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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2.03 앙코나의 해산물 식당 'La Cantineta' 2


앙코나는 아드리아해를 마주하고 있는 이탈리아 동부의 항구도시다. 이 바다를 앞마당 삼는 이탈리아의 항구 3형제라면 북쪽에 베네치아, 남쪽에 바리, 그리고 중앙이 바로 앙코나다. 베네치아와 멀리 시칠리아로 향하는 배를 탈 수 있고 크로아티아의 제1 항구도시 자다르와 오리지널 케밥이 먹고싶다면 이스탄불행 배에도 오를 수 있는 곳. 그러나 낭만보단 물자를 실어나르기에 바쁜 산업도시의 느낌이 강하다.


좀 더 자유롭다면 이스탄불행 배에도 올라보고 싶지만 그 전에 이곳에 온 작은 목적 몇 가지를 달성해야 한다. 오랫만에 바다구경, 수산시장 구경과 장보기, 그리고 솜씨좋은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게 그것. 그리고보니 이탈리아에서 해산물 요리를 주문해 먹기는 이번 여행을 통해서가 처음이지 싶다. 해산물 요리는 가격이 워낙 비싼 탓도 있고 뭣보다 내륙에서 비싼 돈을 내고 해산물 요리를 즐기기엔 어쩐지 신뢰가 가지 않았던 탓도 있었다. 그리고 약간의 게으름도. 근데 저 문, 무슨 문인지 모르겠네..


역시 이름을 알 수 없는 분수. 광장 이름은 안다. 로마 광장. 광장을 비추는 조명도 밝고 그리고 보니 거리가 전반적으로 밝다. 오후에 도착해 약 3시간 가량 시내를 돌아다니는 동안 시장의 위치는 파악이 됐고 해산물 식당을 찾는 것에도 틈틈이 신경을 집중했더니 어느새 5곳 정도의 식당이 후보에 올랐다. 헌데 가격대도 비슷하고 취급하는 요리도 저마다의 개성을 갖췄으니 어디를 선택해야 할지 쉽게 결정이 나질 않는다. 이왕 기분내는거 아페리티보 한 잔 하자해서 만만해 보이는 바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한 잔 하며 BARMAN에게 식당을 추천해달라면 고민이 쉽게 풀릴 수도 있는 일.


와인과 스쁘리츠를 한 잔씩 홀짝이며 우리 고민을 털어놨다. 튀니지에서 23년 전 왔다는 BARMAN, 우리를 이끌고 길로 나서더니 이탈리안 특유의 거침없는 몸동작으로 식당의 위치를 설명한다. 어디를 설명하는지 알 것 같다. 후보로 올린 5개의 식당 가운데 하나인 La Cantineta. 사진은 내일 날씨를 물었더니 신문의 날씨란을 한참동안 뒤적이는 BARMAN의 모습이다. 친절함이 눈물겹다. 뭔가 할 이야기는 많지만 말이 안통하니 답답함만 머금고 있던 그의 표정이 지금도 선하다.

오른쪽 모던한 디자인의 BAR와 왼쪽의 다소 '후져'보이는 BAR를 저울질하다가 들어간 곳이 왼쪽이다. 혹시 가격이 좀 쌀까 싶어서.. 기대만큼 싸지는 않았지만 BARMAN으로부터 식당에 대한 확신도 얻었고 현지인의 풋풋한 정서와 친절함으로 기분이 좋아졌으니 불만없다. 계산을 하고 나와 멀리서 BAR를 지켜보니 갑자기 마음 한 구석이 짠하다. 거친 파도와 바람을 헤치고 온 목청 높은 뱃사람들로 북적였을 BAR는 오른쪽처럼 조용하고 현대적인 BAR로 서서히 구조조정을 강요받으며 옛흔적을 지워가고 있다는 점이 아쉬웠던 걸까?


