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싱한 멸치(Anchovy)를 사다가 머리따고 내장따고 흐르는 물에 깨끗히 씻은 뒤 밀가루 가루만 입혀 기름 자작히 두른 프라이팬에 튀겨냈다. 여기에 이탈리아 샐러리를 채썰어 흩뿌리고 위에 소금도 뿌려 간을 잡은 뒤 마지막으로 레몬 한 조각을 쥐어 짜 상큼함을 입혀주면 이놈이 한 마디로 백포주 도둑놈이 된다. 뼈가 연해 씹어도 부담없고 보슬보슬한 살이 제법 기름져 육기가 아쉬울 때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보상이 된다.

해산물이 비교적 풍부한 우리로선 멸치 정도는 그냥 우습게 보는 생선이 아닐까 싶은데 유럽으로 오면 멸치는 좀 더 귀한 대접을 받는다. 올리브유에 차곡차곡 정갈하게 담겨 판매되거나 생물도 깨끗히 씻겨져 포장돼 판매되는 모습을 보면 그렇다. 염장된 안초비(이탈리아 이름은 알리치-Alici)의 경우 식탁에선 파스타와 함께 볶이거나 피자에 올려져 구워지며 생물을 즐기는 경우라면 사진처럼 튀겨먹거나 푹 고아서 뼈를 발라낸 뒤 특별한 소스로 만들어 내기도 한다.

유럽은 어딜가나 해산물이 귀하고 비싸다. 하물며 이탈리아도 그렇다. 고등어의 경우 생물 기준으로 1kg에 8유로, 우리돈 14,000원이고 한국에서 가격 폭락으로 울상이라는 오징어도 비슷한 시세로 팔리고 있다. 다행히 멸치는 생물이 500gr에 3,000원 정도 하니 그게 어디냐는 심정으로 저처럼 튀겨먹고 때론 찌개를 끓여먹곤 한다.

Posted by dalgonaa
이딸리아 Italia 300908~2008. 11. 14. 19:00


 


한국을 떠나기 전, 직장동료가 사무실서 꿍쳐놓고 먹던 프룬을 뺏어먹곤(?) 했던 기억이 나는데 쫄깃하고 덩어리 큰 과육이 달콤하기까지 해서 속으로 '이런 별스런 먹거리도 있군' 했던 적이 있다. 지금은 집앞 수퍼에서 1kg에 5천원의 저렴한 가격에 사다가 배불리 먹고 있는데 멀리 배타고 대서양을 건너온게 아닌 모데나에서 봉고타고 100km를 달려 온, 요즘같은 글로벌 교역이 일반화된 처지에서 보자면 한 마디로 동네 과일이다. 쫄깃하고 달콤한 녀석이 씨가 들어있어 그게 좀 불편했는데 달리 보면 그만큼 가공을 덜 거쳤다는 얘기 아닌가? 헤어지는 그날까지 열심히 먹어주리라 다짐한다.


최근 쏟아져 나왔던 청포도의 경우도 아무리 멀리서 온것이라봐야 시칠리아고 그나마 장시간 여행으로 피곤한 과일이라면 여기서 재배가 쉽지 않은 바나나나 파인애플이 전부다. 그 외 그때그때 판매하는 버섯이나 양상추, 감자, 피망 등의 일상채소는 대부분 도시를 조금 벗어나면 만날 수 있는 밭에서 캐온 것이 대부분이니 이같은 신선 재료를 매일같이 접하는 주부들로선 재료를 한꺼번에 사다놓고 묵힐 이유가 없다. 매일같이 장바구니를 들고 나와 물건을 보고 만지고 냄새 맡아본 뒤 껍질콩 한 움큼, 버섯 한 움큼, 루꼴라와 파슬리 한 다발씩, 토마토 5개, 콜리플라워 작은 걸로 한 통 사면 그만이고 실제 이런 식이기도 하다. (이 외에도 매장에는 50km 떨어진 바르돌리노산 와인이 쌓여있고 100km 떨어진 파도바산 살라메가 가공식품 코너를 채우고 있어 지역 안에서의 생산과 공급, 소비 체제가 비교적 튼실하다 하겠는데 그 비결은 또 뭘지 궁금해진다.) 

