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럽'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3.01.14 새해근황 4
한국 Korea 160409~2013. 1. 14. 11:40

2차 멘붕도 어느정도 진정된 요즘.

텔레비전 뉴스는 거의 안보기도 하고 

포털의 뉴스검색도 하지 않으니 그런가 싶은데

갑자기 쓰러진 몸을 요양하기 위해 산깊은 곳에서

맑은 공기만 마시며 세상 끊고 사는 것 같아서 그런거겠지.

뉴스를 보면 다시 발작을 일으킬까 두려운..



+++



겨울메뉴로 내는 볼로네제의 라구 소스가 3년만에 만족스러워졌다.

주방에서 함께 일하는 쏭지에게 내가 원하는 맛에서 85점 수준에 도달한거 같다고도 말했다.

처음 시도했을 때는 50점도 안되는 맛이었고

최근까지도 70점이 못됐다고 나름 평가해왔는데

이제 라구 소스에 대해선 내 자신에게 작은 칭찬정도는 해도 될 듯.

더불어 손님들에게도 좀 더 자신감이 생겼으니

혹여 맛없다고 포크 내려놓는 이가 있다면 보다 당당하게

'그래도 돈은 내고 가슈'

라고 할 수 있겠다 ^^.


헌데 쏭지가 '근데 목수님(날 부르는 호칭)의 라구 기준은 뭐에요?'라는 질문에

잠깐 고민하다 

'내 머릿속 상상의 맛?'

이라고 대답. 




+++




우리가 가게를 시작하기 전부터 옆에서 장사를 하던 옷가게가 

인상된 월세를 이기지 못하고 인근으로 이사했다.

그간 자잘한 음식과 선물 따위로 친목을 나누던 사이였는데..

이사하면서 버리고 갈 것들 중 일부를 내게 양도했는데

민속주점에나 어울릴법한 큰 통나무를 그대로 잘라낸 의자(?)와

잘라낸 자작나무에 가짜 나뭇잎을 덧붙인 인테리어용 나무 등이 그것.

마땅히 둘 곳도 없어 주차장 한켠에 가지런히 세워놨다. 

아무리 찬바람에 흰눈이 내려도 주차장은 봄일세.

이사때 빌려간 내 전동공구는 돌려주셔야 할텐데 소식이..


옷가게가 나간 자리에 지금 술집공사가 한창이다. 

어떤 컨셉일지 궁금하면서 동시에 걱정도..

과연 잘 될지..



+++



최근 홍대 상권(그래봐야 내가 체크(?)하는 상권은 상상마당 남쪽)에 

덩치가 큰 가게들이 속속 문을 열었다. 

큰 주택 전체를 리모델링한 음식점도 있고 

4층 건물 하나를 통으로 꾸민 서양식당도 있고

삼거리 포차도 성형미인처럼 완전히 탈바꿈해 재등장했고

연면적이 200평은 돼보이는 3층 건물을 역시 단일 종목으로 꾸민 식당도 문을 열었다. 

특히 이 3층 건물은 낡은 사무실 건물을 뼈대만 남기고 벽을 턴 뒤 

구조용 H빔과 블록으로 보강해 모던심플하게 연출하고

내부는 철거의 속살을 과감히 드러내는 헤이리스런 실험을 선보였는데

규모와 시도를 지켜보면서 과연 뭐가 들어올지 시종 내 호기심을 자극했었다.


공사가 마무리돼 갈 즈음에 작은 간판이 조용히 하나 걸렸으니

다름아닌 식당, 그것도 '이탈리언'.

오 허..

심사가 잠깐 복잡해지다가 진정되고 곧 기대와 우려가 교차.


괜찮게 하는 식당이 들어서는 건 나도 반가운 일이지만

그게 또 나랑 겹치면 살짝 긴장감이 도는 것도 사실인데

그게 거의 공장 수준의 규모로 생긴다면 걱정으로 발전할 수 밖에 없다. 