이탈리아 식당이 간직하고 있는 비밀 하나를 얘기하자면 '맛집'은 십중팔구 대로에 있는 법이 없다. 중심지를 벗어나 인적 드문 골목으로 접어들어야 간판도 보일듯 말듯한 식당이 무슨 보물찾기 보물처럼 숨겨져 있다. 특히 현지인들이 즐겨찾는 싸고 맛있는 식당의 경우 낯에는 영업을 안하는 경우가 많을 뿐만 아니라 요란한 그래피티 낙서로 뒤덮힌 셔터가 차갑게 내려진 식당은 폐업한 곳 처럼 적막하고 을씨년스럽게 보이기까지 한다. 해가 지고 나서야 식당은 불빛이 밝혀지고 실내는 아늑한 공간으로 새롭게 변신하는 것이다. 그러니 대도시의 중심길, 화려한 유적지만을 찾아다닐 수 밖에 없는 많은 관광객들은 이런 식당들을 지나칠 수 밖에 없다. 먹는 즐거움이 여행에서 절반의 비중을 차지한다는 어떤 통계를 감안하면 절반의 여행을 하는 셈. 정보가 부족하니 그럴 수 밖에 없는 현실적 이유도 있지만 그걸 이유로 꿍하게 있는 것도 옳진 못하다. 도전해보면 손해도 보겠지만 그걸 상쇄하는 소득도 있을테다. 왼쪽의 현수막은 광고, 오른쪽에 불을 밝힌 곳이 식당이다.


대부분의 식당 앞에는 메뉴판이 전시돼 있다. 식당선택의 중요한 정보는 대부분 여기에 들어있으니 이를 허투루 봐선 안된다. 반면에 식당 입장에선 입구에 전시해놓은 메뉴판에 좀 더 많은 정성을 들여야 한다. 이해하기 쉽게 설명돼 있어야 하고 그날의 특별 요리나 주방장 특선도 자세히 설명해 놓아 손님이 충분한 정보를 갖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사진을 곁들여 설명할 경우엔 좀 더 신중해야 하는데 스타일을 강조한 엄청 잘 찍은 사진이 아니면 자칫 요리의 품격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메뉴는 대개 안티파스티(Antipasti-전채), 쁘리미 삐아띠(Primi Piatti-'첫 번째 접시들'이란 뜻으로 대개 파스타), 세꼰디 삐아띠(Secondi Piatti-'두 번째 접시들'로 육류나 생선요리) 그리고 돌치(Dolci-디저트)와 비비떼(Bibite-음료나 맥주)로 이뤄지고 식당에 따라 꼰또르삐(Contropi-채소 중심의 사이드 접시) 등을 내놓기도 한다. 와인리스트는 대개 별도로 제공된다.


우리의 경우 안티파스토와 쁘리모의 가격에 좀 더 신경을 쓰고 그 두 가지의 가격대가 적당하면 그런 식당 위주로 후보군을 좁혀 최종 하나를 선택한다. 그마저 어렵다면 BAR에서 1유로짜리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이번처럼 현지인의 정보를 구하면 좀 더 확실해질테다. La Cantineta의 경우 이미 우리도 염두해 뒀던 식당이었으니 BAR 주인의 적극적인 추천이 더해진 이상 고민의 여지는 없었다. 참고로 점심으로 파스타 한 접시에 맥주나 음료수 한 잔 주문이면 무리가 없겠지만 저녁식사를 그렇게만 주문하면 조금 눈치가 보일 수 있다. 두 사람이라면 적어도 안티파스토 한 접시에 쁘리미나 세꼰도 각각 한 접시, 그리고 물이나 맥주, 와인 중 하나를 마시고 나오면 '뻬르펙또(Perfecto-완벽)'하다


라 깐띠네따에 자리를 잡았다. 전체를 통틀어 30개 안쪽의 테이블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중급 규모의 식당. 7시 10분 경에 지나칠 때만 해도 간판만 불이 켜져있고 실내는 컴컴했는데 8시에 오니 몇 명의 손님들이 벌써 식사중이다. 좌우 나무 벽에는 액자들로 도배가 된 인테리어. 앙코나를 드나들던 범선 그림에서부터 모네의 그림과 복싱스타의 사진에 이르기까지. 컬렉션의 기준은 없어보이고 단지 주인이 액자 자체를 좋아하는게 아닌가 싶다. 어쩌면 산만했을 액자지만 저기 벽에 걸린 플라즈마 TV(여기 사람들은 다 그렇게 부른다)가 아주 간단하게 혼란을 수습해버린다. 셋이 온 손님도, 혼자 온 손님도 TV를 향했다. 전등의 갓은 조개 모양을 닮았다. 나름 신경썼다는 얘기.


