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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0.04 집, 그리고 이탈리아어 Looking for flat & Italian teacher in Verona 5
  2. 2008.04.05 집-1 3
이딸리아 Italia 300908~2008. 10. 4. 08:32


'스플리쯔(Spritz)'는 베로나, 넓게는 이탈리아 북부 지역에서 즐기는 음료다. 사실은 칵테일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와인잔에 물과 화이트 와인, CAMPARI라고 하는 술을 섞어 오렌지 한 조각과 얼음을 담가내면 되는 간단한 술인데 하루에 한 잔은 거의 마시고 있다. 지금 두 잔을 마시고 들어왔더니 살짝 알딸딸하다. 

베로나 4일째, 근황을 전하자면 이렇다. 절대적인 도움이 되고 있는 엘리자베타의 집에서 여전히 머물고 있으며 이런저런 생소한 경험들을 하고 있다. 이는 바꿔말하면 이곳 생활에 조금씩 적응해가고 있다는 얘기기도 하다. 이에 대해선 천천히 얘기하기로 하고, 우선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집과 언어다. 엘리자베타의 집은 훌륭하다. 굉장히 넓은 집은 아니지만 갖출 것은 모두 갖춘, 성공한 캐리어 우먼의 멋진 집이다. 출판업계에 일하는 그녀의 직업답게 집에는 온갖 종류의 책이 넘친다. 시샘하게 만드는 주방에 깨끗한 화장실도 두 개다. 우리가 머물기에 부족함이 없는 집이지만 그녀에게도 사생활은 있는 법.


마냥 그녀의 집에 머문다는 것은 그녀의 소중한 삶의 일부를 우리가 점령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슬슬 신경이 쓰이기 시작하니 서둘러 집을 구해야 한다. 사실 그녀도 은근히 원하는 눈치. (그런 그녀의 속내가 오히려 반갑다)

베로나가 몰타처럼 넓은 공간에 저렴한 집은 없지만 그래도 이러저런 임대광고는 제법 많이 나와 있다. 하지만 비자문제 때문에 몇 개월 이상의 임대계약을 망설이고 있다. 우선은 한달에 900유로(한화 150만원)에 이르는 비싼 레지던스에서 머물 예정이다. 이 한 달 동안 비자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알아보고 이탈리아 취재기행의 계획을 잡을 예정이며 이후 좀 더 저렴한 집에 대한 정보를 찾을 것이다. 일이 잘 풀린다면 한 달 후엔 500유로 이하의 집으로 옮기지 않을까 싶다.

우선 토요일인 오늘은(날이 밝았으므로) 엘리자베타와 함께 VERONA로 부터 대략 한 시간 거리의 PADOVA를 방문할 예정이고 월요일엔 역시 그녀를 따라 MILANO를 다녀올 예정이다. PADOVA는 그녀의 부모님이 살고 있는 도시로 그녀는 부모님을 만나고 우리는 시내를 구경한 뒤 그날 당일 돌아올 것이고 MILANO에선 하루 묵을 예정. PADOVA도 굉장히 멋진 도시라는데 우리가 그곳에 거는 기대는 한국식당에서의 식사와 식당 주인을 통해 고추장 판매처를 수소문해 고추장을 사오는 것이다. 나중에 자세히 소개하겠지만 베로나에 산재한 식당에서 즐기는 식사는 정말로 대부분 맛이 좋다. 그러나 열 접시의 훌륭한 스파게티가 한 스푼의 고추장을 못당하는 것이 우리의 유난스런 입맛이니 어쩌랴.. 

그 다음 문제는 언어다. 이렇게 생각하고 저렇게 생각해봐도 언어를 모르고선 이탈리아에서 하다못해 음식 한 접시 제대로 주문하기가 어렵다. 단지 스쳐지나가는 관광객이라면 까르보나라를 시켰는데 뽀모도로가 나와도 그 맛이 또한 훌륭하니 우연의 경험으로 받아들이며 까탈스럽게 따지지 않겠지만 우리가 그 입장은 아니지 않은가? 우리에게 좀 더 구체적인 소통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해서 오늘, 일벌레인 엘리자베타의 성실한 중재로 만난 사람이 바로 안드레아다.


