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딸리아 Italia 300908~2008. 10. 9. 16:39
어제 안드레아가 새로운 숙소로 찾아와 첫 이탈리아 수업을 진행했다. 숙소를 오전에 옮긴 참이어서 이래저래 어수선했고 마침 뒤늦은 아침겸 점심식사를 준비중이어서 어수선함은 더했다. 숙소는 일산에서 살던 원룸 형태의 오피스텔과 비슷하다고 보면 될테다. 오밀조밀하지만 그래도 갖출 건 다 갖췄으니 잠시나마 머물려 향후 일정을 준비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안드레아가 도착했을 때 카레가 끓고 있었고 집안은 채 정리되지 않은 짐들로 어수선했으나 안드레아는 괘념치 않았다. 아침에 필리핀 상인이 운영하는 아시아 상점에서 사온 무를 채 썰어 고추가루와 밀라노에서 사온 까나리 액젓을 넣어 살짝 버무렸다. 액젓의 맛이 전해지자 짭짜름한 맛이 몸을 조여주며 마치 어떤 에너지가 충전되는 느낌이 들었다.

카레와 반찬으로 곁들인 무생채. 강양이 2배식초를 평범한 식초양으로 착각해 넣었더니 무생채의 맛이 다소 쎄졌으나 우리가 먹는데는 문제 없었고 안드레아도 용감하게 열심히 먹었다. 자신은 뭐든 먹는 것을 좋아한다니 안드레아는 앞으로 매주 수요일, 이탈리아 수업에 앞서 함께 점심식사를 하며 한국문화의 일부를 경함하게 될 테다.


강습비는 하루 20유로로 정했고 수요일, 금요일에 우리 숙소에서 수업을 진행하며 일주일에 40유로를 수요일에 지급하기로 했다. 전문 선생도 아닌 자신이 20유로를 받는것이 과분하다는 안드레아, 그러나 우리가 어디 단지 수업료로만 그 돈을 지불하는 거겠는가? 겸손해하는 그 틈을 파고들어 우리 힘으로는 해결이 힘든 부탁들을 열심히 '제공'할 참이다. 가령 부동산을 함께 가보자 등등..

개인교습이 수요일과 금요일이라면 성당에서 진행하는 이탈리아어 무료 강습은 목요일과 토요일이다. 전에 얘기한대로 이 무료강습은 베로나의 가난한 사람들, 즉 이주노동자들을 상대로 성당이 마련한 자선 프로그램이고 그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사람의 하나가 바로 안드레아의 여자친구인 파올라다. 특히 토요일은 오전 9시부터 수업이 진행되는데 수업을 마치면 참여자들을 위해 간단한 아침식사를 제공한다.

지난 토요일에 한 번 방문해보니 사실 수업을 듣는 이들은 그닥 많지 않고 대개 아침식사를 위해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 만약 식사준비에 일손이 부족하면 우리도 거들지 않을까 싶다. 안드레아가 덧붙이기를 성당에 수업들으러 올 때는 가급적 '튀지' 말라고 한다. 무슨 의미인지 우리는 대번에 알아 듣는다.

이 무료강습이 우리에게 좋은 이유는 일단 공짜라는 점도 그렇지만 파올라를 비롯한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소통불능으로 받는 노동자들의 불이익을 최소화시키기 위해 그 어느 선생들 보다도 열심히 가르친다. 수업은 모두 이탈리아어로 진행되며 한쪽에선 기초를 진행하고 다른 한쪽에선 어느 정도 문장을 만드는 사람들을 위해 대화수업이 진행된다. 수업 참여자가 많지 않으니 그야말로 소수정예다.


사실 일전에 베로나의 한 교육시설을 찾아간 적이 있다. 이 시설은 정부가 운영하는 곳으로 합법적인 체류허가증을 갖고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든 무료로 수업을 들을 수가 있다. 혹시나 하고 우리도 문을 두드려보니 경찰서가서 신고하고 허가증을 받아오라고 해 발길을 돌려야 했다. 설사 경찰서를 찾아간다 해도 그들이 우리에게 요구할 정보가 단지 주소와 이름만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FM이 좋긴 하겠지만 FM이 불순한(?) 의도를 갖고 있는 것이라면 그건 빨리 간파해서 피해야 한다.

아무튼 이탈리아어, 우리가 첫 번째로 넘어야 할 장벽은 '읽기'다. 흉내조차 내기 힘든 몇 가지 발음앞에 절망감이 앞서지만 안드레아는 '연습, 연습, 연습'을 외친다.

"그래! 가보는거야!!" 


