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유'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01.08 알리치 절임, 성공 맞아? 10
  2. 2009.01.02 시에나의 고층건물 8
  3. 2008.06.28 바질 페스토

비린내 좀 풍겨보자. 알리치(Alici, 영어로는 Anchovy), 비린맛 굶주린 이들의 입맛을 싸게 충족시키기에 이거만큼 좋은 어물전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우리는 요즘 알리치의 존재에 감사하고 있다. 인천 소래포구에 가면 시뻘건 녹과 말라버린 소금이 한데 엉긴 커다란 드럼통에 시커먼 멸치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이 녹아 짠내를 풀풀 풍기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데 한때 일산에 살며 비린맛이 그리울 때면 종종 그곳을 찾아 냄새를 원없이 맡았었다. 그러나 사실 소래에서 우리 입맛을 당긴건 주로 횟감의 안방마님 광어나 우럭, 제철에나 즐기는 전어, 겨울철 쏟아져 나와 산처럼 쌓여있는 싱싱한 홍합과 굴, 각종 조개류, 대가리에 알과 먹물 꽉꽉 들어찬 주꾸미가 일산에서 고물차를 타고 달려가게 만든 주인공들이었을 뿐, 멸치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탈리아는 어떨까?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국가, 이름만으로도 가슴 설레이는 지중해, 아드리아해를 동서남으로 접한 빤따스틱한 지리적 조건, 이곳에서도 소래에서 맛봤던 놈들과 뜨거운 재회를 할 수 있을까? 쯧쯧.. 꿈깨자. 사실 몰타에서 7개월 생활하며 이미 예상했던 일이기도 한데, 지중해가 그닥 차가운 바다가 아니어선지 잡혀 올라오는 어족도 적고 상태도 여간 부실한게 아니어서 생선이라면 환장하는 우리로선 여간 실망스러운게 아니다. 한치보다 작은 놈이 오징어라며 버젖이 팔리고 있고 1kg에 1만원이 넘는 고등어는 어떤 대단한 물건인가 해서 보면 전어만한 크기의 귀여운 것들을 장식을 곁들여 최대한 그럴듯하게 보이도록 해 팔고 있으니 팔뚝만한 고등어만 먹어온 우리로선 콧방귀밖에는 나오는게 없다. 이탈리아가 이정도니 바다라곤 냄새도 못맡는 스위스, 오스트리아, 체코, 헝가리, 슬로바키아 등 내륙은 오죽하겠나? 그러니 한국과 일본 다음으로 어물전이 풍부한 나라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게 이곳에 와서다. 좀 건방진 얘기일지도 모르겠지만 누군가 이탈리아 가서 생선요리를 배우겠다면 사시미칼 들고 말리겠다.  매일같이 먹는 프로슈또 포 뜨는 솜씨는 봐줄만 하지만 TV 요리 프로그램에서 전문 요리사가 생선 포 뜨는 모습을 보노라면 답답하다 못해 한심하단 생각이 들 정도니 말이다. 그러나, 답답한 가슴만 친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아쉬운건 우리일 수 밖에 없다.

