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4.09 요즘 볼로냐 6
  2. 2009.01.21 사진으로 보는 최근 일상 4

어제 이것저것 볼 일이 있어 카메라 챙겨들고 거리로 나섰다. 밥먹고 나온 직후니 배불러 좋고 햇살도 좋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세상 딱 이랬으면 하는 생각. 카메라에 찍힌 그림들 가운데 몇 가지 엄선(?)했는데 순서는 심하게 뒤죽박죽이니 그점 참고하면서 감상하시길.


엥, 마지막에 등장할 법한 사진인데.. 암튼, 발코니에서 바라본 북쪽 하늘에 걸린 구름. 저무는 햇살을 받아 살짝 붉게 물들었다. 봄이 되면 이쪽은 으례 그런건가 싶은 것이 저 구름. 작년 이맘때 몰타에서 본 구름도 저처럼 크고 요란했으니 저 구름을 보자 바로 몰타 생각에 젖어버리고 말았다. 여기선 안테나 위에 걸리지만 몰타에서 수평선 너머로 걸린다는 점이 다를 뿐 모양이나 색감이나 분위기가 거의 흡사하다.  한국에선 거의 찾아보기 힘든 TV안테나, 이탈리아에선 흔하디 흔해서 특히 로마 가면 안테나의 절정을 감상할 수 있는데 유서깊은 도시에 걸맞게 요란한 설치예술을 보는 느낌을 준다. 사진에 혹시 점들이 보인다면 째재잭 거리며 정신없이 날아다니는 제비들의 모습일테고 그도 아니면 먼지일 수도.



지구상에서 가장 맛있는 젤라또(아이스크림) 가게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볼로냐의 유명 젤라또 가게 까스띨리오네 앞. 학교를 파한 중학생 한 무리가 가게 앞을 점령하고 열심히 젤라또를 핥고 있다. 이곳 말고 아씨넬리 타워 아래에 있는 한 젤라또 가게 앞도 볼로냐 대학 학생들로 북적이는데 그집껀 아직 못먹어 봤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유난히 젤라또를 좋아하는건지, 젤라또가 유난히 맛있어서 좋아할 수 밖에 없는건지.. 재밌는건 만약 어느 식당에서 먹은 요리가 맛있어서 레시피가 궁금하다고 하면 주방으로 끌고 들어가 신이나서 가르쳐 주겠지만(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젤라또 가게에서 레시피가 궁금하다고 물으면 쫓아낼 가능성이 높으니 이점 유의. 젤라또에 대한 노하우는 집집마다 비밀이어서 보안유지에 꽤나 신경쓴다. 기본 젤라또의 맛은 어디나 다 똑같이 맛을 내지만 이후 무엇을 얼마나 어느 타이밍에 섞느냐에 따라 맛과 질감이 달라지고 그만큼 자신만의 독보적인 젤라또로 손님을 끌 수 있기 때문이다.



거리의 예술가. 이분 행인들로부터 찬조금 꽤 받으셨다. 왜냐면 바이올린 연주인데다 연주실력이 수준급이었기 때문. 볼로냐의 경우 인디펜덴자 거리에 색스폰 아저씨, 산 비탈레 거리의 아코디언 아저씨가 종종 만나는 예술인이지만 벌이가 그닥 신통치는 않아보이는데 이분은 다르더라는. 생상의 동물농장(맞나?)에서 스완 테마를 연주했는데 선율이 끊길 듯 끊길 듯 이어지는 완급 조절이 듣는 이들을 매혹시켰으니.. 손에 쥔 동전을 저 통에 안집어 넣을 수가 없다. 잘 들었습니다~


비좁은 틈 사이로 보이는 아지넬리 타워. 사진이 누운 이유는 고개를 꺽어서 보라는 '배려'.  언제봐도 멋진 탑. 입구의 계단을 조금 올라가면 반평짜리 공간에 퉁퉁한 아주머니가 낑겨 있듯이 앉아서 3유로의 입장료를 받고 표를 내준다.



아지넬리 타워 바로 아래에 있는 두에또리(Due Torri-두 개의 탑) 피자가게에서 사온 마르게리따 피자. 한 판에 3.5유로, 우리돈 6천원. 성인 두 삶이 점심 한 끼로 충분할 양이지만 하루 한 판만 먹어야지 두 판 먹으면 속이 맥힌다. 맛이야 뭐.. 좋다.



