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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7.20 바베큐의 추억

해변에서 소시지를 먹다가 모래 바닥에 떨어지면 그걸 다시 주어 먹을 사람은 얼마나 될까? 반면 먹던 소시지 위로 모래가 떨어지면 모래만 털어내고 마저 소시지를 먹을 사람은 또한 얼마나 될까? 지난 수요일 밤, 깜깜한 골든베이 해안에서 즐겼던 소시지 바베큐는 새삼 위와 같은 질문을 떠올리게 했다.

이날 각 1명씩의 러시안, 체크, 슬로바키안과 두 명의 코리안이 헝가리인이 운전하는 장난감 같은 사파리차에 올라타고 골든베이를 향해 출발했다. 저녁무렵 학원 근처 수퍼마켓에서 만나 소시지 같은 간단한 먹거리와 맥주, 와인을 구입해 바리바리 싸들은 모습은 강촌으로 놀러가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닮아 있었다.

이 느닷없는 이벤트는 같은 날 오후 클럽비치에서 만난 김군의 같은 반 친구 Petra의 제안으로 이뤄졌다. 페트라는 이미 전날에도 한 무리의 사람들과 골든베이를 다녀왔었는데 그 재미가 너무 좋아 또 다시 놀러가게 됐고 이날은 마침 사파리차에 두 자리가 비어 김군에 제안하면서 김군과 강양이 동참하게 된 것.

운전대를 잡은 Ben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온 30대 중반의 변호사다. 겉으로만 보자면 이날 멤버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지만 김군보다 한 살 어리다. Ben은 이미 전부터 자기 돈을 들여 사파리차를 대절했는데 몰타에 머무는 동안 맘껏 이곳 저곳을 놀러다니는 중이다. 자동차와 시간, 그리고 언제든 어울릴 수 있는 친구들과 멋진 자연에서 맥주를 홀짝이는 것이 누구나 꿈꾸는 휴가지의 낭만이라면 Ben은 그 낭만을 제대로 만끽하고 있는 셈이다.

운동선수같은 건장한 체구의 Yann은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에서 온 20대 중반의 남성이다. 이 친구와는 미처 긴 대화를 나눌 틈이 없었는데 사람 좋아보이는 구석 한 편으로 시커먼 밤바다에 들어가기를 주저하는 소심쟁이기도 하다. 여자들은 텀벙텀벙 잘도 들어가더만..

시내쪽에서 잠깐 헤맨 뒤 외곽도로를 타고 골든베이를 향해 달렸다. 내심 일몰을 볼 수 있기를 기대했지만 출발까지 허비한 시간이 제법 길었던 탓에 결국 달리는 차에서 별을 봐야했다. 사파리는 앞에 두 좌석만 제대로고 뒷자리는 의자가 양 옆으로 길게 놓여져 있는 구조다. 지붕도 뒷좌석쪽은 간단한 앵글 위로 빨간색 줄무늬 천막을 두른게 전부니 낭만이 물씬 풍긴다.

다만 영국 식민지의 영향으로 도로의 좌우가 뒤바뀐 시스템에 익숙치 않은 Ben이 제발 엉뚱한 방향으로 운전대를 틀지 않기만을 달리는 내내 바래야 했다.



>> 페트라와 카트리나. 저 앞에 벤과 얀이 지도를 보고있다. 골든베이 주차장에 차를 세워진 차와 걸어가는 얀. 차는 저렇게 단순하게 생겼고 단거리 여행을 하기엔 딱 좋다.

밤길을 달리면서 맞는 바람은 상쾌했다. 지중해 기후의 특징이 그렇다. 기온은 밤에도 제법 높은 편이지만 공기가 한국에 비해 훨씬 건조해서 숨막힐듯이 '훅'하는 느낌은 거의 없다. 그래서 바람이 조금이라도 불면 제법 시원하다. 그러니 70km로 달리는 차에서 맞는 바람은 누군가에겐 시원하다 못해 춥게 느껴진다.

결국 강양은 이날 이후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그걸 미리 알았던건지 모스크바에서 온 183cm의 늘씬한 미녀 카트리나는 벙거지 모자에 제법 든든해 보이는 숄까지 준비해 바람에 대비했다. 러시안 특유의 차가운 눈매를 가진 그녀지만 성격은 지중해 사람들처럼 시원시원하고 쿨한 구석이 느껴졌다. 특히 영문법에 기초해 또박또박 말하려는 그녀의 노력은 내내 눈에 띄었다.