다행히 알리치는 겨울철 들어 물좋은 놈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고 품질도 좋고 가격도 비교적 저렴하니 '이거라도 있는게 어디냐'는 것이 우리의 솔직한 심정이다. 베로나는 집 가까운 곳에 작은 생선가게가 있었지만 뻬루자는 그마저도 없어 큰 수퍼에 가야 그나마 비린내를 맡을 수 있고 공교롭게도 산으로 둘러쳐진 내륙 중앙으로 들어와서 즐겨먹는게 알리치 파스타라는 점이 얄궂지만.. 여튼 요즘 알리치 소비량이 제법 많은데 가공품으로 나온 알리치는 제일 싼게 80g에 1,500원이고 좀 괜찮은 품질은 4,000원이 넘는다. 이틀 정도 해먹으면 바닥이 나는 양. 허구헌날 알리치를 사는 것도 캥기고 값도 비싼듯해서 이럴바에 생멸치를 사다가 직접 담가먹자하던 차에 마침 수퍼 생선코너에 가니 실로 오랫만에 들어왔길래 1kg을 5천원에 구입했다. 더듬더듬 알리치를 달라고 하니 펑퍼짐한 생선코너 아줌마, 멸치를 포장하며 "알~뜨로(그리고 또)"를 외치는데 그 압박에 살짝 위축돼 홍합이 있어 그것도 좀 샀다. 이곳의 생선포장이 독특하다. 먼저 기름종이를 깔고 그 위에 생선을 올려 포장한 뒤 다시 은박봉투에 담아 이를 기계로 다시 봉합해 마지막으로 비닐봉투에 담아 가격표를 붙여준다. 먼길 가도 생선 비린내가 새나올 틈이 없으니 서비스 수준은 우리보다 훨씬 높다 하겠다. 쇼핑의 사소한 차이 하나만 더 얘기하자면 채소나 과일 코너에선 비치된 비닐에 원하는 만큼 물건을 담는건 우리와 다를 바 없지만 이때 함께 비치된 일회용 비닐장갑을 끼고 물건을 만진다는 점, 그리고 자신이 직접 무게를 재고 가격표를 붙인다 점이 우리와 다르다. 일회용 장갑을 돈주고 구입하는 우리와 달리 필요하면 그냥 집어오면 되는 것도 재밌고 눈치껏 하면 가격표만 먼저 끊어놓고 비닐에 채소나 과일 몇 개 더 집어넣는 스릴도 즐길 수 있다. 실제 그러는 젊은 애들도 가끔 있다. 우린 젊지 않아서..

자, 알리치를 소개한다.


은빛 비늘이 깨끗한게 제법 싱싱하고 보는 재미가 느껴질 정도로 이쁘다. 안그런가?


머리를 따고 내장을 제거한 뒤 물로 깨끗히 씻어내면 이렇다. 윤기는 변함이 없고 한점 집어서 초고추장에 푹 찍어먹고픈 충동이 물결친다. 근데 먹을 수 있을까? 보자. 비늘이 심하게 흉하게 나간 곳 없이 은빛으로 깨끗하게 반짝인다는 점은 전혀 상하지 않았다는 얘기고 냄새를 맡았을 때 비린내가 안난다는 점은 뭍으로 올라온지 얼마 안됐다는 얘기다. 해서 깨끗히 손질만 하면 먹을 수 있다. 우리는 몇 점 집어 고추장에 찍어 맛있게 먹었다. 허나 이날은 횟감용이 아니라 염장해 올리브에 절이기 위함이니 욕심은 접어야 했다.


내장에 이어 뼈까지 제거하는 저 세심함. 생각보다 쉽게 뼈가 발라져 나온다. 일전에 일본 소설을 읽어보니 도미같은 억센 생선의 머리를 제거할 때 초보자는 칼의 날카로움과 힘만 믿고 달려들다가 도마를 난장판으로 만들어놓는 반면 숙련자는 관절에 칼끝을 넣어 손쉬게 머리를 제거한다고 한다. 그러나 멸치의 머리를 제거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전자일 듯.

소금 솔솔 뿌려 절여놓고


병에 차곡차곡 담은 뒤 올리브유 듬뿍 부어놓으면 끝.

