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진'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08.04.25 She'll come back 2
  2. 2008.04.24 배웅 1
  3. 2008.04.23 마지막 만찬 5
  4. 2008.04.20 플랫 메이트 마중나간 날 2
강력한 모터의 힘으로 세탁기의 빨래가 탈수되고 있을 때 하동에 도착한 효진으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저 다음주에 몰타로 돌아갈 것 같아요.." 강양은 서둘러 '구인' 게시판의 글을 삭제했고 김군은 옥상으로 올라가 빨래를 널었다. 하늘에는 흰 구름이 두둥실 떠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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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으로 향하면서 효진은 한 달치 내기로 했던 방값을 공부하기 위해 가져왔다가 그냥 놓고 간다는 파란색 Grammar In Use 책 사이에 껴놓았다고 말했다. 돈 받기도 미안하지만 안받을 수도 없다. 떠나 보내는 우리도 아쉽고 약속을 깨고 떠나는 효진도 마음이 무겁기는 마찬가지일 터.

 

3 40 이륙하는 에미레이트 항공편으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효진을 배웅하고 우리는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간 주인을 맞았던 방은 그 전 보다 더 쓸쓸해 보인다.

 

Grammar In Use가 거실 테이블 위에 얌전히 놓여있다. 근데 그것만 놓고 간 게 아니다. 무겁게 짊어지고 온 몇 가지 짐들이 남겨져 있다. 멀티 탭, 노트 몇 권, 볼펜, 랜선, 슬리퍼 심지어 몰타에서 사용하기 위해 두바이 공항에서 사온 휴대폰도 놓고 갔다. 두바이 공항에서 3만원에 구입했으나 결국 이곳에서 한 번도 사용하지 못하고 남겨두고 만 것이다.

물건들은 모두 하얀 비닐봉지에 담겨져 있었고 이는 이미 이곳에 남겨놓겠다는 그녀의 의지가 담겨진 것이었다.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할 요량은 아니었겠지만 아무튼 우리는 적잖이 놀랐다. 그러면서도 새것으로 반짝거리는 물건들은 어찌나 처연해 보이던지..

 



>> 노트 세 권, 영문법 책, 노키아 휴대폰, 랜선, 볼펜 세자루, 테이프, 그리고 멀티탭. 잠시 사람의 온기로 채워졌던 방은 '그랬었다'는 흔적만 남긴채 다시 빈방으로 남았다.

아주 짧은 만남이었지만 우리에게 남겨진 그녀의 인상은 매우 강렬했다. 불면 날아갈 듯한 연약한 몸에 남 앞에 나서기를 꺼리는 그녀지만 술을 사이에 놓는다면 자신을 당해낼 사람은 주변에 별로 없다는 그녀, 짧으나마 건축에 관한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매우 즐거웠고(한남동 이건희 집의 단열재는 뉴질랜드 산 어린 양모라고 한다) 무엇보다 그녀의 고향인 하동에 관해 들으면서 우리는 하동의 매력에 푹 빠지고 말았다.

 

귀국하면 꼭 하동에서 다시 보기로 약속했다. 그녀는 우리에게 하동의 매력을 체험시켜주기로 했고 우리는 그녀에게 그녀가 떠난 뒤 우리가 겪은 여정을 재미있게 풀어줄 계획이다. 그녀를 사로잡은 알리올리오와 그녀가 자신 있어 하는 술을 사이에 놓고.

 

<효진에게 덧붙이는 인사>

효진, 할머니 잘 보내드리고 부모님도 따뜻하게 위로해드리시게. 그리고 우리는 내년에 하동에서 다시 보자구. 건강하게 잘 사는 것이 할머니나 부모님에게 가장 큰 효도인 법. 강건하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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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랏메이트 효진이와 함께 마지막 저녁을 먹었다.

지난 토요일 몰타에 도착한 효진은 내일 다시 한국으로 돌아간다.
백지장 처럼 하얀 얼굴과 가냘프다 못해 꺽어질 것 같은 몸매의 소유자인 효진을 처음 봤을 때, 사실 너무 얌전하고 착하게만 살아온 청춘 같아서 약간 걱정이 됐었다.