골든베이에 도착하니 이미 해는 넘어갔고 주의는 깜깜했다. 조심조심 언덕 가장자리에 다가가 아랫쪽 해안을 굽어보자 보이지는 않지만 몰티즈 특유의 왁자지껄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얼추 네다섯 팀이 해안에서 바베큐통에 불을 지핀 가운데 이미 그들의 파티를 즐기고 있는 중이었다. 어둠이 함께 몰고온 정적 속에 멀리서 반짝이는 바베큐 불빛이 그렇게 이뻐보일 수가 없었다.



>> 골든베이는 언덕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나눠져 있는데 사진에서 보는 이곳이 거리는 조금 떨어져 있는데 비해 전반적으로 더 아늑하고 깨끗하다. 저곳 중간쯤에서 바베큐를 즐겼다. 

몰타가 진정 관광의 나라인 이유 하나는 해안에서 불을 지피고 놀아도 아무도 제재하는 이가 없다는 점이다. 실제로 저녁 무렵, 특히 주말 저녁 무렵에 해안에 산책을 나가보면 3대에 걸친 몰티즈 가족들이 간이 식탁과 의자, 바베큐 통, 그리고 몇 가지 음식을 떡벌어지게 차려놓고 늦은 밤까지 수다를 떨며 술과 고기를 탕진하는 모습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비록 가족들이 아니더라도 몰티즈 젊은이들은 물론 관광객들도 그 요령을 터득해 손에손에 비닐쇼핑백을 들고 해안으로 나와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즉석 바베큐통에 라이터를 긋는다. 다행히 해안 군데군데에 드럼통 쓰레기통이 놓여있어 사용하고 난 쓰레기는 모두 이곳에 버리면 그만이다.

우리라면 환경오염과 화재의 위험, 간혹 술판에서 춤판으로 이어지는 행동을 우려해 유명 관광지에선 모두 금지하는 것이지만 이 나라는 그렇지가 않다는 점이 놀랍다. 사실 화재위험은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 이곳엔 산은 커녕 나무조차 찾아보기 힘들고(도로에 가로수를 제외하고) 그러니 캠프파이어 따위는 꿈도 못꾼다. 신성한 자연을 시커멓게 그을려놓은 인간들의 흔적은 그래서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건 다 비닐봉지에 담겨 드럼통에 들어가 있다.

물론 이로 인한 2차 오염은 분명 발생하는 셈이지만 지중해 사람들은 괘념치 않는 분위기다. 지금 밤하늘의 별과 머나먼 어디로부터 불어온 바람과 불빛에 반짝이는 상대편의 취한 눈망울과 그리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가느다란 선율이면 됐지 여기서 쓰레기의 2차 오염 따위가 알게 뭐냐는 투다.

아무튼 수퍼에서 Petra는 이미 경험이 있다는 듯 바베큐에 필요한 물품을 덥석덥석 집어들었고 우리는 그 모습을 꼼꼼히 지켜봤다. 조만간 우리도 조악하지만 근사한 바베큐를 즐길 요량에서 말이다.

컴컴한 모래 사장 한켠에 짐을 내려 놓았다. 김군이 켜든 손전등 아래로 부산히 비치타올을 펴 깔고 비닐봉지에서 맥주와 소시지와 즉석바베큐를 꺼냈다. Ben은 맥주부터 까서 갈증을 달랬고 늘씬한 카트리나는 어느새 비키니 차림으로 변신해 있었고 페트라는 내내 배고팠다는 푸념을 던지며 서둘러 바베큐를 시작했다.

커다란 알루미늄 도시락통처럼 생긴 바베큐통의 포장을 벗겨 뚜껑을 열자 철망이 덮혀있고 그 아래로 밤톨만한 숯덩이들이 쌓여있었다. 그리고 숯 사이에 끼어진 기름종이 한 장. 단순했다. 하지만 이걸로는 초반에 불을 키우는데 어려움이 있는지 페트라는 깍두기 크기의 고체연료를 별도로 준비해 숯 사이에 몇 덩이 던져 넣었다. 불을 그으니 고체연료와 기름종이가 활활 타오르면서 숯을 벌겋게 익히기 시작했다.

그 위에 철망을 덮고 서둘러 소시지를 올렸다. 근데 웬걸, 모래가 곱다보니 주변으로 스쳐지나가기만 해도 사뿐히 피어오른 놈들이 곧 가라앉으면서 소세지를 덮어버리는 것이다. 결국 모래뭍은 소시지라도 땅에 떨어진게 아니라면 털어서 먹는다는걸 이기회를 통해 확인한 셈이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모래가 아니었다. INSTANT BARBECUE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열기운은 강력했는데 소시지 대부분이 그 짧은 시간에 모두 홀라당 타버린 것이다. 마땅히 도구가 없어서 소시지를 뒤집기도 어려웠으니 이래저래 화를 키웠다. 결국 타버린 껍질은 벗기면서 모래는 그때 대부분 떨어져 나갔다. 물론 씹는 동안에 아주 고운 모래의 서걱거리는 맛도 함께 즐기긴 했지만..



