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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9.07 사라져가는 것들 1
한국 Korea 160409~2010. 9. 7. 01:56
쉬는 날,
인사동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친구 A의 스튜디오를 찾았다.
정확히는 친구의 형이 사진을 찍고 있고 
친구는 작년에 강남으로 '용감하게' 분사했고 그 빈자리에
또 다른 친구 B가 친구 형을 도와 일하고 있다.
아무튼 15년째 인사동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참 꿋꿋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렇게 남아 있으나 점차 없어져가고 있는 것이 있었으니,
필름이다.
디지털이 해일처럼 들이닥친 세상에서
떠내려가는 것은 LP판뿐만 아니라 필름도 포함됐단 말이지.
어디 그뿐이겠냐마는.

암튼 다소 충격적이다.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친구 형은 불안정한 필름공급에서 벗어나고자 언젠가
 후지코리아에 필름 1,000롤을 주문했더니 돌아온 답변은 이랬단다.

"주문대금의 60%를 현찰로 선불하셔야 하고 수령까진 4개월 가량이 걸릴 예정입니다"

필름생산을 중단한 후지는 수요가 작살난 상황에서 확실한 판매물량이 확보되고
그 마저도 생산의 한 싸이클이 될 만큼의 물량이어야 공장을 돌릴 수 있기 때문이란다.

종로에 그 즐비하던 필름가게는 대부분 사라졌고
그나마 하나 남은 가게의 사장님은 생존을 찾아 최근 인근에 작은 쌀국수집 하나를 인수했단다.
마침 지나다 보니 손님들에게 국수그릇을 나르는 모습이 창 너머로 보인다.
그 앞을 지나며 친구 B는 필름, 그리고 자신같은 사진쟁이의 쇠락에 대해 이렇게 전했다.

"아까 스튜디오 있으면서 봤지? 오는 사람들 대부분이 디지털, 인터넷, 파일 따위를 모르는
중년 이상의 사람들이야. 젊은 사람들은 갈수록 줄고 있어. 이 일도 오래가지 못할꺼란 얘기지"


 생멸(生滅)이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전혀 의식하지도 못하는 사이 사라져버리는 것을 마주할 때,
쓸쓸함을 넘어 황망하다.
투석으로 하루하루 가느다란 생을 이어가고 있는
큰 삼촌을 뵙고 온 오늘,
그도 필름을 닮아 있었다.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