베로나도 그렇지만 이태리 도시 어디를 가든 사는 곳 가까이에는 풍성한 녹색 채소와 붉은 빛의 과일을 파는 가게를 만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다못해 COOP이나 PAM 따위의 수퍼마켓일지라도. 도시를 살짝 벗어나기만 하면 포도밭, 시금치밭, 호박밭, 양배추밭, 밭밭밭이 끝도 없이 펼쳐진다. 베로나가 속한 베네토주(州)나 바로 아래 파르마가 속한 에밀리아 로마냐주(州)의 경우 롬바르디아 평야가 해마다 쏟아내는 과실의 혜택을 직격으로 받는 동네다보니 식탁이 빈곤할 수가 없다. 

상공업이 발달한 북부가 이러니 농업이 산업의 주요 기반인 중남부의 경우는 말해 뭣할까? 우리가 흔히 이태리 요리를 말할 때 그 맛과 솜씨에서 북부보다는 남부를 쳐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는 많은 이탈리아 사람들, 특히 북부 사람들도 인정하는 이야기니 만큼 오늘날 인정받는 이태리 요리의 명성이란 남부의 투박한 손맛이 만들어낸 결실이라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려울테다. (같은 반도국가로 우리와도 닮은 점이 많다)
 
하지만 여기엔 아픔이 있다. 이탈리아 남부는 북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발이 덜 되고 경제적으로 윤택하지 못하다는 사실. 한국사람들도 얼추 아는 사실일 뿐더러 우리와도 쏙 닮은 점인데 남부 사람들이 피부로 느끼는 경제적 어려움이나 상대적 박탈감은 단지 맛있는 음식 하나로 위로받을 수 있는 일이 아닐테다. 전에도 얘기했다시피 남부 칼라브리아주(州)의 어느 마을의 경우 연간 소득이 640만원에 그쳤다고 하고 유럽 통화당국을 골치아프게 만드는 위조지폐의 온상 가운데 하나가 이태리 남부 풀리아(州)라는 사실은 이들이 처한 어려움을 암시하는 단적인 예이기 때문이다. 


허나 비록 공치사긴 해도 여전히 오늘의 이탈리아를 요리의 강국으로 지탱케 하는 힘은 여전히 이들에게 있다. 빈한한 시골, 냄새풍기는 농가더라도 자식의 자식을 거쳐 집안 대대로 이어오고 있는 맛의 전통은 세계인들에게 매혹을 선사하고 있고 적잖은 이들이 이들의 자취를 밟아보기를 자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을 넘어 세계 요리계의 재간둥이가 된 제이미 올리버 역시 이들속으로 들어가 견문을 넓히고 자신의 요리 기량을 검증(?)받았는데 그 경험은 한 권의 요리책으로 이미 엮여져 나와있다.

이 책의 서문을 보니 제이미는 이태리 요리가 세계적인 요리로 거듭난 배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석(?)하고 있는데 그의 관점을 의역을 섞어 옮겨보면,

"이탈리아에 가보면 왜 이탈리아 요리가 세계적일 수 밖에 없는지 알 수 있는데 질 좋은 땅, 천혜의 기후 외에도 내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사람들이 농사 외에는 딱히 할 일이 없다는 점이다. 이탈리아에서 노동자 계급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갖는 다양한 선택의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근데 나는 오히려 선택이 많아지면 진짜 중요한 뭔가를 잃게 된다고 생각한다. 가족과 전통이 그렇다. 

