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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5.18 5월 18일, 심란한 새벽 1
  2. 2008.05.24 주말밤을 달리다 1
한국 Korea 160409~2010. 5. 18. 05:45
잘 자던 강양이 새벽에 갑자기 몸이 아프다며 잠을 설치다
물 몇 잔 마시고 이내 평정을 되찾아 지금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오늘 아침이 돼 봐야겠지만 어쩌면 점심장사를 건너뛰고
저녁부터 가게를 열어야 할 지도 모르겠다.
어제 가게 앞에 놓을 벤치를 만드느라 하루종일 고생한건 난데
왜 강양이 느닷없이 몸이 아픈건지 원..
암튼 지금은 내가 잠을 들지 못하고 이런저런 생각에 젖어
새벽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보니 오늘이 5.18.

굵은 빗줄기로 전야제 행사 참석인원이 줄었다는 소식도 들리고
정부의 홀대가 심하다는 이야기도 인터넷에 떠다닌다.
어제 신문서 읽은 당시 희생자의 모습도 자꾸
머릿속에 떠올라 잠을 다시 청하기가 쉽지 않다.
빗소리도 들리고..
심란한 새벽이다.

별별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이런 상상에까지 이르렀다.
일전에 언론사일을 할 때이던 2008년,
한 유명 호텔에서 열린 출판기념식장에 간 적이 있었다.
당시 출판기념식의 주인공은 조선일보 명예회장 방우영.
그는 80세 생일잔치를 자신의 저서 출판기념식을 겸해 성대하게 마련했고
이 자리에는 그의 눈도장에 들고자 하는 사회 각계의 찌질이들로 북새통을 이뤘는데
가장 거물로는 YS와 전두환, 그리고 당시 당선자 신분이던 이명박이다.
사진기자가 촬영한 사진으로 남은 당시의 분위기는 이랬으니..



▲ 고개숙여 인사하는 대통령 당선인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22일 오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방우영 조선일보 명예회장의 회고록 <나는 아침이 두려웠다> 출판기념회를 찾아 방 회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 권우성
 



▲ 고개숙인 방우영 명예회장 22일 오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방우영 조선일보 명예회장의 회고록 <나는 아침이 두려웠다> 출판기념회를 찾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방 회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 권우성




사진에서 보듯 이들간에 얽힌 관계는
오늘날 대한민국이 직면한 정의의 상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상징이라 할 수 있는데,
만약..
당시 내게 바로 그 '도시락'이 있었다면 역사청산과 다가올 미래의 재앙을
일거에 해치우는 일대 호기가 아니었을까..
(당시 이명박의 방문은 예고가 없던 것이어서 검색도 허술하기 짝이 없었던지라..)
비명에 간 최미애씨를 비롯한 수많은 희생자들,
그 가족들의 한도 조금이나마 씻겨 나갈텐데..

술자리에서 종종 사진에 등장하는 저들 이야기가 나올때면
난 으례 당시를 떠올리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뭐였을까 정말 진지하게 몰두해보곤 한다.
도시락이 좀 큰거라면 덤으로 챙겼을 것도 많다.
아래는 그 덤들..



참석자 명단


◇정·관계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 김영삼 전두환 전 대통령, 김재순 전 국회의장, 정원식 현승종 이홍구 이한동 김석수 전 국무총리, 한승수전 경제부총리, 허문도 권오기 전 통일부총리, 이상득 국회부의장, 김종하 박희태 전 국회부의장,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 최병렬서청원 전 한나라당 대표, 박지원 전 대통령 비서실장, 정재철 한나라당 상임고문, 정대철 대통합민주신당 상임고문, 최시중대통령취임위 자문위원, 김덕룡 권철현 김기춘 김무성 고흥길 박진 원혜영 공성진 김명자 김태환 박명광 전여옥 정두언 최구식국회의원, 정재문 박찬종 임방현 강인섭 이자헌 이건개 장성민 전 국회의원, 이경숙 대통령직인수위원장, 김우식 과학기술부총리,박명재 행정자치부 장관, 오세훈 서울시장, 안상수 인천광역시장, 안응모 한나라당 국책자문위원회 총괄위원장, 송정숙 전보사부장관, 이건춘 추경석 전 건교부장관, 한갑수 전 농림부장관, 한상완 대통령 소속 도서관정보정책위원장, 이성춘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장, 김영신 중앙선거관리위원, 신재민 대통령당선인 비서실 정무1팀장, 허용범 정무1팀, 임성빈 외교팀, 이성복언론팀, 김효재 인수위 자문위원, 진성호 인수위 전문위원, 문하영 외교통상부 기후변화대사, 마영삼 외교통상부 아중동국장, 하태윤김대중 전 대통령 비서관, 한백현 금융감독원 증권조사2국장, 최문휴 전 국회도서관장, 김영관 예비역 해군대장, 장정렬 예비역육군중장