아기자기한 구멍까페 힘들여 열었더니 

근처에 스타벅스가 며칠만에 뚝딱 오픈할 때의 심정같은 거?


 만약 이 덩치가 맛, 가격, 서비스에서 흠잡을데 없는 기량을 펼친다면

우리는 물론 인근에 서식하는 고만고만한 이탈리언들을 몽땅

집어삼킬 수 있겠다는 불길한 상상도 종종 밀려왔다. 

가령 한 층에선 정말 나폴리식으로 단순, 터프하게 화덕피자를 구워내고

또 한 층에선 자신있는 파스타 몇 가지와 요리를 집중적으로 내고 (역시 터프하게)

또 한 층은 샐러드나 음료를 뷔페식으로 해서 이 세 가지를 유기적으로 돌린다면

그야말로 홍대의 핫플레이스가 될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럼 우리는.. 손님 발길 끊기고 가격을 내리고 봉골레의 조개를 줄이고

크림양도 줄이고 루꼴라도 빼고 치즈도 적게 갈아주고 손님은 더 안오고

월세 못내고 직원 퇴직시키고 강양이랑 매일 다투고

결국 부동산에 가게 내놓고..  으앙..


그리고 최근.

이 집이 자신의 맨 얼굴을 드러냈는데

헐..

요란하게 등장한 종편의 시청률을 보는 심정이랄까..

그간의 내 고민이 민망할 정도랄까..

한편으론 화가 나기도 하고..


값비싼 인테리어를 마친 대형 유리창에 

종이박스를 찢어 그 위에 매직으로 '미친 오픈중'이라고 써서 붙이더니

다음날엔 역시 같은 종이박스를 찢어 이렇게 썼다.

'파스타, 샐러드, 떠먹는 피자.   지기네!'


수억원을 들였을 거대 프로젝트니 만큼 혹시 종이박스와 매직,

그리고 저 경박한 문구도 사실 오픈컨셉의 치밀한 전술은 아닐까?..

애써 그 의도를 풀어보려 했으나 도무지 답도 안나오고 이해도 안되지만

그래도 맛을 보지 않고선 판단을 내릴 수 없으니 지난 주 쉬는 날

방문해보기로 하고 발길을 향했다.


잠시 가게에 들렀다 오니 그 가게 먼 발치서 기다리던 강양의 거친 한 마디,

'꿈도 꾸지 마'


3년간 수많은 접시를 나르며 손님 시중을 들어온 그녀에겐

분명 나도 넘볼 수 없는 그녀만의 '촉'이 있다. 

단호한 그 한 마디엔 결기까지 더해졌으니

이거 뭐 설득, 눈치, 미련따위를 가질 틈도 없다.

그녀가 마음을 싹 접은 이유는 

출입구 안에서 일하는 사람이 요상한 복장을 입고 춤을 추며 

자신을 향해 들어오라는 제스쳐를 취하더라는 것.

   음..  




이후 인터넷을 통해 정체를 좀 더 파악할 수 있었는데

이미 강남에 매장이 있는 프렌차이즈다. 

아마 홍대가 가장 큰 규모의 가게가 아닐까 싶은데

시장분석을 과연 얼마나 한 것인지 의문이 간다. 

인터넷으로 메뉴를 검색해보니 큰 반향을 일으키는데는 한계가 있어 보이고

메뉴보다는 인테리어와 독특한 컨셉, 노이즈한 서비스에 무게를 두는 집이지만

음.. 떡볶이가 홍대 외식계를 견인하는 특이한 구조속에서

돌발적으로 등장한 이 공룡이 버틸 수 있을지..

무엇보다도 가게가 너무 크다. 홍대에서 이건 데미지.




앞서 언급한 대형식당 몇 곳도 쉽지 않아보인다.

마당까지 있던 3층 단독주택을 식당으로 꾸민 음식점도 

고전을 면치 못하는 분위기다. 이 가게는 한 번 다녀왔는데

그때 느낌은 나쁘진 않으나 이 규모는 홍대에선 크다는 판단을 내렸다.

