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네또네'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3.18 이제 한 달. 2
  2. 2008.12.20 Via Imbriani 29, Perugia. 13
어제 수퍼에 가보니 요란한 선물바구니들이 가득가득 쌓여있다. 마치 크리스마스 대목처럼. 무슨 영문일까 싶어 생각해보니 부활절 때문이더라는. 우리가 딱 1년 전, 몰타로 들어가기 전 로마에 잠시 머물 때 한인민박을 찾은 가족단위 여행객들이 많이 만났는데 대부분 유럽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들로 부활절 연휴를 맞아 로마여행을 나선 것이라고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부활절 대목을 노리고 쌓여있는 상품 가운데 지난 크리스마스때 김군을 사로잡은 BAULI사의 빠네또네(모양은 좀 달라졌지만)가 또 다시 눈에 띄어 여간 반가운게 아니다. 부풀어 오른 빵 위에 아몬드가 통으로 박혀있고 흰 설탕가루를 솔솔 뿌려낸 빵. 뜯으면 닭고기 살 처럼 뜯어지면서 속에 심심찮게 박힌 건포도가 맛을 두 배로 뻥튀겨주는 바로 그 빵. 과연 지난 번 맛본 빵과 똑같은 맛일지는 사서 먹어보기 전까진 모르는거지만 기대는 크다. 다만 지금은 가격이 조금 비싸니(6~8유로) 지난 크리스마스 직전과 직후에 가격이 대폭 떨어졌던 것 처럼 이번에도 그러길 기다리고 있다.
 
그렇다. 이제 정확히 1년이 됐네. 1년 전의 로마는 엊그제처럼 기억이 생생한데 이후였던 몰타는 어째 로마보다 훨씬 전의 일처럼 느껴지는게 좀 신기하다. 몰타의 태양은 영원히 잊지 못할 듯. 등짝을 홀라당 태워 며칠을 고통에 신음케 했던 태양이니 더더욱 그렇다.  아무튼 오늘로부터 대략 한 달 사이로 이곳 일정을 정리하고 다음달 중순 경이면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지 싶다. 오늘 부동산 프란체스코가 새로운 손님과 집을 보러 온다는데 지난 번 중국 학생들은 이 집이 맘에 안들었던 모양이다. 이들은 맘에 들어하길. 그게 잘 풀리면 볼로냐나 베로나에서 남은 한달을 보낼 생각이고 그래서 지금 먼저 볼로냐를 중심으로 정신없이 집을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사실 지금 하고있는 영상작업이 이달 안으로 마무리된다면 떠나기 전 까지 그간 못가봤던 이탈리아 이곳저곳(뿔리아와 시칠리아!!)을 돌아다니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그 아쉬움은 4월 12일, 베로나에서 열리는 이탈리아 최대 와인축제, 비니 이탈리아(VINI ITALIA)로 대신할 계획. 입장만 하면 이탈리아 전역의 모든 와인을 공짜로 마실 수 있고 그 때문에 이탈리아 길가에서 결코 보기 힘든 '길바닥 피자'가 여기저기 널려 있다고.. 이탈리아에선, 적어도 볼로냐에선 길에서 누가 토하고 있으면 역시 누가 연락해 엠블란스로 싣고간다는데 한국과 참 다르다 싶다. 

아무튼 인터넷에 나와있는 단기 월세집 정보는 물론 볼로냐 대학가에 덕지덕지 나붙어 있는 개성만발의 룸메이트 구함 전단지도 유심히 살펴보고 있는중이다. 허나 십수군데와 전화통화를 했지만 아직 이렇다 할 물건은 나타나지 않은 상황. 조금씩 초조해지고 있다. 추위로 고생했던 뻬루자에도 봄은 오고 있어 지낼만은 해지고 있지만 그래도 볼로냐의 따뜻함과 북적임, 큰 도시가 갖는 어떤 흡입력에는 역시 비교가 되질 않는다. '인간적'인 냄새가 아닌 '인간들'의 냄새가 지금은 좀 더 끌리는 상황. 특히 이번 취재로 몇몇 볼로냐 사람들과 친숙해졌으니 이들과 가끔 밥이나 술을 마시는 것도 재밌을 터.