은빛 멸치와 옅푸른 올리브유의 조화가 아름답다. 이렇게 해서 알리치 담그기는 성공적으로 끝나나 하고 생각했는데 젠장.. 소금에 절인 멸치에서 물이 나온다는 생각을 미처 못한거다. 1시간 쯤 지나자 소금기 때문에 병 밑바닥에 탁한 멸치물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요즘 물 때문에 낭패 많이 본다. 한 번은 세탁기를 돌리는데 배수호스를 세면대나 욕조쪽에 걸쳐두는걸 깜빡해 화장실이 물바다가 된 적이 있다. 우리와 달리 여긴 바닥에 배수구가 없다. 기겁을 해서 쓰레받이를 들고 욕조안으로 물을 퍼 넣었다. 비록 작은 유리병안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낭패감은 그에 못지않다. 얼마나 정성을 들인건데..  생각끝에 다시 알리치를 들어내고 물만 따라 버린 뒤 하룻동안 멸치물이 더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다음날 최종적으로 올리브유를 다시 부었다. 이렇게 해서 알리치 담그기는 마무리됐다. 정성이 수고롭긴 했지만 병안에 담긴 양을 생각하면 한동안 넉넉히 요리해먹을 양이다. 무엇보다 직접 담가봤다는 경험이 자산으로 남을 듯. 근데.. 알리치 담그는 요령에 대한 어떤 힌트나 조언도 없이 '대충 이렇지 않겠나' 하는 생각으로 달려든거였는데 아무래도 멸치를 어떤 식으로든 한 번 살짝 익혀서 담그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 왜냐면 우리가 사먹는 것과 모양, 질감면에서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다 먹는건 불투명한데 우리가 담근 알리치는 투명하다. 어떻게 생각하나? ㅋㅋ

알리치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몇 가지 방법, 아직 이정도 밖에는..

이탈리안 파슬리와 레몬을 뿌려낸 멸치 튀김. 백포도주와 환상궁합.

요즘 우리의 완소, 알리치 파스타. 사진 땟깔이 입맛과 멀지만 맛은 보장한다. 루꼴라 얹고 그 위에 빠다노 치즈가루 솔솔.

알리치와 말린 뽀모도로를 메인 토핑으로 올려낸 수제피자. 반죽까지 손수 밀어낸 강양의 솜씨다. 얇은 반죽이 바삭하니 맛있고 쫄깃한 뽀모도로, 짭짤한 알리치의 조화가 훌륭하다. 역시 백포도주와 환상궁합.

그리고 보니 새해 인사가 늦었다. 조회수 100 안팎을 꾸준히 유지시켜주는 모든 방문자들이여, 올 새해도 몸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두루두루 건강하시길 바라고 무엇보다 험난한 풍파속에서도 풍성한 식탁만큼은 꾸준히 지켜가시길..!

Posted by dalgonaa

며칠 전 시에나를 다녀왔다. 치솟은 첨탑과 그것을 향해 경사지게 설계된 광장으로 유명한 돈 많은 토스카나주의 유명한 그동네.


한겨울이지만 광장으로 쏟아져 내리는 햇살을 마주하노라면 그늘진 골목길을 걷는동안 얼어버린 몸이 사르르 녹는바 많은 사람들이 따뜻한 햇살을 '먹기위해' 저 광장으로 몰려든다. 햇살은 맛만 좀 본 뒤 우리는 엘리자베따의 추천으로 찾은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바로 아래 식당, 오스떼리아 '일 그라따치엘로'. 해석하면 '고층건물'.


고층건물.. 허나 식당은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냥 먼게 아니라 심각하게 멀다.

벽 봐라. 다 무너져간다. 회칠도 벗겨져서 아슬아슬한 벽돌이 벌겋다 못해 시커멓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만약 이 식당이 실제로 고층건물의 아래에 있었다면 이미 망했을 것이다. 무너져서. 허나 식당은 점심무렵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 사람이 많은 탓도 있겠지만 식당이 너무 좁다. 실내는 긴 테이블 3개를 놓아 앉을 자리만 나면 눈치껏 앉아서 먹으면 되는 아주 실용적이고 서민적인 분위기의 식당이다.  결국 안에서 테이블을 확보못한 우리는 보다시피 밖에서 상을 차려야 했다. 사소한 불편은 그러나 가격과 맛에서 충분히 보상이 된다.  