Posted by dalgonaa
이딸리아 Italia 300908~2008. 10. 4. 08:32


'스플리쯔(Spritz)'는 베로나, 넓게는 이탈리아 북부 지역에서 즐기는 음료다. 사실은 칵테일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와인잔에 물과 화이트 와인, CAMPARI라고 하는 술을 섞어 오렌지 한 조각과 얼음을 담가내면 되는 간단한 술인데 하루에 한 잔은 거의 마시고 있다. 지금 두 잔을 마시고 들어왔더니 살짝 알딸딸하다. 

베로나 4일째, 근황을 전하자면 이렇다. 절대적인 도움이 되고 있는 엘리자베타의 집에서 여전히 머물고 있으며 이런저런 생소한 경험들을 하고 있다. 이는 바꿔말하면 이곳 생활에 조금씩 적응해가고 있다는 얘기기도 하다. 이에 대해선 천천히 얘기하기로 하고, 우선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집과 언어다. 엘리자베타의 집은 훌륭하다. 굉장히 넓은 집은 아니지만 갖출 것은 모두 갖춘, 성공한 캐리어 우먼의 멋진 집이다. 출판업계에 일하는 그녀의 직업답게 집에는 온갖 종류의 책이 넘친다. 시샘하게 만드는 주방에 깨끗한 화장실도 두 개다. 우리가 머물기에 부족함이 없는 집이지만 그녀에게도 사생활은 있는 법.


마냥 그녀의 집에 머문다는 것은 그녀의 소중한 삶의 일부를 우리가 점령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슬슬 신경이 쓰이기 시작하니 서둘러 집을 구해야 한다. 사실 그녀도 은근히 원하는 눈치. (그런 그녀의 속내가 오히려 반갑다)

베로나가 몰타처럼 넓은 공간에 저렴한 집은 없지만 그래도 이러저런 임대광고는 제법 많이 나와 있다. 하지만 비자문제 때문에 몇 개월 이상의 임대계약을 망설이고 있다. 우선은 한달에 900유로(한화 150만원)에 이르는 비싼 레지던스에서 머물 예정이다. 이 한 달 동안 비자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알아보고 이탈리아 취재기행의 계획을 잡을 예정이며 이후 좀 더 저렴한 집에 대한 정보를 찾을 것이다. 일이 잘 풀린다면 한 달 후엔 500유로 이하의 집으로 옮기지 않을까 싶다.

우선 토요일인 오늘은(날이 밝았으므로) 엘리자베타와 함께 VERONA로 부터 대략 한 시간 거리의 PADOVA를 방문할 예정이고 월요일엔 역시 그녀를 따라 MILANO를 다녀올 예정이다. PADOVA는 그녀의 부모님이 살고 있는 도시로 그녀는 부모님을 만나고 우리는 시내를 구경한 뒤 그날 당일 돌아올 것이고 MILANO에선 하루 묵을 예정. PADOVA도 굉장히 멋진 도시라는데 우리가 그곳에 거는 기대는 한국식당에서의 식사와 식당 주인을 통해 고추장 판매처를 수소문해 고추장을 사오는 것이다. 나중에 자세히 소개하겠지만 베로나에 산재한 식당에서 즐기는 식사는 정말로 대부분 맛이 좋다. 그러나 열 접시의 훌륭한 스파게티가 한 스푼의 고추장을 못당하는 것이 우리의 유난스런 입맛이니 어쩌랴.. 

그 다음 문제는 언어다. 이렇게 생각하고 저렇게 생각해봐도 언어를 모르고선 이탈리아에서 하다못해 음식 한 접시 제대로 주문하기가 어렵다. 단지 스쳐지나가는 관광객이라면 까르보나라를 시켰는데 뽀모도로가 나와도 그 맛이 또한 훌륭하니 우연의 경험으로 받아들이며 까탈스럽게 따지지 않겠지만 우리가 그 입장은 아니지 않은가? 우리에게 좀 더 구체적인 소통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해서 오늘, 일벌레인 엘리자베타의 성실한 중재로 만난 사람이 바로 안드레아다.


왼쪽이 엘리자베타, 오른쪽이 안드레아. 엘리자베타의 단골 미장원의 또 다른 단골 손님인 안드레아는 미장원 주인 클라우디아의 중개로 소개받았으며 그는 베로나 대학에서 외국어를 전공했다. 우리는 카푸치노를 마셨고 저 두 사람은 에스프레소를 거의 원샷하다시피 마셨다. 이탈리아어 개인 교습이라는 주제를 가운데 놓고 우리는 안드레아로부터 궁금한 점을, 안드레아는 우리에게 궁금한 점을 서로 묻고 답했다.

