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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1.27 로마여행 첫 날. 14

1박2일 로마여행을 마치고 어제(일요일) 밤 늦게 돌아왔다. 작년 3월 말, 몰타로 들어가기 전 5일간 머물며 비와 추위로 생고생을 했는데 그 날로부터 딱 10개월 후의 재방문이다. 도착한 날도 역시 비가 내려 아무래도 로마와는 인연이 없는건가 싶었으나 둘째날은 날도 화창하게 개이고 따뜻해서 돌아다니기에 좋았다. 이번 로마 여행은 두 가지가 목적이었다. 하나는 매월 마지막 일요일은 바티칸 박물관이 무료개관을 하는지라 이 기회에 공짜로 챙겨보자는 것과 또 하나는 고추장과 된장 사러. 뻬루자의 골목길만 다니는 것도 좀 갑갑하던 차였으니 며칠 전 로마행을 결정하고 난 후엔 살짝 들떠있기도 했다. 역시 로마는 로마다. 그 이름값을 하는 동네라는 얘기.


로마로 내려가기 위해 중간에 열차를 갈아타야 하는 곳, 뽈리뇨. IC(Inter City)나 EC(Euro City)등의 특급 열차를 타면 굳이 이런 황량한 곳에서 열차를 갈아타지 않아도 되고 시간도 단축되지만 짐작하듯이 그건 비싸다. 좀 돌아가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저렴한 R(Region)선을 이용할 수 밖에. 시간 빠듯한 여행이 아니라면 인연이라곤 없을 이런 낯선 도시, 또는 플랫폼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적막하니 매력이 있다. 쓸쓸히 담배 한 대 피어무는 사람들의 모습도 꽤나 분위기 있어 보이기도 하고.. 적막을 뚫는 기적소리는 이런 곳에서 제대로 들린다.


이탈리아의 역에서 화장실을 찾을 경우엔 역사 안에 있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 플랫폼 끝쪽에 있는 경우가 많다. 화장실 급하다고 매표소 근처나 BAR를 뒤져봐야 소용없다. 대도시 역의 화장실은 1유로 안팎의 돈을 받지만 이런 작은 동네의 역은 돈을 안받는다. 인건비도 안나올 정도로 손님이 없는 탓. 자유롭게 이용하니 좋다. 대신 온수 따위는 안나온다. 세면대 아래 발판을 누르면 물이 나온다. 이런건 여간 편리한게 아닌데 수고로움도 적고 물도 절약할 수 있다.


폴리뇨를 출발해 곧 나타나는 산자락 도시 트레비. 이탈리아에서 가장 품질좋은 샐러리를 생산하는 동네로 지난 번 토리노 슬로우푸드 축제에도 샐러리를 트럭으로 싣고와 참가한 고장이다. 그때 자잘한 흙가루가 채 씻기지 않은 싱싱한 샐러리를 역시 그 고장에서 생산한 신선한 올리브유에 푹 찍은 뒤 먹으라고 건네주던 농부와의 만남이 잊혀지지 않는다. 산 정상에 지어진 마을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볼꺼리지만 옛날엔 이웃 마을과 타툼 꽤나 많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다툼이 커지면 곧 전쟁으로 발전했으니 이탈리아 각 마을들은 저처럼 방어가 용이한 지형에 마을을 짓고 살았던 것. 아직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뻬루자와 마주보고 있는 아씨지도 한 때 서로 꽤나 죽이며 살았다고 한다. 그 옛날, 높은 마을이 생명유지의 방편이었다면 요즘에서 보면 어쩌면 자살행위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각종 편의시설의 접근이 어렵기 때문인데 움브리아 주도라는 뻬루자만 해도 성으로 둘러싸인 중심지(Centro)의 경우 수퍼마켓이 딱 2개 뿐이다. 그마저도 구멍가게 수준. 이 동네에는 트레일러 트럭이 올라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로마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밤길, 트레비를 지나며 어둠에 둘러싸인 산 위의 마을을 바라보니 마을을 지키는건 사람들이 아니라 가로등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어둠이 짙었다.