◇재계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 허창수 GS그룹 회장,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장세주 동국제강 회장,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 유경선 유진그룹 회장, 허동수 GS칼텍스 회장, 민병준한국광고주협회 회장, 최수부 광동제약 회장, 김동수 한국도자기 회장, 이중명 에머슨퍼시픽그룹 회장, 김영호 일신방직 회장,이병무 아세아시멘트 회장,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 조태권 광주요 회장, 진재순 한일건설 회장, 천신일 세중 회장, 이건수동아일렉콤 회장, 전순재 ㈜씨유씨 회장, 이명걸 ㈜디포인덕션 회장, 남상수 제주리조트 회장, 강성자 HRS 회장, 민경덕㈜희송지오텍 회장, 배순 ㈜대림그린엔텍 회장, 박우춘 세인통상 회장, 김관석 원옥FA엔지니어링 회장, 양대길 영우통산 회장,강신주 ㈜삼신 회장, 장치혁 전 고합그룹 회장,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학서 신세계 부회장, 최창근 고려아연 부회장, 서경배아모레퍼시픽 사장, 최도석 삼성전자 사장, 정국교 주식회사 H&T 대표이사, 이종남 대한제당 고문, 백경목 대한제당사장, 박경선 한국여성경제인협회 부회장, 이상현 KCC정보통신 사장, 김정수 일신방직 사장, 박무익 한국갤럽 소장, 정영규L&C SQ 대표, 최시호 ㈜아이오비 대표, 이상협 덕양 대표, 김영하 전경련 FKI미디어 사장, 양성식㈜정주C&E 대표, 심재혁 레드캡투어 사장, 정휘영 선라이즈여행사 사장, 성성환 나래여행사 대표, 강신철 한국안전인증원이사장, 김칠두 한국산업단지공단 이사장, 박현두 세계경영원 대표, 이해선 아모레패시픽 부사장, 김영빈 진로발효 부사장, 이추헌대한제당 부사장, 이인용 삼성전자 전무, 천세전 세중여행 부사장, 최호 SR골드 고문, 김원영 신진메딕스 상임고문, 정광영KODECO 부사장, 정병수 연세우유 전무


◇금융계


라응찬 신한금융그룹 회장, 이인호 신한금융그룹 사장, 신동혁 전국은행연합회 고문, 배찬병 전 상업은행장, 유석현 스카이저축은행대표이사, 김종락 대한세무협회 이사장, 안병찬 한국은행 국제국장, 나오연 한국조세발전연구원장, 이근일 동양생명 고문, 박세훈삼성카드 상무, 안택수 신우회계법인 공인회계사


◇법조계


이용훈 대법원장, 윤관 전 대법원장,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 송정호 전 법무부장관, 안우만 전 법무장관, 정구영 전 검찰총장,최광률 전 헌법재판관, 서기석 서울고법 부장판사, 여상규 법무법인 한백 대표 변호사, 이재후 '김&장' 대표 변호사,강성룡 강희철 김태수 오양호 윤종남 임준호 최진욱 변호사


