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마 파스타? 그런 이름의 파스타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제 저녁은 지난 파르마 여행에서 노양에게 배운 파스타를 만들어 먹었고 특별히 이름이 없으니 파르마 파스타라고 멋대로 붙여봤다. 올리브유 두르고 마늘 찧어 넣은 뒤 타기 전까지 볶다가 깡통에 든 토마토 홀을 따서 부었다. 덩어리 과육이 퍼석 하고 쏟아진다. 가위로 잘게 부셔 팔팔 끓이고 '파르마 파스타'의 대들보, 살라미를 넣어 준다.

끓는 토마토 홀만 볼때는 여간 허전한게 아니었는데 이놈을 넣어주니 드디어 묵직한 신뢰가 싹튼다. 살라미는 살짝 쪼그라들고 그 안의 느끼리한 기름은 소스 전역으로 스며들었지만 이걸로 부족하다. 우유를 살짝 부어주고 치즈(노양에 선물로 받은 파마산 한 덩이는 와인 안주로 즐겨야 하니 감히 못쓰고 이와 유사한 GRANA PADANO로 대체)도 갈아 넣었다. 토마토의 시큼함과 살라미의 느끼함, 낙농의 고소함이 드디어 완벽한 맛의 조화를 이루는 순간이다.

파스타는 뻰네. 꼬불꼬불 푸실리가 좋겠지만 없어서.. 소스가 다소 부족한가 싶어 우유를 좀 더 붇고 소금과 치즈로 마저 마무리해 냈는데도 맛의 포스가 줄지 않았다. 마늘 볶을 때 버섯을 넣어도 좋을 것 같고 접시에 낼 때 루꼴라를 얹어내면 그것도 환상궁합일 듯. 아, 먹기 전 그라나 빠다노 치즈가루도 팍팍!



Posted by dalgonaa
이딸리아 Italia 300908~2008. 11. 11. 03:54



PARMA로 가는 길. 먼지로 더러워진 창문 밖으로 포도밭이 펼쳐져 있다.


파르마 역에 도착.

파르마 여행의 컨셉은 결론적으로 '맛의 경험'이 되었다. 이는 순전히 우리를 위해 며칠 간 고민한 노양의 노력이자 배려였는데 그녀는 일찌감치 시내 식당을 물색해놨고 집에서 선보일 저녁 메뉴는 물론 아침까지도 계획해놓고 있었다. 점심시간을 살짝 넘긴 시각, 역에 도착해 노양을 만났다. 토리노에서 한 번 만났을 뿐, 속 깊은 얘기 한 번 나누지 않은 사이지만 오랜 친구 만나는 양 반가웠고 그녀도 그래 보였다. 두런두런 얘기를 주고 받으며 시내의 한 작은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진의 분량이 상당하니 이 점 참고하시길..)


파르마는 세 가지로 유명하단다. 하나는 전에도 얘기했던 대로 파마산 치즈이고 또 하나는 TV 광고에도 등장할 정도로 유명세가 높은 파르마 프로슈토, 그리고 뒤늦게 알게 된 나머지 하나는 오페라의 아버지, 베르디의 고향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베르디도 좋건 싫건 즐겼을 치즈와 프로슈토를 맛볼 기회를 맞은 셈. 노양이 안내한 곳은 파르마 사람들에겐 맛집으로 소문난 '쏘렐레 픽끼'(SORELLE PICCHI-픽끼 집안 자매들)이다. 외관은 프로슈토와 치즈를 파는 일반적인 가게지만 좀 더 안쪽으로 들어서면 작은 식당을 겸하고 있다. 파르마에선 꽤나 오래된 집이라 하고 우리 외에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 이 집에 대한 신뢰와 기대를 한껏 끌어 올렸다.

 
기다리며 이야기를 주고받거니 하는 동안 쇼윈도의 전시물을 구경해보자. 

도톰하게 썬 양파 위에 당신이 짐작하는 그것을 얹어 오븐에 구웠다. 우리가 짐작하는 것은 폴렌타(옥수수 죽?) 반죽이나 치즈를 섞은 감자 으깬 것.


우리로 치면 고로케쯤 될 것 같은 저것. 내용물도 그게 떠오르지만 분명 아닐꺼라는.. 한 입 집어먹기 좋겠지만 가격은 분명 1유로(1,700원)를 훌쩍 넘을테다.