볼로냐 두오모 옆으로 좁은 골목을 헤집고 조금만 들어가면 찾을 수 있는 뜨라또리아 BATTIBECCO의 에리카도 그 중 한 사람. 사실 그녀뿐 아니라 그녀의 아버지와도 친숙할 수 있는데 아버지는 영어를 못하셔서(또는 우리가 이탈리아 말을 못해서..). 에리카는 바띠베꼬의 소믈리에 겸 웨이터고 아버지는 은퇴한 요리사다. 바띠베꼬는 볼로냐에서 32년째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름 유서깊은 식당으로 얼마전 까지 미쉘린으로부터 별 하나를 받았었다. 프랑스와 퓨전풍을 최대한 높인 마르코의 식당과는 달리 볼로냐의 정체성을 헤치지 않는 가운데 전통과 현대를 조화시킨 요리를 내고 있고 그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식당. 식사를 하다가 에리카가 올해 6월에 일본을 여행할 계획이라는걸 알고 일본의 게이코(몰타에서 만났던)를 그녀에게 소개해주기로 했다. 게이코도 언젠가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한 농가에서 요리를 잠깐 배운적이 있고 둘 다 영어를 할 줄 아니 동경에서 만나면 재밌게 수다를 떨 수 있을 듯. 

추가촬영을 마치고 어제 뻬루자로 돌아왔다. 수퍼에 들러 쌀과 채소를 샀고 집에 오자마자 곧 밥을 지어 채소 쏟아붇고 고추장 벅벅 비벼 비빔밥을 해먹었다. 마치 복수극을 펼치는 심정으로. 볼로냐에서 식사비로 지출된 금액이 적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식탁은 채소가뭄이 심각했다. 물론 시장에는 저렴한 채소가 넘쳐나지만 적어도 식당 요리에는 많이 쓰지 않는다. 이는 비단 볼로냐만의 문제가 아니라 베로나를 비롯한 북부 대개의 도시가 그런 듯 싶다. 이들은 채소를 날 것으로 먹기 보다는 푹 익혀서 먹기를 좋아하는데 예를 들어 시금치, 또는 그와 비슷하게 생긴 녹색 채소는 완전히 푹 익혀서 거의 곤죽형태로 즐기기를 좋아한다. 그렇다고 그걸 많이 먹는 것도 결코 아니다. 섬유질 섭취가 부족하니 나오는건 똥배.

마르코 식당의 수쉐프인 엔리코는 몸무가게 거의 110kg에 육박하는 거구인데 마르코로부터 툭하면 핀잔을 듣는다. 채소 좀 먹으라고. 그런 마르코도 우리가 볼 때 채소를 많이 먹는건 아니어서 파스타 먹을 때 샐러드를 조금 곁들이는 정도가 전부다. 미국인들의 주체할 수 없는 고칼로리 섭취와 이탈리아의 지중해식 건강 섭취가 종종 비교되곤 하는데 이탈리아 사람들이 미국인들처럼 '짐승'을 닥치는대로 먹어치우지는 않지만 전분덩어리인 파스타, 피자를 아주 적은 채소를 곁들여 먹는 탓에 이들도 비만문제를 남의 일로만 바라 볼 처지는 아니다. 허리살, 허벅지 살 심각한 사람들 제법 많다. 다만 이탈리아 사람들이 올리브유와 토마토, 하루 석잔 이상의 에스프레소. 그리고 전반적인 식사량이 적다는 것이 미국과는 다른 점이라면 다른 점일 듯. 이탈리아 사람들 마늘 많이 먹는다고 생각하는 한국인들 많은데 새빨간 거짓말이다. 얘네들 마늘 진짜 안먹는다. 파스타 볶기 전에 기름에 살짝 튀겨 향만 낼 뿐이고 그 다음엔 철저하게 꺼내 버린다. 남부는 먹을 때 골라낸다나..

아점을 준비해야겠다. 경준이 서울에서 보내온 총각김치를 끝내 우리 손에 들려보냈는데 오늘 점심은 된장국에 총각김치다. 한국음식의 우수성은 몸이 안다. 십중팔구 다음날 쾌변.
Posted by dalgonaa

뻬루자에 오기 전, 베로나의 숙소에 콕 박혀서 구글어스로 행선지를 물색할 때만 해도 뻬루자가 제법 높고 완만한 언덕에 형성된 도시라일꺼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아다시피 구글어스는 지표면의 2차원적인 모습만을 보여줄 뿐이기 때문이다. 마우스로 해발고도를 확인할 순 있지만 뻬루자를 내려다 보면서는 그저 평지에 있는 도시라고만 생각했다.

