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09.03.22 베로나, 석 달 만에 다시 그 자리로. 8
  2. 2008.08.14
  3. 2008.08.13 소포가 도착했다는데.. 5
  4. 2008.07.21 휴가의 첫 날 풍경

베로나에 조금 전인 3시 20분에 도착했다. 뻬루자, 피렌체, 볼로냐, 베로나로 이어지는 여정은 총 5시간 30분이 소요됐고 2명 기차요금만 12만원 가까이가 깨졌다. 좀 짜증나는건 오는 내내 표검사를 하지 않았다는 것. 이런 예가 종종 있긴 하지만 그래도 어느 한 코스에선 할 줄 알았는데 퍼펙트하게 검표를 안하니 애써 뭍어두고 있는 무임승차에 대한 욕망이 또다시 슬금슬금 피어오르는 것 같아 그게 짜증이다. 사람 시험하는 것도 아니고.. 완벽한 인간이 되질 못했으니 제발 그런 싹이 트지 않게끔 미리 잘라달란 말이다. 

어제 뻬루자의 날씨가 오락가락하며 눈발을 살짝 뿌리더니 새벽부터는 제법 무서운 기세로 함박눈을 쏟아냈다. 찬바람까지 쌩쌩 불어대니 오랫만에 침대에 누어 창문을 통해 눈보라를 감상했다. 어찌나 잠이 안오던지.. 다음날 일찌감치 뭔가 중요한 일(가령 멀리 떠나거나..)을 해야하는 경우엔 대개 그렇기도 하지만 뻬루자에서의, 특히 그 집에서의 마지막 밤잠이니 괜히 마음 한구석이 싱숭생숭해진 탓도 있다. 누워서 고개만 까딱 세워 바라보던 저 아래 도심의 불빛도, 휘영청 보름달이 제길 따라 움직이는 모습도, 멀리 아스라한 아씨지와 그 아래 봄기운이 피어오르던 찰나의 들녘도, 그리고 집의 윗층을 떠받치고 있는 육중한 나무들보의 천정도 이제 특별한 인연이 없는 한 마주할 일이 없다. 그게 아쉬워 하나하나에 마지막 시선을 던져줬고 그러다가 동태를 이용해 파스타를 만들면 어떨까에 대해 한참 고민을 하다가 겨우 잠이 든 듯.. 


새벽의 눈은 아침까지도 이어졌고 바람은 칼처럼 차가웠는데 8시 14분, 언제나처럼 아레쪼로 출발하기로 돼 있는 열차는 연착이 아니라 아예 없어져 버렸고 1시간 30분 후에 피렌체로 출발하는 열차가 유일해서 그걸 대신 잡아타고 와야 했다. 아무튼 어느 구간에서도 표검사를 하지 않더라는..

그제와 어제에 걸쳐 한국으로 보내야 할 자잘한 짐과 책들 대부분을 소포로 부쳤다. 총 40kg의 무게에 책만 30kg. 배로 보냈으니 아마 우리가 귀국할 즈음으로 해서 받을 수 있지 싶은데 시간은 얼마가 걸려도 좋으니 제발 무사히 배달돼 다오. 책 부치고 나니 어찌나 홀가분하던지.. 위태롭게 겨울을 나게했던 이불은 그 집에 고스란히 남겨놓고 왔고 파르마 노양이 주고 간 전기장판도 그곳에서 다른 누군가를 데피도록 남겨놓고 왔다. 그 전기장판 없었다면 우린 모두 얼어죽었을 것. 플라스틱 밥그릇, 스텐 양재기, 사기 대접, 도마, 후라이팬 등을 꾸역꾸역 짊어지고 왔고 아직도 한참은 먹을 감자와 양파, 올리브유, 간장, 고춧가루, 멸치등도 배낭 구석구석에 쑤셔넣어 지고 왔다. 빵빵하게 부푼 가방들의 지퍼를 열면 양말, 빤스와 더불어 이것들이 마구마구 튕겨나올 태세니 절대 숙소에 도착하기 전까진 이것을 열어선 안된다는 다짐을 되새기며. 애네들도 다음달 1일 베로나를 떠날 때면 모두 우리손을 떠난다. 그 때면 짐이 대폭 줄어든다. 물론 그 공백은 감사의 선물들로 다시 채워지겠지만. (자~ 김치국 뜬 수저 언능 내려 놓으시고..)

