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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3.10 이탈리아에서 나물 뜯어봐? 18
  2. 2008.10.08 이탈리아 아침식사 An Italian breakfast 4

이 추운 시골도시(뻬루자는 움브리아주의 주도지만 시골이나 다름없다)에도 봄이 오긴 오는지 어제 일요일 발코니에 서니 따뜻한 훈풍이 간간히 뺨을 스치며 지나갔다. 아씨지를 감싸고 있는 산 정상의 눈도 거의 녹았고 밝은 빛깔의 돌벽들은 햇살의 따뜻함을 복사해냈다. 정녕 봄이 온게로다. 내려다보이는 들녘 어딘가에선 분명 먹을 수 있는 봄나물이 솟고 있지 않을까? 냉이가 있으면 연일 감자와 호박, 양송이 버섯으로 반복되는 된장지깨의 지루한 레퍼토리에도 큰 변화를 줄 수 있을텐데 아무래도 그놈은 찾아보기 어렵지 싶다. 남의 땅인줄 모르고 들어갔다가 괜히 엉뚱한 오해를 사는 것도 그렇고 가게에도 나물류는 없다는 점에서 그렇지만 뭣보다 1000가지 식재료를 망라해놓은 이탈리아책을 보면 냉이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샐러드용의 채소는 우리도 생소한 것이 많은 반면 우리식의 샐러드라 할 나물에 쓰이는 것들은 보이지 않는다. 냉이, 도라지, 드룹, 씀바귀, 고사리, 취 등등. 예전에 한 기근 했던 이곳이었으니 있었다면 어떻게든 요리로 먹는 방법을 찾았을텐데 지금 그런 흔적이 없는걸 보면 아마 없다는 얘기가 아닐까?

나물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ㅋㅋ 이번 이탈리아 여행('두서없는 방황'이 더 정확할..)을 통해 우리가 깨달은 굉장히 큰 사실 하나는 이탈리아, 특히 북부의 제법 잘사는 동네에 한국식당 내면 장사가 될꺼라는 점이다. 두 가지 점을 미뤄볼 때 그러한데 하나는 이탈리아는 물론 유럽 전역에 거세게 불고 있는 스시열풍(고이즈미는 집권중에 스시의 해외진출에 적극 나서겠다고 선언한 적이 있는데 어쩜 그 효과일 수도..)을 따라가지 못하는 조악한 스시의 품질과 이미 이전부터 동양음식의 맹주로 자리잡은 중국음식의 권태로운 매너리즘(?)이 그렇다. 어디까지나 우리의 경험과 관점에서 보면 그렇다는 얘기^^.

베로나에 머물 때 두 개의 스시집에 대해 들은 바 있는데 하나는 일본인, 또 하나는 중국인이 운영하고 있다. 사실 유럽 전역을 통틀어 성업중인 스시집이라면 절반 이상은 중국인이 운영하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일본인 운영의 스시집은 고급화 전략(사실 스시가 고급 아닌가?)을 앞세워 높은 단가의 스시를 내놓고 있고 예약을 해야 자리를 확보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우리는 일전에 그 앞을 지나며 스윽 넘겨보기만 했는데 젓가락을 손가락 사이에 끼고 열심히 초밥을 집어먹는 모습에 그저 낄낄 웃으며 지난 기억이 있다. 볼로냐에 딱 하나 있다는 스시집도 운영은 중국인이 한다. 우리는 그곳에서 식사하지 않았지만 그곳을 다녀온 경준군의 이야기는 이렇다.

"우동을 시켰는데 중국 특유의 들큰한 육수에 가다랑이 포를 얹어낸걸 우동이라며 주더라구요.."

더 놀라운 것은 우리가 취재한 마르코 파디가 비스트로에서도 스시를 내놓는다는 점이다. 이는 비즈니스 메뉴에 일찍 눈을 뜬 쉐프 마르코의 착안과 한국에서 온 경준이 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경준은 스시 메뉴에 있어선 한사코 손사래를 치며 취재를 부담스러워 했는데 그도 그럴것이 경준군은 스시요리를 배운적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없는 것은 둘째치고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버젓이 메뉴로 팔린다는 점에 요리사로서 양심적 부담이 있다는 눈치다. 사실 새로운 것을 내놓고 싶어하는 쉐프의 의지에서 어찌어찌 하다보니 어느덧 메뉴로 굳어진 것인데 일본인은 물론 한국인이 마르코 식당의 스시를 먹어보더라도 부족함을 느낄 맛.