색감의 조화속에 '먹으면 건강해져요'라고 외치는 듯한 채소들. 가지, 파프리카, 호박 구이가 있고

그 주위에 파스타, 즉 라비올리도 계시다. 라비올리 속에 뭐가 들었는지 궁금하다면 곧 등장할 사진에서 확인이야 하겠지만 맛까지는 못보여주니 쩝.. 허나 내년에 돌아가면 그 맛을 보여줄테니 너무 섭섭치 마시길.. 낄낄 

가게 안의 풍경. 선반 너머로 와인과 과일잼이 질서정연하고 

소금에 절이는 것 외에 별다른 첨가물 없이 세월만으로 숙성된 귀한 햄들이 손님을 즐겁게 기다리고 있다.
 

벽에 걸린 프로슈토와 바닥에 차곡차곡 쌓인 둥그런 파마산 치즈. 그야말로 돈 덩어리라 할 수 있는데 오랜 세월, 전통을 고수하는 장인의 손길로 만들어진, 입으로 즐기는 명작(名作)이니 섣불리 덤빌 가격이 아니다.  그 사이로 허기진 손님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저들보다 앞서 와 이미 예약을 해놓았으므로 밖에서 호출을 기다리며 사진이나 찍고 놀고 있는 중이다.

앞서 예약을 하면서 노양의 이태리어 솜씨를 접하곤 슬쩍 놀라면서 기가 죽었는데 영어로 진행되는 학교 수업 와중에도 파르마시에서 운영하는 저렴한 강좌(우리도 애초 시도했다가 경찰서 퍼미션을 받아오라는 말에 발길을 돌려야 했던 프로그램) 틈틈이 나가 익힌 솜씨라고. 애써 겸손을 펴는 노양이지만 노력의 흔적을 엿보기에 충분했고 은근히 자극제가 됐다.



20여 분을 기다려 테이블 하나를 꿰차고 앉았다. 넓지 않은 공간, 요란하지 않은 실내 장식에서 편안함과 실속이 엿보였다. 10개가 조금 넘는 테이블. 만석이 돼봐야 30명이 채 안될듯한 작은 공간이다. 사실 이태리의 많은 식당들이 이런 정도의 규모로 운영되는 곳이 많은데 아마 오래된(古) 건물에 따른 증축이나 확장공사의 어려움과 값비싼 임대료도 한몫 하는 탓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만약 운영주가 운좋게 식당을 확장해 우리나라의 회센터 마냥으로 4층짜리 건물을 통으로 터 장사를 한다면 이태리 사람들이 이를 선호할까?  한상 푸지게 먹는 것도 좋지만 RESTAURANT이 아닌 CENTER에서 밥을 먹는 우리의 정서와 비교해 본다면 이런 작고 알찬 공간이 훨씬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하나만 더 짚자면 방송출연 경력이나 유명 연예인들의 사인으로 차고 넘치는 우리 식당의 실내도 이젠 좀 바뀔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 얄팍함을 믿고 찾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꺼라고 무당집 장군상 마냥으로 빼곡히 붙여놓는지 볼 때마다 안쓰럽다. 식당 개업식 사진도 좋고 그림 좋은 달력이나 식당 직원들 가을맞이 단합대회 사진이라도 걸어 놓는게 더 정감있고 애착이 가겠건만.. 요즘들어 점차 보여지기 위한 개성이 아니라 요란하지 않게 있는 대로의 모습을 잘 살려낸 식당들도 늘어가는 듯 한데 이런 현명한 장사꾼들이 앞으로 더 많아지겠지.



다시 테이블로 돌아와서, 이태리의 경우 메뉴판 구성은 다음과 같은데 혹시 이태리 여행할 일 있을 때 익혀두면 식당에서 주문할 때 도움될테다. 대개 첫 페이지에는 안띠빠스띠(ANTIPASTI-전채들)라고 해서 식사에 앞서 간단히 즐기는 햄이나 치즈, 샐러드 등을 구성해 놓는데 치즈나 프로슈토, 또는 이를 적당히 섞어서 내놓기도 한다. 