뻬루자 도착 첫 날은 비가 내렸다. 그 후로도 비는 계속 내렸다.

뻬루자에 지난 11일 목요일에 도착해서 기차역을 나와보니 고풍스런 흔적은 하나도 없고 제법 높은 건물과 깨끗한 아스팔트위로 자동차들이 줄지어 밀려가고 있는 모습에 살짝 실망했었다. "애게.. 이거야?.." 물론 버스를 타고 뻬루자 중심지에 도착해서야 "음.. 역시.." 하고 맘이 놓였지만..  문제는 이 도시가 꽤나 높은 동네라는 점이다. 중심가에서 대형 수퍼마켓까지만 놓고 보면 2킬로가 조금 안되는 거리지만 표고 200m의 차이는 결코 만만하게 볼 길이 아니다.

해서 이 도시는 묘안을 생각해 냈는데 '미니메뜨로' 라는 일종의 모노레일을 설치한 것이다. 정상에 있는 구도시(뻬루자 중심가)와 기차역이 있는 평지의 신도시 지역을 이 미니메뜨로가 이어주는데 마치 느린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멀리서 보면 네모난 장난감이 뽈뽈뽈 거리며 지나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고 여간 귀여운게 아니다. 구도시의 핀체또 역을 출발해 7개의 역을 거쳐 저 아래 마지막 역까지 내려가는데 불과 15분이 채 걸리지 않고 승차권이 1유로로 70분 동안 무한정 탑승할 수 있다. 10회 탑승권은 8.6유로에 구입할 수 있는데 오늘 드디어 10회 탑승권을 구입했다. 앞으로 이 미니메뜨로 탈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 오늘 마침내 뻬루자의 집에 입주한 것이다. 그것도 애초 입주하려했던 바로 그집! 뻬루자의 고풍스러움을 연출하고 있는 전체 풍경의 작은 일부분이 바로 이 집이기도 하니 당분간 수백년 고도를 내 동네 삼아 살아갈 수 있게 됐다. 몰타 떠난지 2개월 반 만에 드디어 집다운 집에 짐을 푼 셈이다.

이 집에 들어오기까지의 과정을 간략히 정리해보자. 이탈리아에서 자신의 명의로 직접 세를 얻으려면 다음 두 가지 중 하나라도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첫 째는 주한 이탈리아 대사관이 발부한 비자를 갖고 있는 것과 또 하나는 이탈리아에 입국해 이민국에 입국신고를 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탈리아의 비자를 받는 경우는 공부하러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사업이나 기타 목적은 매후 희박하다. 또한 여행을 위해 로마로 입국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입국심사는 요식적이거나 그마저도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즉 입국도장도 안찍어주고 그냥 통과시키기 일쑤란 얘기다. 여행자 입장에서 나쁠게 없다. 때론 이런 맹점을 활용해 장기체류를 기도하는 사람들도 많다.

우리는 당연히 여행자의 신분이고  이탈리아에서 합법적으로 머물 수 있는 기간은 불과 90일에 불과하다. 허나 우리의 여권상이나 이탈리아 당국에는 우리의 출입국 기록이 하나도 남아있질 않다. 해서 우리역시 이런 맹점을 활용해 90일 이상을 머물 계획이었는데 그게 그만 집 계약하는 순간 난관에 봉착하고 만 것이다. 왜냐면 이탈리아에선 국경을 넘나드는건 허술하겠지만 집을 계약할 경우엔 몰타와 달리 엄격한 신분확인 절차를 거치기 때문이다.

부동산을 따라 집을 알아보고 그 중 한 집에 보증금까지 걸고 곧 일주일 이내에 들어갈꺼라 기대했었다. 근데 며칠 후 부동산에서 급하게 찾으며 하는 말이 "비자는 어딨고 입국도장을 어딨냐?"는 거다. 설마설마 했지만 제발 피해가기를 원했던 일이 결국 터진거다.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가려 했으나 그건 부동산의 재량이 아니라 경찰까지 관여되는 일이고 이곳의 계약절차가 그렇기에 그것 없으면 집을 얻을 수 없다는게 부동산의 말이었다.  