샐러드와 치즈, 프로슈또, 살라미가 주종을 이루는 진열장의 음식들. 그 너머로 두 청년이 열심히 샐러드를 접시에 담고 프로슈또를 썰고 있다. 조리시설이 없으니 파스타는 판매하지 않고 보이는 음식들 중 먹고싶은 것은 손으로 콕콕 찍으면 알아서 담아 가격을 매겨준다. 가격은 그렇게 담아서 한 접시에 적게는 5유로에서 많이 담을 때는 10유로까지 낸다.  


이미 자리를 차지한 손님들은 식사에 열중, 아직 자리를 찾지 못한 이들은 기다림에 열중. 실내가 좁다는게 느껴지는지.. 저 자리에서 사진찍고 있다가 손님이 들어오면 문이 뒷통수를 쿵 하고 칠 지경이다.  

3종 구성. 찐보리가 치즈와 몇 가지 채소, 올리브유를 만나 샐러드로 변신했다. 다진 이탈리안 파슬리에 알리치를 버무렸고 정어리 필레(살만 발라낸 것)는 샐러드용 붉은 양파와 함께 올리브유로 무쳐냈다. 날생선을 어떻게 먹냐고 몸서리치는 적잖은 서양인들은 대체 저건 어떻게 생각할지, 먹기는 할지 궁금하지만 확인할 방법은 없고.. 아무튼 접시 옆 빵바구니에는 빵이 수북한데 사진의 놈들을 빵에 얹어 먹으면 미끄덩 하지만 짭짤하니 맛있다. 맵고 짠 한국음식도 맛있지만 심심한듯 보이는 이런 음식도 혀의 미세한 감각을 깨우며 맛을 전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특히 한국 밥상에서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는 접할 기회가 흔치 않고 식용유보다 몸에 좋다는 인식 때문에 대개 부침할 때 쓰곤 하는데 역시 올리브유는 저렇게 신선한 드레싱이나 샐러드용으로 즐겨야 제맛을 만날 수 있다. 처음엔 잘 몰랐지만 자주 먹다보니 향긋함도 '읽혀'지고 어느새 그 맛을 즐기는 것은 물론 좋은 올리브유를 간파해내는 입맛도 생겨가고 있다. 찐보리 샐러드는 특별한 맛을 모르겠다는.. 맛보다는 입안에서 먹는 식감에 재미를 찾는 건강 샐러드가 아닐까 싶다. 저렇게도 요리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


핏기 벌건 이탈리아의 국민햄 프로슈또와 살라미. 살라미에 후추 박힌거 봐라. 먹음직스럽지 않나? 돼지 비린향을 허브가 살짝 잡아주긴 하지만 비위 유독 약한 사람이라면 살라미나 프로슈또는 도전이 쉽지 않을 수 있다. 강양은 정말 '좋은' 프로슈또는 용감히 먹지만 좀 질이 낮은 것, 주로 수퍼마켓 프로슈또는 잘 안먹는다. 가끔 다소 비리다 싶은 프로슈또를 만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가공의 문제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론 돼지의 품종과 품질이 맛을 좌우한다고 봐야 할테다. 김군은 좋다고 다 잘먹는다. 빵에 얹어 먹는 것도 좋고 긴 스틱 형태의 비스켓에 돌돌 말아 먹는 것도 재밌고 맛있다. 여기에 올리브절임 하나 곁들이면 아유..  토스카나의 프로슈또는 다른 지역에 비해 다소 짜다는게 엘리자베따의 설명. 한때 맛있다고 낼름낼름 집어먹다가 그 짠기운에 밤새 물을 찾은 적이 한 두번이 아니라는 것. 해서 프로슈또와 곁들여먹는 빵에는 소금을 넣지 않는게 또한 이곳의 특징이기도 하다고. 실제 빵 자체만 씹으면 아무런 간이 없어 맹숭맹숭한 것이 별 맛이 없다. 빵에 소금을 넣지 않는 또 다른 설도 있는데 옛날에는 소금이 귀해 세금이 제법 무거웠단다. 빵가게에선 그 부담을 피해 소금량을 줄이거나 아예 넣지 않고 빵을 굽기 시작했고 그것이 오늘날 무염빵의 한 유래로 전해지기도 한다고.