다음으로 쁘리미삐아띠(PRIMI PIATTI-첫 번째 접시들)로 넘어가고 여기서 바로 파스타들이 등장한다. 스파게띠, 라비올리, 라자냐, 뻰네, 또르뗄리니 등, 우리에게 친숙한 그분들이 바로 여기서 각자의 기량을 뽐내시게 되고 퇴장해 주시면 바로 세꼰도삐아띠(SECONDI PIATTI-두 번째 접시들), 육류나 조류, 해물류 등의 기름진 식사가 올라와 주신다.

접시를 모두 비웠으면 후식을 먹을 차례, 디저트(DESSERT)로도 부르지만 때론 돌치(DOLCI- 앞서도 그렇고 단어 끝에 I가 붙는 이유는 복수형이기 때문. sweet의 이태리 말로 '단맛들'이란 뜻)라는 말로 대신하기도 한다. 띠라미수가 우리에게 친숙한 돌체(DOLCE-단수형)이고 이 외에도 다양한 케잌과 무스, 젤라또 등이 포진해 있다. 음료나 와인 등은 맨 뒷면에 있으며 식사 때 반주로 즐길 잔 와인의 경우 2.5유로에서 3유로, 한 병을 시키면 최소 12유로에서 부터 시작한다고 봐야 할테고 적지 않은 식당은 별도의 와인 리스트를 갖추고 메뉴판과 동시에 제공하기도 한다.

그럼 이것들을 다 주문해야 하느냐?  아니다. 이날 우리가 주문한 메뉴를 보자. 먼저 물 한 병과(유럽 어느 식당이든 물 공짜로 안준다) 딱 3잔이 나온다는 화이트 와인 작은 병을 하나, 파르마 왔으니 프로슈토를 안먹을 수 없어서 살라미를 곁들여 주는 안티파스토 한 접시(첫 사진의 첫 번째 메뉴. 셋이 각자 접시에 덜어먹으면 됨), 그리고 쁘리미삐아띠로 파스타 두 접시(세 접시가 아님)를 시켜서 역시 각자 접시에 덜어 먹었다. 제법 저렴하게 먹은거지만 그래도 계산서에는 42유로가 찍혔다. 우리돈 6만원을 훌쩍 넘은 금액이다. 이거 원망할꺼면 유럽에서 밥사먹어선 안된다. 기분좋게, 맛있게 먹자.

그럼 테이블 위로 등장하신 선수들을 차례대로 확인해보자.

어느 식당을 가나 바구니에 빵은 공짜. 모양 그대로 '꽃빵'이다. 지역마다, 또는 식당마다 내놓은 빵의 모양이 제각각인 경우가 많다. 손쉽게 모양을 꾸며 개성을 과시할 수 있으니 왜 아니겠나?

식당을 나서는 순간까지 우리를 일본인으로 생각한 웨이터 총각이 물을 따르고 있다. 노양은 그런 그를 향해 '사요나라~' 라고 인사를 건네더라는..^^ 그녀의 재치에 한 표. 사실 우리도 그렇지만 심각한 오해를 사는 일이 아니면 애써 국적문제로 왈가왈부하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다.



'말바시아'라는 품종의 스파클링 화이트 와인으로 시원하고 달콤한 맛이 식전에 즐기기에 그만이다. 역시 화이트는, 더욱이 스파클링 와인은 차게 마셔야 제격이다. 와인병답지 않게 생긴 미끈한 외관도 세련돼 보이고 가운데 베르디 선생님이 등장, 품격을 높여주신다. TERRE VERDIANE MALVASIA, '베르디의 땅에서 난 말바시아'라는 억지 해석을 내려본다.

안티파스토, MIXED ITALIAN COLD CUTS이 나왔지만 촬영이 한 템포 늦는 바람에 절반 이상이 비워졌다. 수퍼에서 싸게 파는(그것도 상대적일 뿐 결코 싸진 않다) 프로슈토의 경우 간혹 잡냄새를 내거나 비리고 질긴 경우가 적잖은데 그것들과는 쉽게 비교되는 맛이다. 잡내 없고 훨씬 덜 비리고 부드럽다. 염장한 탓에 이미 간은 베어 있으나 짜지 않아 좋고 입안에 한입 머금으면 돼지고기의 기름진 풍미와 산뜻한 허브향이 입안에 맴돌아 맛으로 양껏 즐기겠다면 지갑 꽤나 가벼워질테다. 얇게 저민 프로슈토와 살라메, 그리고 이름 까먹은 다른 종류이 햄이 살포시 접시를 덥고 있는 정도의 양으로 근수로 치면 100그램 좀 넘을까 싶은 정도.