뽀르띠꼬 데이 세르비(Portico dei servi) 라는 이름의 긴 회랑길. 집 가까이에 이런 아름다운 길이 있었다니..  늦은 오후 해를 받아 대리석 위에 길게 드리워진 기둥과 아치의 그림자. 사방팔방이 예술, 볼로냐가 아름다운 이유다. 비오는 날 우산이 필요없다는 실용성까지!  볼로냐가 유난히 회랑길을 많은 이유는 비가 많은 기후적 특징 때문이라는데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 한국인 요리사의 증언인지라..^^



자나리니(Zanarini)라는 볼로냐의 제법 크고 전통있는 바 앞에 펼쳐진 야외 테이블의 풍경. 편하게 앉아 저마다 수다떨고 햇살을 즐기는 모습에 봄이 더 봄다워지는 것 같다. 쉐프 마르코의 부인 엘렌은 저곳에 거의 출근하다시피 하며 테이블에 앉아 몇 시간을 보낸다는데 커피 한 잔, 책 한 권, 선글라스에 햇살이면 하루의 정신적 양분으로는 충분하지 싶다. 무선인터넷만 터진다면 한국인들에게 점령당하는건 시간문제겠지만 볼로냐에는 한국인이 별로 없다.


아지넬리 타워 앞 대로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 T셔츠에 반바지, 두터운 조끼에 쉐터를 걸친 사람들까지. 환절기의 패션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찻길엔 횡단보도 표시만 있을 뿐 차선은 아예 없다. 이탈리아에선 파란불에 건너기도 하지만 빨간불에도 차만 없으면 건넌다. 기초질서를 외치는 한국인의 시각에서 보면 이해 안되고 못마땅하게까지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익숙해지면 이것처럼 편한 것도 없다. 따지고 보면 신호등도 결국 사람 편하자고 만든거지 그거에 기계처럼 맞추라고 만든게 아니지 않나? 빨간불이기 때문에 안건너는게 아니라 위험하니까 못건넌다는 점, 그  점을 인식하는게 중요하다. 유럽의 경우 도로에선 무조건 사람이 우선이라는 인식이 널리 깔려있어 빨간불에 사람이 건너면 차들이 알아서 멈춰준다. 우리처럼 '죽고싶어?' 하며 행인을 차로 위협하는 경우는 절대 찾아볼 수 없다. 자, 며칠 후면 곧 그곳으로 간다. 아싸~ ...



'비빔국수에 왠 화이트와인?' 싶겠지만 아주 맛있는 파스타다. 화이트와인으로 쪄낸 홍합에 토마토를 붇고 끓이다가 파스타를 넣고 볶아낸 요리로 일명 '냄비 파스타'. 비주얼은 엉망이지만 맛보면 모두 좋아할꺼라 확신한다. 거짓말인지 아닌지 기다려보면 알지롱.




요놈이 바로 위에 그놈. 홍합을 건져먹기 전의 모습인데 이것도 비주얼은 영 시원찮지만 그나마 낫네. 냄비 벽에 마늘 붙은거 봐라. 면도 허여멀개서 사진만으론 무슨 맛일까 싶을꺼다 낄낄..



사진의 편집 순서가 엉망이라는 점을 드러내주는 증거. 아까 얘기한 뽀르띠꼬 데이 세르비 회랑길의 또 다른 사진인데 두 남녀가 사랑을 나누고 있다.




봄을 담아보고 싶어서 찍은 사진. 울창한 고목에 새순이 잔뜩 솟았다.  100년 가까이는 자랐을 나무. 서울 한복판에서 저런 나무 보려면 다다음 세대는 되야 가능하지 않을까? 청계천 변에 '꽂아'놓은 나무만 본다면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인간이 위대하고들 떠들지만 때론 저런 나무가 더 위대해 보이기도 한다. 얼마나 기품이 넘치는지 그 앞에 서서 올려다보면 안다.



이왕 눕힌 사진, 일관성을 위해서..^^ 새로운 아지트 이틀리(EATALY)의 바깥 모습. 암바시아또리(AMBASCIATORI)는 '대사관들'이란 뜻인데 간판으로 함께 내건 의미가 자못 궁금해진다. 저 건물에 대사관은 없으니 말이다.