왼쪽이 엘리자베타, 오른쪽이 안드레아. 엘리자베타의 단골 미장원의 또 다른 단골 손님인 안드레아는 미장원 주인 클라우디아의 중개로 소개받았으며 그는 베로나 대학에서 외국어를 전공했다. 우리는 카푸치노를 마셨고 저 두 사람은 에스프레소를 거의 원샷하다시피 마셨다. 이탈리아어 개인 교습이라는 주제를 가운데 놓고 우리는 안드레아로부터 궁금한 점을, 안드레아는 우리에게 궁금한 점을 서로 묻고 답했다.

안드레아는 우리에게 뜻하지 않은 희소식을 전하기도 했는데 마침 성당에서 운영하는 무료 이탈리아어 강좌가 일주일에 2회 열린다는 것. 그 수업에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리고 그 수업을 진행하는 것은 바로 자신의 여자친구라고. 동시에 자신 또한 그곳에서 자원활동을 계획하고 있었다고 하니 그에게 우리는 어쩌면 남다른 경험의 기회일 수도 있을테다. 이 자리에서 엘리자베타는 직업을 찾고 있는 안드레아에게 (이제야 얘기하지만 그녀는 GIOUNTI라고 하는 출판사 겸 서점의 중역이다) 안드레아가 스페인어와 러시아어를 구사한다는 점을 높이 사 그에게 취업 정보를 제공하기도 했다.

강습비 얘기는 엘리자베타가 이탈리아어로 먼저 안드레아에게 물었다. 안드레아는 선뜻 답을 내놓지는 못했고 이런 경우가 자신에게 처음이니 우선 여자친구와 함께 상의하겠다고 한다. 그러라고 하면서 엘리자베타는 자신의 집에서 일주일에 3번 와서 청소를 도와주는 필리핀 여성 레오노르의 경우 시간 당 7.5유로(11,000원)의 돈을 지불하고 있며 그 금액의 더블은 어떻냐는 1차 제안을 던졌다.

이는 우리나 안드레아,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제안이었다. 왜냐면 누구도 기준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간당 20유로 안쪽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며 사실 우리가 하기에 따라 그 시간을 훨씬 넘겨 수업을 이끌 수도 있다. 만나본 안드레아는 매우 성실해 보였으며 우리와 우리의 계획에 대해 흥미를 느끼고 있다는 점은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다.  

노천카페에서 커피를 마신 뒤 중매역할을 한 엘리자베타는 자신의 일을 위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고 우리는 안드레아와 함께 카페 옆 대학건물로 이동해 그곳의 시설과 도서관 이용방법을 전해듣고 길 건너 편, 즉 우리가 아마도 한 달간 머물게 될 집과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공용 자습실(?)도 소개받았다. 이 공간이 무척 흥미로웠는데 대학부속건물은 아니고 베로나 시에서 운영하는 시설로 안에는 그저 형광등과 테이블, 의자가 전부이며 누구나 와서 자신의 책을 보거나 신문을 보고 가면 그만이다. 안쪽 구석에는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중이었으며 분위기는 꽤나 엄숙했다. 사진에 담진 못했지만 밖에서 담배피던 신장 190에 이르는 사내는 거의 키아누 리브스의 판박이어서 김군 마저 매료시켰다는..


날씨는 제법 맑았으나 유난히 바람이 쎄서 추위를 느낀 하루. 누구의 시선없이 맘 편하게 머물 집이 당장 없다는 것은 정말이지 큰 스트레스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절감한 하루다. 집과 언어, 이 두 가지를 위해 요 며칠 부지런히 뛰어다니고 있지만 어느 것 하나 아직 확실해진 것은 없다. 당장 한 달간 기거할 집은 거의 정해졌지만 임대료가 너무 비싸 한 달 후엔 새로운 집을 찾아 옮겨야 한다. 이탈리아어 강습도 아직 무료강좌를 나가보지 않아 어떤지 정확히 모르겠고 개인교습도 강습비가 정해진 것은 아니다. 그리고 과연 얼마 동안을 배워야 우리가 원하는 수준에 도달할지 아무도 모른다. 거기에다 비자의 불안정함까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낯선 땅 베로나에서 조금식 인연을 넓혀가고 있으며 그들 모두 우리에게 적대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안드레아가 그렇고 세인트 토마스 카페의 리자가 그렇고 당연히 엘리자베타가 그렇다. 이 모든 것이 행운이라면 그 행운은 과연 어디까지 지속될지, 당장 우리가 걱정하는 집 문제와 언어 문제에도 행운은 따라줄지.. 