그간 식당에서 하우스와인을 시킬 경우 텀블러 잔(손잡이가 없는 컵으로 일반적으로 물컵)에 마시는게 아무래도 좀 아쉬웠는데 요건 그래도 긴 목을 가진게 기분 좀 난다. 허나 우아한 잔도, 요란한 액자도, 플라즈마 TV도, 신경 쓴 전등갓도 음식맛과 가격 앞에선 모두 부차적인 대상들.


어김없이 놓이는 빵바구니. 한줌 뜯으며 생각해본다. '얼마만에 해물 요리인가?' 그래서 이날 좀 욕심을 내서 주문했다. 안티파스토와 쁘리모를 각각 한 접시씩 먹기로 한 것. 메뉴를 받아적는 줄 알았는데 작은 터치패드를 두들긴다. 나름 '기계화'된 시스템. 전반전, 휘슬과 동시에 주방으로 튀어간 까메리에레(Cameriere-웨이터), 잠시 후 안티파스토를 몰고 테이블로 돌진해온다.


차가운 해물 모듬(미스토 디 뻬셰 프레도-Misto di pesce freddo)


홍합과 조개 볶음(꼬제 에 봉골레 알라 마리나라-Cozze e vongole alla marinara)가 나왔다. 


먼저 해물모듬. 캐스팅을 보니 스캄포(Scampo)라는 이름의 작은 바닷가재 두 마리, 칵테일 새우 2 마리, 알리치 절임, 연어 절임, 그리고 중앙에 삶은 오징어를 다져냈다. 이탈리안 파슬리를 흩뿌려 색을 더했고 올리브 오일과 레몬을 살짝 뿌려냈다.


비록 적은 량이나마 오징어를 이렇게 만나니 반갑다. 삶은 오징어는 초고추장에만 찍어먹어 왔는데 레몬과 올리브유와의 만남은 정말이지 궁합이 좋다.  그냥 물에 삶기보다는 불에 직접 익혀 탄맛을 더해 레몬을 뿌려내면 풍미가 훨씬 더 좋을 듯. 여기에 구운 호박과 가지를 곁들이면 한 접시의 안티파스토로 손색이 없겠지. 달고나 식당에서 맹활약을 펼치게 될 기대주.


덩치로나 모양새로나 단박에 시선을 사로잡으며 접시의 주인 행세를 한 스캄포지만 막상 먹어보니 특별할게 없다. 단단한 껍질을 벗겨내는데도 애먹고 그렇게 해서 발라낸 살이란게 중하짜리 새우 한 점의 살에 겨우 미치는 정도. 맛? 차로 친다면 소나타 정도, 에쿠스는 커녕 그랜저급에도 못미친다. 뒤집어 쓴 소스도 특별할게 없는 사우전 아일랜드 드레싱. 직접 만든 타타르소스도 아니고 수퍼마켓 하인즈 케첩 옆의 사우전이라니.. 이건 엄청 실망. 그리고 보니 칵테일 새우도 같은 소스를 입었다. 어디 먹어볼까.. 켁! 이건 더 심하다. 식감만 있을 뿐 맛이 안느껴진다. 물에 빤 새우랄까? 이거이거이거..

이쯤에서 까메리에레 과감하게 부른다. 만면에 미소를 띄며 다가와 곧 몸을 가다듬고 경청할 자세를 취하는 까메리에레. 우리가 묻는다. "혹시 한국이 어디있는 나라인줄 아느냐? 기내식을 두 끼나 먹어가며 비행기로 꼬박 12시간을 날아야 로마에 도착할 수 있는 먼 곳이다. 그리고 다시 로마에서 기차를 타고 뻬루자를 거쳐 앙코나까지 오는데만 적어도 6시간이 걸린다. 이걸로 하루가 다 간다. 근데 여기서 끝이냐? 아니다. 역에서 내려 3시간을 찾아 헤매야 하고 그마저 의심스러우면 BAR에 들어가 아페리티보 한 잔 마시며 귀동냥을 해야 비로소 이 테이블에 앉을 수 있다. 뭘 위해서? 바로 이 새우 한 마리, 스캄포 한 마리를 위해서다. 내 말은 이게 그냥 우연히, 생각없이 먹게된게 아니란 얘기다. 근데 이게 뭐냐? 주방에 세탁기라도 갖다놨냐? 여기 빨래방이냐? 주방장 오라고 해!!" .. 음식에 불만을 느낀 이라면 누구든 한 번쯤 떠올려 봤을 생각이다.