참으로 야박하다 싶겠지만 잊지 말자. 안티파스토는 양으로 승부하는 접시가 아니라 식욕을 돋구기 위한 조연일 뿐이라는 점. 게다가 저 요리는 그 자체를 즐기기 보다는 대개 빵과 함께 즐기므로 그게 은근히 포만감을 준다. 한 가지 불편은 프로슈토가 얇으니 칼로 썰면 썰리는게 아니라 찢어진다는 점. 뜻대로 조종이 안되니 먹는 동안 어쩐지 내 꼴이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는데 적절한 연장이 있어주면 좋을 듯. 주방 차원에서 먹기좋게 손질을 할 법도 하건만 종이처럼 얇게만 저밀 뿐 다른 추가 손질을 안한다는 점은 어쩌면 고급 재료를 있는 그대로의 맛으로, 혹은 속임없이 대접한다는 의도가 깔려있는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보기도..

부지런히 먹고 와인 한 잔 머금어 주고..



안티파스토를 끝내자 새로운 접시로 교체된다. 없던 숟가락이 새로이 등장하셨는데..

바로 요놈 때문. 이제 쁘리마삐아띠(첫 번째 접시) 순서로 주인공의 이름은 SMALL RAVIOLI TYPE IN BROTH로 '육수속의 작은 라비올리' 정도 되겠다. 맛? 갈비탕집의 탕국물을 그대로 퍼 담은 국물에 치즈와 고기를 소로 품은 라비올리를 넣었으니 그 맛이 짐작이 되려나? 라비올리는 피가 단단히 물려져 있으니 소가 국물과 섞이는 일은 없다. 국물만 떠먹으면 의심할 여지없이 짭짤하고 진한 갈비탕이나 라비올리와 함께 떠먹으면 전혀 새로운 맛이 된다. 낯선 조화가 나쁘진 않았지만 사실 입안은 친숙한 갈비탕 국물맛으로 인해 라비올리의 맛이 자꾸 낯선 이방인으로 취급되는 형국이 돼버렸다. 그 모호함은 꽤 오래갔다.

이런 식의 맑은 수프로 즐기는 라비올리는 이곳 파르마가 속한 주(州) 에밀라 로마냐(EMILA-ROMAGNA) 지방에서 즐기는 별식이라고..


제법 친숙한 모양의 라비올리. 넓은 파스타에 돼지고기나 모짜렐라, 혹은 파마산 치즈를 섞거나 개별 소로 넣어 다시 파스타를 덮은 뒤 톱칼로 잘라내는 것으로 완성되는, 간단하고(?) 그래서 대중적인 모양의 라비올리 되겠다. 물론 요즘엔 우리가 가정에서 냉동만두를 사먹듯 이탈리아에서도 완제품으로 나온 라비올리를 사먹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지만 그 가격은 우리가 손쉽게 사먹는 만두 가격의 개념보다 훨씬 비싸다.


속을 살피니 연한 분홍빛의 소가 숨어있고 그 맛은 단호박. 그냥 단호박만이 아니라 달콤함과 부드러움을 배가시켜 줄 재료를 섞어 넣어 호박의 맛이 한결 진하다. 따라서 메뉴 이름 역시 SQUASH FILLED RAVIOLI (WITH ZUCCA), '으깬 호박 소를 넣은 라비올리' 되겠다. 이 맛이 친숙했던 이유는 베로나에 도착한 첫 날, 엔리코와 엘리자베타가 이끄는 식당에서 먹는 라비올리 역시 바로 이 맛이었기 때문. 

최근 텔레비전에선 PARMA 프로슈토 광고가 한창이니 그래서 더 친숙한 PARMA. 가게 진열대마다 자신들의 자부심을 자랑스럽게 걸어놓고 있다.

