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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4.27 짜장과 오이, 결코 떨어져선 안될 맛. 4

짜장면 맛있는거, 부정할 한국인이 있을까? 지난 주 금요일, 두 명의 독일인에게 대접한 짜장면과 짜장밥은 그런 자부심을 바탕에 깔고 마련된 메뉴였다. 준비를 하다가 문득 짜장은 왜 까만 색일까?’ 의문이 들었다. 30년을 넘게 먹어오면서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하다니.. 독일 친구들이 물어 올 것에 대비해서도 그 이유를 알아야 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카라멜 색소가 비결이란다. 제대로 발효시켜낸 전통 춘장도 검은 색을 띠긴 마찬가지지만 우리가 대부분 먹는 춘장은 공장에서 생산하는 것이고 그 과정에 카라멜 색소를 넣어 색을 낸다는 것. 이유를 알고 나자 안심이 됐지만 괜히 머쓱해지더라는..

 

결국 두 사람 모두 맛있게 먹었고 검은 색의 미스터리를 물어오기도 전에 우리는 꼬치꼬치 설명을 곁들여 혹시 모를 이들의 의구심을 앞서 차단했다. 다음에 또 다른 외국 친구를 초대하게 되면 짜장은 최우선 순위 메뉴로 올라올 가능성이 많다.

 

조리가 어렵지 않으면서 외국 친구들로선 난생 처음 맛보는 이국적인 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춘장, 정확히는 오뚜기 짜장이 없는게 문제다. K-mart에도 춘장을 판다지만 우리는 강력한 불도 없고 웍(Wok:밑이 깊고 둥글게 파인 중국 전통 팬)도 없다. 해서 조만간 서울에 연락해 이것(오뚜기 짜장)도 좀 배편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할 계획이다. 한 달은 걸리겠다.

 

금요일 식사 이후 짜장이 제법 많이 남았다. 짜장 분말 한 봉지가 4~5인분이지만 혹시 모자르까 싶어 욕심을 낸 김군이 남은 한 봉지를 마저 털털 털어 넣었더니 결국 딱 그만큼이 남았다. 다음날 아침, 몇 국자를 떠 밥에 비벼먹었다. 이틀째 먹어도 여전히 맛은 좋다. 오히려 하루 묵히고 먹으니 중국집 짜장 맛에 더 가까워지는 것 같다. 김치찌개도 방금 끓인 것 보다는 이틀째 끓인 맛이 더 좋은 법인데 짜장도 그런가 보다.

 

김군이 있는 거 대충 먹는 타입이라면 강양은 거기에 몇 가지 재료를 더해 먹는데 그 솜씨가 탁월하다. 반찬도 없이 밍밍하게 비벼먹은 김군에 비해 강양은 반찬으로 샐러드를 준비하고 스파게티용 면 위에 부어 낸 짜장 위로 전날 사온 오이를 채 썰어 얹고 고춧가루마저 뿌렸다. 힐끔 넘겨보니 비주얼이 예사롭지 않다. (이 같은 예는 무수히 많다)

 



>> 건면 스파게티를 삶아 면을 대신했다. 미처 사진에 담기진 않았지만 이곳 오이는 꽤나 크고 모양새도 오이스럽지 않다. 물론 한국에서 흔한 다대기 오이는 이곳에 없다. / 서울서 가져온 고춧가루. 고추장 못지 않은 큰 쓰임새를 자랑한다. / 짜장과 와인의 조화는 예상외로 훌륭했다. 사실 모든 기름진 음식에는 와인이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몇 젓가락 뺏어 먹어보니 오홋!.. 초밥왕의 유치함을 다시 반복하지 않겠지만 새카맣게 잊고 있던 맛의 기억을 되살려 준건 분명했다. 역시 짜장에는 채 썬 오이, 그것도 듬뿍! 그리고 매콤한 고춧가루가 넉넉히 뿌려져야 제대로 된 맛이 나오나 보다.

 

그렇게 몇 술 뜨고 있으니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몸이 저절로 일어나지면서 주방에서 잔과 와인 따개를 가져오더니 어느새 와인 뚜껑을 따고 꼴꼴 거리며 잔에 그득히 붇고 있는 게 아닌가!! 와인 한 모금 머금으니 입안을 살짝 덮고 있는 얇은 기름 막이 말끔하게 씻겨 내려간다. 동시에 시큼 털털한 와인과 달콤한 짜장이 미묘하게 어우러지는 맛이 꽤나 근사하다. .. 짜장면과 와인이라.. 와인이 세계 주류시장을 석권하는 이유를 알겠다.

 

짜장면에 단무지 빠져서도 안되겠지만 절대 빠져선 안될 것이 오이와 고춧가루라는 것을 이 까마득한 지중해 한 복판, 위태로운 섬나라에서 새삼 절감한다. 덧붙여 공사장 그늘 아래서 땀에 절어 먹는 짜장면이라도 단무지 옆에 맥주 글라스에 담긴 와인 한 잔 곁들여지면 이것도 퍽 근사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