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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3.29 '상혼'속에서 건진 맛 2

베네치아를 다녀오던 아침, 부지런히 오니기리(일본식 주먹밥)를 만들었다. 사진을 못찍었네 이런.. 암튼, 오니기리는 만들기 간편할뿐 아니라 맛도 좋고 갈 길 바쁜 여행자, 또는 '바쁜 현대인'의 출출한 속을 달래주는데 그만이다. 재료도 간단해서 너무 딱딱하게 굳지 않은 찬밥, 물과 소금, 김 한 장, 밥 속에 넣을 짭짤한 소만 준비하면 끝. 짭짤한 소는 고추장에 볶은 다진 멸치와 역시 고추장에 볶은 살시치아, 이렇게 두 가지. 삼각김밥 먹어봤을테니 취향껏 소를 만들면 된다. 짭짤한 날치알도 좋고 젓갈도 좋고 짱아찌도 좋다. 복어알 구해 넣어 늘 마음속을 헤집는 '그분'에게 전해도 좋고..

먼저 깨끗히 씻은 손에 물을 잔뜩 뭍히고 소금 살짝 집어 씻듯이 손바닥 전체에 비벼준다. 짭짤해진 손으로 밥을 큼직하게 한 줌 쥐고 둥글둥글 손으로 굴려주다가 가운데를 손가락으로 꾹 눌러 굴을 판다. 거기에 짭짤한 멸치볶음이나 살시치아 볶음 등을 넣고 입구를 막는다. 김 한 장 반 갈라 그 위에 둥근 주먹밥을 가만히 굴려 싸주고 랩으로 한 바퀴 돌리면 끝. 쉽다. 소가 부족하다 싶으면 굴을 넓게 파면 된다.

베네치아 여행에 오니기리를 만들어가기로 결정한건 경비를 아끼자는 것 보다는 베네치아의 상혼에 젖은 음식에 실망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적잖이 들어서다. 뻔히 알고서 당하는 사기, 피서지에서 곧잘 당하는 그런 경험이 결코 기분좋을리 없고 그 상처는 꽤 오래 가기도 한다. 베네치아의 좋은 풍경, 음식으로 망치지 말자. 근데 어라? 식당에 나붙은 가격들을 보니 그닥 비싸지 않을 뿐더러 얼핏 넘겨본 음식들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음.. 호기심이 슬슬 발동하기 시작하더니 결국 저녁을 이곳에서 해치우기로 했다.

산마르코 광장으로 향하던 중에 지나쳤던 적잖은 식당들을 떠올렸지만 다시 찾아가기에는 시간도 그렇고 거리도 만만찮아 역에서 멀지 않은 곳 중에 뒤지기 시작, 봉골레 스파게티+채소샐러드+해산물 튀김, 이 세 가지를 13유로에 내놓는다는 한 식당을 발견하곤 그리로 들어섰다. 실내는 식사보다는 아페리티보(식전주)를 마시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이제 겨우 6시니 당연하다. 그래도 과감히 착석. 식사 되느냐고 물으니 된단다. 청년이 영어를 좀 해서 강양이 "저녁먹기엔 좀 이르죠?" 했더니 "그렇죠"하며 웃는다. 입구에 써붙여 놓은 13유로 식사를 두 개 주문하고 테이블 와인 하프리터를 시켰다.


이곳은 레스토랑 개념보단 BAR의 색채가 좀 더 짙은 곳이다. 그래선지 테이블에도 별 다른 격식이 없고 들어오는 사람들도 대부분 동네 사람들. 관광객은 몇 안띄어 오히려 안심이다. 삼삼오오, 또는 짝을 이룬 사람들이 들락거리며 와인 한 잔, 스쁘릿츠 한 잔씩을 마시곤 잠깐, 또는 한참을 왁자하게 수다를 떨다가 다시 몰려 나간다.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이태리 식당보다 BAR, 특히 아페리티보가 강한 BAR를 하고싶은 생각이 굴뚝이다. 가벼워서 좋고 다종다양한 술의 향연, 그 깊은 세계에 젖어보는 것도 꽤나 매력있고 특히 폭음이 일반화된 우리와는 분명히 다른 어떤 멋과 여유를 주기 때문이다. 

손님들이 와인 한 잔씩을 마시고 나간 후 빈 잔을 치우는 바텐더 겸 까메리에레. 

