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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2.23 라바트리체 Lavatrice 4
  2. 2008.05.03 이곳은 낙원일까? 10
 우리가 집을 계약하면서 주인에게 요구한 조건은 텔레비전과 세탁기를 놔달라는 것이었다. 금요일 입주할 때 텔레비전은 이미 설치가 돼 있었고 세탁기는 며칠 안으로 놔주겠다고 약속했다. 14인치 텔레비전이지만 집이 작으니 화면이 작게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신호가 않좋아 화면이 엄청 자글거리는데 특히 요리프로그램 볼 때 마다 병이 날 지경이다. 무슨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안테나에 철사를 묶어서 발코니의 난간 앵글에 접지시켜볼까?..

그리고 지난 토요일 저녁, 한창 밥을 짓고 있는데 벨이 울려 깜짝놀랐다. 일산에 살 때도 난데없이 초인종이 울리면 깜짝 놀라곤 했는데 낯선 타국에 와선 그 증상이 더 심해졌다. 여튼 화장실 창문을 열고 내다보니 집주인이다. 집에 올라와서 뭐라고 얘기하는데 '라바트리체'라는 말만 알아듣겠다. 바로 세탁기다. 무겁게 드는 시늉을 하는걸 보니 이 시간에 가지고 온 모양이다. 따라 내려갔고 차에 실려 있는 세탁기를 내렸다.
"어라? 쌔거네?"

포장도 안뜯은 드럼 세탁기다. 감탄이 밀려온다. 오호.. 근데 집주인 참 엉뚱하다. 계약에 앞서 별것도 아닌 침대 시트와 담요 좀 놔달라고 했더니 그건 끝까지 못(사)준다고 버티더니만 세탁기는 중고품도 많을 텐데 완전 새제품을 사주다니.. 아무튼 베로나에 머물 때 동전세탁기를 이용하는 비용이 만만찮았는데 딴딴한 저 모습을 보니 든든하다. 그리고 오늘 월요일, 아침 일찍 집앞 가게에서 세제를 사다가 밀린 빨래를 돌렸다. 빨래만 세탁되는게 아니라 밀린 빨래로 답답했던 마음까지 깨끗하게 씻겨나가는 기분에 콧노래가 절로..


빨래하는 것 까진 좋았는데 한 가지 낭패가 있다. 발코니의 빨래줄에 빨래를 널었더니 아랫쪽 집의 벽난로 굴뚝에서 장작 타는 연기가 퍼져 냄새가 베어버리는 것이다. 이럴수가..

Posted by dalgonaa

며칠 여행하는 사람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몰타는 맑은 햇살과 푸른 지중해 만으로도 지구상의 낙원 가운데 하나로 손꼽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몇 개월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몰타는 과연 낙원일까? 몰타 생활도 이제 한 달을 넘어섰다.  

 

길을 걸을 때 마다 바닥을 살피지 않으면 개똥을 밟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대개 유럽인들이 그렇듯 이곳 사람들도 집에서 키우는 개들을 이끌고 산책에 나선다. 그러나 이들이 개를 이끌고 산책에 나서는 이유는 잘 알려져 있듯 변을 밖에서 보게 하기 위해서다.

 

유럽의 여러 나라에선 그 규제가 강력해진 탓에 비닐봉지에 개똥을 주워담는 (칠칠 맞은) 인간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으나 몰타는 아직 그 같은 규제나 문화가 뿌리내리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이들은 태연히 산책을 즐기고 개들도 태연히 똥을 눈다. 몇 주가 지나도록 치워지지 않는 곳곳의 개똥은 바삭바삭하게 말라 바람이 불 때 마다 조금씩 날리면서 공기 중에 부유한다.

 

새삼 애완견에 깃든 인간의 탐욕스런 이기주의를 이 자리에서 논할 생각은 없으나 궁극적으로 모든 동물은 인간의 손에서 벗어나 살아야 한다는 것이 김군의 생각이다.

