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고기'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8.08.30 Gozitan의 식탁

몰타는 크게 몰타섬과 고조섬으로 나뉜다. 듣자하니 몰타섬에 사는 사람들이 주말이면 고조섬으로 놀러가는 반면 고조 사람들은 결코 몰타로 건너오는 일은 없다고 한다. 과장이 섞였을 얘기에 언뜻 배타적 냄새가 풍기는 것 같아 살짝 경계도 가지만 놀러오는 사람들에게 해꼬지하는 일은 없다고 한다. (아무렴!)  무엇보다 이미 그곳을 다녀온 다른 한국 친구들의 감상평을 듣자면 여행의 관점에선 몰타보다 매력적이라고 하니 몰타를 떠나기 전에 꼭 한 번 방문해봐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사실 학원 일정만 마무리되면 떠나기 전까지 이곳저곳 한 꺼번에 몰아 구경다닐 계획이어서 그날을 벼르고 있기도 하다.

고조를 아직 가보진 못하고 있지만 고조사람이 운영하는 식당에는 한 번 다녀왔다. 이번엔 그곳에서 즐겼던(?) 음식을 사진으로 소개하려고 한다.

때는 2주 전이고 장소는 GOZITAN이라고 하는 식당이다. 눈치챘겠지만 '고지탄'은 고조 사람들을 부르는 말이다. 참고로 몰타 사람들은 '몰티즈'라고 부른다. 이곳은 한 마디로 고조사람이 고조음식을 파는 식당 되겠다. 간판도 그것을 강조한다.



간판은 몰타 국기에서 따왔고 섬문양과 오른쪽 글씨면 빼면 곧바로 몰타 국기가 된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애초 몰타 국기는 적색과 흰색의 단순한 구성이었는데 2차 대전때 연합군에 가세해 싸운 공로를 인정받아 영국 국왕 존 6세가 '세인트 조지'라는 십자가를 내려줬고 그것을 국기에다가 새겨 넣었다고.. 아무튼, 전라도 어느 식당이 태극기를 간판으로 내걸었다면 좀 가기가 꺼려지겠지만 문화적 차이겠거니 하며 일단..

이날 GOZITAN에서의 식사는 김군 반의 친구인 알리시아가 2주간의 수업을 마치고 현재 살고있는 스페인 마드리드로 떠나기 때문에 작은 환송파티 겸 향토음식 한 번 먹어보자는데 의견이 모아져서 마련된 자리였다. 아래 여자가 알리시아 되시겠다.



50을 갓 넘긴 그녀, 여전히 젊을 때의 에너지를 간직하고 있다. 오른 쪽은 역시 마드리드 사는 하비야. 그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고 있고 퇴직하면 영화감독을 하겠단다. 틈만 나면 영화와 페드로 알모도바르에 대해 떠들길 좋아하는 그는 이날도 식사중 엄청 떠들었지만 무슨 이야긴지는 잘 못알아 들었다.  



첫 번째로 나온 것은 소스와 빵. 토마토를 진하게 조려낸 일종의 페이스트와 나머지 하나는 치즈의 풍미가 연하게 느껴지는 소스. 바구니에 빵도 담겨나왔으니 당장 허기진 사람들은 먼저 저걸로 속을 달래주면 되겠다. 맛? 글쎄.. 시간이 좀 흐른 탓인지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썩 맛나거나 특별히 남는 인상은 없다. 어쩌면 그 맛을 천천히 음미할 시도도 하기 전에 아마도 바로 다음 접시가 식탁에 올려져 관심에서 밀려난 것일 수도..



어떤가? 일종의 전채(Starter)인 셈인데 사실 처음에 접시를 접하고 주변을 빙 두루고 있는 과자에 살짝 놀랐다. '워터비스켓'이라 부르는 저 과자는 몰타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즐기는 비스켓으로 수퍼에도 한쪽에 봉지들이 쌓여 있고 그 맛은 참크래커 보다도 훨씬 건조하고 딱딱하며 별다른 맛이 없다. 말 그대로 물만 넣어 반죽해 구워낸 비스켓이다. 식당에서 저 비스켓을 접한 느낌은 전주 한정식집에서 느닷없이 쌀강정이 식전에 나온 느낌이랄까..  그래도 당혹감을 감추고 신기하다는 얼굴로 군말없이 먹는다.

