 새해 인사를 나눈 뒤
주방 여기저기에 눌러앉은 기름기를 닦아내는 고단한 노동으로
하루를 마감하며 새해를 맞았다.

뭐 새해라고 해서 어제와는 다른 해가 떠오르는 것도 아니니
'새해'라는 것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덧없는 짓도 이젠 하지 않지만
그것이 휴일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구석이 있다.
왜냐면 그 핑계로 1일과 2일, 이틀간은 쉬기로 했기 때문에.
30일을 하루도 쉬지않고 달려왔으니 이쯤에서 한 번 쉬어 줘야하지 않겠나.
혹시나 요때 식당을 찾을 손님들에게는 다소 미안하지만
우리도 좀 살자. 아이구 삭신이야..

따땃한 전기장판에 배 깔고 누어 자판 잡는 이것이
대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워낙 정신없이 달려온 요 몇 달이었다.

어느새 가로수 낙엽이 다 떨어졌고
눈도 몇 번 왔고
와인병도 수없이 갖다 버렸다.

일본에서 게이코가 깜짝 방문해 가게 오픈을 축하해줬고
몰타의 새라도 축하메시지를 보내왔다.
되려 우리에게 이탈리아의 영감을 듬뿍 안겨준
베로나의 엘리자베따와 베르가모의 줄리오에게는
두어 달 전 '가게를 열 계획이야'라는 메일만 보내놓고
'결국 사고쳤어'라는 소식은 알리지 못했으니 이 무슨 배은망덕(?)인지..

몇 번의 단체손님을 받으면서
서비스의 한계를 절감했고
전화 예약제 역시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음식 단가가 너무 낮다는 일부 손님들의 불만 아닌 불만도 들었고
3kg이라 해놓고 가져와 달아보면 2kg이 겨우 넘는
노량진의 못된 상혼도 경험했다.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진다는 이야기가 뭔지 슬슬 깨달아가고 있고
좀 더 고민하고 부지런하고 노련해져야 한다는 생각도 하고 있고
좀 더 쉽고 편하고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밥집'스럽고 '술집'스런 메뉴를 고민하고 있다.

요리중에 후앙을 돌리면 그 가공할 흡입력이 문밖의 차가운 공기까지
안쪽으로 빨아들여 손님들이 추위에 오들오들 떤다는 것도 알았고
이를 위해 틈이란 틈은 모두 막아보지만 100% 해결이 안된다는 사실에 살짝 좌절도 했다.
어서 봄이 오기를 바라고 있고 비슷한 문제가 반복될 여름은 과연 어떨지
벌써부터 걱정도 들고 있다.

여전히 허옇기만 한 벽에 어서 사진을 걸어야겠다는 생각에 늘 쫓기고 있고
'왕산건재' 간판도 철거하고 너무나 후진 화장실 개선공사도
건물주를 설득해 어떻게든 해야지 해야지 하고 있다.

가게 앞에 당도하기도 전에 솔솔 풍겨오는 음식냄새가 너무 좋다는
인근 사는 후배의 이야기에 기분이 좋고
그렇다면 냄새 마케팅을 본격적으로? 하는 상술도 고민하고 있다.
낄낄
 
그리고 오늘,
모처럼 쉬는 날이지만 그간 밥 한 번, 술 한 잔 편하게 하지 못했던
친구들을 모아 식당에서 조촐하게 식사를 하려고 한다.
그래서 빨리 씻고 나가야 한다는...

좀 전에 도착한 강수연의 문자,

"우리 가게 열 껄 그랬나봐.
다들 장사하고 잘된다"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