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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5.31 꿈과 일출 6

몰타 생활에서 느끼는 변화의 하나는 잘 때 꿈을 많이 꾼다는 것이다. 바쁘고 피곤하게 직장 생활할 때는 좀 처럼 많이 꾸지 못했던 꿈이었다. 더우기 아침에 지난 밤 꿈을 기억하려 하면 도무지 기억나질 않아 쇠락해가는 기억력을 의심하며 살짝 의기소침해지곤 했다.

그런데 몰타 생활, 바꿔말하면 서울에서의 바쁜 직장생활과 온갖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된 삶은 엄청나게 많은 양의 꿈을 가져다 주고 있다. 마치 바쁘게 돌아가는 생산공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엄청난 물량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그 기억 또한 매우 선명하게 뇌리속에 저장되곤 해서 아침에 이빨 닦으며, 또는 샤워 중에 그 기억이 또렷하게 되새김질 된다.

지난 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김군의 꿈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등장했다. (지난 번 이건희 회장에 이어 두 번째 주요 인사의 등장이다) 김군은 스틸 카메라를 들고 기자회견장에 있었고 카메라는 지금 사용하고 있는 미놀타다. (어째서 비디오 카메라 아니었을까?) 대통령은 해외 순방을 마치고 갖는 첫 기자회견이었는데 그는 파란색의 삼성 로고가 선명하게 새겨진 유리 상패를 자랑스럽게 들어보이며 기자들을 향해 환하게 웃었다.

여기저기서 플래쉬가 터지는 가운데 김군은 '역시 이명박 답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가 상패를 들고 사라지자 기자 한 명이 그의 뒤를 따라 들어갔는데 김군은 '상패만 따로 찍을 생각이군, 한 발 늦었네'라는 생각을 했다. 그 순간 미놀타 카메라에 내장된 플래쉬가 부러져 어딘가에 떨어졌다는 것을 깨닫고 한참동아 바닥을 뒤진 끝에 부러져 나간 플래쉬를 찾아냈다. 하지만 기분은 몹시 상해있었다. 이명박과 깨져나간 플래쉬, 악몽은 아니지만 매우 불쾌한 꿈이었다.

이에 비하면 강양의 꿈은 확실히 악몽에 가깝다. 평소 잠귀가 밝은 김군은 무슨 느낌이 들어 잠을 깼는데 그리고 보니 평소 눈물이 많은 강양이 구슬피 울고 있는게 아닌가? 흔들어 깨워 사정을 물으니 김군이 어떤 누명을 쓰고 함께 도망다니가 잠시 우물쭈물하고 있는 사이 강양이 보는 앞에서 그만 경찰에 잡히고 말았단다. 강양은 김군이 만용에 가까운 여유를 부리는 것이 불안하고 못마땅했다고 한다.

그리곤 35년형을 받고 감옥으로 끌려가는 김군의 모습에서 그만 울것 같은 김군의 얼굴을 보고 말았는데 그 순간 울음이 터지더란다. 때마침 강양이 현재 다니는 영어학원에서 가장 신뢰해마지 않는 영어강사 '줄리'로부터 엽서 한 장이 날아왔단다. 엽서에는 "I hate him'이라고 적혀 있더라는 것. 결국 35년간 감옥에 갇혀있어야 하는 김군과 그간 학원의 많은 사람들이 평소 김군을 싫어했다는 것에 까지 생각이 미치자 울음이 걷잡을 수 없어졌다는 것이다. ㅋㅋㅋ

꿈꾸는 삶은 건강한 삶이라는 말이 있는 것 같은데 반대로 건강한 삶은 꿈을 많이 가져다주나 보다.

시계를 보니 새벽 5시 반. 강양은 다시 잠속으로 빠져들었지만 살짝 커튼을 젖히자 해가 떠오르기 직전의 붉은 지중해를 목격한 김군은 잠시 주말 새벽의 고요함을 즐기기 위해 발코니로 나왔다. 꿈속에서와는 달리 제모습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는 미놀타를 들고.



>> 토요일 새벽은 제법 고요하다. 그리고 보니 김군이 일출의 전 과정을 지켜보기는 태어나서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입시공부 시절, '국어2 고전'에서 '소 혀 처럼' 어쩌구 저쩌구 하며 읽었던 일출의 묘사가 떠오르긴 했지만 그보다는 시시각각 변해가는 색감이 훨씬 더 드라마틱해 보였는데 아무튼 겨우 얼굴을 내민 저 해가 같은 시각 한국에선 중천에 떠 있었을 그놈이다.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