기차는 이름 모를 고택도 지나고..


굴뚝도 지나고..


풀 뜯는 양떼도 지나고..


해서 3시간 30분만에 로마에 입성. 뽈리뇨에서 환승으로 1시간을 기다렸으니 그것만 아니라면 R선으로도 2시간 30분만에 올 거리다. 이왕이면 떼르미니역 정면에서 한 장 찍어줘야 하는데 아쉽게 측면이다. 도착하니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다행히 날씨가 춥지는 않다. 북쪽 밀라노나 베로나는 0도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날씨인데 로마는 영상 13도 안팎을 드나든다. 쉽게 찾을 줄 알았던 숙소를 1시간 만에 찾아 짐을 던져놓고 거리로 나섰다. 어느덧 2시,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을 떠느라 누룽지 조금 먹은게 전부이니 당장 허기부터 채워야 할 판. 떼르미니역 주변에는 저렴한 핏짜리아가 널려있으니 만만해 보이는 집 하나 찾아 들어가면 되지만 손님들로 북적이는 케밥집이 눈에 띄길래 주저없이 돌진했다. 역시 허기가 심할 땐 육기를 떨쳐버리기 힘들다.


햄버거처럼 생긴 케밥.


'케밥'처럼 생긴 케밥. 4유로짜리 케밥 2종류에 콜라 하나 주문. 쟁반에 받아오는데 양이 무척 많다. 콜라 한 모금 들이키자 목구멍이 찌릿거리고 뱃속의 위장이 본격적인 시동을 건다. 입 크게해서 베어무니 행복이 줄줄 흐른다. 역시 손님 많은 집은 이유가 있다.


배가 채워지니 다시 힘이 솟는다. Via Cavour라는 대로 한 켠에 위치한 한국식품점. 꽤나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집이라는데 이런저런 한국식재료를 다양하게 구비하고 있다. 낯선 입맛에 적응이 쉽지 않은 한국인들에겐 오아시스 같은 곳. 호기심에 기웃거리는 이탈리아인들도 종종 보이고 고추장을 사가는 이들도 목격된다. 많은 중국 식품점이 불법으로 영업하고 있어 그 폐해를 고발하는 보도물을 종종 보곤하는데 이곳과 밀라노의 한국 식품점은 모두 세금을 꼬박꼬박 내는 정식 매장이라고. 허나 불법일지언정 중국식품점 없으면 아시아 사람들은 당장 불편에 직면할게 틀림 없을 듯 싶다. 뭔가 아쉬울 때 그곳에 가면 대개 있기 때문이다. 한창 물건을 바구니에 담다가 혹시 내일(일요일)도 문을 여냐고 물어보니 연단다. 그럼 지금 힘들게 사들고 다닐 필요가 없어 내일 다시 오겠다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오락가락하던 비, 갑자기 퍼붓기 시작하니 이때는 우산이 있어도 잠시 피하는게 좋다.


빗줄기가 잦아들어 사거리 길을 건너니 저 너머 콜로세움이 눈에 들어온다. 방향을 틀어 콜로세움으로.


로마인들이 인류에 남긴 거대한 놀이터. 개인적으로 영화 글래디에이터는 로마, 특히 콜로세움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 영화다. 이 영화의 유일한 명장면이라면 특수효과로 완벽하게 복원된 로마 시내의 모습을 항공샷으로 보여주는 그 장면인데 그걸 보고 적잖이 놀랐었다. 그 중에서도 차양까지 설치됐었다는 콜로세움의 모습은 당시 로마의 부와 사치가 어느 정도 수준이었는지를 짐작케 하는 장면으로 남아있으니 그 장면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파괴된 콜로세움으론 원형이 어떠했는지 짐작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르겠다. 콜로세움의 육중한 돌덩어리를 가만히 응시하고 만져 보노라면 수 천년이라는 시간과 역사, 그 공간을 살아간 사람들의 흔적을 짐작하게 된다. 헌데 당시의 노예들, 그리고 피를 튀기는 싸움을 벌였던 검투사들은 자손들에게 예술적 유산이라도 남겼다지만 오늘날 자본의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은 뭘 남기게 될까? 한국? 있는 남대문도 홀라당 태워먹고 귀중한 사람 목숨마저 태워먹는 나라니 남는 것은 결국 잿더미? 허허


구름이 옅어지고 간간히 햇살도 비춘다. 이제 비가 그치려나?