자, 마저 먹던거 먹자. 훈제연어만 먹어왔는데 생연어를 살짝 데쳐 식초와 올리브유에 절인 연어 한 조각.  날생선을 살짝 익혀 올리브유에 절이는 방식이 이탈리아에선 일반적이다. 병에 담아 파는 알리치도 이런 방식일텐데 앞으로 한국에서 생선을 이런 식으로 담가먹는 법을 연구해야겠다. 채소와 레몬, 또는 와인식초에 향 좋은 올리브유만 있다면 샐러드의 주연급 스타로 등극할 가능성이 높다. 알리치는 그냥 병에서 꺼냈는지 짠기가 고스란히 베어 바구니의 빵을 적절히 동원해야 제 간을 맞춰가며 먹을 수 있다. 캐스팅 화려한 영화가 흥행에 참패하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이 접시가 아슬아슬하게 그렇다. 다만 오징어와 연어라는 연기력 좋은 조연이 그나마 흥행 참패만은 면하게 만든 케이스.


또 다른 안티파스토 접시, 홍합과 조개 볶음 요리다. 홍합과 조개라면 탕으로도 맛있지만 깊은 팬에 맑은 국물을 살짝 우려 여기에 마늘과 고춧가루, 소주 한 잔 팍 뿌리고 뚜껑 덮어 한소뜸 끓여 매콤한 홍합 속살 발라먹는 재미가 쏠쏠한 홍합찜도 좋다. 밥반찬으로도 좋지만 술안주에 특효. 다만 실속없이 큰 껍질의 볼륨감으로 인해 높은 가격이 매겨져 왕왕 원성을 사는 것이 홍합요리의 맹점이다. 그러나 그런 현실을 인정하고 먹어야지 별 수 없다. 검은 홍합과 하얀 조개, 빨간 토마토가 어우러진 예사롭지 않은 자테에 이탈리안 파슬리를 흩뿌려 마무리했다. 비주얼에서 아쉬운 건 파슬리의 생잎을 뜯어 위에 몇 점 무성의하게 던져올리면 더 야생적인 식감을 북돋았을 거라는 점. 홍합으로도 모자라 조개가 거들었으니 그 깊은 맛이 어디 가겠나?


버터두른 팬에 마늘 볶다가 홍합을 넣고 백와인 뿌려 불 한 번 땡겨주고 토마토, 또는 소스를 부어 한소뜸 끓여내면 완성되는 매우 간단한 이탈리아 요리다. 여기엔 비법이랄 것도 없다. 저 상태에서 잘 삶은 스파게티를 넣어 몇 번 쎈 불에 흔들어주면 그 자체로 근사한 해물 스파게티가 된다. 그 유혹을 이겨낼 이 한국에 얼마 없을 듯. 스파게티 면이 빠졌다고 아쉬울 필요 없다. 바구니의 빵을 양껏 찢어가며 국물에 폭신하게 적셔 먹으면 입안에 미소가 돌고 손은 어느새 와인잔을 쥐게 된다. 홍합과 조개의 속살도 깊은 국물을 우려내는데 그 노고를 다 쏟아냈으니 자잘한 볼품을 원망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 듯. 한국 가면 3월에도 홍합이 싱싱하겠지? 홍합과 불과 팬만 준비해놓고 기다리세요~ ^^