물 먹듯이 맥주마시고 항상 와인을 반주로 즐기는 우리랑 과연 잘 어울릴 수 있을까? 너무 바른생활 청춘이면 함께 살기 불편해서 어떻하지? 하지만 이런 생각이 기우라는 것을 어제 저녁 확인하게 되었다.
효진은 가녀린 외모와 달리 내진설계 공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건축학도이며, 고기를 좋아하지만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고, 소주를 물처럼 마셔도 취하지 않는 특이체질로 필름이 끊긴다는 것이 무엇인지 정말 궁금하다고 말하는 친구였던 것이다.

우리는 월요일 저녁 알리올리오 파스타를 먹으며 가볍게 와인을 마시기 시작했는데, 그녀의 전공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어느덧 노출콘크리트와 안도다다오를 거쳐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에까지 이어졌다. 쟁여둔 와인을 따고 남은 맥주를 마시며 우리는 플랏메이트로서의 궁합이 제법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오늘 학원을 다녀온 후 그녀가 이야기를 꺼냈다.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내일 귀국을 해야한다고.
원래 당뇨를 앓으셨던 할머니가 그녀가 출국할 무렵에는 비교적 건강하셔서 이렇게 갑자기 일이 생기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지라 이 이야기를 전하는 그녀의 눈가가 촉촉히 젖어 있었고 눈시울은 빨개져 있었다.

김군은 그녀가 한 번 먹어보고 반했다는 알리올리오를 정성껏 만들어서 마지막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평소 먹던 와인의 두 배 가격인 남아프리카산 레드와인, 씹을 수록 고소한 맛이 일품인 애담치즈 그리고 초콜렛을 좋아한다는 효진을 위해 몰타에서 유명한 초콜릿 푸딩도 함께 준비했다.

우리는 자정이 되도록 여행과 요리, 그리고 그녀의 하동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알고보니 효진은 김군이 극찬해 마지 않는 MBC의 '요리보고 세계보고'의 열성 팬이었다. 짧은 기간 동안 우리를 하동의 매력에 푹 빠지게 만든 그녀는 내년에 한국에 돌아오면 꼭 하동에 놀러오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한국을 떠나오기 전까지 할머니와 함께 지냈다니, 이렇게 수다라도 떨지 않는다면 혼자서 침대에 앉아 눈물바람을 했을 것 같다.

내일은 학원이 끝나면 예약해 놓은 택시를 타고 함께 공항을 갈 예정이다.
3개월 간의 부푼 기대를 가지고 몰타에 온 효진은 모든 계획을 취소하고 5일만에 다시 한국으로 간다. 너무 갑작스럽게 모든 일이 진행된 오늘 하루, 어제 배운 영어 한 마디를 인용하자면 이렇다.

That's life....

그러게 말이다, 이게 인생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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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고다치즈나 에멘탈치즈 보다 유명세는 덜 하지만 씹을 수록 고소한 맛이 일품인 애담치즈(edam cheese), 큰 덩어리를 썰어서 무게를 달아 사기도 한다. / 마늘과 올리브, 소금 후추 만으로 맛을 내는 담백한 알리올리오, 면은 약간 넙적하고 식감이 좋은 trenette를 사용. 평소랑 달리 서양 고춧가루를 살짝 넣어서 매콤한 향이 나게 해봤다. / 처음 마셔 본 남아프리카 와인. 포도는 pinotage와 cinsault로 역시 처음 마셔본 브랜드 kumala . 과일향이 나면서도 가볍지 않은 맛이랄까. / 거실에서 밤이 늦도록.../ 몰타의 유명한 디져트이자 간식 stuffer dessert latte. 처음 맛은 풀죽에 코코아 가루 섞은 느낌이었는데 효진은 맛있다며 3개를 순식간에 해치웠다. / 명함을 건네주자 글자의 비례가 좋다면 칭찬해주는 효진
Posted by dalgonaa

