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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1.08 알리치 절임, 성공 맞아? 10
  2. 2008.12.27 알리치의 활약, 맛있는 연말. 6

비린내 좀 풍겨보자. 알리치(Alici, 영어로는 Anchovy), 비린맛 굶주린 이들의 입맛을 싸게 충족시키기에 이거만큼 좋은 어물전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우리는 요즘 알리치의 존재에 감사하고 있다. 인천 소래포구에 가면 시뻘건 녹과 말라버린 소금이 한데 엉긴 커다란 드럼통에 시커먼 멸치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이 녹아 짠내를 풀풀 풍기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데 한때 일산에 살며 비린맛이 그리울 때면 종종 그곳을 찾아 냄새를 원없이 맡았었다. 그러나 사실 소래에서 우리 입맛을 당긴건 주로 횟감의 안방마님 광어나 우럭, 제철에나 즐기는 전어, 겨울철 쏟아져 나와 산처럼 쌓여있는 싱싱한 홍합과 굴, 각종 조개류, 대가리에 알과 먹물 꽉꽉 들어찬 주꾸미가 일산에서 고물차를 타고 달려가게 만든 주인공들이었을 뿐, 멸치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탈리아는 어떨까?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국가, 이름만으로도 가슴 설레이는 지중해, 아드리아해를 동서남으로 접한 빤따스틱한 지리적 조건, 이곳에서도 소래에서 맛봤던 놈들과 뜨거운 재회를 할 수 있을까? 쯧쯧.. 꿈깨자. 사실 몰타에서 7개월 생활하며 이미 예상했던 일이기도 한데, 지중해가 그닥 차가운 바다가 아니어선지 잡혀 올라오는 어족도 적고 상태도 여간 부실한게 아니어서 생선이라면 환장하는 우리로선 여간 실망스러운게 아니다. 한치보다 작은 놈이 오징어라며 버젖이 팔리고 있고 1kg에 1만원이 넘는 고등어는 어떤 대단한 물건인가 해서 보면 전어만한 크기의 귀여운 것들을 장식을 곁들여 최대한 그럴듯하게 보이도록 해 팔고 있으니 팔뚝만한 고등어만 먹어온 우리로선 콧방귀밖에는 나오는게 없다. 이탈리아가 이정도니 바다라곤 냄새도 못맡는 스위스, 오스트리아, 체코, 헝가리, 슬로바키아 등 내륙은 오죽하겠나? 그러니 한국과 일본 다음으로 어물전이 풍부한 나라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게 이곳에 와서다. 좀 건방진 얘기일지도 모르겠지만 누군가 이탈리아 가서 생선요리를 배우겠다면 사시미칼 들고 말리겠다.  매일같이 먹는 프로슈또 포 뜨는 솜씨는 봐줄만 하지만 TV 요리 프로그램에서 전문 요리사가 생선 포 뜨는 모습을 보노라면 답답하다 못해 한심하단 생각이 들 정도니 말이다. 그러나, 답답한 가슴만 친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아쉬운건 우리일 수 밖에 없다.

다행히 알리치는 겨울철 들어 물좋은 놈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고 품질도 좋고 가격도 비교적 저렴하니 '이거라도 있는게 어디냐'는 것이 우리의 솔직한 심정이다. 베로나는 집 가까운 곳에 작은 생선가게가 있었지만 뻬루자는 그마저도 없어 큰 수퍼에 가야 그나마 비린내를 맡을 수 있고 공교롭게도 산으로 둘러쳐진 내륙 중앙으로 들어와서 즐겨먹는게 알리치 파스타라는 점이 얄궂지만.. 여튼 요즘 알리치 소비량이 제법 많은데 가공품으로 나온 알리치는 제일 싼게 80g에 1,500원이고 좀 괜찮은 품질은 4,000원이 넘는다. 이틀 정도 해먹으면 바닥이 나는 양. 허구헌날 알리치를 사는 것도 캥기고 값도 비싼듯해서 이럴바에 생멸치를 사다가 직접 담가먹자하던 차에 마침 수퍼 생선코너에 가니 실로 오랫만에 들어왔길래 1kg을 5천원에 구입했다. 더듬더듬 알리치를 달라고 하니 펑퍼짐한 생선코너 아줌마, 멸치를 포장하며 "알~뜨로(그리고 또)"를 외치는데 그 압박에 살짝 위축돼 홍합이 있어 그것도 좀 샀다. 이곳의 생선포장이 독특하다. 먼저 기름종이를 깔고 그 위에 생선을 올려 포장한 뒤 다시 은박봉투에 담아 이를 기계로 다시 봉합해 마지막으로 비닐봉투에 담아 가격표를 붙여준다. 먼길 가도 생선 비린내가 새나올 틈이 없으니 서비스 수준은 우리보다 훨씬 높다 하겠다. 쇼핑의 사소한 차이 하나만 더 얘기하자면 채소나 과일 코너에선 비치된 비닐에 원하는 만큼 물건을 담는건 우리와 다를 바 없지만 이때 함께 비치된 일회용 비닐장갑을 끼고 물건을 만진다는 점, 그리고 자신이 직접 무게를 재고 가격표를 붙인다 점이 우리와 다르다. 일회용 장갑을 돈주고 구입하는 우리와 달리 필요하면 그냥 집어오면 되는 것도 재밌고 눈치껏 하면 가격표만 먼저 끊어놓고 비닐에 채소나 과일 몇 개 더 집어넣는 스릴도 즐길 수 있다. 실제 그러는 젊은 애들도 가끔 있다. 우린 젊지 않아서..