뻬루자의 중심, Piazza Novembre.

방법이 뭐냐고 물으니 같이 경찰서를 가잔다. "잉? 이 무슨 황당 시츄에이션??" 이 일로 우리는 잠시 공황에 빠졌었다. 체류문제로 그렇찮아도 불안한 마당에 아예 호랑이 굴로 함께 가자고? 뭐가 잘못되는건 아닌가 걱정되서 여기저기 방법을 수소문하고 로마주재 영사관에도 연락을 시도하는 등, 몰타 출국이후 이탈리아에 들어와 다소 불안불안했던 신분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니 더 정확히는 부동산의 행동을 만류하기 위해 동분서주 했다. 결국 베로나의 엘리자베따에게 도움을 요청해 현재 우리 상황을 다급하게 알렸고 부동산과 통화해서 '대체 일을 어떻게 진행시키려는 것인지'를 알아봐달라 부탁했다.

요지는 이런거였다. 이탈리아에선 집을 계약할 때 임대인과 임차인의 계약상황을 경찰에 넣어 확인하는 절차가 있다고 한다. 이 두 사람의 신원이 확인되면 계약이 진행되는 것이고 누구 하나의 신원이 경찰의 데이터에 없다면 계약이 안된다는 거다. 우리로 치면 주민등록증이 없으면 계약이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우리는 몰타 이후로 이탈리아 입국신고는 커녕 입국도장 하나 안찍혀 있으니 이게 계약의 문제를 일으킨 거였고 그것까진 몰랐던 우리는 부동산 부자(父子-가족이 운영한다)가 혹시 우리에게 흑심을 품고 경찰에 넘기려는 무슨 인종차별주의자나 이탈리아 파시스트 당의 지지자는 아닐까 하는 의심까지 품는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다.

유스호스텔로 잠시 '피난' 와있을 때 호스텔 식당에서 만난 멋쟁이 아줌마 엘레나와 오른쪽 까를로. 까를로는 시인으로 최근에 3번째 시집을 발간했다. 발행부수는 25권. 운율을 무시한 최근의 시는 모두 엉터리임을 강조한 그는 시詩야말로 세상의 모든 권력이 두려워 하는 것이라며 특유의 저음으로 으르렁 거리며 이야기했다. 이탈리아어 개인교습을 받으면 확실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언어는 물론 문화적 지식과 교양수준도 상당한 묘한 인물. 우리에게 들려준 마지막 시는 베를루스코니에게 바치는 시였는데 몇 문장 읊다가 갑자기 율동을 곁들이며 '버락 오바마'를 후렴으로 반복하며 춤을 췄다. 백댄스가 없다는 점을 무척 아쉬워 했던 까를로.

한 바탕 소동이 끝나고 다음 날, 부동산과 함께 가까운 경찰서로 찾아갔다. 결코 발길이 쉽게 따르지 않는 길이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이미 우리는 호랑이 등에 올라탄 상황이었다. 부동산, 즉 프란치스코(아들)가 경찰에게 당분간 살 집을 얻겠다는 우리의 상황에 대해 주루륵 설명을 했고 이를 들은 경찰은 우리 여권을 보며 물었다.

경찰 : "입국도장 어딨냐?"  
달고나 : "아무도 안찍어 줬다" 
경찰 : "언제 입국했냐?" 
달고나 : "11월 초에 입국했다" (사실은 9월 마지막 날)
경찰 : "그 전에 어디 있었냐?"
달고나 : "몰타에서 영어공부 했다. 그거 마치고 들어온거다"
경찰 : "비행기 티켓 있냐?"
달고나 : "오래전에 버렸다"


이때 까지만 해도 경찰이 우리의 불분명한 체류 일시를 문제삼아 무슨 강제력을 동원하는게 아닐까 잔뜩 의심을 품고 있었다. 얼마 후,

경찰 : "잘 들어라, 당신들은 입국신고를 해야한다. 그건 여기서 하는게 아니고 뻬루자 시경의 이민국에 가서 신고해야 하는거다. 단, 입국일로부터 8일 이내에 신고해야 한다. 잘 들어라, 8일 이내다" (그리고 한쪽눈 윙크)
달고나 :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씨"


