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롯. 부동산 브로커. 집. 풀장. 펜트하우스. 옥탑방'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8.04.01 새로운 부동산 브로커 샬롯과 함께 9

아침에 Simon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10시 30 만나서 다른 집을 좀 더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시간에 맞춰 약속장소로 나가보니 작은 시트로엥 승용차에서 40대 후반의 숙녀가 우리를 부른다. 그녀는 자신을 사이몬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라고 소개했다. 이름은 샬롯’. 몰티즈들과 달리 완벽한 영국식 발음을 구사하는 그녀는 영국 런던에서 오랫동안 살다가 지금은 남편과 아이 둘과 함께 몰타에 정착해 살고 있다고 한다.

 

그녀는 우리에게 총 4군데의 집을 보여줬는데 이 가운데 우리를 사로잡은 집은 첫 번째로 보여준 집이었다. 방이 총 3개고 넓은 거실과 주방, 특히 차가 다니는 바닷가 길까지 2분이면 도착할 거리여서 접근성이 매우 좋았다. 층수도 높지 않아 천정 높은 건물의 계단을 오르는 불편도 덜한 편이다.

다만 가격이 조금 비싼데 지난 번 집과 달리 100유로가 더 비싸 월 520유로다. 또 하나의 결정적인 문제는 화장실이 하나라는 것. 아주 작은 침실까지 포함해 총 3개의 방이면 우리를 제외하고 3명을 더 끌어들여(중간 크기 방에는 침대가 2개다) 나눠 쓸 수 있는데 그럴 경우 아침에 5명이 한 화장실을 사용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고민해봐야 할 문제일 듯 싶다. 

 

그럼에도 위치가 좋다는 것은 큰 매력이다. 100유로 더 비싼 가격도 사실 한 명을 더 끌어들이면 간단히 해결된다.

 

두 번째 집은 우리로 치면 옥탑방이지만 여기서는 펜트하우스로 부르는 집이었다. 집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1층에서 샬롯과 우리를 반갑게 맞았는데 깍듯한 인사 뒤에는 아주 누추한 집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저런 자재가 뒹굴며 한창 공사중으로 2주 후에나 입주가 가능하단다. 애초부터 조건이 안될 뿐만 아니라 그야말로 우리 나라의 옥탑방 수준인 그 집을 400유로에 머문다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시종 웃는 샬롯의 얼굴에도 이정도 일 줄은 몰랐다는 표정이 언뜻 비쳤다. 서둘러 세 번째 집으로 향했다. 아침부터 가는 빗줄기가 내리는 가운데 샬롯은 거침없이 차를 몰았다. 차 안에서 짧은 대화가 여러 번 오갔는데 그 때마다 들리는 그녀의 영국식 발음은 매우 듣기 좋아 귀에 착착 감겼다.

 

스위히는 이곳 몰타에서 가장 조용한 동네다. 대개 낮은 2층 짜리 집이 대부분으로 거리에는 인적도, 지나다니는 차도 많지 않다. 이런 분위기는 우리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지만 어쨌든 샬롯이 가는 대로 따라갔다. 집으로 들어서려 하자 강양이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계단에 아주 얌전한 고양이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었던 것이다. 강양은 개와 고양이를 매우 두려워한다.

 

샬롯과 나는 고양이르 쫓아보려 애썼지만 고양이는 절대 그 공간을 벗어날 생각이 없는지 우리의 눈치만 살피며 쉽게 자리를 비키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샬롯과 나만 집을 둘러보기로 했다. 이곳 역시 원룸 형태의 집으로 주방을 포함하는 작은 거실과 침실로 나눠져 있었다. 오랫동안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다소 누추한 집이었는데 눅눅한 냄새가 났다. 창 밖으로 내리는 빗줄기를 보니 집이 더 누추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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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장이 딸린 집을 둘러보고 있는 강양. 부엌과 방은 스위히에서 봤던 다소 누추했던 집의 모습이고 운전중인 샬롯의 모습이다.

 
네 번째 집으로 향했다. 이 집이 좀 재밌었는데 세상에.. 아파트의 이웃들과 함께 사용하는 풀장이 뒷마당에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우리가 본 집은 거실 유리문을 열고 세 걸음만 크게 뛰어 점프하면 바로 풀장으로 다이빙할 수 있는 위치이기도 했다. 학교 가는 아침, 자리에서 일어나 풀장으로 다이빙해 반대편으로 나온 뒤 타월로 머리만 털고 집을 나서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 집은 우리가 알아보고 있는 학교와 거리가 너무 멀었다. 게다가 인근에 수퍼나 각종 편의시설이 없었고 집 자체도 오래된 듯 낡은 구석이 눈에 많이 띄었다. 집을 보여주는 주인에게 그럼에도 ‘Nice place’라고 공손히 치켜세운 뒤 우리는 샬롯과 함께 집을 나왔다.

 

그녀가 준비한 거의 모든 집을 봤다. 가는 빗줄기 속에서 강양은 샬롯에게 얘기했다.

“We need to have a time to discuss about it, then we’ll call you back”

“Okay, of course you do, don’t worry.

그리고 샬롯은 우리를 우리가 원하는 파쳐빌에 친절하게 데려다 주었다.

 

한국을 떠난 지 이제 겨우 2주가 지났을 뿐인데 오랜 시간이 지난 느낌이다. 어쨌든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집에 들어간다. 1주간 머문 대합실 같은 느낌의 유스호스텔을 벗어나는 것 만으로도 기분이 들뜬다. 단지 스쳐 지나가는 여행자라면 저렴한 숙박비가 더없이 고마울 숙소였겠으나 여행자와 짧은 기간이나마 생활자의 입장은 이렇게 다른가 보다.  

 

어라, 어느새 해가 쨍하다. 오락가락 하는 이곳 날씨니 안심할 순 없다. 이사도 해야 하는 만큼 제발 비는 그만 와야 할텐데.. 그나저나 캐리어 속에 비닐 봉다리에 담겨있는 된장은 무사할까? 한 번도 들여다보질 않았는데 오늘 그 결과를 집에 들어가서 확인할 수 있을 테다. 그렇다면 오늘 저녁을 된장찌개?  낄낄 (눈을 씻고 찾아봐도 몰타 수퍼에는 두부가 없다.)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