주말, 멀리 하동에서 부푼 꿈을 안고 날아오는 '청춘'을 맞이하기 위해 강양과 김군은 서둘러 공항으로 향했다. '모래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몰타를 내려다 보며 다소 실망하겠군' 하는 생각에 오히려 우리가 실망스러워졌지만 그보다 더 우리를 실망스럽게 만든 것은 1시간 30분이나 늦어진 도착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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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에 맞춰 1시 30 공항에 도착했으니 꼼짝없이 2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도착 터미널에는 마땅히 앉아 기다릴만한 곳도 없어 북적대는 사람들을 피해 3층 카페테리아로 자리를 옮겼다. 이미 점심을 먹고 나온지라 괜히 예정에 없는 지출이 생기는 것이 못마땅했지만 그것이 반전이었다.

자연에 도전하는 과학의 경이를 신이 나서 구경했기 때문인데 활주로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 좋은 테이블에 앉아 9천원짜리 피자와 3천원자리 맥주를 마시며 이착륙을 하는 여객기들을 마냥 지켜본 것이다. 몰타 같은 작은 나라에 에어버스380’과 같은 대형 여객기가 뜨고 내릴 일은 없지만 그것의 반 크기에도 못 미치는 작은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것을 지켜보는 것 만으로도 우리는 즐거웠다.


 


>> 공항으로 오는 길, 버스의 문구가 재밌어 찰칵! 주문표의 첫 번째 피자를 시키자 바로 다음 사진의 피자가 구워져 나왔다. 양도 제법 많아서 둘이 먹기에 충분하고 말린 오레가노 향이 인상적이었다. 몰타 맥주의 자존심, '시스크'.

이윽고 Emirate 항공 여객기가 활주로에 모습을 나타냈다. 기분이 참 묘했다.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 그것도 공항에서의 기다림은 묘한 흥분을 가져다 주나 보다. 당신들은 그런 경험이 없는가?

 

30킬로가 넘는 무거운 짐을 이끌고 하동에서 먼 길을 날아온 이효진씨는 3시 50 게이트를 빠져 나와 우리와 상봉했다. 첫 만남. 건축을 공부하고 있다는 그녀는 이제 생 줄리앙의 녹색 발코니집에서 우리와 함께 3개월간 함께 살아갈 식구. 우리는 서로 밝게 웃으며 차분히 인사를 건넨 뒤 여기저기 반가운 포옹이 벌어진 사람들 틈을 헤집고 가까스로 터미널을 빠져 나왔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는 길,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그냥 동네 어디쯤에 온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그녀는 하동의 집을 나선지 꼬박 28시간이 지났다고 한다. 그 사이 네 다섯 시간을 잤다고는 하지만 기내에서, 그것도 이코노미에서라면 그 고단함을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을 테다. 그래도 우리가 몰타에 도착해 겪었던 것 만큼의 혼란은 그녀에겐 없었다. 그녀는 분명 운이 좋은 것이다.

 

덕분에 우리도 시원한 시스크 맥주와 말린 오레가노를 듬뿍 뿌린 피자를 먹으며 비행기의 경이로운 이륙을 한참 동안 구경할 수 있었지만..



>> 유럽 최고의 '저가'항공, 라이언에어. 며칠 전 이 항공사의 '몰타-이태리 피사' 예약일정을 검색하다가 오로지 세금만 내고 요금은 안내는 티켓이 나온 것도 발견했었다. 며칠 전 함께 식사한 한국인 친구는 몰타-바르셀로나-포루투갈을 왕복하는 비행기를 75,000원에 끊어 현재 여행중이다. / 1시간 30분의 기다림 끝에 모습을 나타낸 에미레이트 항공. / 할머니와 함께 누군가를 마중 나온 통통한 꼬마는 정신사납게 주변을 뛰어다니다 결국 할머니에게 호된 손매질을 당했다. 그러나 이도 잠시, 다시 저 표정으로 공항을 뛰어다녔다. / 한 두명씩 나오는 한국인들. 저 틈에 이효진씨는 아직 없다.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