자, 알리치를 소개한다.


은빛 비늘이 깨끗한게 제법 싱싱하고 보는 재미가 느껴질 정도로 이쁘다. 안그런가?


머리를 따고 내장을 제거한 뒤 물로 깨끗히 씻어내면 이렇다. 윤기는 변함이 없고 한점 집어서 초고추장에 푹 찍어먹고픈 충동이 물결친다. 근데 먹을 수 있을까? 보자. 비늘이 심하게 흉하게 나간 곳 없이 은빛으로 깨끗하게 반짝인다는 점은 전혀 상하지 않았다는 얘기고 냄새를 맡았을 때 비린내가 안난다는 점은 뭍으로 올라온지 얼마 안됐다는 얘기다. 해서 깨끗히 손질만 하면 먹을 수 있다. 우리는 몇 점 집어 고추장에 찍어 맛있게 먹었다. 허나 이날은 횟감용이 아니라 염장해 올리브에 절이기 위함이니 욕심은 접어야 했다.


내장에 이어 뼈까지 제거하는 저 세심함. 생각보다 쉽게 뼈가 발라져 나온다. 일전에 일본 소설을 읽어보니 도미같은 억센 생선의 머리를 제거할 때 초보자는 칼의 날카로움과 힘만 믿고 달려들다가 도마를 난장판으로 만들어놓는 반면 숙련자는 관절에 칼끝을 넣어 손쉬게 머리를 제거한다고 한다. 그러나 멸치의 머리를 제거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전자일 듯.

소금 솔솔 뿌려 절여놓고


병에 차곡차곡 담은 뒤 올리브유 듬뿍 부어놓으면 끝.

은빛 멸치와 옅푸른 올리브유의 조화가 아름답다. 이렇게 해서 알리치 담그기는 성공적으로 끝나나 하고 생각했는데 젠장.. 소금에 절인 멸치에서 물이 나온다는 생각을 미처 못한거다. 1시간 쯤 지나자 소금기 때문에 병 밑바닥에 탁한 멸치물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요즘 물 때문에 낭패 많이 본다. 한 번은 세탁기를 돌리는데 배수호스를 세면대나 욕조쪽에 걸쳐두는걸 깜빡해 화장실이 물바다가 된 적이 있다. 우리와 달리 여긴 바닥에 배수구가 없다. 기겁을 해서 쓰레받이를 들고 욕조안으로 물을 퍼 넣었다. 비록 작은 유리병안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낭패감은 그에 못지않다. 얼마나 정성을 들인건데..  생각끝에 다시 알리치를 들어내고 물만 따라 버린 뒤 하룻동안 멸치물이 더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다음날 최종적으로 올리브유를 다시 부었다. 이렇게 해서 알리치 담그기는 마무리됐다. 정성이 수고롭긴 했지만 병안에 담긴 양을 생각하면 한동안 넉넉히 요리해먹을 양이다. 무엇보다 직접 담가봤다는 경험이 자산으로 남을 듯. 근데.. 알리치 담그는 요령에 대한 어떤 힌트나 조언도 없이 '대충 이렇지 않겠나' 하는 생각으로 달려든거였는데 아무래도 멸치를 어떤 식으로든 한 번 살짝 익혀서 담그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 왜냐면 우리가 사먹는 것과 모양, 질감면에서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다 먹는건 불투명한데 우리가 담근 알리치는 투명하다. 어떻게 생각하나? ㅋㅋ

알리치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몇 가지 방법, 아직 이정도 밖에는..

이탈리안 파슬리와 레몬을 뿌려낸 멸치 튀김. 백포도주와 환상궁합.

요즘 우리의 완소, 알리치 파스타. 사진 땟깔이 입맛과 멀지만 맛은 보장한다. 루꼴라 얹고 그 위에 빠다노 치즈가루 솔솔.

알리치와 말린 뽀모도로를 메인 토핑으로 올려낸 수제피자. 반죽까지 손수 밀어낸 강양의 솜씨다. 얇은 반죽이 바삭하니 맛있고 쫄깃한 뽀모도로, 짭짤한 알리치의 조화가 훌륭하다. 역시 백포도주와 환상궁합.