◇교육계


권이혁 전 문교부 장관, 김동길 전 연세대 명예교수, 안세희 박영식 송자 전 연세대 총장, 조완규 전 서울대총장, 김종량 한양대총장, 최기준 성공회대학교 이사장, 김정룡 서울대 명예교수, 이어령 이화여대 명예 석좌교수, 이상우 한림국제대학원대 총장,김한중 연세대 차기 총장, 지훈상 연세대 총장직무대행, 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 기우탁 성균관대유교문화 연구위원, 김명회 한국학술연구원 원장, 윤형섭 전 교육부장관, 양승두 연세대 명예교수,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차인태경기대 교수, 김영석 연세대 교수, 김용순 아주대 간호대학장, 김재관 인천대 석좌교수, 김정원 세종대 석좌교수, 김정기 한국외대명예교수, 김진봉 전 명지대 부총장, 나정욱 연세대 동문회 사무총장, 정갑영 연세대 원주부총장, 손흥규 연세대 행정·대외부총장,민경찬 연세대 교수, 박상은 한국학술연구원 이사장, 박영렬 연세대 대외협력처장, 박용진 홍익대 명예교수, 박정규 대신대초빙교수, 서연호 서울사립초중등학교법인협의회장, 서승환 연세대 기획실장, 신극범 전 대전대 총장, 신명순 연세대 교수, 신의순연세대 학부대학학장, 안경한 연세대 송도국제화복합단지건철추진단 고문, 방석호 홍익대 교수, 유재기 국민대 겸임교수, 이관우 중국길림대 명예교수, 이병욱 세종대 교수, 이승호 연세대 의과대 총동창회 명예회장, 이인수 학교법인 고운학원 이사장, 이인원한국대학신문 회장, 이호용 연세대 명예교수, 이충국 연세대 교수, 장유상 KDI국제정책대학원 초빙교수, 장재룡 명지대 객원교수,정윤재 한국학대학원 교수, 정영훈 재단법인 하광장학회 이사장, 정진위 연세대 교수, 정철범 성공회대 초빙교수, 최종률 한국ABC고문, 최중길 연세대 교수, 최효식 한국동학학회장, 한동관 관동대 총장


◇종교·문화계


정철범 성공회 주교, 소화춘 기독교대한감리회 감독, 천혜인 불심사 주지, 한운사 한국방송작가협회 고문, 한명희 전 국립국악원장,황병기 가야금 명인, 신현택 예술의전당 사장, 오지철 한국관광공사 사장, 양혜숙 한국공연예술원 원장, 윤양중 일민문화재단이사장, 윤미용 국악방송 이사장, 김후란 문학의 집 서울 이사장, 조연수 고당 조만식 선생 기념사업회 사무국장, 최치선 민세안재홍 선생 기념사업회 부회장, 양병용 매헌 윤봉길의사 기념사업회 사업부장, 차화준 고려역사선양회 총재, 최성자 문화재청전문위원, 이길원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부이사장, 박은주 김영사 대표, 류기정 삼화출판사 회장, 원종성 월간에세이 발행인, 이교원조경작가, 안혜초 시인, 정재도 한말글 연구회 회장, 홍주식 대룡인쇄 대표, 강신성일·엄앵란 영화배우, 윤형주·최희준 가수,손범수 아나운서


◇언론계


윤세영 SBS 회장,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 김학준 동아일보 사장, 이병규 문화일보 사장, 이동한 세계일보 사장, 신상민한국경제신문사 사장, 임종건 서울경제 사장, 이정식 CBS 사장, 조창현 방송위원회 위원장, 김진현 전 문화일보 사장, 현소환전 연합통신사장, 김재호 동아일보 부사장, 이태열 대구일보 회장, 김대성 제주일보 회장, 남시욱 세종대학교 교수, 김수길중앙일보 편집인, 한종우 성곡언론문화재단 이사장, 이청수 관정이종환교육재단 사무총장, 남승자 전 방송위 심의위원장, 김세현현대일보 사장, 김건이 대한언론인회 상임이사, 김상식 부산일보사 서울지사장, 제재형 대한언론인회 회장, 정구종 동아닷컴 사장,나카지마 테쯔오 마이니치신문 서울지국장, 김상철 미래한국신문 발행인, 신동철 교수신문 운영위원장, 조용승 한국논단 편집위원,오광성 씨앤앰 부회장, 정용석 FM분당 대표, 여영무 뉴스앤피플 대표, 박수만 한국신문협회 사무총장, 성대석 한국언론인협회회장, 신동식 한국여성언론인연합 공동대표, 김찬 디지틀조선일보 사장, 이창의 조선일보생활미디어 사장