낭패가 하나 생겼다. 다음달 중순 경으로 알고 있던 비니 이탈리 행사가 2일부터 6일까지라고 한다. 그때문에 데이빗 숙소가 딱 그 기간에 풀북(FULL BOOK-예약만땅)이 되서 방이 없다는 것. 그러나 우리에겐 당장 방이 없는 문제보다도 예상보다 훨씬 일찍 행사가 시작된 점이 더 큰 낭패다. 그렇게 되면 지금 편집중인 작업 일정을 어떻게 조정해야할지 다시 계획을 세워야 할 판. 그러면 귀국일정도 영향을 받지 싶은데 좀 더 일찍 들어갈 수도 있을 듯.  이거이거 일에 쫓겨서 너무 성급하게 판단하면 안되는데..

어제 간만에 옛 회사 동료와 메신저를 주고받다가 그 친구가 물었다.  "영영 들어오는거에요?"
잠깐 당황하다가 "아마 한국, 이탈리아를 자주 오가도록 노력하겠지"라고 엉거주춤 답했다.   '영영'이라..
6개월, 어찌보면 짧은 시간이지만 인생이 새롭게 '포맷'된 후 처음으로 기록된 새로운 삶의 파일들이 이탈리아여서 그 바탕은 좀 더 오래 가지 않을까? 생각날테고 그리울테고 어쩌면 좀 더 현실적인 이유로 필요할테고. 그리고 아직 젊은데 '영영'이란 말은 좀 안어울리지 않나?  

 

Posted by dalgonaa

책 속에 진리가 있을까? 많은 경우 진리가 있다고 하고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힌두교에서 암소를 신성시하는 이유가 결코 '미련한' 우상숭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 사회와 문화를 지탱하는 나름의 합리적 이유가 있음을 책을 통해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의 수수께끼>라는 책에 이를 잘 설명하고 있으니 '사람이 굶어가는 판에 도대체 소를 안잡아먹는 저들의 정체는 뭔가?'하고 궁금했다면 일독해보길. 곧 가을도 오는데^^

배우고 있는 영어 교재의 한 지문엔 이런 대목이 있다. "Live for today". 격조있는 해석은 '오늘을 위해 살자'이고 피부에 와닿는 거친 해석은 '하루살이'다. <Britain in 2010>이라는 책으로 영국에서 관심을 받은 작가 Richard Scase를 인터뷰한 내용을 교재에 넣었는데 거기에 등장하는 말의 일부분이다. 인터뷰의 요지는 '삶은 더 팍팍해지고 퇴직은 빨라지며 남부의 비싼 집값을 당해내지 못한 사람들은 다 팔아치우고 좀 더 싼 프랑스나 스페인의 시골로 이사하고 있다'는 것.

재택근무가 늘어날 것이라는 낙관도 전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교통체증과 심각한 공해를 해소하기 위한 차원의 일부일 뿐이다. 실업난, 과중한 업무, 무능한 정치와 열악한 복지는 영국사회와 똑같이 이미 한국사회에서 진행중인, 그것도 아주 왕성하게 진행중인 일들이다.(물론 우리가 더 참혹하지만) 이를 지켜보면서 드는 생각이야 새삼 언급할 필요는 없다.

주어진 재화, 또는 자원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해 공익을 넓힐까 결정하는 것이 결국엔 '지헤로워야 할!' 정치의 몫이라면 인도의 힌두교는 그것을 어느 정도 실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야윈 암소가 지주의 밭을 쳐들어가 기름진 양식을 몽땅 뜯어먹어도 지주는 소를 잡아 죽일 수는 없으며 살찐 암소로부터 받아낸 젖은 인도의 가장 낮은 카스트들의 일용할 양식이 된다. 지주와 빈농 사이의 벽을 자유롭게 옮겨다니며 재화의 공평분배를 소가 하고 있다. 그 양이야 턱없이 부족하겠지만 소가 정치보다 낫지 않은가?

우리 속담에 소 뒷걸음질 치다 쥐잡는다는 훌륭한 속담이 있는데 난 도무지 소 뒷걸음질 갖고는 만족 못하겠다. 큰 쥐를 '왕쥐'라고도 부르는데 쥐잡는데는 뭐니뭐니해도 수류탄이 최고가 아닐까 싶다. 작고 간편하고 왕쥐가 드글거리는 소굴에 하나 까넣기도 좋고..

(뉴스 그만봐야지.. 지중해의 자연과 낭만, 느릿한 삶의 한가로움과 값진 재료로 풍성하게 빚어낸 음식의 향연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선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해도 부족할 판에..)