올리브 수확철이 되면 젊은이들은 물론이고 노인들도 올리브 따기에 나선다. 하루 평균 1인당 100kg의 올리브를 수확하는데 이들은 올리브 수확의 댓가로 6리터 정도의 신선한 올리브를 얻어간다. 영국에서라면 노인이 노동에 나서는 건 상상도 할 수 없고 더욱이 돈이 아닌 기름을 댓가로 받아간다는건 더더욱 상상하기 어렵다. 이탈리아는 아이슬란드, 일본에 이어 세계 세 번째 장수국가다. 이들이 기름진 식사와 단 음식을 매일같이 숭배함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적당한 노동과 충분한 채소 섭취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결국 의도하지 않게도 옛것에 머물러 있을 수 밖에 없는 환경이 이런 뜻하지 않은 명성과 건강한 삶을 가져다 준 것이란 얘기일 수 있겠다. 물론 상대적 빈곤에 대한 이들의 불만은 여전히 존재한다. 허나 제이미는 이들의 불가피한 현실을 언뜻 안타가워 하면서도 그 결과로 영국에는 없는 전통과 삶을 지키고 있다는 점에 대해선 한없는 존경과 부러움을 보내고 있음에 분명한데 그는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단지 밀가루와 물, 계란만으로 그 수 많은 종류의 파스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그들은 천재들이다! 그리고 당신 그거 아냐? 난 이탈리안의 피를 갖고 태어났어야 했다! 왜! 도대체 왜 나는 사우스엔드 바닷가에서 태어났냔 말이다! 그렇다고 나의 조상을 탓하는건 물론 아니지만.."



담배 문 이탈리아 아저씨들과 그 앞에서 어쩐지 엉거주춤한 제이미의 자세가 인상적이다. 이들에게 제압(?)당했단 얘기겠지. 사진의 물고기가 지중해의 대표적 생선인데 우리는 몰타에서도 먹었고 이곳에서도 먹고 있다. 이름? 하도 낯설어서 기억 못하겠지만 돔류임엔 틀림없을 터. 염장해 말린 뒤 약불에 오래익혀 쫀쫀해진 살을 발라먹거나 아니면 역시 말린 놈은 새우젖 넣고 매운고추 썰어 넣어 끓여 밥과 함께 먹으면 그 맛이 또한 일품이다. 이탈리아식 요리는 과연 어떤 것일지.. 시칠리아를 꼭 가봐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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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한겨레에 실린 '윌리엄 레이몽'과의 서면 인터뷰 기사를 흥미롭게 읽던 중 유럽에 머무는 동안 제작하려는 다큐멘터리에서 중요한 개념이 될 힌트 하나를 얻었다.

Q :
한승동 기자
"
항생제와 살균.살충.제초용 농약, 포장용 가스, 유전자 조작 농산물(GMO), 방사선 살균, 액상과당 등도 심각하다. 도대체 안전한 먹을 거리는 없다는 얘긴가?"

A :
윌리엄 레이몽

“정말 큰 문제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싸워서 우리의 음식을 되찾아야 한다. 될 수 있는 한 가공식품을 피해야 한다. 우리 스스로 요리를 해야 한다. 자연식품의 즐거움이 얼마나 큰지 깨달아야 하며, ‘적게 천천히’(small and slow)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목숨을 이어가는 본능적 행위에 더해 혀로만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예술을 경험하고 즐기는 행위이기도 하다. 여기에 넉넉한 시간과 즐거운 대화, 함께 해서 좋은 사람들과 그들을 좀 더 끈끈하게 결속시켜 줄 잘 익은 술이 더해지면 삶은 그때마다 환희로 가득 찰 수 있다.

 

그 예술에 끊임없이 도전하고 삶을 환희로 채우려는 노력의 일환이 바로 '요리'다. 근래에 와서 요리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우리를 둘러싼 환경에 대해 보다 깊은 생각의 기회를 제공해 준다.

 



요리는 재료의 신선도와 안전성, 가격과 구입, 손질과 조리, 지역과 기후, 환경과 역사, 전통과 실험 등.. 먹는 행위만으로는 충족될 수 없는, 그리고 고민될 수 없는 많은 인식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은 물론 그 같은 문제들에 적극 개입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준다.