◇체육계


이연택 대한체육회 명예회장, 우기정 한국골프장경영협회 회장, 여무남 대한역도연맹 회장, 김효석 수원컨트리클럽 회장, 김진홍한국골프장사업협회 명예회장, 이건 이스트밸리컨트리클럽 고문, 김동욱 대한골프협회 전무이사, 최영정 골프칼럼니스트


◇의료계 


백낙환 인제대학교백병원 이사장, 성상철 서울대학교병원장, 김병수 포천중문의대 총장, 이성락 가천의대 총장, 박창일 세브란스병원장,김정용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 김성권 서울대 신장내과 교수, 김광현 서울대 이비인후과 교수, 김성규 연세대 건강센터 소장,노재규 서울대 신경과학교실 교수, 박영배 서울대병원 내과 과장, 박윤기 연세대 피부과 교수, 송인성 대통령 주치의, 유형식세브란스 병원 제1진료부원장, 이철 연세의료원 기획실장, 장준 세브란스병원 기획관리실장, 이현숙 대한적십자사 부총재, 김영철대한적십자사 사무총장


◇외교사절


시게이에 도시노리 주한 일본대사, 닝푸쿠이 주한 중국대사, 알렉산더 티모닌 주한러시아 부대사, 하즈라트 와흐레즈 주한 아프가니스탄 대사대리, 곽명수 주한미국 대사관 대변인, 최성완 주한미국 대사관 공보과


◇조선일보 전직

사우윤주영 전 문공부 장관, 양호민 전 논설위원, 신동호 전 스포츠조선 사장, 김용원 도서출판 삶과꿈 대표, 안병훈 기파랑 대표,주돈식 전 체육문화부장관, 정광헌 평양고보동문회 대동강 편집인, 안종익 전 조선일보 상무, 이도형 한국논단 발행인, 인보길 전디지틀조선일보 사장, 최준명 전 한국경제신문사장, 마실언 스타피언 회장, 강인원 전 소청심사위원, 이남규 전 디지틀조선일보편집위원, 이현구 전 국회도서관장, 조연흥 방일영문화재단 이사장, 신용석 아시아올림픽평의회 부회장, 공종원 전 불교언론인회회장, 고학용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고문, 유정현 전 대전시티즌 축구단 사장, 박갑철 전 조선일보 사업국장, 윤호미호미초이스닷컴 대표, 임백 보광 대표이사, 이영덕 전 KBS 이사, 도준호 명지대 초빙교수, 정규만 쿠지인터내셔널 회장, 최문기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사무총장, 박세훈 삼성카드 상무, 조용택 전 조선일보 국장대우, 방준식 스포츠조선 편집국장, 함영준 국민대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나종호 프라임그룹 상무, 박성희 이화여대 교수, 최성환 대한생명경제연구원 상무


출처 : 2008년 7월 4일 조선일보

Posted by dalgonaa

8시가 조금 넘어 파쳐빌의 볼링장에 도착하니 타군(君)과 루드빅이 포켓볼을 치고 있다. 학원에서 '타이거'라는 닉네임을 쓰는 그를 우리는 줄여서 '타군'이라고 부른다. 서울의 한 유명 광고회사을 그만두고 온 그는 몰타를 거쳐 런던에서 좀 더 공부한 뒤 유럽을 돌아다니다가 한국으로 되돌아갈 예정이다. 체코에서 온 루드빅은 두 명의 자녀를 둔 가장으로 스테인레스 스틸을 만드는 스페인계 회사의 중역이다. 이 두 사람 모두 김군의 교실친구들이다.

루드빅은 총 4주간의 영어공부를 마치고 내일 일요일, 체코의 집으로 돌아간다. 그를 좀 더 특별하게 환송해주는 작은 자리를 만들 겸, 주말이면 떠오르는 술의 상념을 지울 겸, 그리고 거의 모든 주말을 집에서 칩거해왔던 생활에 변화를 줘 볼 겸 해서 김군과 강양은 집을 나섰다.

사실 오늘 외출은 9시 이후부터 1인당 10유로(16,000원)만 내면 맥주 한 병과 더불어 밤새도록 볼링을 칠 수 있다는 볼링장의 이벤트 전단지를 접함으로써 가능했다.