까메리에레의 권유로 주문한 사이드 접시. 일종의 반찬이라고 보면 될텐데 치커리과의 쌉쌀한 맛이 나는 채소에 알리치를 올리고 정제하지 않은 올리브유를 듬뿍 끼얹어냈다. 쓴맛과 짠맛 사이에 올리브유의 신선함이 풍긴다. 정제하지 않은 오일은 색이 탁한 대신 특유의 연두색이 강해 어쩐지 몸에 더 좋은건 물론 맛과 향도 곱절이리라 생각되는데 막상 맛을 보니 정제 올리브유와 큰 차이를 못느끼겠다. 한국인들, 바닥에 흥건한 올리브유에 기겁하겠지만 크레타에선 올리브유를 매일 컵으로 마시는게 일상이란다. 덕분에 건강이 짱짱하다는 건 이미 널리 알려진 얘기. 버터는 살이 찌지만 올리브유는 그닥 살이 찌지 않는다는 점을 우리도 줄곧 해먹으며 몸소 느끼고 있다.


홍합과 조개볶음이 어느새 바닥을 보이고..


옆 테이블의 남녀는 안티파스토는 건너뛰고 쁘리모로 시작해 세꼰도 거쳐 돌치로 마감했는데 이제 막 세꼰도 접시는 치우는 중이다. 접시가 특이한데 사실 나온 음식도 좀 특이했다. 진작에 알았다면 우리도 쁘리모 한 접시를 취소하고 세꼰도로 저걸 시켰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애초 서브된 접시에는 매달린 쇠꼬치에 생선, 대하, 구운채소 등이 불에 구어져 대롱대롱 꽂혔고 접시에는 곁들여 먹을 가니쉬들이 깔렸다. 보는 재미와 하나씩 뽑아 먹는 재미가 있는 색다른 메뉴. 왠지 더 푸짐해 보이기도 했는데 저걸 보고나니 우리도 뭔가 재밌는 시도를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퍼뜩.


파스타가 나왔다. 말린 대구와 딸리아뗄레(딸리아뗄레 알로 스또까피쏘-Tagliatelle allo Stoccafisso)


롬베띠와 바닷가재(롬베띠 알라 스깜삐-Rombetti alla Scampi). 


딸리아뗄레 면이라면 넓은 면만 있은 줄 알았더니 아니다. 덩치가 커진 사발면 같은 면발. 포크에 둘둘말아 씹어보면 쫄깃하니 씹는 식감이 좋다. 수제 파스타의 면이 때론 쫄깃하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건 다르다. 일전에도 어디선가 맛본 생면 파스타의 면이 쫄깃해 뭘 섞었을까 계속 고민중이었는데 두 가지로 압축됐다. 하나는 소량의 감자전분(뇨끼를 만들다 실험삼아 넣은 것이 쫄깃한 식감을 준다는 걸 안 것 아닐까?)과 또 하나는 비장의 숙성기술. 이것 말고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좋다, 저 쫄깃한 파스타. 한 가지 짚자면 사람들은 종종 파스타 면이라면 수제로 만든 생면이 더 좋을꺼라 생각하지만 그건 어떤 파스타를 하느냐에 따라 다를 뿐이지 건면 파스타가 생면보다 한 수 아래라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다. 스파게티만 보자면 만약 수제로 생면을 만들 경우 삶아내면 너무 흐늘거려서 탄력을 잃고 축 늘어질테다. 게다가 단면이 원형을 띈 파스타를 만들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면 하나씩 손으로 밀면 둥그런 모양이 되겠지만.. 스파게티보다 좀 더 얇은 면인 스파게티니(Spaghettini)도 그렇게??