>> 모양도 활용도 단순하다. 각빙기처럼 생긴 하얀 플라스틱 조각들은 고체연료. 숯을 달구는데 그만이다. 그리고 모래뭍은 소시지. 배고프니 맛은 좋다. 물론 모래를 떠나 한국에선 저런 바베큐는 용납이 안될테지만..

사실 서둘러 마련된 자리인 탓에 부족한게 많아 아쉬웠다. 우리가 좀 더 미리 준비를 고민했다면 집에서 보내온 아이스팩 가방에 차가운 맥주와 각종 조리 도구를 챙겨왔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다행이었던 점 하나는 강양의 센스로 듬뿍 사온 양송이 버섯구이가 큰 인기를 누렸다는 점이다.

쪼글쪼글 말라가는 버섯갓 사이로 물방울이 송글송글 맺히고 이놈을 집어 소금에 살짝 찍어 먹는 이 단순한 요리법은 사실 첨단의(?) 구이문화를 가진 한국사람들에겐 별스럽지 않은 싱거운 요리지만(물론 버섯은 맛있다) 이들에겐 생소한 경험인 셈이다.

그러나 그 낯설음과 달리 잘 구어진 버섯을 한 입 오물거리는 순간 전해오는 특유의 고소함을 맛본 이들은 하나같이 '원더풀'을 외쳤다. '암.. 맛없으면 가져오지도 않았다..' 다행히 소시지와 달리 버섯은 쉽게 타지도 않아 먹기가 아주 좋았다. 이들에게 우리의 존재감은 다소 특별한 구석이 있었을 테다. 특히 요리를 매개로 관계가 연결되는 점 또한 우리로선 매우 유쾌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것이 사소한 것일지라도.

시커먼 바다로 먼저 뛰어든건 페트라와 카트리나였다. 옛 사회주의 국가에서 온 이 두 명의 미녀는 뭐든 도전할 자세가 돼있는것 처럼 보이는 당찬 여성들이었다. 수온을 적당했고 요며칠 피서객들을 긴장시켰던 Jelly Fish, 즉 해파리도 이곳에는 없는 듯 했다. 손바닥보다 작은 이 젤리피쉬는 뭐든 움직이는 것에 달라붙어 상처를 내는데 이놈에게 쏘이면 그 부위가 두드러기 처럼 요란하게 부푸는 것은 물론 심하면 피가 나기도 한다. 물론 아프다.  



>> 비치클럽에 한동안 세워졌던 경고문구. '젤리피쉬를 조심하시오'라고 써있다. 호기심 많은 어느 피서객이 끊임없이 건져올린 젤리피쉬 가운데 한 놈. 우리가 먹는 그것도 저럴까?

아무튼 뭍에서 50미터 정도를 나가도 바닥은 여전히 고운 모래고 물이 허리춤에 오는 이곳 수심은 바다수영에 익숙치 않은 사람들에게 더 없이 좋은 곳이다. 하지만 강양은 깜깜한 시야가 주는 공포감에 선뜻 들어가기를 주저했고 더욱이 짠물을 뒤집어 쓴 후 이를 씻어낼 방법이 없다는 점 또한 도전의 기세를 꺾어놓았다.

어느덧 달은 더 높은 곳으로 올라와 밝게 빛났고 바베큐통의 불씨는 그 빛을 잃어갔다. 놀다 지친 주변의 다른 피서객들은 그냥 그 자리에 누워 잠을 청하는 듯이 보였다. 실제로 그냥 밤새 뻗어 자도 아무런 문제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한때 하루 두 갑의 담배를 달고 살았던 페트라는 여전히 의욕이 넘쳤지만 그 아쉬움은 다음날 우리집 깐풍기 파티에서 마저 풀기로 했다.

Yann을 제외한 이들은 모두 이번주 일요일에 각자의 집이 있는 모스크바와 부다페스트, 오스트라바로 돌아간다. 4일간 이어졌던 버스기사들의 파업도 끝났으니 이들 모두 공항까지 제시간에 도착할테다. 근데 이번 파업은 어떻게 해결됐지??



>> 손바닥만한 그릇에 담겨진 촛불은 심지가 거의 연필 두께인데 그 밝기가 무시할 수준이 아니다. 한창 이야기나누는 사람들. 아마도 밤하늘의 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순간이 아니었을까 하는..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