포로 로마노(Foro Romano-우리로 치면 조선시대의 종로 쯤. 엄청났던 로마 제국의 중심지중의 중심지라니..)를 구경하는 방법은 돈을 내고 입장해 그 길을 거닐며 돌무덤(?)을 가까이서 보는 방법과 돈 안내고 멀리서 바라보는 방법 두 가지가 있을텐데 우리는 역시 후자를 선택했다. 내일 이곳 역시 공짜로 볼 수 있을까 싶어서.


어디서 온 수도사들인지는 모르겠지만 몸 불편한 장애인들과 함께 로마 시내, 지금은 포로 로마노를 구경중이다.


사진을 찍은 자리에서 바라본 모습도 나쁘지 않다. 당시의 로마인들도 길가의 저들처럼 저 길을 유유자적 걸었겠지. 원로원이 다스리던 공화정이 안타깝게도 무너지고 황제가 다스리던 제정을 거치는 사이, 로마제국의 확장과 더불어 포로 로마노도 발전을 거듭했지만 6세기 들어 제국의 몰락과 함께 이곳도 서서히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전쟁의 여파, 자연의 풍파, 그리고 르네상스때는 방치된 돌들을 들어내 다른 건축의 재료로 사용하면서 지금의 몰골로 남고 말았다. 다행히 종로는 저보다는 훨씬 비싸고 고급스러운 길로 변모했다. 금은방 집들이 가득 들어 찬 것이다! 비교가 무리라는걸 알지만 하필 금은방이라니.. 청진동쯤에 최근에 세워진 그 정체불명 디자인의 오피스텔 건물도 오늘날 금은방과 더불어 종로를 빛내는 '명물'이 아닐까 싶다. 양복입은 깍두기들이 분양 찌라시 나눠주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입주는 마쳤나 모르겠다. 아.. 갑자기 깍두기가 먹고 싶다.


깜삐돌리오 언덕길을 돌아 나오니 결혼식을 마친 부부가 사진을 찍고 있다. 신부의 표정이 유독 밝다.


언덕을 내려오니 비가 또 쏟아진다. 그리고 이윽고 나타난 무지개.


어디는 비가 내리고 어디는 멈추고.. 복잡한 날씨속에 빛을 받는 건물은 베네치아 궁전. 순전히 빛 때문에 찍은 사진이다. 적잖은 이들이 로마, 또는 지중해의 태양을 보곤 하나같이 '빛'이 다르다고 입을 모으는데 어떤가? 좀 달라 보이나?


이것도 그렇고.. 어찌 생각하건 로마는 아름답다.


변덕이 유난스러웠던 오늘 하늘이 그 위로로 멋진 석양을 선사할 것 같은데 고민이다. 서둘러 스페인 광장의 언덕으로 올라가 그 광경을 감상할 것인가, 아니면 애초 계획대로 바로 코앞의 서점에서 책 사냥에 나설 것인가. 잠시 갈등 끝에 하늘이 또 어떤 변덕을 부릴지 모른다는 핑계로 석양을 포기하고 서점을 선택했다. 다리도 아프고..


석양의 아쉬움이 남아 서점 안에서 한 컷. 로마 이틀째는 바티칸이다. 요건 내일 올리자. 새해 복들 많이 받으시고 연휴의 마지막날, 알차게 보내시라. 특히 부천시민, 힘내^^  얼른 가서 놀아줘야 하는데..


우리도 떡국먹고 산다. 이 모두 로마여행의 결과.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