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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21 너희 둘의 어깨가 무겁다. 9
한국 Korea 160409~2009. 9. 21. 00:37
식당에는 많으면 15석, 적으면 13석의 좌석이 나온다.
좁은 공간을 물리적으로 넓힐 방법은 없지만 테이블과 좌석을 요리조리 배치해
최대한 좁지 않게 느끼도록 하려는데 실제 어떨런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나무와 탄을 때는 난로를 꼭 놓고 싶은데 요놈 자리를 확보하기가 만만치 않고
신종플루를 대비해 간이 세면대도 갖추라는 주변의 조언에 고개를 크게 끄덕이지만 역시 쉽지 않다.

그나마 13석 확보가 가능했던 것은 순전히 다찌(요리사와 마주하는 일직선 테이블..)때문.
일전에 일본 요리드라마 '밤비노'에 등장하는 시골 파스타집의 다찌를
꽤 눈여겨 봐뒀고 마침 얼마전 가본 홍대 일본식 덮밥집 <돈부리>에서도
바로 다찌에 앉아 식사를 했었는데 식사를 즐기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어 큰 자신감을 얻었다.
다만 어수선한 주변에 좀 더 노출된다는 약점이 있지만 그런 불편은
결국 맛과 서비스로 보상하는 수 밖에는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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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서의 경험을 떠올리고 외서들을 뒤적이고 인터넷을 들락거리며
맛의 불모지 상수에까지 홍대 순례객들의 발길을 끌어들일 
12월 연말 메뉴(혹은 오픈메뉴)를 구상중인데 이게 제법 재미도 있고 긴장도 된다. 
(걱정이 없지 않지만 그럼에도 직장생활보다는 재미와 묘미에서 차원이 다르다)
 

주변 사람들에겐 기회 될때마다 밝혀온거지만
수산물을 중심으로 한 요리가 주를 이룰 것이고
특히 오픈시점은 곧 겨울의 문턱인 만큼
질좋고 값싸게 쏟아져 나올 해산물에 거는 기대가 크다.
주연으로 선보일 해산물 식재료의 가짓수만도 정리해보니 40개 내외.
이탈리아에선 고급식당이 아니면 접하기 힘든 재료들,
이를테면 조개나 게 따위는 우리가 훨씬 풍성하니 이놈들의 활약이 클 것. 

메뉴는 한 달, 늦어도 계절별로 대폭 바꿔가며 내놓을 계획인데
제철에 나는 재료는 먹는 이에게도 좋고 장사하는 이에게도 좋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요리에 관한한 보다 많은 실험들을 시도하고 싶기 때문이다.
메뉴는 10개 안팎으로 단촐한 대신 내용을 최대한 탄탄하게 갖출 계획이고
재고로 인한 손실을 줄여 가격의 거품도 적절히 걷어낼 방침이다.


근사한 식사에 술이 빠지면 당연히 곤란.
주인공은 물론 와인, 허나 레드와인의 비중이 높은 현실을 탈피해 
화이트와인을 전.폭.적.으로 밀고 나갈 방침이다. 
이탈리아에서 돌아다니는 동안 화이트와인의 숨은 힘을 깨달았기 때문인데
어쩐지 물렁해보이는 이 술이 가져다주는 청량감과 기분좋은 취기는 꼭 공유하고 싶다. 
더욱이 무겁지 않은 해산물 요리와의 만남이라면 화이트가
레드에 견줘 상대적으로 받는 천대와 오해도
적어도 이곳에서 만큼은 풀리지 않을까?

 
 다만 수입주류에 매겨지는 관세가 높은 까닭에
가격책정에 현실적인 어려움이 따를 것이 뻔한 상황. 
이를 극복할 방법은 무엇일지 조만간 관련업계 전문가를 만나 머리를 맞댈 계획이다.
로마의 한 숙소에서 만난 소믈리에와의 인연이 결국 이렇게 진화하는구나.
고급와인을 낼 생각은 없고 식사에 반주로 곁들이는 수준에서 저렴한 가격과
소박한 맛을 지닌 와인을 찾아내는 것이 우리의 목표.
(이탈리아 북부 베네토주의 두 세 가지 와인을 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할텐데..)


평일 낮장사를 할지에 대해선 좀 더 고민해봐야 겠지만
주말에는 상수동 주민들을 위한 브런치는 꼭 낼 생각이다.
과연 이게 얼마나 반응을 얻을지는 알 수 없지만 내심 기대하는 부분도 없지는 않다.
길 하나 건너면 식당 천지인 홍대지만 츄리닝에 쓰레빠끌고 나가기 뭣해
이곳 주민들(후배, 부동산, 건물주인, 철물점 주인.. 객관성이 좀 떨어지나?.. )
근처에 제대로 된 식당 하나 없다는 것에 너도나도 원성을 쏟아낸다.

브런치는 좀 더 자유롭게 구성할 생각이고 단지 계란물 적신 빵이 아니라
심지어 전날 과음으로 속이 바짝 마른 이들을 위한 국물메뉴도 진지하게 고려중이다.
맑은 수프가 될 수도 있고 탕에 가까운 브로도가 될 수도 있고.. 


아무튼 바다요리와 화이트와인이
홍대 변방인 상수에서 어떤 평가를 받을지,
 이 둘의 어깨가 무겁다.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