탈리아텔레를 돋보이게 만든 장본인은 대구다. 대구는 이곳 말로 메를루쪼(Merluzzo)지만 소금을 수북히 쌓아 재워서 반건조 시킨 대구는 바칼라(Baccala)라 부른다.(헌데 메뉴에는 Stoccafisso라고 적혀있으니 앙코나에선 또 그리 부르나 싶다) 주로 어른 팔뚝보다 큰 대구만을 그렇게 염장한다. 생선은 염장해 말리면 결대로 쫀득함이 살아나 그 맛이 또한 일품인데 이탈리아 사람들도 그 맛을 아는 모양이다. 소금끼를 뺀 바칼라를 비법 양념과 파스타를 넣고 볶아낸 것이 이 접시. 비법 양념이라는게 아무래도 피쉬소스를 소량 넣은게 아닐까 싶은데 사실 파스타 면과 바칼라의 살집을 먹는 재미는 좋았지만 거기에 입혀진 소스의 맛은 뭔가 맛을 내기 위해 이것저것 섞은 느낌이 들었다. 간을 간장으로 할까 액젖으로 할까 갈등하며 조금씩 넣어보다 완성된 맛이랄까? 복잡한 양념을 피하고 원재료의 맛을 충실히 살려내는데 초점을 둔 이탈리아 요리에서 보자면 좀 아니다 싶다. 그래도 접시는 깨끗히 비웠다. 참.. 까탈스러운 손님만나 요리들이 고생한다.


또 다른 파스타, 롬베띠 알라 스깜삐. 두 마리의 스깜삐가 올라와있고 주변에 깍두기 모양의 파스타가 흩어져있다. 파스타를 한 점 찍어 맛을보니.. 영락없이 어묵이다. 근데 짜다. 낯선 외지에서 가깝게 지낸 친구를 만나면 반가우면서도 어떤 경우엔 순간 '우리 왜 만났니?' 생각드는 경우 왕왕 있는데 웬지 그런 느낌. 좀 짜지만 않아도 맛있게 먹겠건만 우리입맛에 좀 많이 짜다. 자연스레 빵으로 손이 자주가니 빵의 반찬이 파스타가 된 느낌. 앞서 등장하셨던 스깜삐도 모양만 요란한 뿐 실속은 그닥 없다. 아까 옆테이블에서 먹던 그 요상한 꼬치 요리가 자꾸 떠오른다. 이럴 때 대개 이러던가? "아 놔.."


'오뎅'의 모습. 배는 부르나 어쩐지 기대에 좀 못미친다. 이탈리아에서 고급 식사로 통하는 해산물 요리를 제대로 먹어보자 해서 이 먼 앙코나까지 기차타고 꾸역꾸역 찾아왔건만 몇 가지 맛의 힌트는 얻었으돼 큰 감동은 없다. 이제 겨우 한 집 먹어보구서 이렇다저렇다 하는게 웃기는 일이지만 사실 웬만한 요리솜씨로 해산물 풍부한 한국에서 다양한 맛의 변주에 길들여진 우리를 감당해 낸다는건 쉬운 일이 아니다. 끓여먹고 조려먹고 구워먹고 튀겨먹고 삭혀먹고 말려먹고 그걸로도 모자라 날로 먹고. 곰곰히 생각해보건데 우리 입맛을 감당할 바다요리의 재주꾼은 일본 말고 없지 않을까? (물론 바닷가재가 통으로 들어간 파스타 앞에선 자세를 가다듬겠지만..)


아쉬운 마음 때문이었을까? 제법 넉넉히 주문해서 비용이 꽤 나왔을테지만 티라미수 하나를 선뜻 주문했다. 입안의 짠기를 달달한 맛이 덮어주니 미소가 번진다.

마저 남은 저 흔적도 곧 말끔이 먹어치웠다. 

 
음식이 나올 때 마다 카메라를 들고 음식을 찍어대니 주변 테이블에서 힐끔힐끔 신기하게 쳐다본다. 앙코나에 과연 얼마나 많은 동양인이 올까도 싶지만 자신들로선 대수롭지 않은 음식에 저리 신기해하고 진지하게 식사하는 우리가 마냥 기이하게 보이기도 했을테다. 서로 묘한 눈웃음만 주고받으며 추측과 억측이 난무하는 속에 낯선 동굴을 지나는 듯한 식사가 끝났다. 어느새 식당은 손님들로 가득 들어찼고 화려함과 풍족함을 담은 접시들이 부지런히 날라지고 있었다. 이탈리아 말이 유창했다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옷을 챙겨입으며 큰 소리로 외쳤을지 모르겠다. "뭐 한국 해물탕만 못하네~!"

오른쪽 아래 불이 환한 집이 La Cantineta. 거리에 사람 한 명 안지나다지만 식당 안엔 버글거린다. 뻬루자도 저렇다.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