 

단지 끼니를 때우기 위한, 때론 귀찮고 번거로운 행위를 지나 풍요로운 미각을 통해 삶이 즐거워질 수 있다는 깨달음을 거쳐 이제는 나를 비롯, 가족과 친구들을 외부의 환경적 재앙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또 다른 생존의 행위로 차원이 넓어져 가고 있는 것이 오늘에서야 새삼 주목받는 요리의 또 다른 정체성은 아닐까? 작금의 쇠고기 파동과 유전자 변형 음식물 수입에 따른 이런저런 걱정의 목소리는 그것을 웅변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탈리아는 전통에 대한 고집, 재료를 보는 높은 안목, 이미 자신들의 먹거리 문화를 속도와 이윤으로 괴사시킨 미국과는 달리 식사를 여전히 고귀한 의식의 하나로 바라보는 관점과 느리다 못해 게으른 그들 삶의 템포는 시사하는 바가 많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쩌면 더 많은 가능성이 있는 곳이 한국이 아닐까? 우리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그렇지 않다면 그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

 



그 중심에 요리가 있다. 비록 저마다 손재주는 타고나지 않았을 망정 세계 어디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맛의 체계를 구축하고 있는 곳에서 오랫동안 길들여져 온 까다로운 입맛을 갖췄다는 것은 이미 절반은 해결된 것 아니겠는가?
 

요리라는 행위를 통해 어쩌면 우리가 미처 해결책을 찾지 못했던 몇 가지 문제들은 풀어갈 수 있다는 믿음이 우리에게는 있다. 적어도 달고나는 지리산에서 어렵사리 농사를 지으며 결코 땅을 포기하지 않을 친구와 공생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매개의 하나는 요리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이는 매우 창조적이며 각기 다른 삶을 거미줄처럼 탄탄하게 엮어줄 작업이다.

 

요리를 하자. 주부도 자취생도 군인아저씨도 모두 요리사가 될 수 있다. 주방에서 감자를 깎고 계란 하나를 휘젓고 숟가락으로 간을 보는 순간 요리사 아니겠는가? 그게 어렵다면 이윤만을 위해 '조작된' 맛을 거부할 수 있는 건강한 입맛으로라도 바꾸는 노력이 땅과 바다가 최소한의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조건이 될 수 있을 테다.

그러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은 많다. 가령 청계천에서 촛불을 드는 것 처럼 말이다. 하지만 맛있고 건강하고 즐거운 식사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즐겁게 넘어갈 산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오가닉'으로 섣불리 결론내지 않길 바란다. 오가닉은 장기적 목표일 뿐 당장의 대안은 아니다. 자칫 그렇게 오해할 여지가 있어 노파심에 덧붙인다. 천천히 하나씩..
Posted by dalgonaa

스페인어로 esparrago, 독일어로 Spargel, 이탈리아어로 asparagi, 프랑스어로 asperge. 지금 유럽의 식탁에는 아스파라거스가 바쁘게 올라오고 있다. 영국의 한 요리 잡지는 "일년 중 가장 큰 먹거리 사건이 시작됐다"며 "그 오묘한 맛을 즐기라"고 부추긴다. 이 기간, 요리 관련 매스컴들은 표지를 기꺼이 아스라파거스에게 내준다.

그리고 보니 김군이 팔자에도 없던 스위스로 출장갔던 작년 이맘, 그곳 식품매장에서 다발로 포장되어 수북이 쌓여 있는 푸르고 싱싱한 아스파라거스를 잠시 멍하니 바라보던 기억이 떠오른다.



>> 적어도 '요리'에서 만큼은 지지리 못난 영국인들, 그러나 최근 이들의 입맛은 물론, 요리 솜씨도 나날이 향상되고 있다. 제이미 올리버나 릭 스테인은 그 중심에 있으며 사진에서 보는 잡지 역시 오늘날 영국인들의 요리 수준을 끌어올리고 있는 주역에 하나다. 5월의 커버스토리는 다름 아닌 아.스.파.라.거.스!