토스카나에 왔으니 비록 싸구려지만 끼안띠도 한 잔 곁들이고.. 잔이 아니라 컵에 따라 마시는 끼안띠.. 식사 내용 자체는 대개 서양 식사의 첫 번째 코스인 안티파스토에 가깝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식사가 될 양과 맛이다. 세 명이 점심 한 끼 먹는 양으로는 그 절대량이 부족해보이는 듯 싶지만 사진에 안나온 빵과 곁들이고 와인까지 홀짝이다 보면 어느새 포만감이 느껴진다. 특히 이런저런 이야기를 곁들이며 오랜시간 식사를 즐기는 것이 빨리 먹는 식사보다 훨씬 큰 포만감을 준다지 않던가.  파스타 폭식은 분명 복부비만을 야기시키겠지만 저런 식의 가벼운 안티파스토식 식사는 포만감은 주는 대신 배를 빵빵하게 만드는 부작용은 없지 싶다. 한국에서 여성 2인이 미래의 달고나 식당에 온다면 안티파스토 한 접시와 파스타 한 접시면 충분할 듯. 질질 흐르는 올리브유에 겁먹지 말지어다. 맛들이면 식생활이 더 즐거워진다.

Posted by dalgonaa

며칠 전 수퍼에 오이를 사러 갔다가 잠시 깜짝 놀라고 말았다. 소량으로만 판매하던 바질을 아욱 단 묶어 팔듯이 뭉텅이로 팔고 있는게 아닌가? 게다가 가격은 터무니없이 저렴해서 기존 가격에 비해 거의 1/4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었으니 1유로도 아닌 단돈 65센트.(한국돈 1000원)

향기를 맡아보니 강한 허브향이 코를 찌르는데 정신이 번쩍 든다. 혹시나 싶어 수퍼 점원을 잠시 붙잡고 바질이 맞냐고 물으니 맞단다. 그 얘길 듣고 바로 바구니에 담았다. 넓은 진열대에 고작 서너 단 밖에는 남아있지 않았던 탓인데 이미 앞선 사람들이 싱싱한 놈들 위주로 먼저 쓸어간 것일 터. 가장 시원찮은 놈들이 남은 것임에도 싱싱하다.

이게 지난 주 화요일이었다. 냉장고에 넣어뒀더니 문을 열때 마다 바질향이 진동을 한다. 대부분의 생필품을 이탈리아를 비롯한 주변국에서 수입해오는 몰타이다 보니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것은 농산물 정도인데 바질이 그 가운데 포함되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래도 이날 접한 바질은 어쩐지 로컬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러니 가격도 쌌겠지.

바질은 잎을 먹는 허브다. 포동포동해 보이는 잎은 참 잘생겼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보기에도 좋고 먹음직 스럽기도 하다. 따뜻한 기후조건이면 어디서든 잘 자라는 풀이라는데 강한 향 탓에 우리의 전통 식단과는 궁합이 잘 맞지 않는다.

바질은 각종 서양요리에 단골 향신료로 사용되며 말려서 분으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많은 이들이 선호하는 것은 생 잎이다. 밀라노의 피자집을 가면 토마토 소스만 발라 석쇠에서 갓 구워낸 피자 위에 바질을 덥석 얹고 그 위에 올리브유를 빠른 손놀림으로 얇게, 그리고 넉넉히 뿌려준다. 미국식 피자에 익숙한 이들이라면 그 시시함에 실망하거나 분통을 터뜨릴지 모르겠지만 단순함 속에 감춰진 깊은 맛을 아는 이들은 그 '시시함'에 환호한다.

