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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1.02 시에나의 고층건물 8
  2. 2008.11.28 안티파스토, 한국도 있다? 4

며칠 전 시에나를 다녀왔다. 치솟은 첨탑과 그것을 향해 경사지게 설계된 광장으로 유명한 돈 많은 토스카나주의 유명한 그동네.


한겨울이지만 광장으로 쏟아져 내리는 햇살을 마주하노라면 그늘진 골목길을 걷는동안 얼어버린 몸이 사르르 녹는바 많은 사람들이 따뜻한 햇살을 '먹기위해' 저 광장으로 몰려든다. 햇살은 맛만 좀 본 뒤 우리는 엘리자베따의 추천으로 찾은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바로 아래 식당, 오스떼리아 '일 그라따치엘로'. 해석하면 '고층건물'.


고층건물.. 허나 식당은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냥 먼게 아니라 심각하게 멀다.

벽 봐라. 다 무너져간다. 회칠도 벗겨져서 아슬아슬한 벽돌이 벌겋다 못해 시커멓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만약 이 식당이 실제로 고층건물의 아래에 있었다면 이미 망했을 것이다. 무너져서. 허나 식당은 점심무렵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 사람이 많은 탓도 있겠지만 식당이 너무 좁다. 실내는 긴 테이블 3개를 놓아 앉을 자리만 나면 눈치껏 앉아서 먹으면 되는 아주 실용적이고 서민적인 분위기의 식당이다.  결국 안에서 테이블을 확보못한 우리는 보다시피 밖에서 상을 차려야 했다. 사소한 불편은 그러나 가격과 맛에서 충분히 보상이 된다.  

샐러드와 치즈, 프로슈또, 살라미가 주종을 이루는 진열장의 음식들. 그 너머로 두 청년이 열심히 샐러드를 접시에 담고 프로슈또를 썰고 있다. 조리시설이 없으니 파스타는 판매하지 않고 보이는 음식들 중 먹고싶은 것은 손으로 콕콕 찍으면 알아서 담아 가격을 매겨준다. 가격은 그렇게 담아서 한 접시에 적게는 5유로에서 많이 담을 때는 10유로까지 낸다.  


이미 자리를 차지한 손님들은 식사에 열중, 아직 자리를 찾지 못한 이들은 기다림에 열중. 실내가 좁다는게 느껴지는지.. 저 자리에서 사진찍고 있다가 손님이 들어오면 문이 뒷통수를 쿵 하고 칠 지경이다.  

3종 구성. 찐보리가 치즈와 몇 가지 채소, 올리브유를 만나 샐러드로 변신했다. 다진 이탈리안 파슬리에 알리치를 버무렸고 정어리 필레(살만 발라낸 것)는 샐러드용 붉은 양파와 함께 올리브유로 무쳐냈다. 날생선을 어떻게 먹냐고 몸서리치는 적잖은 서양인들은 대체 저건 어떻게 생각할지, 먹기는 할지 궁금하지만 확인할 방법은 없고.. 아무튼 접시 옆 빵바구니에는 빵이 수북한데 사진의 놈들을 빵에 얹어 먹으면 미끄덩 하지만 짭짤하니 맛있다. 맵고 짠 한국음식도 맛있지만 심심한듯 보이는 이런 음식도 혀의 미세한 감각을 깨우며 맛을 전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특히 한국 밥상에서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는 접할 기회가 흔치 않고 식용유보다 몸에 좋다는 인식 때문에 대개 부침할 때 쓰곤 하는데 역시 올리브유는 저렇게 신선한 드레싱이나 샐러드용으로 즐겨야 제맛을 만날 수 있다. 처음엔 잘 몰랐지만 자주 먹다보니 향긋함도 '읽혀'지고 어느새 그 맛을 즐기는 것은 물론 좋은 올리브유를 간파해내는 입맛도 생겨가고 있다. 찐보리 샐러드는 특별한 맛을 모르겠다는.. 맛보다는 입안에서 먹는 식감에 재미를 찾는 건강 샐러드가 아닐까 싶다. 저렇게도 요리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


