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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9.06 4등 2
한국 Korea 160409~2010. 9. 6. 04:01
8시에는 튀어나가야 한다는 강박에
아침잠을 조금 설쳤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길바닥은 한산했고
채 10분도 안걸려 양평동 코스트코에 도착.
시계를 보니 8시 27분인데 9시 개장이라는 방침에 아랑곳않고
이미 30여 명의 사람들이 입구에 몰려 서 있었다.
저들이 모두 휘핑때문에 나처럼 아침부터 법썩을 떨며 집을 나선 건 아니겠지..
라며 생각하던 즈음 정문 셔터가 올라갔고 곧바로 입장이 시작됐다.
30분 일찍 개장이다. 일요일엔 그런가 보다.

나는 휘핑에게만 볼일이 있으니 그 육중한 카트를 밀 필요는 없어
홀가분하게 사뿐사뿐 걸어 지하1층 식품매장으로 내려갔다.
내 앞에 3명이 앞서 있었다.
혹시 저들이 모두 휘핑이 진열된 냉장고로 향할까?
설사 그렇다 해도 내가 4등이니 체신없이 그들을 추월하기 위해
뛰거나 할 필요는 없다. 절박한 심정을 티내고 싶지 않았고 그러기 위해
그들 틈에 섞여 휘핑을 집어들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생각같아선 매장 한 바퀴 살짝 돌며 시간을 벌어준 뒤 그들이 사라진 후에
아무도 모르게 휘핑을 집어들도 나오고 싶었다.
헌데..

거짓말처럼 그들 모두가 냉장고로 향했고 차례로 휘핑을 집어드는게 아닌가?
휘핑이 뭐길래..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며
그들과 몇 걸음 거리를 두고 냉장고를 살피는데 어라?
휘핑이 동났네??

제일 먼저 도착한 어떤 남자가 10개를 구입해 총알같이 사라지고
그 뒤를 이어 중년 여성이 20개를 자기 쇼핑가방에 담는 중인데
냉장고엔 더 이상 휘핑이 남아있질 않았다.
그럼 오늘은 고작 30개만 입고가 됐단 말인가?
전혀 예상치 못한 변수에 황망함이 밀려왔다.
냉장고엔 더 이상 없고, 그 앞에서 한 여인이 자신이 먼저 차지한 휘핑을
주변 아랑곳 없이 부지런히 가방에 담고 있고..
이 사태를 그냥 바라볼 수 만은 없으니
다급한 마음을 가라앉히며 그 여인에게 차분하게 얘기했다.

"저기요, 1인 10개 한정인데 20개씩 구입하시면 안되요"

그러자

"저도 아는데요, 그래서 회원카드 하나를 더 만들었어요"

오옷.. 급기야 저런 수법까지 등장했구나..
구매자의 정보가 캐셔 포스에 모두 집계되므로
방금 구입해서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 구입하는 꼼수는 그 회원카드에서
다 드러나므로 결국 카드 하나를 더 만들어 나름 합법적인 방법을 동원한 것이다.
그만큼 휘핑 쟁탈전이 치열하다는 얘기다.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으니
마저 한 마디를 더 건넸다.

"혹시 그 20개 오늘 하루에 다 쓰시는거 아니면 조금만 나눠주시죠"

나 원 참.. 구걸을 해야하는 상황이라니..
선뜻 내주지 않던 그 여성은 몇 마디 이어지는 내 요구에
결국 한 발 물러 섰는데 그렇게 해서 얻은 갯수는 딱 2개.
나 참..
그거 얻으려고 아침잠을 설치고 서둘러 집을 나서 쏜살같이 차를 몰고왔더란 말인가?
살짝 비참해짐을 느꼈다.

그 기분을 애써 무마하며 계산대로 향했지만 속은 쓰렸다.
헌데 내 뒤를 이어 온, 그러니까 5등으로 도착한 또 다른 중년여성.
그녀는 완전히 빈손으로 되돌아설 수 밖에 없었고 
나보다 이 상황을 더 용납하지 못하겠다는 기운이 온몸에서 뻗쳐나왔다.
화를 참지 못하며 씩씩대던 그녀는 매장 직원을 찾아 문제를 따졌지만
직원이라고 별 수는 없어 보였다.
 잠시 그녀의 분노를 옆에서 지켜보다가 직원에게 한 마디 물었다.

"저기요, 근데 오늘 물량이 이게 전부인가요?"

"잠시만요, (무전기를 들고는) 냉장, 오늘 휘핑 더 없습니까?"


그러고 곧 답변이 들려왔다.

"아직 남았습니다. 지금 마저 진열하겠습니다"

그거슨 한 마디로 복음이었고 속으로는 쾌재가 터져나왔다.
한 순간 기뻤고 그러면서 씁쓸해졌다.  
휘핑 몇 개 더 얻는 행복으로 살아가는 인생이라니..
앞으로 몇 날을 더 이런 식이어야 하는지 원..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