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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4.24 배웅 1

공항으로 향하면서 효진은 한 달치 내기로 했던 방값을 공부하기 위해 가져왔다가 그냥 놓고 간다는 파란색 Grammar In Use 책 사이에 껴놓았다고 말했다. 돈 받기도 미안하지만 안받을 수도 없다. 떠나 보내는 우리도 아쉽고 약속을 깨고 떠나는 효진도 마음이 무겁기는 마찬가지일 터.

 

3 40 이륙하는 에미레이트 항공편으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효진을 배웅하고 우리는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간 주인을 맞았던 방은 그 전 보다 더 쓸쓸해 보인다.

 

Grammar In Use가 거실 테이블 위에 얌전히 놓여있다. 근데 그것만 놓고 간 게 아니다. 무겁게 짊어지고 온 몇 가지 짐들이 남겨져 있다. 멀티 탭, 노트 몇 권, 볼펜, 랜선, 슬리퍼 심지어 몰타에서 사용하기 위해 두바이 공항에서 사온 휴대폰도 놓고 갔다. 두바이 공항에서 3만원에 구입했으나 결국 이곳에서 한 번도 사용하지 못하고 남겨두고 만 것이다.

물건들은 모두 하얀 비닐봉지에 담겨져 있었고 이는 이미 이곳에 남겨놓겠다는 그녀의 의지가 담겨진 것이었다.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할 요량은 아니었겠지만 아무튼 우리는 적잖이 놀랐다. 그러면서도 새것으로 반짝거리는 물건들은 어찌나 처연해 보이던지..

 



>> 노트 세 권, 영문법 책, 노키아 휴대폰, 랜선, 볼펜 세자루, 테이프, 그리고 멀티탭. 잠시 사람의 온기로 채워졌던 방은 '그랬었다'는 흔적만 남긴채 다시 빈방으로 남았다.

아주 짧은 만남이었지만 우리에게 남겨진 그녀의 인상은 매우 강렬했다. 불면 날아갈 듯한 연약한 몸에 남 앞에 나서기를 꺼리는 그녀지만 술을 사이에 놓는다면 자신을 당해낼 사람은 주변에 별로 없다는 그녀, 짧으나마 건축에 관한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매우 즐거웠고(한남동 이건희 집의 단열재는 뉴질랜드 산 어린 양모라고 한다) 무엇보다 그녀의 고향인 하동에 관해 들으면서 우리는 하동의 매력에 푹 빠지고 말았다.

 

귀국하면 꼭 하동에서 다시 보기로 약속했다. 그녀는 우리에게 하동의 매력을 체험시켜주기로 했고 우리는 그녀에게 그녀가 떠난 뒤 우리가 겪은 여정을 재미있게 풀어줄 계획이다. 그녀를 사로잡은 알리올리오와 그녀가 자신 있어 하는 술을 사이에 놓고.

 

<효진에게 덧붙이는 인사>

효진, 할머니 잘 보내드리고 부모님도 따뜻하게 위로해드리시게. 그리고 우리는 내년에 하동에서 다시 보자구. 건강하게 잘 사는 것이 할머니나 부모님에게 가장 큰 효도인 법. 강건하시게..”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