아래 사진은 세익스피어의 소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의 발코니가 있는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 마침 손 붙잡고 지나가는 연인 너머로 사랑의 맹세, 혹은 바람을 적은 간절한 쪽지들이 마치 한 폭의 미술작품처럼 붙어 있다. 여담이지만 베로나는 확실히 한국여행자들의 발길이 뜸한 곳이다. 눈씻고 찾아봐도 한국어 쪽지는 발견하지 못했다.

Posted by dalgon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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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에 샬롯, 저녁에 조를 만나기 전 방황의 시간들.마침 비가 내리고 날씨는 추워서 진짜 집없는 설움을 절감했다. 점심은 1.9유로짜리 피자 한 조각씩.

5시 반에 만나기로 한 조는 6 넘어서야 나타났다.

미팅 때문에 늦어질 거라고 오전 중 강양과의 통화에서 미리 얘기를 했단다. 하지만 강양은 전화 걸 당시에 미팅 중이었다라고 이해했었다. 항상 이런 식으로 언어의 장벽에 부딪힌다. 게다가 몰티즈의 영어라면 그 장벽은 한 층 더 높아진다.

 

여하튼 우리는 책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조와 마주앉았다.

우리가 구할 집의 정보를 컴퓨터 화면을 보며 뒤지고 있는 조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오늘 적어도 2개에서 4개는 보여준다고 얘기했던 조의 얼굴에 뭔가 안 풀리는 듯한 기색이 비친다. 예산이 너무 낮아서 매물이 많지 않다는 것이 조의 이야기다. 하지만 지난 토요일에 조는 이런 식의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조는 이른바 공인중개사다.

여러 가지 매물을 가지고 고객들에게 이런 저런 조건으로 저울질을 하면서 이윤을 남기는 것이 그의 직업이다. 우리는 당장 집이 필요하다. 하지만 영어는 미숙하다. 조와 거래를 할 때 우리가 꿀리지 않으려면 오늘 아침에 지금 묵고 있는 유스호스텔을 이미 체크아웃 했다는 이야기는 하지 말자고 나름 작전까지 세웠었다. 만일 오늘 집을 구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김군은 1인당 20유로가 넘는 호텔에 북을 지언 정 절대 유스호스텔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강조했었다. (‘사람들란의 코브라 참조)

 

이런 저런 조건에 대해서 다시 확인하고 정보를 맞춰보는 사이 10분여의 시간이 흘렀다. 조는 생줄리앙 근처에 하나가 있으니 일단 보러 가자고 한다. 침실 하나에 욕실 하나라는 말에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일단 따라 나섰다.

 

협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나름 배수의 진을 쳤다고 생각했는데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니 왠지 처음 보았던 그 집으로 그냥 들어갈 걸 하는 후회가 생겼다. 혹시 그 집이 나가버렸으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까지 생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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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cm가 훨씬 넘는 키에 크고 우렁찬 몰티즈 목소리의 '조'. 선글라스를 벗으면 더 호남형인데 사진은 왠지 박진영이 떠오른다.(좌) 스위히에 집 보러갔을 때 김군이 뒤에서 찍은 사진. 하늘과 구름이 우리가 봐도 합성 같다.


조가 운전하는 차는 공사중인 지역을 돌고 돌아 제법 멀리까지 온듯했다. 인적도 드물고 낮게 늘어선 집들 하며생 줄리앙에도 이런 집이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곳은 오전에 갔었던 스위히를 닮았다. 적당한 곳에 주차 한 뒤 문을 열고 내리는 데 왠지 어디 선가 본듯한 풍경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도 데쟈뷰인가 생각하며 앞장서는 조를 따라 걸어가는 데, 아뿔싸! 오전에 샬롯이 소개 해준 세 번째 집이 아닌가!

 

강양은 김군에게 다급하게 이야기 했다.

이거 우리가 오전에 본 집 아니야? 풀장 있는 집!’

타고난 지리감각으로 똘똘 뭉쳤다라고 자신하는 김군은 한 번 쓱 둘러보더니

아냐, 그 집 아냐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앞장 선 조에 뒤를 이어 김군, 그리고 불안한 마음의 강양이 따라 걸어가는데 갑자기 김군이 획 뒤 돌아서며 말한다.

, 아까 그 집 맞다!’