첸뜨로(완전 중심가)를 살짝 벗어나면 만날 수 있는 대로 한 켠의 민들레 영토. 흐드러진 모습이 보기 좋다. 춘심이 전해지는구나~


볼로냐 대학. 건물들이 도시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고 그 수도 많다. 저런 환경이면 공부할 맛 날까? 누구나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자습실과 도서관이 있다는 점은 시민들은 물론 관광객들까지 매료시킨다. 작년, 피렌체 두오모 근처에 새롭게 문을 연 도서관이 시설과 분위기, 이용편의 등에서 정말 끝내줬고 베로나의 도서관도 좀 작다는 점을 빼면 그에 견줄만해 보였다. 이명박 정부가 공공 도서관 사업에 박차를 가하길 기대해본다. 



이틀리의 내부 모습. 보는 바와 같이 한쪽은 책, 한쪽은 식품을 판매하고 있다. 식품들의 경우 단지 부유층을 위한 비싼 식품이 아니라 이탈리아 각 지역에서 지속가능한 윤리적, 공동체적 생산의 뿌리를 내리려는 대안적 프로듀서들이 만들어내는 식품들을 진열 판매하고 있으니 먹는 문제에 있어 진보하는 이탈리아의 고민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하긴.. 이미 범세계적 이데올로기로 성장해가고 있는 슬로푸드의 발상지가 이탈리아 아닌가! 이명박 정부가 슬로푸드 정책에 박차를 가하길 기대해본다. (재미없나? ㅋㅋ)


자.. 사진도 이제 거의 종반.

아까 중학생 아이들이 떼로 모여있던 바로 그 젤라또 가게의 내부 모습. 이제 얼굴도 익숙해진 저 아주머니 위로 메뉴가 보이고 아래에 스텐 뚜껑 속에 젤라또가 담겨 있다. 사진에 안나온 왼쪽 켠에 계산대가 있어서 그곳에서 먼저 먹고싶은 사이즈를 정하고 계산하면 영수증을 끊어주는데 그 쪽지를 아줌마에게 건네면서 젤라또 이름을 대면 과자컵에 퍼주고 비스켓 하나를 꽂아준다. 비스켓은 주로 숟가락 용도. 사람들이 많이 찾는 2.5유로짜리 메뉴의 경우 3가지 아이스크림을 선택할 수 있다. 저 뒤가 젤라또를 만들어내느 비밀의 공간. 한국에선 아이스크림 전문점이라면 미국산 베스킨라빈스가 90% 가까이 점유한 상황이지만 이탈리아는 단 한 곳의 점포도 없다.(아마도 그럴껄?) 왜냐면 이탈리아엔 수천개의 독보적인 가게들이 시장을 꽉 잡고 있어서 들어갈 틈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맛과 질에서 이미 승부가 갈린다. 만약 이탈리아 사람들이 베스킨 라빈스를 핥고 다닌다면 거짓말 조금 보태 특종으로 지하철 무가지에 그 사진이 실릴께 틀림없다.



이틀리 마지막 사진. 서가와 식품 판매대, 그리고 한쪽에 이렇게 멋진 카페겸 식당 공간까지 갖추고 있어 관념에만 젖어있지 않고 몸으로 직접 부딪치고 실천할 수 있다. 이상이 현실화 되는 곳, 이 얼마나 멋진 놀이터란 말인가! 이건희 회장이 이틀리 사업에 박차를 가하길 기대해본다.  



짜잔~ 등장! 까스띨리오네 젤라도. 이탈리아 젤라또가 베스킨라빈스와 결정적으로 다른 차이라면 맛의 깊이와 넓이가 엄청 다양하고 질감에서 탄력이 있어 어떨땐 쫄깃한 느낌마저 받는다. 베스킨라빈스가 퍼담는 식이라면 여긴 죽죽 길게 퍼올리는 식이다. 그리고 적어도 이 집의 경우 부재료를 아끼지 않아 먹다보면 초콜릿, 피스타치오, 이름 모를 쿠키 등이 저마다의 메뉴에서 통으로 씹혀 맛을 한 층 끌어올리니.. 좀 비싼 감이 없지 않지만 아이스크림 땡길 땐 이만한 맛이 없다.