한국에서도 아스파라거스는 이젠 낯설지 않은 채소다. 이맘 때 쯤이면 대형 할인매장의 신선식품 코너에서도 고무줄에 묶여진 아스파라거스를 쉽게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10여년 전 까지만 해도 일부 고급 호텔과 레스토랑을 중심으로 스프나 메인 요리의 가니쉬(곁들여지는 채소)로 종종 소개됐지만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계기는 엉뚱하게도 한 제약 회사가 내건 숙취해소용 음료에서 비롯됐다.

콩나물 뿌리에 많고 숙취해소에 좋다는 아스파라긴산이 결국 아스파라거스에서 따온 이름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아스파라거스는 술을 달고 사는 한국인들에게 있어 비록 식용법은 여전히 낯설지언정 정서적으로는 가까운 채소로 자리잡는데 성공했다. (일부에선 아스파라긴산의 숙취해소가 과장됐다며 그 효과에 강한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아무튼 아스파라거스는 봄기운이 촉촉히 배어든 땅의 정기를 듬뿍 빨아올려 수직으로 곧게 뻗은 연한 줄기속에 온갖 영양성분으로 탈바꿈 시켜낸 귀한 채소 가운데 하나다. 퀘벡에선 '채소중의 귀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니 서양 식탁에서 아스파라거스는 우리네 봄 밥상에 올려지는 드룹 처럼 매우 특별하고 귀한 봄철 먹거리임에 틀림없다.

재배 과정을 잠깐 살펴보면, 근두를 땅에 뭍어 두고 지속적으로 관리해주면 뿌리를 넓게 퍼뜨리면서 3년 후부터는 싹을 틔우는데 우리가 먹는 아스파라거스는 봄기운이 퍼지기 시작하는 2~4경 사이에 활발한 성장을 한다고 한다. 이때 얇은 토양을 뚫고 하얀 줄기의 싹이 죽순처럼 솓아오르기 시작하면 이를 싹둑 베어 먹는 식이다. 뿌리가 다쳐선 안되므로 특별한 칼과 기술로 세심하게 베어야 한다는데 언젠가 두 눈으로 확인할 날이 있기를 기대한다.

고대 서적에 따르면 최음작용이 있는 모든 식물은 아스파라거스로 분류됐다고 하는데 그런 배경에는 인과 비타민 A, 옥살산이 풍부하다는 나름의 과학적 이유를 깔고 있다.

실제로 19세기의 프랑스 요리 작가 마르탱은 "부정한 식사에서 아스파라거스를 먹으면 소변에서 불쾌한 냄새가 난다"고 해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아채는 척도의 하나로 소개했으며 바람둥이로 소문난 루이 14세는 자신의 정원사에게 12월에도 아스파라거스를 먹을 수 있도록 채근했다고 한다. 물론 정원사는 왕의 욕망을 충족시키는데 성공했다.



저장기술의 발달로 요즘엔 통조림이나 냉동 형태로 판매되는 아파스라거스도 있지만 역시 맛을 제대로 보려면 바로 요맘때 나오는 녀석 가운데 싱싱한 놈을 골라 찜기로 쪄먹는 것이 가장 좋은 맛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특히 계란후라이를 얹어 내는 풍을 일컫는 비스마르크풍 아스파라거스 요리는 아스파라거스 본연의 맛을 즐기는데 도움이 된다.

오래 전 기억을 뒤적여 보면, 처음 씹을 땐 단단한 질감이지만 몇 번 씹으면 물러지면서 특유의 섬유질이 씹히고 밍밍한 맛이지만 마지막엔 입안에 고소한 풀맛이 남는다. 워낙 다양한 풀을 즐기는 한국인의 입맛에서 보자면 그다지 놀라운 맛은 아닐 듯 싶지만 그 맛에 매료당할 수 있는 입맛을 갖고 있다면 그것도 복이리라. 기회가 닿는 다면 자신에게 '복'이 있는지, 혹은 루이14세의 유별난 입맛은 무엇이었는지, 그 맛을 천천히 음미해보길..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