Posted by dalgonaa
학원으로 왔다가 학원문이 잠겨 다시 우체국으로 되돌아 갔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 학원측 사람으로부터 전달받은 것은 그런 내용을 알리는 달랑 문서 한 장. 도대체 언제 어떻게 왔길래 이런 사태가 났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학원측의 안일한 일처리가 있었을 것으로 의심된다. 아무튼 그걸 되찾기 위해선 버스를 두 번 갈아타가며 집에서 40분 정도 떨어진 Marsa라는 곳으로 가야하는데 우체국은 오후 1시까지만 문을 연다고 하니 천상 내일 아침 학원을 제끼고 책을 찾으러 가야할 듯..

서울의 동생이 보내준 것은 책. 무려 10권이 넘는다. 그 무게만도 10킬로에 이르며 이걸 짊어지고 다닐 생각을 하면 끔찍하다. 그 전에 몽땅 읽어치워 머리속에 집어넣어야 겠지만 아무래도 가능한 수준에서 책을 이끌고 다녀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현재 향후 일정에 대한 가닥이 잡혀가고 있다. 9월 사이로 터키를 한 번 짧게 여행하고 다시 몰타로 돌아와 짐 챙겨들고 이탈리아 베로나로 넘어가는 것이 그것이다. 그곳에 가면 엘리자베타가 기다리고 있고 그녀를 통해 이탈리아 여정(또는 짧으나마 생활)에 대한 이런저런 조언과 도움을 받을 예정이다.

동생을 통해 부탁한 책의 목록은 이렇다.

 
<음식문화의 수수께끼> - 한길사
<문화의 수수께끼> - 한길사
<유럽의 음식문화> - 새물결
 
<죽음의 밥상> - 산책자
<희망의 밥상> - 사이언스 북스
<권력자들의 만찬> - 넥서스 북스
 
<빵의 역사> - 우물이 있는 집
<진기한 야채의 역사> - 눈과 마음
<그림으로 본 음식의 문화사> - 예담
 
<감자 이야기> - 지호
<세팅 더 테이블> - 해냄
<음식의 심리학> - 인북스
 
<미식예찬> - 서커스
<요리소설 맛> - 황금가지
<달콤 쌉싸름한 초콜렛> - 민음사

Posted by dalgonaa
2주 간의 휴가가 시작됐다. 그러나 마냥 들뜨고 즐거운 시간만은 아닐 것 같다. 그간 차일피일 미뤄오던 영상 아르바이트 작업을 고민중이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처음으로 가져보는 취재, 영어도 아직 서툰 상황이니 그 부담은 더 크다. 하지만 생활비를 벌기에는 지금이 더 없이 좋은 기회이니 이를 마냥 방치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영상을 납품할 방송사의 프로그램이 개편으로 폐지된다면, 뭐 그것도 어쩔수 없는거지만 상실감은 분명 있을테니 그 전에 작은 몫이라도 챙겨두는 것이 우리에겐 유리하다. 이번 프로젝트의 갈 길이 워낙 멀기 때문이다.

오늘 내일중으로 서울로 연락을 취해 프로그램과 관련해 담당 PD와 협의를 하려고 한다. 여전히 프로그램은 안정적으로 돌아가는지, 어떤 소재를 하면 좋을지, 우리가 미리 건넬 아이템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지, 언제까지 마치면 좋을지 등등..

지난 주 초부터 앞집에서 공사를 시작했다. 아침 6시부터 해머드릴로 벽을 부수고 있는데 소음이 여간 심한게 아니다. 창문 너머로 고개를 빼꼼 내밀어 부수고 있는 벽의 범위를 가늠해보니 이번 주 까지는 계속될 것 같다. 동생에게 책을 몇 권 부탁했는데 내일 중으로 우체국을 통해 부친다고 한다. 그 편에 귀마개용 스펀지도 부탁을 했다. 메모리 폼으로 만든건데 마침 우리집의 플랫메이트가 사용하는 것을 빌려 써보니 효과가 뛰어나다. 숙면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귀마개는 50개가 와도 짐스럽지 않지만 책은 상당한 짐이고 부담이다. 9월 이후, 그것들을 짊어지고 다닐 걸 생각하면 끔찍하다. 그래도 무리를 해서라도 읽으려는 이유는 이곳 지중해, 특히 유럽과 관련해 우리에겐 그 지식이나 정보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남은 기간 지중해 구석구석을 잘 돌아다니려면 그것들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

근데 당장 먼저 필요한 것은 돈도, 책도 아닌 귀마개일 듯 싶다.



>> 주방의 창문 너머로 보이는 두 사내. 열심히 벽을(정확히는 천정을) 까내고 있다. '몰타는 공사중'이라는 제목으로 포스팅을 하나 할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곳에는 공사장이 많다.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