핏기 벌건 이탈리아의 국민햄 프로슈또와 살라미. 살라미에 후추 박힌거 봐라. 먹음직스럽지 않나? 돼지 비린향을 허브가 살짝 잡아주긴 하지만 비위 유독 약한 사람이라면 살라미나 프로슈또는 도전이 쉽지 않을 수 있다. 강양은 정말 '좋은' 프로슈또는 용감히 먹지만 좀 질이 낮은 것, 주로 수퍼마켓 프로슈또는 잘 안먹는다. 가끔 다소 비리다 싶은 프로슈또를 만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가공의 문제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론 돼지의 품종과 품질이 맛을 좌우한다고 봐야 할테다. 김군은 좋다고 다 잘먹는다. 빵에 얹어 먹는 것도 좋고 긴 스틱 형태의 비스켓에 돌돌 말아 먹는 것도 재밌고 맛있다. 여기에 올리브절임 하나 곁들이면 아유..  토스카나의 프로슈또는 다른 지역에 비해 다소 짜다는게 엘리자베따의 설명. 한때 맛있다고 낼름낼름 집어먹다가 그 짠기운에 밤새 물을 찾은 적이 한 두번이 아니라는 것. 해서 프로슈또와 곁들여먹는 빵에는 소금을 넣지 않는게 또한 이곳의 특징이기도 하다고. 실제 빵 자체만 씹으면 아무런 간이 없어 맹숭맹숭한 것이 별 맛이 없다. 빵에 소금을 넣지 않는 또 다른 설도 있는데 옛날에는 소금이 귀해 세금이 제법 무거웠단다. 빵가게에선 그 부담을 피해 소금량을 줄이거나 아예 넣지 않고 빵을 굽기 시작했고 그것이 오늘날 무염빵의 한 유래로 전해지기도 한다고.

토스카나에 왔으니 비록 싸구려지만 끼안띠도 한 잔 곁들이고.. 잔이 아니라 컵에 따라 마시는 끼안띠.. 식사 내용 자체는 대개 서양 식사의 첫 번째 코스인 안티파스토에 가깝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식사가 될 양과 맛이다. 세 명이 점심 한 끼 먹는 양으로는 그 절대량이 부족해보이는 듯 싶지만 사진에 안나온 빵과 곁들이고 와인까지 홀짝이다 보면 어느새 포만감이 느껴진다. 특히 이런저런 이야기를 곁들이며 오랜시간 식사를 즐기는 것이 빨리 먹는 식사보다 훨씬 큰 포만감을 준다지 않던가.  파스타 폭식은 분명 복부비만을 야기시키겠지만 저런 식의 가벼운 안티파스토식 식사는 포만감은 주는 대신 배를 빵빵하게 만드는 부작용은 없지 싶다. 한국에서 여성 2인이 미래의 달고나 식당에 온다면 안티파스토 한 접시와 파스타 한 접시면 충분할 듯. 질질 흐르는 올리브유에 겁먹지 말지어다. 맛들이면 식생활이 더 즐거워진다.

Posted by dalgonaa
이탈리아말로는 '안티파스토(Antipasto)', 영어로는 '스타터(Starter)', 한국에서 부르는 말로는 '전채(前菜)'라고 하면 맞을까? 메인 식사를 앞두고 허기를 잡고 입맛을 돋궈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이놈들다. 우리 식문화에선 없는 절차지만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서양식에선 일반적. 사실 식당에서 메뉴판을 펼치면 웬만한 식사값, 때론 그보다 더 비싼 가격으로 첫장에 등장해 괜한 압박을 주곤 하는데 건너뛰어도 웨이터가 뭐라 그러진 않으니 애써 무시하면 되겠지만 여럿이 식당에 간 경우나 그 집만의, 혹은 그 지역만의 독특한 안티파스토가 있다면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맛을 봐주는게 좋다. 

사진은 베로나의 어느 골목, 일 베르똘도(Il Bertoldo)라는 이름의 로마풍 요리를 낸다는 식당에서 맛본 안티파스토. 이탈리아에서 안티파스토는 대개 사진에서 보는 프로슈또와 다양한 치즈가 주를 이룬다. 왼쪽은 살라미, 오른쪽은 프로슈또, 중앙은 오렌지에 이탈리아 파슬리로 모양냈다. 정말 맛있는 음식을 만났을 때 우리는 흔히 '녹는다'고 표현하는데 그렇다고 아래 사진의 음식이 그랬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적어도 살라미에 한해서는 그 맛에 조금씩 중독돼가고 있음을 고백한다. 살라미, 얇게 저며 입안에서 체온으로 서서히 녹여 먹어도 좋고 이때 잘 익은 레드와인 한 모금 머금어주면 더 좋다. 

한국 식당의 메뉴판에는 안티파스토가 없지만 그렇다고 안티파스토를 안주면 한국인들 무지하게 승질난다. 주문하고 난 뒤 곧바로 밑반찬 안깔아주면 그 식당 오래가긴 힘들단 말이다. 짜장면, 라면을 시켜도 단무지나 김치는 먼저 내주는 것이 주인과 손님간의 불문율. 맹물 한 잔 시켜도 돈을 내야하는 유럽의 식당은 그래서 한국인들의 원망을 한몸에 받는다. 뭐 그렇다고 그네들이 눈하나 깜짝하지 않지만.. 낯선 땅에 나와 뼛속깊이 절감하는거지만 우리나라 식당만큼 후한 인심의 식당이 전세계 어디에 있을까 싶다.


덧붙이는 글 : 화이트가 안맞았던 사진, 억지 조작했더니 살라미 가장자리가 누렇게 떴다. ㅋ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