9시, 두 개의 레인을 잡고 나니 어느새 '선수'들이 9명으로 늘었다. 주로 가깝게 보는 한국인들이 대다수인 가운데 체코의 루드빅과 스위스의 마르코, 그리고 손이 자신이 밥줄이기 때문에 손에 무리가 가는 운동은 가급적 피한다는 슬로바키아의 치과의사 '블라도'가 유일한 관중으로 참석해 총 3시간의 볼링을 즐겼다. 김군은 급기야 엄지손가락의 손톱에서 살짝 피가나는 부상을 당했는데 굳이 김군만이 아니더라도 그야말로 뽕을 뽑고 가겠다는 한국인 특유의 '본전의식'이 유감없이 발휘된 3시간의 '혈전'이었다.

옆에 라인에서 볼링을 즐기는 다른 외국인(사실은 우리가 외국인이지만..)들을 얼핏얼핏 살피다 문득 든 생각은, 그네들은 거의 장난 수준으로, 또는 나름 진지함으로 게임을 즐기다 돌아간다면, 한국인들은 여기에 더해 일종의 '학습', 또는 '기술연마'의 기회로까지 확대, 발전시켜 어떤 결실을 거두겠다는 습성이 있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것. 특히 그것이 공짜라면 더더욱.

접힌 판에서 다시 화투를 꺼집어 내 혼자 복기를 한다거나 게임 마치고 남들 손 씻을 때 새로운 각오로 큐대를 잡고 집에 가자는 재촉 전까지 열심히 공을 친다거나 어제처럼 어느새 다 가고 우리들의 레인에만 불이 켜진 가운데 오로지 새로운 기술의 구사와 기술연마에 매진하는 모습이라든가.. 한국인들은 대개 학습능력이 뛰어나다고 일부에서 이야기하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도 얼추 그렇다고 판단해 왔는데 어쩌면 바로 어제 같은 풍경이 작은 답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 같은 행동양식의 근본은 '본전의식'? 



>> 이 사람이 루드빅이다. 오른쪽은 리타의 Bar에서 마신 몰타의 정통맥주 시스크. 500cc 잔을 이곳에선 '파인트'라고 부른다. 가격은 3유로(4,800원)로 정통 Bar에서 마시는 건 역시 비싸다.

자정을 막 넘어섰을 때 볼링장을 빠져나왔다. 장시간 운동을 즐겼으니 이제 목을 축일 차례. 파쳐빌은 작은 동네지만 어떻게 보면 굉장히 큰 나이트클럽이기도 하다. 모든 클럽의 입장은 공짜이며 지나다가 잠시 들어가 신나게 춤을 추다 나가도 문제가 없다. 그저 자신이 마실 병술이나 잔술 값을 지불하면 그만. 몇 걸음 옮기자 어느새 인파속에 뭍혀졌고 클럽들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한 비트의 저음이 몸을 들썩들썩 뜨게 했다.

가끔 정복차림의 경찰이 짝을 이뤄 순찰도는 모습이 눈에 띄는 가운데 인사불성으로 바닥에 누운 남성, 그 옆에 뿌려진 토사물(밥알이나 김치, 콩나물 따위는 안보이더라는..), 붙어서 떨어질 줄을 모르는 각양각색의 남녀들, 술에 마비된 젊은 애들이 당장이라도 테이블을 천정에 못박아 매달 것 같은 기세로 우당탕 거리는 한 켠에서 중년의 남녀가 이들에 아랑곳 않고 열심히 자신들의 대화에 열중하는 모습 등, 어느 장단에 휩쓸려야 할 지 '얌전한' 스포츠를 방금 마치고 나온 우리는 마치 물 위의 기름 몇 방울 처럼 저 틈에 도저히 섞일 수 없을 것 같다.

서둘러 그 혼돈을 피해 조용한 술집을 찾아 나선 이들은 우리 두 사람을 포함해, 타군, 농협을 그만두고 온 윤, 오늘이 결혼 1주년이라는 한국인 새내기 부부, 그리고 루드빅, 총 7명.