 

우리 둘은 다급하게 걸음을 멈추고 긴급작전을 짰다.

이 지역은 우리가 원하는 곳이 아니다, 그냥 처음에 본 그 집으로 가는 게 나을 것 같다, 라고 조에게 말하기로. 다행이 집주인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거의 집안으로 들어간 조를 불러내서 작전대로 이야기 했다.

조는 우람한 체격에 시원시원한 매너답게 그래, 이해해. 대신 그 집이 안 팔렸기를 기도해 보자구!’라고 우리에게 동의한 다시 후 차에 오른다. 조가 막 출발하려는 순간, 왠 젊은 청년이 집 안에서 나오며 조에게 아는 채를 한다. 조가 뭐라고 큰 소리로 말을 하니 한 손을 번쩍 들었다가 내리며 청년은 다시 집으로 들어간다.

 

사실 조에게 우리가 두 군데 부동산을 통해서 집을 알아보고 있다고 해도 뭐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언제나 문제는 언어다. 한국어로 한다면 별 문제 없을 것도 영어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바로 민감한 사항으로 변한다. 게다가 오늘은 무조건 집을 구해야 한다는 다급한 마음까지 겹치니 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하겠다던 굳은 결의도 사라진다. 만약 처음 봤던 집이 벌써 팔렸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만 앞선다.

 

사무실로 돌아오자 마자 조는 집주인에게 전화를 건다. 우리는 그저 눈만 동그랗게 뜨고 숨죽이면서 조가 통화하는 내용을 경청하지만 몰티즈 언어로 통화하는 내용을 알아 들을 리 없다. 생각보다 전화가 길어진다.

집 나갔냐? 안 나갔으면 이 사람들이 들어간단다. 오케? 면 끝날 것 같았는데 조는 거의 5분이 다 되도록 통화 한 후 수화기를 내려놨다.

 

일단 집은 다행히 안 나갔어. 하지만 문제는 오늘 들어갈 수 없다는 거야. 왜냐하면 집주인이 침대시트를 다 준비해 놓지 못했는데 마침 몸이 아퍼서 오늘 준비 해 줄 수가 없데.’

 

그럴 순 없다. 우리는 벌써 아침에 유스호스텔에서 체크아웃하고 나온 상태다. 침대보는 없어도 상관없다. 다른 건 다 괜찮은 것 아니냐. 그냥 들어가겠다.’

 

우리는 필사적으로 오늘 집에 들어가겠다는 의지를 조에게 밝혔다.

다시 집주인과 몇 마디를 더 나눈 조는 우리에게 얘기한다.

 

좋아. 오늘 들어가는 것으로 얘기 됐어. , 이제 계약서를 쓰자구

 

, 김군과 강양은 가슴을 쓸어 내리며 안도의 한 숨을 쉬었다. 결국 우리에게 집이 생기는 구나. 오늘은 집에서 잘 수 있겠구나.

 

4페이지가 넘는 계약서를 조가 몰티즈식 영어로 빠르게 읽어 갔다.

혹시 계약 잘 못해서 어떤 불이익을 당하게 되는 것 아닌가라는 불안감에 조의 목소리를 들으며 눈으로는 계약서의 어려운 단어들을 빠르게 쫓아갔다. 하지만 머리 속에는 어서 집에 들어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 더 지배적이었다. 싸인을 하고, 돈을 지불하고 모든 것이 끝났다.

 

친절한 조(2시간 전 만 해도 협상 대상이었지만)는 자신의 차로 유스호스텔에서 우리 짐을 실어 날라주었다. 뿐만 아니라 짐을 3(실제로는 4)까지 올리는데 같이 들어주고 몇 가지 주의사항을 알려 준 후 내일 연락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시간은 거의 8 다 되었다. 40평 규모의 집에 우리 둘만 덩그란이 남겨진 것 같았다. 조명도 어둡고 온기라고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집.

하지만 우리 집이다.

물론 남의 집을 6개월 만 빌린 것이지만 우리에게도 집이 생긴 것이다.

갑자기 시장기가 느껴졌다.

 

강양 - 오늘 저녁은 뭘 먹지?

김군 - 된장찌개 어때?

강양 - 오케이! 밥은 니가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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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양 어머니가 직접 담그신 된장을 풀어 끓인 된장찌개. 감자, 멸치, 마늘 밖에 들어 간 것이 없어도 꿀맛이었다.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