앞의 붉은 소스는 역시 토마토가 주 재료고 진한 고기육수와 몇 가지 채소 및 향신료를 넣고 함께 쫄여 굳혔는지 간간하면서 재료들과 어우러지는 맛이 좋다. 특히 제법 느껴지는 매콤함 맛은 입안에 오랜 여운을 남겼는데 와드득 거리는 저놈의 워터비스켓이 아니라 가령 부드러운 바게뜨였다면 그 진가가 더욱 돋보일테다. 좀 더 연구해서 스프 따위로 내놓아도 훌륭할텐데.. (전통을 조금 덜 고집하는 것도 때론 손님에게 좋다)

가운데 생모짜렐라 치즈는 단단한 두부같은 질감에 맛은 평범하고 그 옆에 거무튀튀한 것은 파프리카를 말려 올리브유에 절여낸 것이 아닐까 추측되는 것으로 맛은 씁쓸하면서 다소 짜다. 그 뒤로 된장빛깔을 띄는 소스는 그야말로 된장을 연상시키는데 아니나 다를까 콩을 쑤어 반죽해 낸 음식이라고. 이 역시 고조뿐만 아니라 몰타섬 사람들도 즐기는 전통 음식의 하나. 그러나 그 맛은 별 신통함이 없다. 콩의 고소함도 잘 안느껴지고 우리 먹는 된장처럼 숙성의 맛도 아니고, 뭔가 시작은 했는데 그 결말이 뭔지 알 수 없는 '혼미건조'한 맛..  저 음식은 끝까지 저 모습을 유지했다.



리코타 치즈를 튀김옷을 입혀 튀겨냈다. 많이 익히면 치즈가 녹아 흐를텐데 이것은 제 형태를 유지했다. 뭐가 맞는 걸지 궁금하지만 일단 썰어 먹어본다. 씹히는 식감도 있고 제법 괜찮다. 고칼로리 치즈를 튀겨냈으니 칼로리 꽤 나가지 싶다.



메인을 생선과 고기 두 종류로 시켰는데 먼저 생선이 나왔다. 생선만은 아니고 보는 것 처럼 일반적인 해산물이 함께 요리되어 나왔다.  가운데 문어, 살짝 데친 것을 그늘에서 꾸덕하게 말린 뒤 이를 다시 짭짤한 소스에 조렸을 것으로 추측. 양념이 아니더라도 문어는 그 자체로 맛이 훌륭한 식재료다. 일전에 꾸덕하게 말린 문어를 그릴에 타지 않을 정도로 구워 단지 올리브유와 허브만을 뿌려 먹는 것을 TV에서 본 적 있는데 요란한 양념없이 즐기는 그 맛과 멋이 지금도 뇌리에 선명하다. 이날 문어도 맛있었지만 양념을 줄여 좀 더 담백하게 즐기면 좋았을 터.

턱 낮은 팬에 버터 두루고 화이트 와인 냅다 뿌려가며 쎈 불에 조렸을 홍합, 그 맛이 문어보다 좋다. 그 자체로 뚜렷한 맛을 내는 식재료는 요란한 양념을 피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홍합이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 저 뒤로 오징어도 보이는데 그 양이 턱없이 적어 어느 순간 보니 남은게 없더라는.. 그리고 접시의 가장 든든한 맡형격인 생선. 그 이름은 모르겠으나 맛은 서해안에서 잡히는 부서와 거의 같다.(그리고 보니 생김새도 비슷하다. 부서는 조기 대신 제삿상에도 자주 올라는 생선으로 짧은 시간 구워내면 퍽퍽한 뽀얀 살이 감칠맛이 좋으며 밥반찬으로도 으뜸)

특별한 양념은 없고 다소 싱겁게 간한 뒤 화이트 와인 뿌려 오븐에서 익혔을 것으로 추정. 저 생선을 정확히 4등분 해 4명이 나눠 먹는다. (이날 인원은 뒤늦게 합류한 강사까지 포함해 총 9명)



포크와 나이프를 이용, 능숙한 솜씨로 생선을 손질하는 훌리오. 그는 여자친구 스텔라와 함께 스페인 바로셀로나에서 왔다. 맞은 편 대머리 총각은 아까 경제학 교수의 제자이자 친구이자 직장 동료라고..



요령은 간단하다. 먼저 생선 껍질을 살살 벗긴 뒤 가운데 뼈를 따라 나이프로 슥슥 편을 가른다. 그리고 얌전히 살을 떠내 접에서 담으면 그만. 요렇게..



4명이 나눠 먹으니 그 양은 보잘 것이 없다. 양념 또한 특별한 것이 없으니 맛은 평범한 생선의 맛. 건조하고 햇살 좋은 이곳의 환경이면 우리처럼 생선을 말려 다양하게 조리할만도 한데 고조에선 그런 요리법은 없는 듯 하다. (유럽 전체가 없지 싶다) 단지 저런 식의 살점을 즐기는 것이 이곳의 생선요리라면 가자미는 대단히 환영받을 생선일 듯.
 