식당일을 마치고 남은 재료로 급 만든 초밥. 초밥 이름은 묻지도 않고 먹었네 이런..

그것을 알기에 경준군은 부담이 더 크다. 근데 이보다 더 놀라운 것은 쉐프 마르코가 스시집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는 점이다. 준비가 아니라 오픈 날짜만 기다리고 있다는게 더 정확할 듯. 이미 가게도 마련했고 스시를 만드는 기계도 경준의 도움으로 한국에서 들여왔다. 경준은 4월에 이탈리아를 떠나니 이 사업에 관여되진 않겠지만 마르코의 도전이 아무래도 우리 눈에는 다소 무모해보이는 구석이 있다. 왜냐면 그 스시가 별로 맛이 없기 때문이다. 달고 시고 텁텁한 초밥과 빛을 잃은 생선. 그럼에도 마르코가 도전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을 찾는 손님이 있기 때문.


중국음식은 어떨까? 볼로냐의 심장부인 두오모를 이어주는 큰 길 인디펜덴자 거리를 향해 문을 내건 중국식당(얼마전 까지 인근에 하나 더 있던 중국식당은 망했단다)은 식당 홀 바닥을 두터운 강화 유리로 덮고 그 아래는 돌을 깔고 물을 채워 물고기들이 유유히 헤엄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해놨다. 중국의 어느 황제가 그랬던 것 처럼의 호사를 느끼며 밥을 먹으라는 주인장의 컨셉인건데 과연 손님들이 그런 호사로움을 느낄지는 알 수 없다. 식당에 들어온 목적이 맛있는 음식으로 배를 채우기 위함이니 인테리어보단 요리가 빛을 내야 하는 법. 두 번 왔을 때마다 우리는 스프와 만두, 볶음밥과 곁들여 먹는 고기볶음 등의 요리를 주문했는데 첫 번째는 배보다는 호기심을 채우는 심정으로 먹었고 두 번째는 아주 짜게 간이 돼서 나온걸 겨우겨우 먹었다.

흔히 중국음식을 기름지다고 하는데 사실 기름진 문제보다는 중국인들이 사용하는 특유의 들큰한 향료가 입맛의 젤 큰 부담이 아닌가 싶다. 모양면에서 우리가 먹는 튀김만두와 똑같았을 만두는 쪄서 나왔는데 고기향과 파향이 어우러진 맛을 기대했지만 전혀 예상외의 맛을 내줬으니, 만두피의 쫄깃한 식감과 찍어먹는 간장장의 맛쪽으로 혀가 집중됐다. 우리가 갖은 양념, 또는 오랜 숙성으로 고기, 특히 돼지고기의 나쁜향을 잡는다면 이집의 만두나 이탈리아의 돼지고기 요리가 갖는 공통점은 강한 향료나 허브로 향을 섞어버리는 점이 아닐까 싶다. 특별히 그맛을 즐기는 건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중국요리도 한국의 중국요리가 훨씬 맛있다면 너무 편협한가?)

디자인과 문양이라곤 없는 투박한 사기접시에 담겨나오는 음식 가운데 그나마 입맛에 맞는건 새우볶음밥(계란과 새우만 들었고 미원 적절히 섞었고 짜다)과 간장양념에 볶아낸 돼지고기다. 이것 역시 짠 볶음밥을 한 입 물고 짠 돼지고기 볶음을 찬으로 먹는다는 괴로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미원의 익숙한 맛(?)이 있어 그런대로 먹었다. 식사중의 즐거움이었다면 가게 구석구석을 훑어보며 내부를 어떻게 확 뜯어고치고 조명을 어떻게 하고 어떤 메뉴를 내놓을지에 대한 공상을 맘껏 즐긴 것. (혹시 우리를 식당으로 안내한 경준이 이 글을 읽으면 살짝 서운해할지 모르겠는데 경준에 대한 비판이 아니니 괜한 오해는 말기를 바라고 오히려 우리에게 큰 공부가 됐다는 점에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주길. 주중에 올라갈테니 총각김치 잘 보관하거 있거라^^)

스시를 중심으로 한 낯선 아시아 요리에 대한 호기심, 건강식에 대한 관심, 높은 외식문화와 산업, 유행과 세련됨에 있어 결코 밀라노에 밀리지 않는 볼로냐, 이런점들을 미뤄볼 때 우리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독특한 문양의 작은 간판을 단 한국식당 앞에서 근사한 한지에 적힌 메뉴판을 넘기고 있는 볼로냐 사람들이다. 흙빛 도자기에 담아낸 불고기와 색색의 전, 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쌀밥, 콩밥, 오곡밥. 그리고 모든 외국인들의 완소 순두부찌개! 여기에 사기잔에 적셔 맛보는 백세주 한 잔? 이 밖에도.. ^^  (일산 오피스텔 단지에 영어 원어민 강사들이 제법 많이 사는데 한 번은 백세주 세 병을 품에 소중히 안고가는 모습을 보고 눈이 둥그레졌던 기억이..)