오래지 않은 물색끝에 학원 옆에 나름 조용한 Bar를 하나 찾아내 들어갔다. 27년 전 딸을 낳은 뒤 곧바로 영국에서 몰타로 건너온 '리타'는 마침 바로 그해에 이 술 집을 열었다. 가끔 'Bull shit !'과 'Fuck'을 내뱉는 그녀는 커피잔을 들고 스스럼 없이 다가와 우리와 어울렸다.

허스키한 목소리가 인상적인 리타는 마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이기도 한데 그녀는 우리와 대화 도중 바에서 술을 따르는 첼시 팬인 남편을 향해 이런저런 농으로 약을 올리거나 결코 분쟁으로 이어지지 않은 '싸움'을 즐겼다. 이는 적어도 김군과 강양에게는 색다른 여유로 느껴지면서 인상에 깊게 남았다. 우리 모두는 그녀 덕분에 좀 더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앞으로 이 Bar를 자주 찾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이 술집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소개하는 기회가 있을테다.

떠나는 루드빅에게 이것저것을 물었고 이 가운데 우리에게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온 이야기는 와인. 체코의 서쪽지역은 와인재배로 비교적 유명하다고 하고 가끔씩 시간이 나면 가족들과 함께 친구의 농장을 찾아 포도를 따며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자동차로 따졌을 때 그 품질은 어느 정도 수준이냐 라고 묻자 '롤스로이스는 못되겠지만 메르세데스 수준은 된다'고 한다. 사뭇 그 맛이 궁금해지는데 체코를 방문할 기회가 생기면 루드빅은 언제든 자신에게 연락하라고 한다. 자기 집이 무척 크다는 말과 함께.



>> 파쳐빌 중심부로 들어서는 입구. 각종 클럽이 다닥다닥 붙어 길게 이어지는 저 좁은 골목길은 그야말로 오픈된 나이트클럽이다. 주말 밤의 열기는 거의 아침까지 이어진다.

술집을 나오니 어느새 3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언제 다시 볼 지 모를 루드빅과 작별의 포옹을 나눴다. 그를 떠나 보낸 뒤 우리들의 발길은 각자의 집이 아닌 새내기 부부의 집으로 향해가고 있었다. 그 발길에 주문을 건 것은 '저희 집에 와인 한 병 있어요' 라는 한 마디.

마침 집도 가까우니 부담이 없다. 도중에 수퍼가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어 타군과 윤이 와인을 한 병 더 사려고 들어갔다. 그러나 이들이 주인으로부터 들은 얘기는 "이곳에서 자정 이후에 술과 담배를 판매하는 것은 불법이니 팔 수 없다" 라는 것. 이건 또 처음 듣는 얘기다.

짐작컨데 출입이 자유로운 파쳐빌의 클럽에 인근 수퍼에서 사온 저렴한 맥주를 사갖고 들어가는 것은 방지하기 위한 클럽과 수퍼간의 공생약정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즉, 파쳐빌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라는 것. 왜냐면 우리는 파쳐빌이 아닌 가게에서 냉장고의 캔을 꺼내 사마시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새내기 부부가 제공하는 한 병의 와인에 라면을 잘게 부숴 끓이고 그들이 서울서부터 지고온 쥐포를 구워 먹고 마시며 못다 나눈 이야기를 떠드는 것으로 주말 밤의 바쁜 일정이 마무리됐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강양 반의 선생인 조세핀은 아침마다 지중해 동쪽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지켜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는데 30분만 기다린다면 우리는 그것을 보며 하루를 마감할 상황이 됐다.

하지만 그러기엔 남은 기력도 없고 눈꺼풀도 무겁다. 심호흡을 들이키자 저 옛날, 비슷한 피로감에 종종 종로에서 새벽을 맞았던 차고 축축한 새벽의 공기맛이 이곳에서도 느껴졌다. 집에 도착해 끈끈해진 몸을 씻어내자 잠시 정신이 맑아진다. 거실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니 수평선 주변이 온통 붉다. 하지만 해가 솟구치는데는 좀 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드라마틱한 색조의 향연을 잠시 감상한 뒤 침대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쟁쟁한 밝기로 밤새 위세를 떨치던 둥근 달도 서서히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