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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6.17 상수동은 공사중,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한국 Korea 160409~2014. 6. 17. 18:14


일요일과 월요일에만 주방에 출근하는 마리아는 

우리 주방에서 일하기 전까지 이태원의 'B1'이라는 클럽에서 일했었다. 

나는 마리아를 통해 이태원, 특히 B1에 대해 들을 수 있었는데 한 마디로 입이 딱 벌어지는

이야기를 들으며 아주 잠깐 우울감에 빠지기도 했다. 

열정, 혹은 욕정으로 뒤섞인 야밤의 환락과 그것을 누릴 자격을 이제는 곁눈질로

훔쳐봐야하는 처지가 됐다는 점이 우울했던걸까? (내 나이 중년.. 흑)

아니면 하루 1억을 찍는다는 매출의 규모를 접하며

불앞에서 팬질로 땀범벅이 되는 내 처지가 초라해서였을까?


암튼 욕망으로 뒤섞인 그곳에 현기증을 느낀, 

하지만 본인 입으로는 뒤바뀐 밤낮생활의 정상화를 찾아

마리아는 높은 수입을 물리치고 기꺼이 우리 주방을 찾아왔다. 

그런 그녀에게 우리는 따뜻한 위로의 손길.. 이 아닌 기름절은 팬을 집어 던지며 말했다.


'깨끗이 닦아'


그럼에도 마리아는 오전 11시부터 밤 10시까지 이어지는 주방의 고된 노동을 통해 

'숙면'이라는 소중한 선물을 얻었다며 기뻐했다. 

어제 마리아가 한가한 틈을 타 쏨땀을 만들었다. 

동남아가 물씬 전해지는 요리 쏨땀. 





한 젓가락 딱 집어서 먹으니 '여름 음식이로쎄'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온다. 

레몬과 고추, 고수와 액젖이 만들어내는 맛의 하모니는

새콤달콤콤콤. 


특히 고수는 이 모든 맛의 조화를 정상으로 이끄는 대장이라 할 수 있는데

혹자는 고수 특유의 '걸레냄새'가 싫다며 멀리하기도 하지만

이날 우리 모두는 그 '걸레 대장님'에 열광하는 시간이었다.  





'걸레'와 함께 한 토마토 파스타, 바질페스토 파스타. 

역시 파스타는 접시 넘치게 한 가득 담아 여러사람이 함께 나눠먹어야 맛있다. 

그런 컨셉의 식당을 여는 것이 언젠가의 계획 중 하나. 



 



뒷마당에는 줏어온 물건들이 가득하다. 

줏어온 테이블, 줏어온 의자들, 줏어온 고무화분..







어둑해져가는 어느 저녁. 

'밥먹어라~!' 목놓아 외치는 엄마들의 애찾는 소리는 없고

대신 그 소리를 들으며 자란 어른들이 담배와 술잔을 손에 들고 낄낄대고 있다. 

달고나의 저녁 멤버들. 

잠깐 한가해진 틈을 타 모처럼의 여유를 즐기고 있다. 

원주민 비율이 높은 상수동의 연령대도 이제 조금씩 젊어지고 있지만, 

돈이 이마저도 모두 밀어낼 날이 멀지 않은 듯..







식사당번이 정확히 정해져있지는 않는데 조만간 역할을 나눠야겠다. 

작은 가게였을땐(지금도 작지만) 나 혼자 하는 것이 일도 아니었고

그땐 10kg 쌀을 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허나 지금은 무조건 20kg 쌀을 구입하는 것은 물론

그마저도 한 달이 채 가지를 못한다. 


얼마전 치러진 '언니오빠 운동회'에 참여하지 못한 것을 두고

멤버들의 아쉬운 목소리가 많았는데 내년에는 저 식욕의 기세로 꼭 참석하자고 모두모두 다짐. 

멤버들의 모습이 나온김에 덧붙이자면 

달고나에서 요리를 전공으로 해온 사람은 딱 2명이고(우리는 이들을 '진골'이라 부른다)

나머지는 미술, 음악, 영화, 그래피티, 사진의 영역에서 이래저래 뒹구는 이들로 구성돼 있다. 

뭐 레시피가 좋으니 누가 온들.. 

낄낄..







저건 뭐냐고 궁금해하는 손님들이 종종 있다. 

다름아닌 벽걸이형 드럼세탁기.

원래 주방에 있었으나 식기세척기가 새로 들어오면서

그 자리를 양보하고 손님들의 공간으로 밀려나왔다. 

튼튼한 콘크리트벽에 고정을 해야 문제가 안생기기 때문에 그 자리가 오직 저 자리밖에는 없어

과감하게 설치. 달고나 인테리어 컨셉은 '생활밀착'이라는 점에서 문제될게 없다. 

다만 빨래를 돌릴 때 배수구가 따로 없어 저렇게 물받는 통을 받쳐놔야 하는 점이 좀 불편하다. 

예전에 행주를 손빨래 할 때는 힘도 들거니와 그 힘이

행주에 전달돼 행주가 금새 해지곤 했는데 요즘은 그런 점이 사라졌다. 







오늘 낮, 우리 뒷마당 골목의 모습. 

바로 옆집이 한창 공사중인데

그 너머에 또 다른 기와집이 헐렸다. 

조용한 원룸족들의 서식처였던 이곳이 이제 상가들의 전쟁터로 변모해가기 시작했다. 

그 복잡하고 배타적인 이익의 셈법에 과연 달고나는 어떻게 휘말려 들어갈지.. 

우리와 같은 시기에 오픈한 이리까페는 임대차보호법에서 정한 5년 기간의 만료를 앞두고

건물주로부터 높은 임대료 인상을 통보받고는 밀당에 들어갔다는데

들리는 말로는 이미 석관동의 한예종 앞에 주택 하나를 구입해 놓아 

수 틀어지면 아예 홍대를 뜬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는 소문이다. 

허허..

 



* 월드컵이 시작됐다며 매체들은 흥분하고 있지만

새벽에 치러지는 경기 때문인지 사람들의 관심은 그닥 높아보이지 않는다.

아직 우리나라의 경기가 시작되지 않는 탓도 있겠지만 

세월호 참사의 영향도 있어 보인다. 

모든 국제경기가 갖는 스포츠 이데올로기의 문제점이 지금의 정권과 

사회분위기에선 더 위험하게 생각돼 경기를 경기 자체로 바라보기엔 맘 한 구석이 편치않다. 

무엇보다 세월호 희생자가 아직도 12명이 바다밑에 가라앉아있다는 점과 남겨진 가족들의 심연같은 고통은 

조금은 무뎌졌으나 여전히 내 일상을 순간 멈추게 할 만큼 무겁게 다가온다. 

세월호 트라우마는 오래 갈 것이고 그런만큼 변화도 길게 이어질 터.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