저 저 색감 좀 봐라.. 이탈리아, 볼 것도 많고 먹을 것도 많은 나라지만 배울 것도 많다. 저 젤라또 만드는 법 배워두면 한국에서 재미 좀 볼 텐데.. 이미 강남, 압구정 쪽에는 젤라또로 대박을 터뜨리고 있는 가게가 있다고.  이탈리아 전역에 젤라또 가르치는 아카데미들이 제법 많이 있으니 대학진학 일찌감치 때려친 고등학생, 실업의 고통을 실감하고 있는 청년 실(失)업가, 사표를 품고 다니는 젊은 직장인, 퇴직을 앞둔 가장과 부업을 고민하는 주부는 물론 심지어 서주 아이스주 회장님에게도 적극 추천한다. 누구에게나 도전의 길이 열려있으니 함 고민해보시길.. 부국선진의 길. 도서관, 슬로푸드, 젤라또.

Posted by dalgonaa

사진 정리하면서 몇 장을 골라 두서없이 올려본다. 앞으로 이렇게 두서없는 컨셉으로 밀린 사진들 좀 올릴까 하는데 호응해주면 열심히 올리겠다.


오랫만에 해먹은 볶음밥. 한국에 있을 때는 워낙 먹을게 많으니 딱히 밥 볶을 일이 없었고 호기심에 굴소스를 사다가 몇 번 볶아보고는 곧 시큰둥해졌었다. 몰타에서 시작된 볶음밥은 베로나에 머물 때 가스불을 만나면서 그 실력이 급격히 향상됐는데 요즘은 굴소스 없이 간장 약간만 있어도 왠만한 이탈리아 사람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을 만큼의 수준으로 올라섰다. 초기엔 계란과 양파, 당근, 소시지 등 고전적인 재료가 위주였다면 요즘은 뭐든 있는대로 다 쓴다. 그 중에 젤 흥미롭고 맛도 이국적인 볶음밥은 토마토 볶음밥. 잘게 썬 프레시 토마토와 이탈리안 파슬리, 레몬이 맛의 중심을 잡는 볶음밥으로 새콤 짭짤한게 입맛을 한 바퀴 확 돌려버린다. 아직 맛본 적은 없지만 타이식당에서 주문해 먹는 파인애플 볶음밥과 그 맛이 흡사하지 않을까 싶다. 볶음밥의 관건은 밥과 팬기술. 밥은 꼬들한 찬밥이어야 하는데 그래야 요리를 마치면 밥알이 제대로 서고 알차져 입안에 넣었을 때 쫀득한 식감을 채워준다. 그리고 이때 중요한 것이 팬과 팬 까불기인데 웍(wok)이 있으면 좋겠지만 너무 무거지 않은 중팬만 있어도 성공. 당연히 코팅팬이어야 하며 불은 가스불이 최고. 불맛이 확 입혀지면 좋겠지만 그건 불가능. 가정용 가스불로는 어림도 없다. 중국집 주방에서 쓰는 용광로급은 돼야..


리크라는 채소에 판체타, 즉 삼겹살 베이컨을 넣어 볶아낸 반찬. 리크(이탈리아어로는 뽀로-Porro)는 모양 자체는 대파의 큰형님 정도로 보이지만 맛이나 용도는 전혀 다르다. 매운맛은 거의 없고 파 특유의 미끄덩 거림도 전혀 없다. 반 가르면 아주 깔끔한 모양으로 떨어져 우리 기준에서 보면 맛내기용이라기 보다는 멋내기용에 가까운 채소. 베로나에 있을 때 육계장을 끓이면서 대파 대용으로 써봤는데 적어도 식감에 있어선 대파보다 훨씬 좋았다. 한국에 이탈리안 파슬리가 없으면 꽤나 절망스러울 것 같은데 리크는 없어도 뭐..

최초 공개하는 베로나의 육계장. 대파의 역할을 완벽히 재현해낸 리크의 숨은 기량도 놀랍지만 고깃살과 더불어 장국의 맛을 지탱하는 천엽의 모습, 충격적이지 않나? 베로나의 수퍼에서 저놈을 만나다니.. 예상치 못했던 사건이었다.