다시 거리로 나섰다. 퇴적된 시간이 촘촘한 돌사이에 이끼처럼 끼어있는 거리를 어슬렁 어슬렁 걸어 노양의 집으로 향했다. 5시만 되면 주위는 금새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것이 요즘의 이곳이다. 중세를 '암흑의 시대'이라고도 부르는데 5시만 되면 어두워지기 때문에 그런 것은 물론 아니다 -.-  허나 구름끼고 어두워지는 요즘을 보노라면 당시의 불길하고 음울한 정취를 느끼기에 딱 좋지 않나 싶고 그래서 이 때마다 묘한 판타지에 젖어보려 애쓰곤 한다. 그레고리 성가대의 낮고 으스스한 합창, 촛불을 밝혔으나 여전히 어두운 성당, 그 뒤로 보이는 예수와 그 아래 무릎꿇고 도열한 수도사들. 그리고 내일 있을 마녀 화형식에 쓰일 장작이 쌓여가는 소리 등등.. 

Posted by dalgonaa
이딸리아 Italia 300908~2008. 11. 6. 08:43

그저께, 집에서 버스로 5분 거리의 '에쎄룽가'라는 수퍼에서 삼겹살을 사왔다. 삼겹살은 우리가 즐기는 그것과 거의 똑같다. 몰타에서 즐기던 삼겹살은 애기 팔뚝만한 고깃덩이에 갈빗대가 하나 붙어 있어 제대로 맛보려면 초벌구이를 해서 뼈를 발라내고 다시 칼로 적당히 썰어 마저 굽는 대단히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했는데 이태리 삼겹살은 깔끔하게 모양까지 잡아 판매하고 있다.

260그램에 우리돈 2천원을 조금 못받으니 한국보다 저렴하다. 불판에서 익어가는 돼지 뱃기름의 고소한 맛을 이곳 사람들은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그 맛을 높이 치지 않는 것인지, 수요가 많지 않으니 가격이 쌀테다. 대신 이들에겐 우리가 별로 쳐주지 않아 가공소세지로나 만들어 먹는 돼지 뒷다리살을 염장 숙성해 즐기는 프로슈토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같은 재료를 갖고서 어쩜 저리 다른 문화로 갈라지는지 그 비밀을 캐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테다.

프로슈토는 이미 우리가 맛을 봤으니 알겠고(물론 그 깊은 맛을 즐기는데는 좀 더 시간이 걸리겠지만) 기회되면 삼겹살을 한 번 더 사다가 이곳 친구들에게 한 번 먹여봐야겠다. 파채를 곁들여도 좋을테고 기름장도 좋겠지. 꼭 빼먹지 말아야 할 것은 쌈으로 싸서 먹여보는 것. 마늘과 고추도 싸먹이면 좋겠지만 이건 선택으로 남겨두고 다만 고추장은 맛의 핵심이니 빼먹어선 안될테다.

사실 낯선 맛을 보인다는게 문화를 소개하는 것인데 그렇다면 불판을 가운데 놓고 직접 구어가며 먹는 것이 제 맛을 즐기는 방법이면서 그 식문화를 제대로 체험하는 것이겠지만 아무래도 여기는 한계가 있다. 사실 한국의 고기맛이란 구워먹는 행위 빼면 참으로 싱겁기 짝이 없지 않던가?  특히 우리에겐 너무 익숙해 하찮게 지나치는 테이블 가운데 둥근 뚜껑, 그걸 경험하지 못한 이들은 미스테리에서 헤어나올 방법이 없다.

김군이 생애 최초로(?) 담가본 김치. 배추, 무, 젓갈, 마늘, 생강 다 있는데 결정적으로 고춧가루가 없다. 조금 남은 놈을 저기에 쏟아붇기 두려워 근처 필리피노 상점에서 인도산 고춧가루를 5분간 살펴보고 구입해 넣었다. 빨갛다고 다 같은 고춧가루가 아닌데 어떤 건 독특한 향을 내뿜기 때문에 잘못 사면 돈만 버리고 만다. 다행히 별다른 향 없이 제대로 매운 고춧가루다. 근데 무슨 고추인지 모르겠지만 너무 맵다.