 

좁은 도로의 차량들은 자신이 마치 모나코 F-1 그랑프리의 선수나 되는 양 난폭하게 차를 몬다. 줄만 그어진 횡단보도라도 건너는 사람이 있으면 순한 양처럼 다소곳이 차를 세우지만 신호등이나 횡단보도가 없는 구간에선, 심지어 인도의 폭이 사람 하나 겨우 지나는 좁은 경우에도 속도를 늦추는 법이 별로 없다. 몰타에서 생활을 하다 돌아간 한국인들에게 물어보면 알겠지만 타이어 갈리는 급정거의 다급한 음은 이곳을 특징짓는 소음이다.

 

강우량이 많지 않은 탓에 발생하는 탁한 공기도 여간 불쾌한 게 아니다. 이곳 저곳 난립한 공사 현장에서 발생하는 먼지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집안 바닥의 먼지를 빗자루로 쓸어 담는데 간혹 서부영화를 보면 결투를 앞둔 길 위로 바람에 뒹구는 건초더미처럼 이곳 거실과 방에서도 작은 공기 흐름에 뒹구는 먼지더미를 쉽게 볼 수 있다. 

 

유럽의 많은 나라들도 그렇듯 이곳 역시 휘발유 차량 보다는 경유 차량이 많다. 소형 차량이 내는 소리는 트럭에 견줄 만 하다. 물론 낡은 차이니 그렇겠지만 그래서 더욱 매연이 심하다. EU 가입 전에는 주로 낡은 중고차를 수입해 왔었고 반짝거리는 새 차가 거리를 질주하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 전이 아니란다.

 

참고로 이곳의 차량 가격은 세금이 50%라고 한다. 살인적인 가격 탓에 차를 구입하는 것은 결코 손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탓에 극심한 매연을 뿜는 낡은 차량의 감소는 더디기만 하다.

 

전기 세가 비싼 것도 이곳 생활을 불편하게 하는 요소다. 이곳 전기 역시 결국 수입이니까 언뜻 비싼 듯 생각이 들지만 진실은 낡을 대로 낡은 배전시설 탓에 50%를 겨우 넘어서는 전력공급효율이 비싼 전기세를 야기시키는 주범이란다.

 

그런 탓에 이 넓은 집안에 많은 조명이 있음에도 우리가 사용하는 조명은 고작 2개다. 천정의 백열등 하나와 한국으로 돌아간 두호군이 선물로 남겨준 책상용 스탠드 하나, 이것이 이 집안에서 사용하는 조명의 전부다.

 

전기를 가장 많이 잡아먹는 가전제품은 단연 주방의 Cooker. 전기는 열 에너지로 바뀌는 과정에서 소모가 가장 많으므로 매일 같이 밥물을 끓이고 스파게티를 삶고 하니 그 전력소비가 만만찮을 듯싶다. 곧 알게 되겠지만 아무튼 얼마가 나올지 무척 궁금하다.

 

투정만 부리면 재미 없으니 생활상의 몇 가지 좋은 점에 대해 짧게 애기해볼까?

 

빨래 말리기, 이건 그야말로 자연이 내린 최고의 혜택 가운데 하나다. 물 잔뜩 머금은 두꺼운 솜이불이라도 이른 아침부터 작렬하는 햇살 아래 딱 하루만 널어 놓으면 뽀송뽀송하게 마를 테다. 청바지는 빨래 줄에 3시간만 널어 놓으면 바짝 마른다. 여름용 면 티는 1시간이면 게임 끝이다. 일산의 오피스텔에서 생활할 때 햇살에 빨래를 말리고 싶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던 바, 그야말로 물 만났다.

 

서울은 이른 봄임에도 벌써부터 덥다는데 여기도 낮에는 물론 태양 빛이 뜨겁지만 공기가 건조해 그늘 아래선 시원하고 아침 저녁으론 선선해 지금까진 생활에 큰 불편이 없다.

 

너무너무 맛있고 저렴한 가격의 와인과 맥주. 이곳 생활의 불편함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생활의 밀접한 동반자들이다. 한국 맥주보다 2배 맛있는 맥주가 가격은 그에 절반이다. 500cc 캔 하나가 850. 와인과 맥주에 대해선 조만간 별도의 포스트로 좀 더 자세히 쓰도록 하겠다.

 

마지막으로 몰타가 좋은 점은? 이곳이 한국이 아니라는 점.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지금의 한국에 있는 사람들이 이곳의 더러운 공기마저 동경하는 이유가 되지 않을까?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