그리고 보니 새해 인사가 늦었다. 조회수 100 안팎을 꾸준히 유지시켜주는 모든 방문자들이여, 올 새해도 몸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두루두루 건강하시길 바라고 무엇보다 험난한 풍파속에서도 풍성한 식탁만큼은 꾸준히 지켜가시길..!

Posted by dalgonaa

먹는 얘기 좀 하자. 좀 장난스러운 선언이지만 나중에 식당을 낼 경우 메뉴에 포함될 파스타 두 가지가 정해졌다. 빠르마 파스타와 알리치 파스타. 빠르마 파스타는 빠르마 유학생 노양의 솜씨로 맛본 뒤 매료돼 이후 자주 해먹는 파스타로 자리잡았다. 빠르마 파스타 맛의 핵심, 토마토 소스와 살라미의 조화를 깨지 않는 한 맛의 기본 골격은 유지될 텐데 메뉴로 내놓을 경우 좀 더 보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러저런 변신을 계속 시도하고 있다.


 
알리치 파스타. 씨가 박힌 올리브도 넣고 볶았다. 저날 이후에는 중국상점에서 마른 고추를 사와 매운 맛을 입혔더니 젊은 입맛에 더 가까워진 듯 하다. 마늘도 잘 탔고 면도 오동통하니 잘 익었다. 맛?  먹어봐야 안다.

알리치 파스타는 바꿔 말하면 안초비, 또는 멸치 파스타 되겠다. 안초비의 이탈리아 이름이 알리치다. 뻬루자에 집을 얻고 얼마 전 무심코 해먹었는데 그 맛에 바로 중독돼 버렸다. 크리스마스 전날은 물론 요 며칠 연짱 해먹은 파스타가 알리치 파스타다. 알리올리오 베이스에 알리치만 넣고 버무리면 어느새 짭짤한 살이 녹아 파스타 면에 골고루 입혀져 따로 간을 할 필요도 없다. 올리브를 함께 넣고 볶은 뒤 치즈가루를 듬쁙 얹어내면 맛 좋은 비린맛의 파스타가 완성된다. 루꼴라를 곁들이면 더 좋을 듯. 봉골레 파스타가 우아한 바다의 맛이라면 알리치 파스타는 거친 바다의 맛?

아무튼 요즘 알리치 파스타 해먹는 재미가 쏠쏠한데 이탈리아에서 판매하는 알리치의 가격이 제법 비싸다는게 문제다. 손바닥에 착 감기는 작은 병에 든 알리치가 2유로가 훌쩍 넘는다. 이건 좀 아니다 싶어서 앞으로 알리치 싸게 파는 기회를 접하게 되면 왕창 사다 놓을 작정이고 이마저 여의치 않으면 생선코너에서 생물멸치를 사다가 염장해 직접 올리브유에 담가먹을 작정이다. 베로나에서 튀겨먹던 생물 알리치의 가격을 생각해보면 가격도 저렴했고 담글 경우 그 양이 같은 가격에서 거의 5배는 훌쩍 넘지 싶다.


DE SPAR 라는 이름의 수퍼에서 자체 브랜드로 만든 알리치. 저 작은 병이 2.30유로다. 4천원인 셈인데 그나마 몇 가지 브랜드 중에 저놈이 제일 쌌다. 베로나에서도 비싸게 안먹었던 것 같은데.. 알리치 자체만 50g.

토마토소스와 간장을 이용해 조려낸 돼지고기를 썰어먹다 한 번은 그 국물을 이용해 리조또를 만들어봤다. 쌀을 한 번만 휘리릭 씻어낸 뒤 버터 두른 팬에 달달 볶다가 국물을 넣고 끓였다. 밥알이 퍼지면서 국물을 흡수해 점점 되직해져 갔는데 리조또는 물 조절이 중요한 관건의 하나일 듯.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마지막에 빠다노 치즈를 듬쁙 갈아 넣었다. 파가 싱싱한게 있어 조금 채 썰어 넣어봤는데 아니다싶은 느낌과 달리 조화가 아주 좋다. 버터와 치즈의 풍성한, 또는 느끼한 맛 사이에서 파의 단 맛이 산뜻하게 전해진다.



한 접시로 즐기는 식사에선 작은 와인잔이 운치도 있고 실용적이서 좋다. 다만 저 얇은 유리접시는 여간 신경쓰이는게 아니다. 그래도 저 리조또는 맛이 좋다. 치즈가 부족하면 더 갈아 넣으세요~.

까르보나라는 생크림과 우유를 이용해 몇 번 시도했지만 계속 실패중이다. 왜 이렇게 군내가 나는 것인지.. 이건 아무래도 불조절, 열조절이 관건일 듯 싶은데.. 아니면 직접 밀가루를 볶아 만들어야 하는 걸까? 생활 속에서 습득되고 있는 파스타 솜씨, 과연 한국의 가족들과 지인들은 어떤 평가를 할지.. 어서 먹여보고 싶다. ^^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