우리집으로 들어서는 골목의 모습. 100년 전과 달라진 모습이라면 아마 주차된 차 정도? 이런 한적한 골목이 뻬루자엔 지천이고 이보다 훨씬 매력적인 골목도 무수하니 골목길의 낭만을 밟아보고 싶은 이들은 뻬루자로 오라. 관광안내소에선 4개 코스의 골목길 지도를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옆집 '애송이' 네스또레의 방에 가스배관을 설치하기 위해 며칠 전 공사가 벌어졌다. 벽을 뚫고 배관을 자르고 용접하는 등 반나절 동안 어수선 했는데 불가피하게 가스를 잠가야 해서 이날 점심을 오후 4시가 되서야 해 먹을 수 있었다. 다소 거슬리는 이웃인 네스또레지만 그간 불도 없이 지냈었다니 측은하기도 하다. 배관을 벽 따라 설치하려면 우리 집 창문을 이용해야 해서 집주인이 부탁하길래 그렇게 하라고 했다. 이틈에 다시 한 번 발코니의 창살 문제를 얘기했고 창살을 좀 더 후퇴시킨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공사로 어수선해진 틈을 타 네스또레의 방을 슬쩍 들어가 봤는데 방도 작고 주방도 작고 화장실은 더 작은 집. 짐이 많아선지 우리보다 늦게 들어왔음에도 더 오래 산 느낌이다. 책도 많고 낡은 컴퓨터와 스캐너도 보이고 제자리를 못찾은 14인치 TV가 두 사람 접시 겨우 올려놓을 식탁을 점령하고 있다. 팍팍한 삶이 뭍어나는 방, 그래도 녀석의 방이 매력적인건 방과 주방쪽에 난 창을 통해 드넓게 펼쳐진 움브리아와 풍광과 한낮의 햇살을 방안가득 고스란히 끌어안을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녀석은 발코니의 기득권을 좀 포기해도 된다.


지난 금요일, 이탈리아의 수도는 로마지만 뻬루자는 이날 하루 이탈리아의 중심지가 됐었다. 이 촌동네가 이탈리아 뉴스의 톱을 장식했던 이유는 작년 가을 무렵에 발생한 살인사건 때문이고 이날은 그 공판이 열렸던 것. COOP 수퍼마켓 옆의 낡은 나무 문이 법정 입구로 기자들이 포진해있다. 우리도 자세한 사건 내막은 모르지만 얼추 파악하기로 아만다와 라파엘로라는 젊은 연인이 치정으로 얽히면서 어떤 젊은 여성이 살해됐다는 것 정도다. 아무튼 그 소식을 전하기 위해 이 조용한 동네가 아침부터 기자들로 북적였고 오후엔 중계차까지 대거 출동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TV에 토론 프로그램마다 이 사건을 화제로 다루는 마당이었으니 우리도 카메라 들쳐매고 붐대 들고 현장에 나갔다면 폼 꽤나 낫겠지 싶다. 어쩌면 RAI의 취재기자가 BBC나 CBS 등 외신기자를 인터뷰했던 것 처럼 우리도 인터뷰를 하지 않았을까?
"아니, 그 먼 한국에서 여길 왜왔어?"

중계차를 보여줘야 실감날테니..

같은 날, 지평선 바로 위에 걸린 햇살이 건물의 윗부분을 때리는데 그 색감이 너무 고와 그 자리에서 멈춰 서 다리에 힘 빡 주고 한 장 철컥. 유럽분위기 좀 나나?


맛으로 시작했으니 맛으로 끝내자. (블로그 뭐 있나!) 석양 빛을 닮은 과일이 여깄다. 알투디투의 눈을 닮은 시칠리아의 명물 오렌지, 아란치아 로사. 이놈에 대해선 몰타 시절에 올린 포스팅에서 이미 한 번 올린 바 있다. 몰타에서 먹던 맛이나 이탈리아에서 먹던 맛이나 어차피 시칠리아 산이니 다를게 없고 맛은 당연히 좋다. 오렌지를 반으로 가를 때 흘러나온 붉은 과즙이 나무 도마를 벌겋게 물들일 정도로 색이 진하고 맛은 기존의 오렌지 맛에 열대의 맛이 더해져 꽤나 고급스러운 맛을 낸다. 싱싱한 놈 시원하게 썰어서 홍물 뚝뚝 흘려가며 먹는 것도 맛있지만 얇게 여러 장 저며서 설탕으로 맛내고 버터로 풍미를 더한 파이 위에 비단처럼 쫙 펼쳐내면 한 점 집어먹기 위한 육박전이 벌어지지 않을까. 한국에선 볼 수 없을 과일일 듯. 아~ 너도 그립겠구나!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