바질을 손쉽게 즐기는 방법에 하나는 바질 페스토. 생잎을 뜯어 깨끗히 손질한 뒤 잣과 올리브유 듬뿍, 그리고 소금을 넣고 믹서에 갈아주면 쉽게 완성된다. 이놈을 알맞게 익힌 파스타에 비벼 먹으면 짭짤하고 부드러우면서 바질의 독특한 향과 잣의 고소함을 함께 즐길 수 있다. 한국의 정통 이탈리아 식당이라면 이 메뉴가 있겠으나 웬만한 파스타집에선 좀 처럼 보기 힘든 메뉴 가운데 하나다.



>> 예전에 사먹었던 바질 페스토

몰타에 도착한 뒤 어느 날 수퍼에 들러 작은 병에 담겨 판매되는 바질 페스토를 한 병 사다가 푸실리에 비벼 먹은 적이 있다. 바질 특유의 향은 온데간데 없고 단지 짭짤함만 있어 여간 실망한게 아니었는데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으니 지난 화요일이 제대로 찾아온 찬스였던 셈이다.

주말을 넘겨선 안되겠다는 생각에 토요일 낮에 수퍼에 가서 일주일치 장을 잔뜩 보고 배달을 부탁한 뒤 잣과 몇 가지 유제품만 챙겨 집으로 돌아와 본격적인 바질 페스토 만들기에 들어갔다. 사실 믹서가 없어 차일피일 미루던 거였는데 생각해보니 칼로 다져도 안될 건 없겠더라. 제이미 올리버가 사용하는 돌절구가 있으면 더 좋겠지만 이마저도 없으니 뭐..

큰 잎들을 한 손으로 꽉 움켜쥔 뒤 끝부분 부터 조금씩 채를 썰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정도 썰린 뒤에는 빠른 속도로 다져줬다. 이때 정말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된다. 뭐 설명 안해도.. 어려울 줄 알았던 작업이 채 10분도 안돼 끝났다. 수북했던 잎들이 잘게 다져졌다. 그러나 한 가지 고민이 생겼는데 10분 가량을 붙잡고 다져주니 뜻하지 않게 풀 비린내가 살짝 돌더라는 것.



>> 이번에 만들어 먹은 바질 페스토. 맛은 사먹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

열무김치를 담가본 이들은 알겠지만 열무 잎을 소금에 절일 때 골고루 할 욕심에 너무 손으로 뒤적여 주면 잎에서 풀 비린내가 심하게 진동해 망치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래서 엄마들은 이 순간에 주의를 기울인다. 같은 원리가 아니었을까.. 심하진 않았지만 아무튼 좀 더 신속하게 끝내는 믹서라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유리 병을 준비해 다진 잎을 넣고 올리브유를 듬뿍 붇고 소금도 넣었다. 잣도 같은 방법으로 곱게 다져준 뒤 넣고 숫가락으로 골고루 섞어주니 바질 페스토가 완성됐다. 올리브유와 바질의 궁합은 정말 근사하다.

푸실리가 없어 펜네를 삶을까 하다가 페투치니로 결정했다. 무슨 암호같지만 이놈들 모두 파스타 면의 종류일 뿐. (각각 나름의 특징과 기능이 있을텐데 이는 나중에..) 면을 삶아 건져낸 뒤 그릇에 담고 바질 페스토를 살짝 끼얹어 비벼먹으니 향이 물씬 풍기는 것이 좋다. 후추를 갈아 뿌리자 좀 더 풍미가 좋다.

뒤늦게 바질 페스토 레시피를 인터넷에서 뒤져보니 마늘을 찧어 넣는다고 한다. 음.. 늦었지만 남은 페스토에 이놈을 넣어 먹어봐야겠다.



>> 잘 삶은 페투치니 위에 얹은 바질 페스토. 볼품 없어 보이지만 잘 비벼 먹으면 독특한 향과 함께 퍽 근사한 맛을 낸다. 여성들이 특히 좋아할 맛. 다음엔 저 면 위에 짜장을 얹어봐야겠다. 그건 남녀노소 모두가 좋아할 맛이겠지..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