최근 소셜커머스 쿠폰을 발행하고 있으니 경영상 고민이 많다는 반증.


4층을 통으로 쓰는 또 다른 식당 역시 힘겨워 보인다.

이 집은 입구에서 메뉴만 훑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인테리어는 돋보이는 면이 있지만

내 흥미를 잡아끄는 메뉴는 없었기 때문이고

가격이라도 비싸면 어떤 재료를 쓸지 궁금해서라도 들어갔을텐데

가격도 저렴하니 이건 척 답이 나온다. 

무엇보다 출입문 너머로 손님을 살피는 가게는 NO NO.



인근에 넓은 2층 주택을 개조한 어느 식당도 방문하고서 경악했는데

까페베네 인테리어를 해놓고 부루스타 올리고 소주를 팔면 어쩌자는건지..


절박한 생계형 장사가 아니라서 그런가?

나름 다 절박한 이유들은 있을텐데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셈법으로

들어서는 가게들을 보노라면 가게 주인들을 인터뷰하고싶다는 불쑥불쑥 든다. 




장사를 복싱에 비유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펀치를 어떻게 날리고 발을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복싱에서 기본이다.

챔피언의 탄생은 그 기본에 끈기와 집념, 그리고 자신만의 기술이 더해져야 가능하다. 

좋은 신발과 글러브도 챔피언의 조건일 수 있겠지만 

그게 우승의 이유였다고 말하는 챔피언은 단 한 명도 없다. 

장사도 마찬가지.

메뉴와 재료, 서비스와 위생은 기본기이고

나머지 성실과 약속주의, 레시피가 더해지면

장사는 잘 된다.



+++



어제 아침, 가게앞을 빗자루질 하다가 이 동네만 30년 이상인 상수건축 사장님을 만났다.

내가 이 동네서 존경하는 몇 안되는 분. 

철거서부터 건축, 수도꼭지 교체까지 못하는게 없고

부르면 차에 공구통 싣고 어디든 가시는 그 분.


어제 대화중에서 두 가지 가르침을 배웠으니


'젊어서 크게 실패해봐야 한다' 와


'장사도 망하기 시작하면 무슨 수를 써도 막을 수 없다' 는 것.


낯선 가르침을 아니지만 좀 더 무겁게 새겨들을 말들이다.

이번 대선에서 저력을 보여준 실버파워를 생각하면 익숙한 가치들을

깊이 새겨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하나 더, '시간 만들어서라도 건강검진해라'.

가게 맞은 편 건물 사장님이 최근 암으로 돌아가셨다는 것.

인사를 나누는 사이는 아니지만 오며가며 모습을 봤었고

자기건물과 주변 관리를 깨끗하게 하기로 소문난 나름 이 동네 재력가인데

종양발견이 늦어 손도 못써보고 가셨다고.



친구 홍시인이 세 번째 가르침을 좀 잘 새겼으면 좋겠구만..




+++




우리 주방에서 잠깐이나마 함께 일했던 영화계 김PD가 최근 다급하게 전화를 걸어왔다.


'나 투자됐어!'


이 친구 정말 영화를 찍는건가?

그간 맘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기에 우리도 주방에서 기쁨을 나눴다.

로케이션 들어가면 우리 가게서도 찍으라고 했는데.

곧 술 마시러 온다했으니 비굴하게라도 앞으로 잘 보여야지 낄낄. 




+++




그리고 내 얘기..

올해 한 해, 난 결심했다.

무.


동치미도 담가먹고 깍두기도 담가먹는 바로 그 무.

올해를 시작으로 그 무와 고락을 함께하기로.

라디오 광고에서 빛나는 은퇴설계는 KB금융그룹과 함께하라는데.. 뽕이다.

내 은퇴설계는 무와 함께다.

이 이상은 밝힐 수 없다. 으하하하

뭐 궁금하지도 않겠지만 ㅋㅋ




새해 복들 많이 받으시고 

박근혜정부 5년, 자 알 살아보세.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