요즘 강남에 이런 식의 BAR가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고는 하지만 쉽진 않아 보인다. 아무리 가볍게 한 잔 술이라지만 '서서 마신다?' 한국에선 아직 갈 길이 멀다. 더욱이 BAR에서 내놓는 술들이란 대개 단가가 높은 술이어서 다른 서비스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발길 붙잡기가 쉽지 않다. 안그러면 유행이란 것에 기대는건데 그건 오래 못가고.. 무엇보다 우리가 생각하는 BAR는 젊은층 상대의 '술집'이 아니라 동네사람들이 손쉽게 찾는 편의점 같은 느낌이어야 하기 때문. 아무튼 한국 돌아가면 이 멋과 맛을 못즐긴다니 심히 아쉽다. 


먼저 테이블 와인을 내준다. 한국에선 거의 없겠지만 이곳에서 테이블 와인은 생맥주와 똑같이 밸브를 당겨 병에 담아준다. 우리가 시킨건 화이트. 근데 어라? 살짝 스파클링이다. 향과 맛, 나쁘지 않다. 정말 싼거는 레드의 경우 풀맛과 비린맛이 심하고 화이트는 향과 맛이 무겁기 마련인데 요놈은 비록 스파클링이지만 주문한 요리에 곁들이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오호.. 조연의 연기력이 뒷받침 되니 남은 주연의 활약.
 

어김없이 나오는 빵. 볼로냐 마르코 식당에서 프랑스산 갓구운 바게뜨를 맛본 후로 이제 웬만한 빵에는 덤덤.. 베네토주의 빵은 표면이 매끈한 것이 특징.


나왔다. 엥?? 봉골레라고 하길래 화이트와인으로 담백하게 맛은 낸 봉골레인줄 알았더니 토마토 소스로 맛을 낸 봉골레다. 살짝 당황하지만 티는 안낸다. 애초 메뉴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우리의 실수가 크다. 어차피 한국에서 먹던 익숙한 맛을 찾아온건 아니니 이 자체로 새로운 경험이라며 충격 수습. 훑어보니 봉골레는 크기가 재첩 수준, 냉동조개란 얘기. 면도 많이 익었고.. 이모저모 아쉬움이 크다. 다만 허기가 반찬이라고 배고픈 마당에 먹으니 이것도 맛은 좋다. 특히 썩어도 준치라지? 작아도 봉골레, 나름 깊은 맛이 있는데 감미료의 힘인 듯..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그 사이 가게 안은 아페리티보를 마시는 사람들로 북적이다가 텅 비었다를 반복, 곧 빈접시 퇴장, 그리고 잠시후 풍겨오는 고소한 튀김냄새. 뒤에 앉은 사람이 보꼰치니(한입 먹거리) 진열장에서 가져온 튀김꼬치의 냄새인줄 알았는데 강양 왈 "우리 튀김 냄새야"라고 단언한다.


그 예언은 적중했는데 오징어와 새우 튀김이 든 접시 두 개, 샐러든 두 접시가 테이블에 놓였다. 보기엔 참 없어 보이는 못난이 튀김, 허나 예사롭지 않은 후반전의 시작이다. 아니나 다를까, 냄새로 이미 기선을 제압한 오징어 튀김, 허한 입맛을 잔기술 없이 정면으로 파고든다. 연속득점 성공, 여기에 레몬의 상큼한 측면 지원과 탄탄한 기본기의 스파클링 와인이 후방에서 불을 뿜었다.


추가로 500ml '재장전'하자 승부는 손쉽게 끝났다. 오징어 튀김과 레몬, 화이트와인이 일궈낸 깔끔한 승리. 전반의 부진이 싹 씻겨나갔다. 모든 바다요리, 특히 튀김요리와 레몬의 만남은 언제나 훌륭하다. 오징어 자체로만 보면 한국의 품질이 더 우수하건만 왜 이 맛을 못즐겼을까 하는 반성이.. 레몬, 너를 배신하지 않으마.
질척한 밀가루 반죽을 입혀 튀기는 우리와 달리 이탈리아는 대개 밀가루 자체만 입혀 튀겨낸다. 밀가루가 기름을 금방 망가뜨려 장사하는 입장에선 아쉽겠지만 먹는 입장에선 담백하니 좋다.근데  맥주로 반죽해낸 튀김이 일식집 튀김의 비법이라는데 이곳에서도 통하지 않을까? 튀김의 생명은 신선함과 더불어 크리스피(바삭)함이니 말이다.


바야흐로 봄. 한국에서 냉이, 드룹이 봄맛의 전령이라면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미식가들에게 손꼽히는 봄맛은 아스파라거스. 베네치아 어느 골목길의 채소 좌판에서 한묶음 구입, 땅의 봄기운을 가득 머금은 냉이만큼의 강렬한 맛은 아니지만 슴슴하고 신선하니 좋다. 스페인산은 좀 얇고 이탈리아산은 좀 굵길래 굵은 놈으로 선택. 계란 반숙 후라이와 곁들어내는 저 요리의 이름을 '비스마르크'이라고 부른다나..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