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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딸리아 Italia 300908~2008. 11. 2. 19:51


토리노에 대해 아는 것은 오래전 동계올림픽이 열린 곳이라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후 슬로푸드 축제가 열리는 곳으로 더 유명해졌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됐지만 무엇을 알고 있건 어쨌든 초행길이나 모든 것이 낯설었다. 오후 5시, 베로나를 출발해 밤 11시가 되어 토리노에 도착하니 누가 했다는 말대로 그 큰 도시가 쥐죽은 듯 조용하다. 해만 지면 집안에 꼭꼭 숨어버리는 곳이 이곳이라나.. 말대로 역 주변으로 바삐 짐을 끌고 발길을 서두는 사람들만이 보일 뿐 그 외엔 빈 택시 뿐이다. 한결 쌀쌀해진 공기가 몸을 더 움츠러들게 했다.

>> 이태리 열차의 내부. 늦은 시간, 혹은 못믿을 기차(?)라 그런지 이용객이 많지 않다. 좌석은 몸이 약간 꽂꽂하게 세워지는 자세라 다소 불편하고 특이하게도 재질 전체가 단단한 스펀지 느낌이다.

베로나를 떠나기 전, 구글어스로 역과 숙소간의 거리를 미리 가늠해 둬 여차하면 걸어가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늦음, 피곤, 어둠, 위험 등의 갖가지 이유로 이는 일찌감치 포기하고 트램도 제껴버린 뒤 과감히 택시를 잡아 탔다. 역시 줄지어 대기하는 택시를 잡아타는 일은 참으로 간편하고 그렇게 속 편할 수 없다.

우리나라의 기본요금이 지금은 2천원 하나? 여긴 4유로가 조금 넘으니 7천원 되시겠다. 미터 바뀌는 속도는 비슷하지만 역시 요금 체계가 달라 결국 13유로 정도의 요금이 나왔다. 2만원. 한국에서라면 5천원이면 닿을 거리. 속편한 값치곤 꽤나 비싸지만 점차 이런 식의 비교가 무의미하고 오히려 속만 버린다는 것을 아는 지라 점차 이곳 물가를 군말없이 받아 들이고 있다. 한국보다 물가가 싸면 돈쓰는 재미에 빠져 이것저것 질르고 계산해보며 잔재미를 즐기겠지만 여긴 그런 재미란 없는 곳이니 그저 무덤덤해 질 뿐이고 오히려 한국의 환율 사정에 더 신경이 쓰이는 것이 사실이다.

이왕 돈 얘기가 나왔으니 총 경비에 대핸 잠깐 얘기하자면 5박 6일 동안 100만원에 조금 넘는 돈을 썼다.
70만원 가량이 5일 밤을 묵은 호텔비용이고 나머지 30만원이 기차비를 포함한 교통비다. 밥먹을 시간이 없어 내내 행사장의 프레스들을 위한 BAR에서 사과와 케잌 등으로만 허기를 때우다가 어느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있는 PIZZERIA에서 피자 한 판을 가져다 먹었고 또 하루는 파스타를 시켜 먹은게 식사비의 전부.

>> 포장 박스 디자인이 거의 집앞 '똘이네 피자' 분위기다. BUON APPETITO = 맛있게 드세요.
뚜껑을 열면..



>> 떡을 연상시키는 작은 접시 크기의 피자가 떡 하니 모습을 나타낸다. 폭신폭신한 피자는 한국 떠나서 처음. 메뉴를 고르던 중 'TORINESE', 즉 토리노 사람들이라는 뜻의 메뉴를 보고 선뜻 시킨 것으로 냉동 아스파라거스가 토핑의 핵심이고 그 위에 아저씨가 매콤한 기름을 잔뜩 부어줬다. 그래서 바닥이 기름으로 흥건. 이태리에서 핫소스란 타바스코가 아니라 페페론치니를 듬뿍 재워둔 올리브유를 말한다. 기름진 구성과 두께에 처음엔 다소 엄두가 안났으나 맛을 보니 의외로 산뜻했고 아삭하게 씹히는 아스파라거스도 조화가 좋았다. 강양은 그래도 꺼리더라는.. 

파스타 한 접시가 대략 8유로, 우리돈으로 13,000원 정도 되겠다. 달랑 파스타만 시켜먹기가 좀 곤란한 것이 이곳 정서이니 스프리츠나 와인, 맥주 정도 따위를 시켜 마시는데 500cc 맥주 한 잔 마시면 그게 또 5천원 정도. 이는 토리노만의 사정은 아니고 밀라노, 베로나 어디나 비슷하다. 가난한 여행자라면 몇 번 경험만 보고 발길을 끊는 것이 현명하다 하겠다.

숙소는 더 끔찍한데 별 3개짜리 호텔이라지만 우리나라의 웬만한 모텔보다 못하다. 우선 좁다. 더블침대 두개 놓으면 짐 내려놓을 공간이 없을 넓이. 화장실 변기에 앉으면 무릎이 샤워부스에 닿아 다리를 살짝 접어야 한다. 화장실 일 볼 때 만큼은 아무런 방해도 없어야 하건만..

우리나라 모텔의 경우 복도에서 문을 열고 들어서고 또 하나의 문을 열어야 비로소 방에 도착하는데 여긴 문 열면 바로 침대다. 어쩌다 문이 열려 지나가는 현지 사람과 런닝 차림으로 눈이 마주치면 참으로 난감할 구조. 그래서 하룻밤 80유로니 13만원 정도 되시겠다. 그나마 싼 집을 고르고 고르다 이 집을 온 것이니 말해 뭣하랴. 이틀을 그 가격에 묵고 나중에 알고 보니 아침식사를 빼면 10유로가 깎인다고 해서 3일밤은 70유로에 묵었다. BATHROOM이 없는 방, 즉 공동화장실과 샤워실을 쓰는 방도 있다는데(별 3개 맞어?) 그건 55유로라고.