가끔가다 서양인들의 재치넘치는 제스쳐를 보면 참으로 신통한 의사소통 능력의 하나라고 생각하곤 하는데 이 상황에서의 윙크 역시 마찬가지였다. 센스 넘치는 어느 경찰의 비밀스런 배려는 장황한 말이 아닌 한쪽 눈을 찡긋 감아주는 것으로 우리에게 정확히 전달됐다. 이제 이민국에 가서 서류를 작성하고 그들에게 윙크 경찰관의 메시지대로 며칠 전에 입국했다고 강변하고 비행기 티켓 없다고 하면 되는 것이다. 입주를 위한 돌파구가 열린 셈이다.

지난 18일 목요일, 아침 7시 30분에 시경 내 이민국에 도착해 추위속에서 거진 5시간을 기다린 끝에 뻬루자 경찰의 도장이 꽝 직힌 A4 반쪽짜리 서류 하나를 받아 들었다. "애게.. 이거야??" 우리가 꼬불꼬불 기입해 넣은 신청서에 도장 하나 찍힌 너무도 볼품없는 종이 한 장. 허나 이것의 위력은 대단했는데 부동산 프란치스코에게 건네자 계약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집안에 가스도 연결됐고 몇 장에 걸친 계약서도 술술 작성됐다. 마지막으로 프란치스코가 계약서를 경찰에 넣었고 몇 시간 후 승인이 되어 되돌아 왔다. 이로써 이탈리아 뻬루자에 우리 명의로 계약된 월세집에 입주할 수 있게 됐다.


한 때 파시스트가 아닐까 의심했던 부동산 부자, 허나 이들은 착하고 성실한 장사꾼들이었다. 왼쪽이 아버지 프란체스코, 오른쪽이 아들 프란치스코. 이탈리아는 집안 중심의 사업이 대부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집주인도 함께 한 자리에서 정식계약을 맺고 있다. 오른쪽 책상에 선 월세와 부동산 중개료가 놓였다. 

그리고 어제, 그동안 호텔과 감옥같은 단기임대 골방과 유스호스텔을 전전하며 끌고다녔던 짐을 이끌고 3층짜리 고택, 움브리아의 주도 뻬루자의 Via Imbriani 29번지에 당당히 입주했다. 방 2개, 주방겸 작은 거실, 욕조가 있는 화장실, 곳곳에 창문이 달렸고 페루자의 전원풍경과 저 멀리 아펜니노 산맥의 설산, 그리고 아씨지의 모습이 바라다보이는 발코니를 갖춘 집. 가스불도 나오고 전등도 다 켜진다. 라지에터에서 열기도 나오고 온수도 콸콸 쏟아진다. 뻬루자의 중심광장 Piazza Novembre까지 걸어서 3분, 언제든 뻬루지노들의 부산함 속으로 뛰어들 수도 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연말연시, 이탈리아는 바로 이 빵, 빠네또네로 홍수를 이룬다. TV광고도 열에 3편은 저 광고다. 1kg짜리 빵 안에는 제품에 따라 건포도, 과일, 견과류가 그득하고 단 맛 좋아하는 이탈리아인의 입맛에 맞춰 빵도 무척 달콤하다. 보는 것 만으로도 풍성함을 느낄 수 있는데 시원한 발포성 와인, 즉 스프만테와 함께 먹으면 맛도 좋고 분위기도 난다.

이제 이탈리아에서 꿍꿍이를 펼칠 훌륭한 아지트가 마련됐다. 자축을 위해 7유로짜리 와인과 스프만테, 그리고 요즘 한창 판매중인 크리스마스 별식 빠네또네도 사왔다. 저 멀리 아씨지의 불빛을 바라보며 거품 풍성한 스프만테 와인에 달콤한 빠네또네를 먹고싶다면 이곳으로 오라. 건넛방의 라지에터도 뜨끈뜨끈하게 잘 돌아간다. 하하

방 안에서 바라본 풍경. 가슴 탁 트이는 풍경도 좋고 하늘을 가까이 두고 있는 것도 좋고 빨래하고 난 뒤 널 수 있는 빨랫줄이 있는 것도 좋다.

Posted by dalgonaa