경준이 우리에게 재미삼아 이런 말을 던졌다.
"일본요리는 먹어도 먹은 것 같지 않고 중국 요리는 먹으면 속이 부담스럽고, 근데 한국요리는 먹으면 배부르고 속이 편하다고 해요"
듣는 입장에선 꽤나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Posted by dalgonaa
이딸리아 Italia 300908~2008. 10. 8. 05:55


지난 주 토요일. 아침 9시 반에 베로나(VERONA)와 베네치아(VENEZIA) 사이에 있는 파도바(PADOVA)를 향해 출발했다. 파도바는 이미 전에 한 번 얘기했던대로 엘리자베타의 부모님이 살고 있는 동네. 그녀는 요즘들어 파도바를 찾는 발길이 잦아졌다. 아침도 거르고 출발하는가보다 싶었는데 카페 앞에 차를 세운다. 사실 유럽 대부분이 그렇지만 매장을 정면에서 바라보지 않는 이상 길가에 어떤 상점이 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상점 하나에 적게는 3개, 많게는 5개 이상을 간판으로 내거는 우리, 또는 아시아의 분위기와는 완전히 다르다. 이는 초행길의 사람들, 즉 여행자들에겐 사실 적잖은 불편을 안겨준다. 길 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지 않는 이상 구멍가게 하나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튼 네온을 자세히 보고 나니 카페라는 걸 알겠다.


안으로 들어서자 한산한 바깥 분위기와는 달리 사람들로 북적인다. 평일도 아닌 토요일, 엘리자베타는 이탈리아(적어도 베로나) 사람들이 이런 곳에서 아침식사를 즐긴다고 한다. 4명의 점원이 부지런히 커피를 뽑고 빵을 담고 계산대에서 잔돈 치르기에 여념이 없다. 손님들은 저마다 한 잔씩의 커피에 크로와상, 또는 패스트리를 물어 뜯으며 아침부터 귀가 따갑게 이야기들을 주고 받는다.



이것이 바로 아침 식사.

에스프레소 한 잔과 크로와상 한 조각. 커피라면 사족을 못쓰는 강양에겐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김군에겐 쓰디 쓴 어떤 것 일뿐. 커피맛을 모르는 것이 한편으론 삶의 중요한 낙(樂) 하나를 잊은게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어쩌랴.. 그 맛이 해독이 안되는걸. 

한국에서 가끔 사람들과 커피전문점에 갈 때면 바쁘게 커피를 뽑아내는 모습을 별 생각없이 지켜보곤 했는데 이른 아침부터 동네 '밥집'의 하나라는 곳에서 저렇게 바쁘게 커피를 뽑아내는 모습을 보자 문득 커피산업의 규모를 생각케 만들었다. 베로나라는 작은 동네의 작은 카페에서 저 정도니 매일 아침 이탈리아에서만 소비되는 커피량은 도대체 얼마이며 전 세계적으론 또한 얼마일까?

밤 하늘의 별을 헤아리는 것 만큼의 어리석은 궁금함은 아니겠지만 커피생산 노동자들에게 하느님의 축복이 아닌 소비자들의 반짝반짝거리는 지폐가 충분히 흘러들어갔으면 하는 바람이 갑자기 들더라는..  

아빠랑 함께 온 작은 꼬마숙녀들은 아빠가 에스프레소를 비우는 동안 알록달록한 빵 한 조각에 코코아 한 잔을 너끈히 비워냈다.

허나 아침식사가 건강에 좋다는 의학적 결과에서 보자면 안 먹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에스프레소에 빵 한 조각은 어쩐지 미덥지가 않다. 다소 오래 전, 쌀쌀한 아침 길에 리어카에 실린 큰 냄비에서 김을 새하얗게 내뿜으며 끓던 순두부. 한 그릇 소담하게 담아낸 뽀얀 단백질 결정체 위로 잘게 썬 파를 듬뿍 넣어 어느새 걸죽해진 초간장을 한 수저 올려 후루룩 떠먹던 그 맛이 유난히 간절해진 이날 아침이었다. 먼길을 떠나니 유독 그리 느꼈을 수도..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