또 다른 메인인 고기요리. 먹는데 다소간의 용기가 필요한 비주얼로 담겨 나왔다. 접시에 담긴 동물은 세 가지. 양, 닭, 토끼(혹은 고양이). 솟은 다리의 주인공이 토끼인데 항간의 말로 고양이를 대신 쓰는 집도 있다고 한다. 몰타엔 고양이가 정말 많다. 설마.. 하며 토끼라 믿고 먹어준다. 이곳을 찾은 외국인들은 토끼 고기라면 인상부터 쓴다. 솟은 저 다리는 누구도 건들지 않고 김군은 살점이 제법 두둑해 보이는 몸통 부위를 얌전히 가져다 살금살금 썰어 먹는다.

맛은 닭고기와 흡사하다. 육질도 닭고기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결이 있고 다만 퍽퍽하다. 비법 양념까진 아니고 몇 가지 재료를 섞어 양념을 입힌 것으로 보이지만 특별한 맛은 없다. 다만 닭고기와 양고기의 경우 짭쪼름한 양념맛이 배어 있어 토끼고기에 비해 그런대로 먹을하다.



접시를 돌리니 토끼 다리와 몸통에 가려있던 닭고기와 양고기 등장. 촉촉한 양념이 육즙과 함께 묻어난다. 그러나 우리 입맛에서 보자면 여전히 아쉽다. 토끼고기는 저대로 간다면 이 섬나라에서만 즐기는 '괴상한' 음식으로 남지 싶다. (물론 토끼고기를 먹는 나라는 꽤 많다. 영국도 먹는다. 그 요리법이 어떠할지는 모르겠지만)



후식의 등장. 호두맛이 나는 아이스크림과 아이스크림같지 않게 촉촉한 과자를 뭉쳐놓은 듯한 아이스크림, 그리고 페스츄리의 저 어디쯤으로 추측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삼각형의 저것들. 한결같이 달고 맛이 좋다. 후식은 터키가 첨단이라는데 그곳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일전에 터키에서 온 여성에게 '터키가면 뭘 꼭 먹어야 하느냐'고 묻자 4가지를 적어줬는데 그 중 3가지가 후식이었다.

앞서의 포스팅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몰타는 이슬람과 기독교의 충돌이 빈번했던 섬이다. 한때 이슬람의 영향아래 있기도 했으니 당시의 양식은 음식에도 남아있음이 분명하다. 터키가 쓸만한 것을 남겨놓고 갔다.



와인 싫컷 마시고.. 이날 밥값의 절반 가까이를 와인이 차지했다. 몰티즈 와인이지만 포도는 이태리산을 쓴다고.. 몰타는 와인용 포도가 기후탓에 잘 자라지 않는다. 넉 달째 비를 못보고 사는 나라니..



이 사람이 바로 Gozitan, 식당의 주인이다. 반쯤 감긴 눈, 걸걸한 목소리와 억센 팔 뚝, 지중해의 억척스러움이 잔뜩 뭍어난다. 벽 한쪽 세워져 있던 GOZO 화보책을 꺼내들고 열심히 넘겨가며 고조 자랑에 몰두한 뒤 갑자기 기분이 동했는지 일행들에게 칵테일 한 잔씩을 공짜로 돌리는 인심을 발휘하기도..  

하지만 5병이나 비운 와인도, 막판의 공짜 칵테일도, 워터비스켓을 시작으로 이어진 수분없는 '뻑뻑한' 식사의 목맥힘을 시원하게 뚫어주진 못했다. 이방인들을 사로잡는 특별한 맛은 없었다. 우리 모두는 고기를 많이 남겼고 그런 용서 받지 못할(?) 음식에 대한 예의는 1인당 32유로(한국돈 47,000원)라는 예상치 못한 금액으로 엉뚱한 보복을 가해왔다. 이것이 비단 우리 두 사람만(이날은 강양도 동행)이 느끼는 억울함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고조의 음식이 이날 식탁에 올라온 것만은 물론 아닐테다. 보다 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엄선된 음식들이 제 입맛에 맞는 사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테다. 그러나 우리로선 '못찾은 맛'을 다시 찾아나설 용기도 없고 꼭 그래야 할 이유도 없다. 고조는 한 번으로 충분하다.



인근 Bar로 이동해 목 좀 축이고.. 그리고 모두들 각자의 집으로..
(냉장고에 뭐 꺼내먹을게 있더라..)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