뷔페식 아침을 제공한다는 홈페이지 내용에 살짝 기대를 했으나 막상 '상'을 접하니 실망이다. 심하게 어둡다 싶은 조명아래 잼, 좀 더 우아한 표현으로는 마멜레이드가 든 크로와상과 누뗄라 라는 초코잼이 든 패스츄리, 그리고 쿠키와 케잌과 오렌지 주스를 접시에 담아다 먹는다. 여기에 에스프레소 한 잔. 

하지만 이것이 이태리의 전형적인 아침식사이니 어쩌랴. 그러니 우리가 아침식사를 숙박비에서 뺐지. 어차피 40분 후 행사장 PRESS BAR에 도착하면 무농약 사과와 주스, 아이스크림, 빵, 케잌, 쿠키, 치즈, 살라미와 프로슈토, 그리고 맥주와 와인을 양껏 먹을 수 있는걸. 물론 공짜로. 

암튼 나중에 마신 물값까지 2유로를 더 내고 이 호텔을 빠져 나왔다. 딱 하나 맘에 들었던 건 매일 깨끗하게 갈아주는 침대 시트. 근데 이건 기본 아니던가? 짐작컨데 토리노의 많은 호텔들이 이 호텔과 비슷하지 싶다.

>> 프레스 BAR의 내부. 의자가 특이한데 사용기한이 지난 와인숙성통을 분해해 의자로 만들었고 단단한 종이박스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앉는 용도로는 절대 구겨지거나 부서지지 않는다. 모두 재활용 컨셉.


>> 모든 테이블 마다 이런 접시가.. 바삭거리는 빵같은 먹거리와 치즈, 그리고 프로슈토와 살라메(소시지)를 깍둑썰기해 냈는데 빵과 프로슈토, 치즈를 한 입에 넣으면 이태리 '삼합' 되시겠다. 



>> 그리고 와인. 많은 양은 아니지만 오가면서 심심찮게 마셨다. 일 하는 중에 술을 마신다는 것은 쉽게 인정되지 않는 정서지만 와인은 그것을 가능케 하는 술이다. 폭음을 즐기는 우리의 음주문화와 다른 탓도 있으리라.  


숙소와 행사장은 버스와 지하철을 번갈아 타며 오갔는데 직사각형의 1유로 티켓을 끊으면 한쪽 방향은 지하철 탈 때 통과시키고 반대 방향은 버스탈 때 찍으면 된다. 버스와 지하철의 요금체계에는 만족했으나 택시는 역시 비싸다. 마지막 날, 짐이 많아 콜택시를 불렀더니 기본요금이 11,000원에서부터 시작한다.

행사 첫 날에 대해 간략히(?) 쓰면 평범한 관람객으로 5일간의 행사 전부를 관람하겠다면 총 60유로의 티켓값을 지불해야 했지만 우리는 프레스 ID를 받을 수 있었다. 프리랜서라고만 밝히기엔 좀 부족하다 싶어 준비한 카드는 김군의 전 직장 명함과 이래저래 인연이 있는 모 방송국의 이름. 허나 일찌기 이런 행사장에서의 프레스 운영이 어떠한지 아는지라 프레스 받는 것이 어렵지 않으리라 예상했는데 다행히 예상대로였다.

>> 프레스 ID를 받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

사실 이런 환경에서 가장 강력한 신빙성은 장비다. 마이크용 붐대까지 가져갈까 하다가 그건 좀 아니다 싶어 빼고 트라이포드와 비디오캠, 스틸 카메라, 와이어리스만 챙겼는데 프레스 신청 데스크 앞에서 보란 듯이 주렁주렁 달고 있으니 긴 말이 필요없다.

문을 통과해 먼저 프레스룸을 찾아갔다. 서너명의 담당자가 분주하다. 몇 가지 물으니 프레스키트 라며 각종 안내책자와 스케줄표, 지도 등이 담긴 헝겊 가방을 건네준다. 5일간 행사의 정보가 집약된 가방이다. 스케줄표를 보니 총 5장. 하루하루마다의 스케줄이 자세히 소개돼 있는데 각 스케줄표는 A4용지 8면에 걸쳐 빼곡한 글씨로 오전 11시부터 밤 11시까지의 행사일정을 시간대 별로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오전 11시대에 진행되는 이벤트만 살피니 11개, 이 시간에도 관람객이 있을까 싶은 밤 8시에도 5개의 이벤트가 열린다. 일일이 세보진 않았지만 몇 가지 반복되는 행사를 빼더라도 하루에 새롭게 진행되는 이벤트만 적어도 30개에 이른다. 공식적인게 이렇고 각국의 거리 음악 공연이나 각 지역에서 무슨무슨 단체 사람들이 몰려와 벌이는 즉석 이벤트 따위까지 포함하면 얼마가 될지 도무지 알 수 없다. 

거기에 총 400개가 넘는 부스에서 저마다의 고유한 식재료와 음식을 갖고 나와 사람들 발길을 붙잡으니 이 행사를 하룻만에 살피는 것은 완벽하게 불가능하다. 보고 냄새맡고 맛보고 생산자와 얘기까지 좀 나누려면 5일로 과연 충분할까 의심이 들 지경. 끼니조차 챙길 여유가 없었다는 앞서 우리의 볼멘소리는 결코 엄살이 아니다.

>> 열심히.. 그러다 지치면..


>> 역시 재활용 컨셉으로 마련된 간이 의자. 신문지를 말아 단단히 묶어내니 제법 쓸만한 의자가 된다. 그래도 의자다운 의자가 좋다는 저 아저씨.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