안드레아는 우리에게 뜻하지 않은 희소식을 전하기도 했는데 마침 성당에서 운영하는 무료 이탈리아어 강좌가 일주일에 2회 열린다는 것. 그 수업에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리고 그 수업을 진행하는 것은 바로 자신의 여자친구라고. 동시에 자신 또한 그곳에서 자원활동을 계획하고 있었다고 하니 그에게 우리는 어쩌면 남다른 경험의 기회일 수도 있을테다. 이 자리에서 엘리자베타는 직업을 찾고 있는 안드레아에게 (이제야 얘기하지만 그녀는 GIOUNTI라고 하는 출판사 겸 서점의 중역이다) 안드레아가 스페인어와 러시아어를 구사한다는 점을 높이 사 그에게 취업 정보를 제공하기도 했다.

강습비 얘기는 엘리자베타가 이탈리아어로 먼저 안드레아에게 물었다. 안드레아는 선뜻 답을 내놓지는 못했고 이런 경우가 자신에게 처음이니 우선 여자친구와 함께 상의하겠다고 한다. 그러라고 하면서 엘리자베타는 자신의 집에서 일주일에 3번 와서 청소를 도와주는 필리핀 여성 레오노르의 경우 시간 당 7.5유로(11,000원)의 돈을 지불하고 있며 그 금액의 더블은 어떻냐는 1차 제안을 던졌다.

이는 우리나 안드레아,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제안이었다. 왜냐면 누구도 기준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간당 20유로 안쪽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며 사실 우리가 하기에 따라 그 시간을 훨씬 넘겨 수업을 이끌 수도 있다. 만나본 안드레아는 매우 성실해 보였으며 우리와 우리의 계획에 대해 흥미를 느끼고 있다는 점은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다.  

노천카페에서 커피를 마신 뒤 중매역할을 한 엘리자베타는 자신의 일을 위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고 우리는 안드레아와 함께 카페 옆 대학건물로 이동해 그곳의 시설과 도서관 이용방법을 전해듣고 길 건너 편, 즉 우리가 아마도 한 달간 머물게 될 집과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공용 자습실(?)도 소개받았다. 이 공간이 무척 흥미로웠는데 대학부속건물은 아니고 베로나 시에서 운영하는 시설로 안에는 그저 형광등과 테이블, 의자가 전부이며 누구나 와서 자신의 책을 보거나 신문을 보고 가면 그만이다. 안쪽 구석에는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중이었으며 분위기는 꽤나 엄숙했다. 사진에 담진 못했지만 밖에서 담배피던 신장 190에 이르는 사내는 거의 키아누 리브스의 판박이어서 김군 마저 매료시켰다는..


날씨는 제법 맑았으나 유난히 바람이 쎄서 추위를 느낀 하루. 누구의 시선없이 맘 편하게 머물 집이 당장 없다는 것은 정말이지 큰 스트레스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절감한 하루다. 집과 언어, 이 두 가지를 위해 요 며칠 부지런히 뛰어다니고 있지만 어느 것 하나 아직 확실해진 것은 없다. 당장 한 달간 기거할 집은 거의 정해졌지만 임대료가 너무 비싸 한 달 후엔 새로운 집을 찾아 옮겨야 한다. 이탈리아어 강습도 아직 무료강좌를 나가보지 않아 어떤지 정확히 모르겠고 개인교습도 강습비가 정해진 것은 아니다. 그리고 과연 얼마 동안을 배워야 우리가 원하는 수준에 도달할지 아무도 모른다. 거기에다 비자의 불안정함까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낯선 땅 베로나에서 조금식 인연을 넓혀가고 있으며 그들 모두 우리에게 적대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안드레아가 그렇고 세인트 토마스 카페의 리자가 그렇고 당연히 엘리자베타가 그렇다. 이 모든 것이 행운이라면 그 행운은 과연 어디까지 지속될지, 당장 우리가 걱정하는 집 문제와 언어 문제에도 행운은 따라줄지.. 

아래 사진은 세익스피어의 소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의 발코니가 있는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 마침 손 붙잡고 지나가는 연인 너머로 사랑의 맹세, 혹은 바람을 적은 간절한 쪽지들이 마치 한 폭의 미술작품처럼 붙어 있다. 여담이지만 베로나는 확실히 한국여행자들의 발길이 뜸한 곳이다. 눈씻고 찾아봐도 한국어 쪽지는 발견하지 못했다.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