결국 백김치도 아닌 어중간한 김치가 탄생했지만 이틀 정도 익혀 먹으니 그런대로 맛이 난다. 허나 이태리까지 와서 김치나 담가먹는 식생활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슬쩍 돌아보게 되더라는..  베로나를 벗어나 토스카나나 남부로 내려가게 될 즈음엔 가가호호(?)를 방문해 그들의 손맛을 엿보게 될텐데(과연?..) 우리도 줄 것이 있어야 할테니 그때를 대비한 훈련과정이라고 핑계를 대본다. 특히 불고기와 계란말이, 김밥, 부침개를 우리의 필살기로 삼아보려 하는데 혹시 추가할게 있을까?


오늘 목요일, 1박 일정으로 PARMA에 다녀온다. 베로나에서 남쪽으로 차를 몰아 1시간이면 족히 당도할 동네지만 기차를 타면 좀 더 아랫동네인 MODENA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거슬러 올라오는 탓에 2시간 반이나 걸리는 가깝고도 먼 동네다. 당연히 기차타고 간다.  PARMA, 어딘가 익숙한 이 이름.. 그렇다. 바로 피자나 파스타에 뿌려먹는 그것, 파마산 치즈의 원조 동네 되시겠다. 우리나라에서 '파마산'이라 부르는 이 이름의 유래가 혹시 PARMA산(産)을 나타내는 말인가 했는데 이탈리아 말로 '빠르미지아노'(PARMIGIANO-파르마 사람)를 영어식으로 발음한 PARMASAN에서 따온 말이라고.  파마산 치즈가 궁금하다면 꾸욱.

파르마를 찾는 이유는 지난 토리노 여행중에 만난, 바로 위 '꾸욱'의 주인을 만나기 위해서다. 한국에 있는 동안 음식관련 분야서 일하다 좀 더 배우고자 이탈리아를 찾았고 그 가운데서도 아는 사람들에겐 이미 명성이 자자한 '식문화 종합대학(UNIVERSITA DEGLI STUDI DI SCIENZE GASTRONOMICHE)'에서 1년간 수학했다 하니 그 이야기를 듣지 않을 수가 없어서다. 더욱이 그녀가 다음주에 한국으로 귀국한다 하여 발길을 서둘렀다. 마침 그녀가 사는 집의 룸메이트가 일찍 방을 비워 숙박이 해결돼 발걸음이 더욱 가볍다. PARMA 고유의 치즈에 와인을 곁들여 즐길 점심이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종합식문화대학은 이탈리아 정부가 돈을 대고 슬로푸드협회가 운영하는 대학으로 국제슬로푸드협회장이 교장(CARLO PETRINI 라고 노구에서 뿜어내는 카리스마와 열정이 장난 아닌 할아버지)을 맡고 있기도 한데 이 대학이 특별한 이유는 단지 미식가를 키워내는 곳이 아니라 GOOD, CLEAN, FAIR라는 슬로푸드 이념에 입각한 식문화를 가르치는 곳이라는 점 때문이다. 이는 곧 자연과의 공생, 종(種)의 보존, 식재료 본연의 맛과 산업화로 사라져가는 지역별 고유 맛의 발굴과 보존 등, 다분히 진보적 이념에 입각한 관점에서 먹는 문제를 다루는 특이한 공간이란 얘기다. 

이런 훌륭한 곳이 수업료도 좀 싸면 좋겠지만 1년 수업료로 4천만원이라는 큰돈이 든다. 허나 숙박과 식사를 비롯한 일체의 체류비용이 포함되고 무엇보다 50일 가량은 유럽 전역을 돌며 생산자를 만나고 맛을 보고 현지 풍토와 문화를 몸소 겪는 실질적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 학생들로 부터 반향이 높다고. 파르마의 대학원 과정이 이렇고 피에폰테의 BRA에 있는 또 다른 캠퍼스는 4년의 정규 학사과정을 밟을 수 있는데 여기선 이탈리아, 유럽을 거쳐 전세계를 도는 한 차원 높은 프로그램을 운영한단다. 물론 학비는 더 비싸다. 허나 1년의 공부를 마친 그녀는 '과연 학교가 이 돈으로도 남는게 있을까 싶을 정도로 수업료 이상의 것을 얻고 간다'며 만족감과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러니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얘기를 안들을 수가 없다.

가자! 덜컹덜컹 기차타고 가을 정취 감상하며 한때 파마산 치즈의 원조자격을 잃을까 가슴 쓸어내려야 했던 사람들이 사는 곳, 파르마로~!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